소설리스트

〈 16화 〉016. 신목(神木)의 비밀(1) (16/730)



〈 16화 〉016. 신목(神木)의 비밀(1)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
아이테르의 학교장, 올리버 바오트만은 멍하니 뒤바뀐 세계를 보며 중얼거린다.
그들이 서있는 장소는 아이테르의 정원이 아닌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칙칙한 어둠만이 감도는 감옥이었다.
벽에 비치된 마법등(燈)이 어두운 감옥의 내부를 미약하게 밝혀주고 있다.
은현을 제외한 모두가 이 현상을 보며 잔뜩 긴장한 기색을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엘빈은 물론이고, 은현의 동료였던 일리아나와 리오드에게도 마찬가지.
일리아나가 갑자기은현의 멱살을 잡아끌더니 은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따졌다.

“야! 너, 이 마법은 또 뭐야?!”

“아~최근에 말이지. 써먹을  있겠다싶어서 한 번 만들어봤지.”

“하….”

일리아나는 그 말에 기가차서 제대로 된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내 경악이 담겨있던 그녀의 시선은 묘한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다시 은현에게 물었다.

“혹시, 나도 배울 수 있어?”

“응. 이건 무리.”

“그래….”

일정 구역의 공간을 아예 다른 것으로 재구축하는 마법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이것은 전이계열의 최고위 마법인 텔레포트와는 개념이 완전히 틀린 새로운 종류의 마법에 마법사로서의 탐구심이 번뜩인 순간이었으나, 은현이 배울 수 없다고 한다면 배울  없는 것이었다.
 점을 알고 있는 일리아나는 너무 아쉬웠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 마법은 무엇인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일리아나 다음으로 마법에 대한 탐구심이 가득한 중년 남자, 올리버가 은현을 보며 물었다.

“이건 과거의 사건을 바탕으로 제가 재구성한 환영 마법의 일종이죠.”

“환영마법….”

 단어를 입에 중얼거리며 엘레노아가 감옥 속의 독방에 손을 뻗었다.
엘레노아는 자신의 손이 독방의 문에 닿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보며 매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공녀님의 팔처럼, 저희가  환영에 간섭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환영은 오로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재현’하는 것 뿐 이니까요.”

“과거를 재현….”

“혹시 이 마법을우리 학교에 와서 가르치는 것은….”

“아쉽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가르쳐 줄 생각도 없고, 애초에 가르쳐 줄 수 있는 종류의 마법이 아니에요.”

일리아나에게도 똑같이 대강 얼버무리긴 했지만, 실제로 이 마법을 누군가가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것은 정확히는 마법이 아니라, 은현이 가진 사도의 권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르드가 부여했던 ‘과거의 업을 현재로 가져오는 복제의 권능.’
그것은 이 세상의 상식이나 문명을 부수는 수준의 무언가를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반대로 그 조건만 만족한다면 그 무엇이라도 가져올 수 있는 권능이었다.
설령 그것이 ‘과거에 존재했던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은현은 ‘과거에 존재했던 사건’을 그대로 현재로 가져와 그것을 재현시키는 것이었다.
마치 이전에 저장해두었던 동영상 파일을 사람들 앞에서 재생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지만, 이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과거의 사건을 재현한다는 건, 네가 보여주려는 것은 나의 이야기로군.”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보여드리려는 것은 헤르샤 준남작 사건의 진실이죠.”

“진실?”

“뭐, 설명은 여기까지만 해두고. 이제 여러분 모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연극’을 관람해주시길 바랍니다.”

또각또각

은현의 말을 시작으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배치된 등장인물이 등장했고, 연극이 시작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쇠창살 너머에 있는 독방 안에 석재로 된 침대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남자는양손에는 나무로 된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중년 남성은 감옥 안에 갇혀있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 불안해 하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

- 괜찮으세요?

젊은 남자가 걸어와 쇠창살 앞에 섰다.
남자는 쇠창살 너머의 죄수를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 괜찮다.

- 어떻게 된 거에요?

누명이다. 곧 풀려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는 묘한 확신이 서려있었다.
이대로 자신이 감옥에 계속 갇혀 있을 리가 없다는 확신이.

- 아버지…저 발견했어요. 아버지 방에서 숨겨둔 금화주머니요.

- …….

- 사실…인거죠?

- 아니야.

- 버나드 보리스라는 후작 귀족님도 찾아왔어요.

 이름을 들은 레니온은 처음으로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엘빈을 보며 처음으로 동요하는 표정을지었다.

- 그자가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든?

- 아버지가 빼돌린 금화를 되찾아서 회수하도록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저와 에린은 죄를 감면시켜주고 사형까지는 면하게 해주겠다고…. 후작 귀족이나 되시는 분이 직접 찾아와서 그런 말씀을 하실 정도인데….

- 젠장!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 그동안 내가 챙겨준 금화가  닢인데! 정말로 날 버릴 셈인가?!

이전까지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레니온이 나무로 된 수갑을 석재로 된 침대에 내리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이렇게  이상 어쩔 수 없군. 엘빈, 나를 감옥에서 탈출시켜라. 그 다음….

- 아버지를 탈출시키라고요?

- 그럼? 이럴 때를 대비해서 널 마법사로 키웠는데.

- …하아.

엘빈은 실망을 넘어 어이가 없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한 가지 결심을 한 엘빈은 마음을 다 잡고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말을 걸었다.

아버지.

뭐냐.

엘빈의 진지한 음성에 레니온도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감옥에 있어봐야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레니온은 어서 감옥에서 탈옥해서 횡령한 금화를 가지고 도주할 생각을가지고 있었다.
마법으로 자신의 탈옥을 도와야하는 엘빈이 시간을 끄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이곳에서 탈옥하기 위해서는 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부름에 답했다.

- 아버지는 정말로 어머니를 사랑해서 결혼한  맞았나요?

- …….

레니온은 느닷없는 엘빈의 질문에 순간 동요했고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 그게 지금 중요한 것이냐?

- 아주 어렸을 때….

엘빈은 주먹을 꽉 쥐고선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꾹 화를 참는 것 같은 모습이다.
또한 떠올리기조차도 싫었지만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어린 시절 겪었던 기억의 상처를 어떤 말로 표현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 바닥에 쓰러지신 어머니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계시고 쓰러진 어머니를 보며 버럭 성을 내는 당신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엘빈은 더 이상 레니온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는 터져 나오려는 화를 억지로 참아내고는 머릿속으로 동공이 풀리고 점차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어린 엘빈과 에린에게 도망가라고 손짓하는 어머니의 모습.
희미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하며 슬며시 웃음 짓는 표정을 보며 처음 느껴보았던 절망의 감정.
잦은 구타와 마음의 병으로 점점 쇠약해져가며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점점 성장하고 성숙해진 에린에게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케 했을 때, 자신의 딸을 짐승 같은 욕망이 깃는 시선을 받으며 학대받던 자신의 여동생을 떠올렸다.
엘빈은 자신의 몸 안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남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어리고,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이 대항할 수단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그는 속으로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참고 참아 언젠가 모아둔 분노를 터뜨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직 엘빈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레니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이 만약 지금의 배임 횡령에서 발각되었을 때를 대비해 다른 나라로 밀입국할 루트를 만들어둔 것도, 거기에 저나 에린은 포함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냉정한목소리로 자신이 비밀리에 준비해두던 것을 밝히는 엘빈의 말에 레니온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흑마법 중 하나인 조영술(調影術)을 익힌 엘빈은 레니온의 그림자에 자신의 사념을 심어두었고 레니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렇게 때문에 그동안  몰랐던 레니온이 저지른 비리와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서 샅샅이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알면 알수록 늘어가는 실망과 경멸, 증오심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자신의 몸을 좀먹는 그림자에게 이성이 완전히 잠식당하는 시간을 약 10년 정도로 예상했던 엘빈은 예상보다 빠른 침식 속도의 원인이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의 감정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엘빈의 부정의 감정을 좀먹던 그림자들이 그 공격성과 만나 더욱 흉포해진 것이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쓰레기 같은개X끼가!

엘빈의 참고 참았던 감정의 둑이 드디어 무너진 순간이었다.
레니온의 시선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이윽고 엘빈의 분노 섞인 노성이 감옥 안에 크게 울려퍼져 간수가 오는 것이 아닐까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기묘하게도 감옥 안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고 레니온은 그제 서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엘빈은 간수의 동행도 없이 혼자 레니온을 찾아왔고 다른 독방에서 조차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독방들과 수백 명의 인원을 수용할수 있는 넓은 감옥이 건만 이곳에 있는 것이 레니온 자신과 엘빈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싸늘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 그, 그건 오해다.

오해?

- 그래. 오해다.

하….

엘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렸다.

- 이,  아버지를 버릴 셈이냐! 어서 나를 구하지 않고 뭘….

- 아버지?

 말을 듣자마자 엘빈은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던 것을 행동에 옮겼다.
순식간에 사라진 엘빈의 몸이 레니온의 뒤에 있는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무언가를 인식할 틈도, 피할 틈도 없이 레니온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독방 안을 굴러다녔다.
절단된 목에서는 피분수가 터지며 독방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의 유언도 핑계도 비명도 듣고 싶지 않았던 엘빈이 망설이지 않고 레니온의 목을 그림자 무기로 절단시킨 것이었다.

- 그 더러운 입으로 아버지라고 하지 마.

머리가 없어지고 몸뚱이만 남아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시체를 보며 아무도 들을 리가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엘빈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등장인물들이 퇴장하거나 죽음으로서 연극의 막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침묵했다.
너무 잔인한 내용의 연출이 포함된 상영으로 눈살을 찌푸리거나.
은현이보여준 이 환각이 정말로 진실이 맞을지 아닐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 연극의 주연이었으나 아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이도 있었다.
조용하고 어색한 침묵 속에서 은현은  침묵을 깨며 한 가지 사실을 선언했다.

“레니온 헤르샤를 살해한 범인은 흑마법사, 엘빈이었습니다.”

은현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고 환영으로 만들어진 감옥 속에서는 차디찬 바람소리만이 무거운 침묵을 대신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레니온이 감옥에서 투옥된  3시간 만에 살해되었다는 사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일이었다.
살해당한 이후  사건을 감추기 위해 레니온의 죽음은 ‘살해’가 아닌 ‘처형’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었다.
엘빈은 저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었지만, 레니온의 얼굴을 본적이 없는 은현이 어째서 환영 속에서 레니온의 얼굴과 자신의 분노하는 감정과 죽이는 장면에 대한 묘사를 정확히 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치 그 자리에서 직접 은현이 엘빈과 레니온의 이야기와 살해 장면을  마냥 너무나도 리얼한 재현을 해낸 것에 오히려 이질감을 느꼈지만 내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람들 또한 은현이 보여준 이 환영이 진짜로 있었던 일을 재현한 것이라는 것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용의 중심이었던 엘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담담히 있었기 때문이다.

“저 연극의 내용이 진짜 있었던 일이라 하더라도. 한 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사실이 있다.”

연극이 끝났지만 아직 감옥의 배경을 유지한 상황에서 알렉스가 나서며 엘빈에게 물었다.

“어째서 내 동생을 죽이려 한 거지? 우리 가문이 너와 거래를 했다는 건 무슨 뜻이냐.”

대답여하에 따라서는 곧바로 검을 빼들어 엘빈을 공격할 의사도 가지고 있었던 알렉스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자신의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대답은 엘빈이 아닌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그건 말이죠. 엘빈이 아르미타스 공작님에게 레니온이 빼돌린 금화를 모두 넘겨주는 대신, 레니온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엘빈과 에린 남매에게죄를 묻지 않는다는 약속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

알렉스와 엘레노아는 여기서 자신들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진심으로 예상하지 못한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은현은 그 반응을 보고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상하죠? 약속대로라면 공작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화를 먹고, 엘빈과 에린은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았어야 할 텐데.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요?”

마치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두 남매들을 조롱하는 말투.
그 말을 들으며 남매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마치 ‘모든 잘못은 너희 집안의 문제인데?’라고 말하고 있는데, 자신들은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뭘 배신했다는 거냐. 똑바로 말해.”

알렉스는 능글맞은 태도로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은현을 노려보며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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