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009. 신목(神木)의 유령(2)
이야기를 마친 이니스는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후 이니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함과 동시에 적절한 사례를 담은 은화가 담긴 주머니를 전했지만.
이니스는 은화 주머니를 받는 걸 거절했다.
애초에 귀족가의 아가씨였던 그녀에게는 은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부정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진지하게 생각해준 것에 대해서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고 감사인사를 하고선 도서관을 나갔다.
다시 두 사람만 남은 은현과 일리아나는 이니스가 말해준 목격담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아이테르의 학교장과 마법학 교수들은 모두 목격자가 헛것을 봤다고 단정 지었다네.”
“근거는 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탐색마법을 비롯해서 학교 전체를 이잡 듯 싹 다 뒤졌는데 시체는커녕 마법이 사용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만약 정말 마법적인 현상이 일어난 거라면 자기들이 찾아내지 못한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인데. 그 자존심 높은 귀족 마법사들이 그걸 인정하겠어?”
코웃음 치며 일리아나는 아이테르의 학교장과 마법학 교수들을 비꼬았다.
왕국내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단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최고의 집단은 왕국 궁정마법사단인 ‘메이거스’다.
또한아이테르의 학교장이나 교수들은 모두 페르니아스 왕국의 궁정마법사단인 ‘메이거스’에서 한 역할을 맡고 은퇴한 전적이 있거나, 그만한 실력을 가진 귀족 엘리트들의 집합소다.
그런 그들이 그렇게까지 수색을 했음에도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는데, 떡하니 단서나 흔적이 나온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같은 마법사인데도 불구하고, 일리아나와 이 나라의 마법사들 사이에는 은현이 아직 모르는 이상한 갈등이 있는 듯 했다.
무슨 이유인지 은현은 신경이 쓰였지만, 구태여 그것을 은현 쪽에서 일리아나에게 묻지는 않았다.
“네 생각은 어떤데?”
은현은 일리아나에게 물었다.
“글쎄……. 일단 나는 뭐라 말할 수 있을 만한 확신이 없네. 애초에 나는 이런 쪽의 마법은 영 아니라서. 이런 건 나보다 너가 더 잘 알잖아.”
“알기만 할 뿐이지.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서 신빙성을 높이는 건 당연하잖아.”
“흥.”
일리아나는 은현의 칭찬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지 미소 지으며 은현이 끓여준 홍차를 마셨다.
“난 그럼 한 번 갔다 와볼게.”
“아이테르?”
“일단 직접 한번 현장을 보고 싶어서.”
“아~. 알았어. 그리고 리오드한테도 한번 갔다와봐. 일단 걔네 기사단이 지금 도주 중인 오빠 쪽을 추적하는 중이거든.”
“그러지. 뭐.”
“리오드한테 연락은 내가 해둘게.”
“알았어.”
“응. 그럼 수고해.”
일리아나는 손을 흔들며 도서관장실에서 나가는 은현을 배웅해주었다.
은현은 정말이든 착각이었든 직접 조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행선지가 정해지자마자 곧장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현이 학교에 도착한 건 자정이 가까워져 다음 날이 올 시간이었다.
태양이 없음에도 달빛에 비쳐서 밝은 학교의 건물이 보였다.
가까이 걸어가 학교의 외부를 살폈고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대문은 폐문이 되어있지 않았다.
대문이 잠겨있지 않은 것에 무슨 관리가 이렇게 허술한 것이냐며 속으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 학교는 보안의식이라는 것이 없는 건가? 하긴 어린 여자애가 몰래 잠입도 할 수 있을 정도면 말 다했지.”
수도에서 잘나가는 대상단 같은 사기업들도 기밀서류나 내부 정보 유출을 우려해 철저한 보안을 강화하는 게 기본인데.
나라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보안 수준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똑같이 왕가의 예산으로 운용되는 일리아나의 마법도서관.
‘메르비스’는 세계의 지식들이 기록된 귀중한 장서들이 많이 입고되는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장인 일리나아의 마법으로 철저히 보호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공공기관의 보안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써본 적이 없었다.
그녀보다는 못해도 어느 정도의 보안은 대비해두리 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무방비한 상태로 방치하다니.
왕국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 이래도 되는 걸까 싶었다.
“뭐,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기도 하지.”
은현은 덕분에 이렇게 간단히 잠입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대문을 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어?”
대문을 지나 학교 건물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은현은 화단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을 응시했다.
가장 먼저 은현의 눈에 띄어 시선을 끌었던 것은 화단과 나무 벤치의 중심에 중심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나무였다.
일반적인 나무치고 키가 매우 컸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비로웠던 광경은 발광(發光)하는 녹색 빛들이 나무의 주위를 하늘하늘 떠다니며 맴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독 그 나무의 중심에만 녹색의 밝은 빛들이 모여 있었다.
“마나가 이렇게……. 그런데 이렇게 형체를 이룰 정도로 밀도가 높은 마나들이라니.”
은현은 반딧불처럼 나무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녹색의 마나들을 보며 나무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렇군. 이게 바로 ‘소망의 나무’인가?”
아이테르의 ‘소망의 나무’에 관한 일화는 꽤 유명하다.
간절한 소원을 빌면 이루어준다는 소문 때문에 나무를 찾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강한 기사나 마법사가 되고 싶다거나, 이외엔대부분 연애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재미로 찾는 게 대다수라는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현재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나이 많은 귀족들도 이 학교를 입학했고 졸업했기 때문에, 학교의 창립 이래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소망의 나무’는 학교와 이 나라의 명물 취급 받고 있었다.
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준다는 소문.
은현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미신이라 생각했다.
페르닌 수도 내에 있는 광장에는 큰 분수대가 있는데 그 분수대에도 동화 1개를 분수대 안에 던지며 염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다.
대부분 장사의 번창을 기원하거나가족의 건강을 빌거나, 사랑하는 이와의 연애가 성취되기를 비는 등의 염원이었지만.
그것이 동화를 던지는 것과 소원을 이루어지는 것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은현은 이 나무에 감춰진 비밀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 학교가 창립된 원인이 이 ‘페르니아스의 신목(神木)’때문이다.
낙후될 때마다 학교 건물을 개축하면서 200년이 넘는 긴 역사와 문맥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왕가가 이 ‘신목’의 진짜 정체를 대륙에서 감추고싶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왕가의 사람에게만 전승되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페르니아스 왕가를 제외한 왕국의 사람은 그 누구도 이 신목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예외를 두자면 은현뿐이었다.
은현은 말로만 들었던 신목의 정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 때문인지, 감회에 빠져있었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이 광경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을 탐구하고 싶은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였다.
“흐음?”
은현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의 시선이 아니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기운을 느낀 은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곧장 자신을 중심으로 학교의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대량의 마력을 전개한다.
위이잉!
은현이 자신을 중심으로 마력을 전개하고, 전개한 일정 범위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기술, ‘감지’였다.
마법은 아니었지만 레이더와 초음파의 원리를 이용해 마력을 사용하여 비슷한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감지 기술이다.
허공에다 전자파, 또는 초음파를 쏜 다음, 어떤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반사파를 측정하여 탐지된 물체의 방향, 거리, 속도 등을 파악하는 원리를 채용한 것.
은현이 20년 전 미르바빌라 제국의 황궁에서 수 만 마리의 마수와 대적하면서 초반에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의 권능보다도 이 감지 기술의 덕이었다.
그는 전 방향으로 이 감지기술을 펼치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수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모든 공격을 간파하고, ‘사고 가속’으로 가속화된 사고의 흐름은 간파된 모든 마수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신기를 보였었다.
사도에서 받은 권능이 아닌, 은현 스스로가 심혈의 노력을 기울이며 만든 그만의 기술이었다.
학교 전체를 범위로 감지를 펼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이후 학교에 있는 모든 시설과 구조들이 뇌 속으로 전달되는 모든 정보들을 분석하기 까지 약 2초가 걸렸다.
그리고 멀리 있는 건물의 옥상 위에서 자신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아닌 무언가.
그 정보를 포착한 은현은 이내 회심의 미소 지었다.
몸을 돌려 그 무언가가 있는 옥상을 향해 얼굴을 들어올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고 그 무언가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고, 은현은 웃으며 중얼거렸다.
“찾았다,”
◆ ◆ ◆
처음 남자를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호기심이었다.
달빛에 비치는 눈부신 백은발과 수려한 외모.
나이는 20살의 초반대로 매우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행색은 사치스러운 보석이나장신구 같은 것을 차지 않았기 때문에, 귀족보다는 평민 같은 행색.
말끔한 원단과 단정해 보이는 옷은 굳이 장신구를 치장하지 않아도 단아한 남자의 외모를 빛내고 있었다.
이윽고 자신의 시선을 느낀 남자가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것’과 남자는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진한 피를 연상시키는 새빨간 눈동자에압도당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벽 따위는 ‘그것’의 장애가 되지 못했고 그대로 수직상승하여 건물과 건물사이를 통과하해 빠르게 올라갔다.
순식간에 옥상으로 올라간 ‘그것’은 이제는 안전할 것이라는 안도감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남자를 관찰하기 위해 남자에게 시선을 옮기려 할 때.
위이잉!
갑자기 나무 주위의 기운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이 휘몰아쳤고 점차 범위를 넓혀가며 학교 전체를 장악해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뒤덮는 마력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이 마력의 주인이 누구의 것인지 곧바로 알아 챌 수 있었다.
나무의 옆에 서있는 남자를 다시 한 번 쳐다본 순간.
남자는 이미 자신이 있는 옥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말은 너무 멀리 있던 ‘그것’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고 무언가를 말한 입모양은 볼 수 있었다.
‘찾았다.’라고 말한 것이 확신했다.
[읏…!]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자신을 보지도 못했고 말을 걸어 봐도 듣지도 못했다.
대낮에 정원들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만져보려고도 했으나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도 자신이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는데.
저 남자는 어떻게 자신을 인식한 것일까.
‘그것’의 눈에 그 남자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새벽부터였다.
새벽에 갑자기 등장한 남자는 처음 소망의 나무를 보았을 때, 나무를 보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자신의 시선을 느낀 남자가 자신을 눈치를 채 주었던 것은 평소 자신이 바라마다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것’에게는 그렇게 바랐던 일이 일어났음에도 기쁨의 감정은 생겨나지 않았다.
‘그것’이 느꼈던 감정은 기쁨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온몸을 휘감았던 남자의 마력 때문이었다.
남자가 전개한 마력이 순식간에 자신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자신의 구성요소들을 구석구석 샅샅이 조사하며 파헤치는 듯 한 감각에 ‘그것’의 감정은 섬뜩함에서 경악으로 바뀌어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그것’이 곧장 도망치려고 하늘로 날아오려고 했지만 행동은 남자 쪽이 더 빨랐다.
“가지마.”
하늘을 날아 도망칠 생각이었던 ‘그것’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신의 몸을 경직시켰다.
그리고 벌벌 떨며 뒤를 돌아보았고 옥상의 문 쪽에는 이미 남자가 서있었다.
‘그것’이 남자를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였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것’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래쪽 학교의 중앙에 위치한소망의 나무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역시나 없었다.
쌍둥이가 아닌가 싶은 의심에 확인해본 것이었다.
정원에 있는 나무쪽에서 자신이 있는 건물의 옥상까지오려면 쉬지 않고 뛰어와도 10분은 걸릴 텐데.
남자가 자신을 찾고 자신이 하늘로 도망칠 결심을 하기 까지 길어봐야 5초 남짓.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혹시 소망의 나무쪽에서 점프하여 옥상까지 오기라도 한 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이 보지 못 했을 리가 없다.
옥상의 문 쪽에서 나타났다면.
그렇다면 남자는 올라오는데 10분이 걸리는 거리를 겨우 5초 만에 올라왔다는 뜻인가?
그것도 말도 안 되지만, 아니 어느 쪽도 비현실적이며 말도 되지 않는다.
도망치려면 지금 당장 도망쳐야한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도주를 포기했다.
보나마나 다시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즉에 도주의 가능성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에린 헤르샤.”
갑작스러운 이름의 언급에 ‘그것’은 몸을 움찔 떨었다.
“맞지?”
왜 그렇게 긴장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남자의 표정에 ‘그것’은 왠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쭉 빠졌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응…….」
‘그것’은 포기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