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1)

#10. 그날

참으로 기묘한 장례 행렬이었다.

태어나 그렇게 화려한 꽃상여도 처음이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장례도 처음이었다.

심지어 초상을 치르는 가족들조차 울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도 애통해하지 않아서일까?

구름떼처럼 몰린 사람들도 그저 볼거리로만 여길 뿐 누구 하나 안쓰러워하는 빛이 없었다.

선 또한 구경꾼 틈에 끼어 싱싱하고 발랄해 보이기까지 한 꽃상여 행렬을 보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서 뭐해?”

놀랍게도 윤조였다.

“지점장님이 어떻게?”

“집에서 기다렸는데 안 와서 나와 봤지.”

“집이요? 언제 돌아오셨어요? 그런데 얼굴이…….”

전혀 상하지 않은, 평소와 다름없이 화사한 윤조의 얼굴에 선은 얼떨떨해졌다.

분명 고초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얼굴? 내 얼굴이 왜?”

선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 틈에 다 지나갔다 보다.

아니면 여태 나쁜 꿈을 꾸었던지.

뭐가 됐건 돌아온 윤조가 너무나 반갑고 좋아서 선이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야.”

“그만. 숨 막히겠어, 선아. 그만.”

윤조가 밀어냈지만 선은 포근하고 단단한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만 일어나. 어이!”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번뜩 눈을 뜨자 엉성한 술이 달린 중국식 사각 등이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짐 챙겨 나와.”

윤조는?

남자가 나가고 선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침상 아래로 가방이 굴러떨어졌다.

꿈이었구나.

동백 여관 앞에서 곧바로 끌려가 하루 동안 갇혀 있었던 어느 청요릿집 다락방의 어둠 속에서 선은 쓸쓸히 생각했다.

왜 하필 장례식인가?

불길한 예감에 어깨를 떠는데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짜증을 냈다.

“뭐해! 나와.”

윤조의 온기라고 착각했던 가방을 들고 나가니 바깥은 아직 껌껌한 새벽이었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남자를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대로변으로 나가 또 한참을 걷고, 다시 포장도 안 된 흙길로 접어들어 비슷비슷한 집들 사이를 걷고 또 걸은 끝에 도착한 곳은 간판도 없는 허름한 여인숙이었다.

좁고 지저분한 마당 한쪽, 이른 여름 햇살을 받아 번들대는 장독대를 끼고 모퉁이를 돌자 좁은 마루로 잇대진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남자가 그중 하나의 방문을 열었다.

“들어가.”

방 앞에 서니 열서너 살 정도의 소녀부터 또래까지 예닐곱 명의 여자들이 선을 쳐다보았다.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선이 방으로 들어가자 싸구려 분 냄새가 훅 끼쳤다.

분 냄새의 주인공은 머리에 헝겊 같은 것을 높다랗게 두른 채 방주인인 듯 활개를 펴고 잠든 여자였다.

여자를 피해 안쪽으로 들어간 선이 구석에 등을 대고 앉는데 소녀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알은척을 했다.

“언니야!”

“……넌?”

부청강당에서 만났던 엽렵한 소녀, 경자였다.

“억수로 많이 달라졌네. 머리도 자르고, 양장을 입어가 못 알아볼 뻔했다. 근데 언니야가 우째 여기 왔노? 그 신사분하고 결혼한다 안 캤나?”

경자의 말에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헤어졌어.”

“옴마야! 와?”

연애 소설처럼 달콤하던 환상이 깨져 버린 게 아쉬웠던 걸까?

경자가 두 손을 과장되게 모으며 안타까워했다.

“어쩌다 보니. 넌 왜 여기 있어? 강원도로 간 거 아니었어?”

“못 갔다. 짐까지 싸갔는데 갑자기 취소됐다고 집에 가라카대.”

“취소?”

“어. 그라드만 갑자기 일자리가 있다고 아래께 데불러왔드라.”

“어딜 가는데? 이번에도 군복 공장에 가는 거야?”

혹시나 기대했지만 경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다. 남방에 있는 일본군 식당에 가는 기다.”

“일본군 식당?”

남방이라니, 화연의 말대로 조선을 뜨긴 하는 모양인데 선은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윤조가 단파 라디오를 듣고 전해 준 전황에 따르면 남방 지역의 일본군은 거의 패퇴한 지경이라 했다.

그런 곳으로 징용을 간다고?

“너 거기가 어딘지는 알고 간다는 거야?”

“어데면 우떴노. 내는 돈만 벌믄 된다. 아부지는 아파도 약 한 첩 못 쓰는데 내 밑에 동생이 줄줄이 넷이다, 넷!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다 아이가. 돈 벌어서 핵교도 보내고, 집도 살 끼다.”

포부는 말할 수 없이 갸륵하나 불안감이 치미는데 한 소녀가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을 건넸다.

“쩌그, 방금 남방 식당으로 간다고 혔소잉?”

“그런데예.”

전라도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와예?”

“이상혀서요. 지헌티는 일본에 있는 군수 공장이라고 혔는디.”

“나한테는 만주에서 간호부로 일할 거라 했시다.”

한마디씩 보태는 말이 출신 지역처럼 제각각이었다.

뭔가 싸한 예감이 드는데 자는 줄 알았던 여자가 발딱 일어나 짜증을 부렸다.

“아유, 시끄러!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행선지만 다른 거지, 다들 근로 정신대로 일하러 가는 거야.”

간드러진 경성 말씨의 여자는 새빨간 루주에 두꺼운 분칠을 했지만 선과 두서너 살 차이밖에 안 나는 게 분명했다.

“너는 남방 식당에 가고, 너는 만주 가서 간호부하고. 그러니까 여긴 중간 집결지다 이 말이야. 알겠어!”

“말도 안 돼요.”

경성 여자가 재떨이를 끌어당기다말고 선에게 눈을 치켜떴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야?”

선이 간호부로 간다던 소녀에게 물었다.

“너 어디서 왔어?”

“해주에서 왔습네다.”

“황해도 해주?”

“맞습네다.”

선이 담뱃불을 붙이는 경성 여자를 돌아보았다.

“만주로 보낼 사람을 굳이 해주에서 부산까지 데리고 왔다고요?”

경성 여자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담배만 뻑뻑 피워대자 선이 방문을 열었다.

“저기요! 잠깐…….”

선은 얼어붙고 말았다.

멀리 서서 부하의 보고를 듣고 있는 콧수염 난 남자는 집에 들이닥쳐 선을 부청에 끌고갔던 그 남자, 기무라 겐이치였다.

화연과 그녀의 오라비.

그리고 기무라.

그제야 온전히 그려지는 그림에 선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 방에 모인 소녀들은 근로 정신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위안소로 가는 거였다.

거기서 어떤 신세가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안 돼. 절대 안 돼.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키는 사람도 그렇거니와 도망가면 윤조가 죽는다는 화연의 협박이 올가미가 되어 선의 목을 졸랐다.

“뭐야! 당장 안 들어가!”

달려와 선을 밀친 청년이 경성 여자에게 나직이 윽박질렀다.

“야, 기무라 상 오셨잖아. 똑바로 해라.”

“아이, 알았어. 걱정 마.”

나동그라진 선을 경자가 부축하는데 경성 여자가 협박조로 말했다.

“너희들, 다들 선금받고 지장 찍은 거 기억하지? 중간에 포기하면 열 배로 갚아야 돼. 밖에 저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입 싸물어라.”

경성 여자가 선을 째려보곤 재떨이에 담배를 거칠게 비벼 껐다.

“이게 다 무슨 일이고, 언니야?”

눈이 촉촉해진 경자를 보니 선은 앞이 막막해졌다.

아무리 당차고 붙임성 좋다 해도 겨우 열여섯 소녀인데.

경자라도, 저 아이라도 빼낼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 선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났다.

‘그래! 내가 도망가면 윤조에게 해코지한다고 했지만 다른 애는 아니니까.’

그때부터 선은 배탈이 났다는 핑계로 방을 들락거리며 여인숙 안팎의 동정을 살폈다.

하지만 바깥출입도 안 되고, 지키는 사내만 넷이라 아무래도 여인숙 내에선 무리일 듯했다.

그렇다면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그날 밤 선은 오줌을 누러 나온 경자를 붙잡아 함께 변소로 들어갔다.

“내 말 잘 들어. 저 사람들 절대 따라가면 안 돼.”

“아까부터 무섭게 와 그라는데? 언니야 뭐 아는 거제? 솔직히 말해 봐라.”

“……식당에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군인 상대로 몸을 팔게 할 거야.”

선이 놀라서 벌어지는 경자의 입을 황급히 막았다.

“조용히 해. 들키면 너나 나나 끝이야.”

“차, 참말이가? 그라믄 우짜노? 이 일을 우짜노, 언니야?”

“내가 도와줄 테니까 틈을 봐서 도망가.”

“저래 지키고 있는데 우째 도망을 가노?”

“남방으로 간다면 틀림없이 배를 탈 테니 항구나 기차역으로 갈 거야. 적당할 때 주의를 끌 테니까 그때 도망가.”

화연 때문이라도 저자들은 선을 1순위로 지킬 것이었다.

그런 선이 도주하려 한다면 당연히 다른 여자들에 대한 감시는 허술해질 터.

“내만? 언니야는?”

“……난 가야 해.”

선이 품에서 손수건에 싼 돈뭉치를 주었다. 윤조가 주었던 돈의 일부였다.

“이거 가지고 가.”

“옴마야, 무신 돈을 이래 많이 주노?”

“부탁이 있어. 빠져나가면 초량에 가서 도윤조 지점장님 집을 찾아. 일본식 기와집인데 대문에 커다란 금목서 나무가 있어. 가서 내가 어디로 갔는지 전해 줘.”

경자가 망설이며 물었다.

“혹시 거가 미야코다 상 집이가?”

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자의 눈이 비련에 젖어 들었다.

선과 윤조가 단순히 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얼굴이었다.

“알았다, 꼭 언니야 얘기를 전해 주꾸마.”

비극적인 신파 소설을 구할 마지막 희망의 전령이 된 듯 경자가 비장하게 다짐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짐을 든 소녀들 틈에 윤조의 편지와 결혼사진, 캬라메루가 든 가방을 보물처럼 챙긴 선도 함께 나왔다.

대로변으로 나가니 낡았지만 튼튼해 보이는 목탄 트럭 옆에 기무라가 서 있었다.

“태워.”

선은 조금 당황했다.

어디로 가기에 차를 태우는 건가?

혹시 부산역이 아니라 목포나 군산항으로 가나?

그러면 경자를 도망시킨 데도 부산까지 돌아올 길이 여의치 않을 텐데.

더 운이 나쁘면 근처 바닷가에서 곧바로 밀선(密船)에 태워질 수도 있다 생각하니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방금 나온 여러 갈래의 골목길로 들어가면 쉽게 잡진 못할 것이란 계산이 서자 사내들이 화물칸에 소녀들을 태우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경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지금이야.’

선이 옆에 있던 남자를 확 떠밀고 골목으로 뛰어드는 동시에 경자도 반대편 골목으로 내달았다.

“야, 저년부터 잡아!”

예상대로 사내들은 한 명을 제외하곤 죄다 선을 쫓아왔다.

선은 좁다란 골목길을 미친 듯이 달렸다.

도망가, 경자야. 빨리 도망가.

간절히 빌며 미로 같은 모퉁이를 몇 번이나 돌았을까?

숨이 턱에 닿을 즈음 선은 앞과 뒤를 막아선 사내들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선은 시간을 벌기 위해 최대한 저항했다.

“안 가! 이거 놔!”

“조용히 안 해!”

“일본은 곧 망한댔어. 그런데 우리가 왜 전쟁터에 가! 싫어!”

“주둥이 닥치라고!”

사내가 선에게 주먹질을 했다.

얼굴 쪽은 빗맞았는지 그런대로 참을 만했으나 배에 꽂힌 주먹에 숨이 막혀 주저앉자 머리와 몸통을 몇 차례 더 가격한 사내가 선의 뒷덜미를 사납게 잡아 일으켰다.

“시발! 겁도 없는 년이. 따라와.”

양쪽에서 결박한 사내들에게 끌려가다시피 트럭으로 돌아가니 경자는 보이질 않는다.

무사히 도망간 걸까?

아직 사내 하나가 안 보여 불안하기만 한데 뒤늦게 트럭으로 돌아온 청년은 혼자였다.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기무라에게 고개를 숙이는 청년을 보고서야 선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다른 여자들 때문에 차를 지켜야 했던 기무라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선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악!”

채찍처럼 얼얼하고 매운 손아귀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앞에 태워.”

기무라의 명령에 트럭 앞자리에 태워진 선의 입가에서 찝찔한 피가 배어났다.

소매로 피를 닦던 선은 문득 손이 비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까 잡혀서 맞을 때 가방을 떨어뜨린 것이다.

안 돼.

거기 윤조가 준 것들이 다 들어 있는데.

당황한 선이 트럭에 오르는 기무라에게 말했다.

“저기, 제 가방 좀…….”

경멸 어린 눈으로 볼뿐 기무라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돌려주세요. 제 가방이요.”

“……닥쳐.”

“달라고요! 가방 달라고…….”

“썅!”

기무라가 총을 꺼내더니 선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냥 죽을래? 판사님껜 가는 길에 물에 빠져 뒤졌다고 하지 뭐. 힘들게 먼 길 가지 말고 여기서 끝내자고, 이 골치 아픈 년아!”

차가운 총구가 관자놀이를 파고들자 선은 기무라가 그냥 방아쇠를 당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방에 가봐야 굴욕을 당하는 일 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살아도 산 게 아닌, 살아남아도 윤조에게 돌아가기 힘든 삶.

“왜 말이 없어? 야, 이년 가방 가져와. 같이 죽여 버릴라니까!”

하지만 여기서 죽으면 윤조는?

선은 이를 악물었다.

죽어도 조선은 떠나서 죽어야 했다.

그래야 윤조가 산다.

“잘못…… 했어요. 살려 주세요.”

기무라가 이를 갈며 총구를 내린 순간 청년이 선에게 가방을 던졌다.

선은 돌아온 가방에 얼굴을 파묻었다.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하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그런데 그 희망이라도 품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아서.

이윽고 부연 연기를 내뿜으며 트럭이 출발했다.

이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트럭 운전사와 기무라 사이에 끼어 앉아 선은 피와 같은 눈물을 삼켰다.

“에이 씨!”

드러누워 있던 순용이 가슴을 팡팡 치더니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마당이라도 나갈 심산이었건만 홍두깨를 들고 마루에 지켜선 의령댁을 보고선 멈칫 설 수밖에 없었다.

“뭐 하노, 할매?”

“몰라서 묻나. 방에 드가라.”

“아참! 와 이라노?”

“좋은 말로 할 때 도로 드가라!”

철벽같은 의령댁의 기세에 순용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안 지키도 된다. 간 지가 언젠데.”

“권 주임한테 어딘지 묻는 거 다 들었거든. 니는 오늘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갈 줄이나 알아라.”

“할매요!”

윤조가 잡혀 있는 장소를 알아낸 권 주임 일행을 따라가려는 순용을 기어코 막아선 의령댁은 그 길로 이렇게 따라다니며 손자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아부지 죽고 오갈 데 없는 우리를 받아 주신 은인이다. 사람이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지.”

“은혜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갚는 기다. 권 주임이 알아서 할 낀데 와 니가 설치노.”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힘이…….”

의령댁이 순용의 등짝을 퍽퍽 때렸다.

“총 맞아 디질라고 환장했드나, 이 머스마야! 아이고마, 우짜다가 독립운동인가 해방운동인가 하는 인사한테 재수 없게 걸리가꼬.”

“할매, 매국노가! 무신 말을 그래 하노?”

“그래! 내는 매국노다. 그러니까네 당장 나가자. 선이 그년도 도망간 마당에 우리가 뭐라꼬 이 집을 지킨단 말이고.”

“누부는 도망을 간 게 아이고…….”

“짐 싸가 나간기 도망이 아니믄 먼데! 내사 마 당장이라도 순사가 잡으러 올까 봐 무서버 죽겠다.”

마치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의령댁이 풀썩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아이고, 어매요! 살리 주이소.”

때는 지금이었다.

잽싸게 달려 나간 순용이 대문에 다다랐는데 쫓아온 의령댁이 앞을 가로막았다.

“열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하께. 할매는 조용히 있으소.”

윤조의 소식일 수도 있기에 순용은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누군교?”

“……여기가 미야코다 지점장님 댁입니꺼?”

가냘프게 떨리는 소녀의 목소리에 순용의 눈썹이 찡끗 올라갔다.

“누구십니꺼?”

“도윤조 지점장님 집이 맞십니꺼, 아닙니꺼?”

“맞기는 한데…….”

“아이고, 찾았다. 문 좀 열어 주이소. 선이 언니야 소식을 전해 드릴라꼬 왔십니더.”

선이라는 말에 순용이 대문을 열려 하자 의령댁이 다시 만류했다.

“안 된다. 누군 줄 알고 문을 열어 준단 말이고.”

“누부 소식이라 안 하요.”

의령댁을 뿌리친 순용이 문을 여니 볶은 참깨처럼 까무잡잡한 소녀가 진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소녀는 또래의 소년이 등장하자 눈알을 굴리며 문 안을 살폈다. 목소리만 듣고 어른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니는 누고!”

의령댁이 홍두깨를 치켜들자 놀란 소녀가 말을 더듬었다.

“소, 손경자라고 합니더.”

“누가 니 이름 물어봤드나. 누가 보냈노 말이다!”

다그치는 의령댁 때문에 경자가 겁이 먹고 물러서자 순용이 나섰다.

“그만하소. 선이 누부가 보냈다 안 하요. 들어온나.”

주춤주춤 눈치를 보며 들어온 경자에게 순용이 물었다.

“니가 선이 누부를 우째 아노?”

“징용을 가게 돼서 아침까지 같이 있었심더.”

“징용? 그라믄 누부는?”

눌러 왔던 공포가 터진 듯 경자가 눈물을 흘렸다.

“남자들이 도망을 못 가게 지키갔고 지만 간신히 빠져나왔십니더.”

“니 혼자?”

“예. 언니야가 이 집을 갈카 주믄서 꼭 소식을 전해 달라고 했십니더. 내 도망시킨다고 언니야가…….”

우느라 말을 잇지 못하는 경자를 순용이 독촉했다.

“어데로 갔노! 누부를 어데로 델꼬 갔노 말이다.”

“전차를 타고 오다가 부산역 쪽으로 언니야 태운 트럭이 가는 걸 봤십니더. 근데 아직까지 있는지는 잘, 옴마야!”

순용이 경자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뒤 곁으로 달렸다.

“와, 와 이라십니꺼!”

“순용아, 어데 가노!”

“누부를 찾아야 할 거 아닙니꺼.”

순용에게 이끌려 간 경자가 새까만 자동차를 보고 멀겋게 얼어붙었다.

이리 고급 자동차를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인데 순용이 차 문을 열자 더 놀랐고, 곧바로 이어진 순용의 말엔 기절초풍할 만큼 놀랐다.

“타라.”

“……에?”

“차에 타란 말이다. 자세한 얘기는 가믄서 하자.”

엉겁결에 차에 탄 경자는 순용이 운전석에 올라 거침없이 시동을 걸자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맞잡았다.

열여섯 소녀 경자가 열일곱 소년 순용에게 한눈에 반한 순간이었다.

트럭에서 내린 선이 넓은 광장을 눈으로 천천히 훑어갔다.

‘다시 여기로 돌아오다니.’

부산역.

얼마 전 초조하게 윤조를 기다리다 절망으로 쓰러졌던 곳이자 작년 가을,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고 도착했던 장소를 이젠 벼랑 끝에 묶인 몸으로 다시 돌아왔다.

웅대하던 역사가 이제 와 흉물처럼 느껴지는 건 헐린 채 방치된 주변 건물 때문인지, 얄궂은 운명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사내가 선의 팔을 당겼다.

“들어가.”

다시 도망칠까 염려가 되었던지 선에게 사내 하나를 따로 붙인 기무라는 역사에 붙은 일본어 벽보를 유심히 보는 중이었다.

벽보는 역사만이 아니라 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었으나 선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보나 마나 또 승리했다는 호외리라.

아침에 친 난리 때문에 주의를 받은 소녀들은 아무도 선의 곁에 오지 않았고, 경성 여자는 내내 옆에 있었어도 말은 걸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선은 대합실 의자에 웅크려 제발 경자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었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오전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은제 출발하는교?”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소녀 하나가 용기를 내어 물었지만 기무라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더니 정오가 되기 얼마 전 어디론가 사라졌다.

묘한 긴장감이 일행 사이로 퍼져 갔지만 선은 윤조의 캬라메루만 만지작거렸다.

“아침도 안 먹고 나와서 이게 뭐예요. 밥이라도 주든가, 배고파 죽겠네!”

정오가 지난 얼마 후 경성 여자가 항의하자 기무라의 오른팔이 나섰다.

“잠깐 기다려.”

찐 옥수수라도 구해 오려나 기대했건만 한참 만에 빈손으로 돌아온 오른팔은 부하들을 모아놓고 귓속말만 주고받았다.

그 후 약속이나 한 듯 사내들이 하나둘씩 없어졌다.

마침내 청요릿집에서 선을 지켰던 청년까지 자취를 감추자 참다못한 소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 어데를 갔노? 혹시 즈그끼리만 밥 묵는 거 아니가?”

“아무래도 수상혀. 틀림없이 뭔 일이 생긴 거랑게.”

“일은 무슨! 다 보고 있으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알았지!”

경성 여자마저 남자들을 찾아 나선 후에야 선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도망갈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도망가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하지만 함정이면 어쩌지?

총을 메고 돌아다니는 일본군을 보자 살갗을 누르던 총구의 감촉이 되살아나며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때 남자들을 찾으러 갔던 경성 여자가 꽁지에 불붙은 닭처럼 허겁지겁 뛰어왔다.

“야! 그놈들 아직 안 왔어?”

“예, 안 왔십니더.”

여자가 넋이 나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그게 진짜야……? 아, 내 돈!”

“와예? 무신 일인데예?”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경성 여자가 얼이 빠져서 소녀들을 훑어보았다.

“일본이…… 항복했나 봐.”

뜸을 들인 끝에 털어놓은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뭐라 했는교?”

“방금 라디오에서 그랬대. 종전한다고.”

“그럼 아까 정오에 중대 발표가 있으니 조선인은 경청하라고 쓰여 있던 벽보가……?”

“근디 종전이 뭐다요?”

“아, 전쟁이 끝나 부렀다고 안 허요.”

여태까지 말 한마디 않던 충청도 소녀가 느릿하게 물었다.

“그람 오늘 안 가는 겨?”

“그거는 모르지라. 아이, 다들 워딜 갔댜. 뭔 말을 해줘야제.”

경성 여자가 요란스레 주먹을 흔들며 안달을 했다.

“아유! 일본이 망해서 그 새끼들 다 도망간 거잖아, 이 멍청이들아!”

“우린 어떡해? 남방에 안 가?”

제일 늦게 합류한 소녀가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무심히 말했다.

“해방이 됐는데 거길 왜 갑니꺼.”

해방.

그때까지도 오가는 말을 남의 일처럼 듣고 있던 선의 머릿속이 일시에 맑아졌다.

일본이 항복했고, 전쟁은 끝났다.

그럼 윤조는?

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윤조를 찾아야 해. 일본이 패망했다고 알려 줘야 한다고.

선이 무리를 이탈하자 다른 소녀들도 눈치를 보다 줄줄이 따라나섰다.

“야, 너 어디 가! 거기 안 서!”

경성 여자가 발광하듯 삿대질을 했지만 아무도 듣는 이가 없어 허무하게 흩어질 따름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오후 햇살이 따갑도록 선의 눈을 찔렀다.

그것 외엔 오전에 역사로 들어갈 때와 모든 것이 똑같았다.

여전히 총을 멘 채 순찰을 도는 일본군들. 손님을 기다리는 인력거꾼과 지게꾼. 좌판 앞에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인과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는 노인네.

평소와 조금의 다름도 없는 풍경.

‘진짜 전쟁이 끝난 거 맞아?’

선이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이라도 사내들이 달려와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갈 것만 같아 두려웠다.

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지?

해방이 됐다면서 왜?

마음이 요동치다 못해 곤두박질치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정말 가도 되나? 혹시 도망갔다고 윤조를 죽이면 어떡해?

아직 무사하긴…… 할까?

길을 잃은 아이처럼 서 있는데 멀리서 검은 점 하나가 선을 향해 달려왔다.

손톱만 하던 점이 점점 커질수록 선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쳐 가나 보다.

저게 윤조의 차로 보이다니.

그런데 눈을 비비는 사이 선의 앞에 멈춰선 차에서 거짓말처럼 경자가 튀어나왔다.

“언니야!”

쟤가 왜 저기서 내려?

“누부야, 괜찮나?”

순용까지 등장하자 그제야 현실임을 깨달은 선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상처투성이가 된 윤조가 권 주임의 팔을 의지한 채 차에서 내린 것이었다.

윤조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선 앞에서 섰다.

“너 얼굴이 왜……?”

자신도 온통 멍투성이면서 피딱지가 앉은 선을 보는 윤조의 눈에 눈물이 고여 갔다.

“도련님…….”

“떠나라고 했더니 왜 말을 안 듣고…….”

“괜찮은 거예요?”

어디를 다치고 얼마나 상했는지 가늠할 수 없었기에 차마 윤조의 몸에 닿지 못한 선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다리는, 다리는 왜 이렇게 됐어요?”

울음이 터져 버린 선을 윤조가 끌어안았다.

“괜찮아. 난 괜찮아.”

윤조의 땀 냄새. 살냄새.

그리고 피 냄새.

“어떡해. 미안해, 미안해요.”

“아냐, 내가 미안하다. 널 여기 데려와서 내가…….”

그리운 윤조의 품에서 한참을 울던 선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들으셨어요? 일본이 망했대요. 정말일까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서 믿기지가 않아요.”

“저길 봐.”

윤조가 부산역 건물을 가리켰다.

돌아보니 시계탑 위 일장기의 빨간 동그라미 반쪽에 파란 물감을 덧칠한, 처음 보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저게 뭐예요?”

“태극기다. 우리나라의 국기.”

생전 처음 보는 국기라는 것이 찬란한 여름 태양 아래 펄럭였다.

“끝났어. 진짜…….”

긴장이 풀리는지 윤조가 휘청거리자 권 주임과 순용이 재빨리 붙잡았다.

“이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그제야 선은 윤조가 치료도 못 받고 달려왔다는 것을 알고 사색이 되었다.

“빨리 가요.”

차가 병원을 향해 날 듯 달리는 동안 윤조는 선의 어깨에 기대 정신을 잃어 가며 중얼거렸다.

“집에 가자. 가서 같이 있자, 선아.”

“그래요. 집에 가요.”

“됐어. 이제 됐어.”

선은 울며 의식을 잃은 윤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귓가에 쉴 새 없이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 * *

광복은 서서히 찾아들었다.

1945년 8월 16일 오전 형무소에 있던 정치범들부터 석방되기 시작했고, 신문엔 연일 조선인들이 친일 인사에게 가한 보복 공격과 경찰서와 관청, 신사 등을 습격한 기사가 실렸다.

윤조가 부서진 무릎을 수술하던 날엔 부산에서도 큰 사고가 터졌으니 야음을 틈타 도주하려던 민병기의 차에서 폭탄이 터져 민 판사가 즉사하고 동승한 여동생 민화연이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부인만 간신히 화를 면한 큰 사건이었음에도 워낙 민 판사가 독립운동가에게 가혹한 판결을 내리기로 악명이 높았던지라 수사는 진전도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민화연의 자살 소식이 두 주나 늦게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날, 끝내 한쪽 다리를 절게 된 윤조가 선과 함께 꿈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