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1)

#2. 별천지

“앉아.”

가방을 기차 선반에 올린 윤조가 통로 쪽 좌석에 앉으며 말했다.

하지만 커다란 보퉁이를 안은 선은 눈만 끔벅거릴 뿐 선뜻 움직이질 못했다.

“뭐해? 어서 앉아.”

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 서서 가렵니다.”

가난한 조선인이 득실거리는 삼등칸과 달리 부산행 기차 이등칸은 조선옷을 입고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물어 남루한 치마저고리에다 얼굴에 시퍼런 멍까지 든 선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방금도 윤조를 따라 이등칸에 오르려다 역무원의 제지를 당하지 않았던가.

“부산까지 열 시간도 넘게 걸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앉아.”

“그래도 어찌 쇤네가 도련님 옆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까?”

“이미 삯을 지불했어. 앉지 않으면 손해라고.”

“지금이라도 삼등칸에, 어맛!”

세련된 하이칼라 모던 보이와 촌스러운 귀밑머리 시골 처녀의 실랑이를 주목하는 시선이 늘어나자 윤조가 덥석 선의 손목을 잡아 강제로 옆에 앉혔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강한 감촉.

생각지도 못한 감각에 전율을 느낀 선은 의자에 앉자마자 손목을 잡아 뺐다.

작은 소란에 앞자리에서 졸던 비단 하오리 차림의 노신사가 짜증스럽게 쳐다보자 선이 홍시처럼 붉힌 뺨을 보퉁이에 푹 파묻었다.

하지만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덜컹 움직이자 고개가 번쩍 들렸다.

“출발합니다, 도련님!”

다시 눈총을 보내는 신사를 의식한 윤조가 나직이 주의를 주었다.

“목소리 낮춰.”

선은 착한 아이처럼 개성을 벗어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해도 안 뜬 새벽이라 딱히 뵈는 것도 없건만 창틀을 부여잡은 손과 진자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동그란 뒤통수에서 생생한 흥분이 느껴졌다.

“보십시오. 강을 건널 모양입니다.”

멀리 임진강 철교를 보이자 선이 못 참고 윤조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내내 유리에 박고 있었던 탓에 코끝이 빨갛다.

윤조가 픽 웃자 제 코 때문인 줄도 모르고 선이 멋쩍어했다.

“웃으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신기한걸요. 어떻게 저리 큰 강 사이에 무거운 쇠로 된 다리를 놓았을까요?”

“부산에 가면 더 놀라겠구나.”

눈시울이 짙어 실제보다 길어 보이는 선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왜요?”

“거긴 아예 바다를 메워 땅으로 만들거든.”

“바다를요? 그 크고 깊고 울렁대는 물속을 어찌 메운답니까?”

윤조가 선을 크고 깊고 울렁대는 바다라도 되는 듯 응시했다.

“보여주고 싶네.”

선은 몸속 어딘가가 스르르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럴까?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두근대고, 입술이 마른다.

당황한 선이 눈을 피하자 윤조가 물었다.

“군산도 그럴까 생각하는 거야?”

선의 커진 눈이 다시금 윤조를 향했다.

“제 고향을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어쩌다. 그동안 한 번도 바다를 못 봤나?”

“도련님 댁에 들어오고선 개성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걸요.”

윤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에 도착하면 바다 구경부터 시켜 주마.”

“아닙니다. 데려가 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산에서 구해 주신 것도요.”

“감격할 필요 없어. 밥 시키려고 데려가는 거니까.”

“그거야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인걸요. 그리고 쇤네를 위해 친구분의 도움까지 받으셨다는 거, 다 들었습니다.”

윤조가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방직공장에 종만의 이름을 올려 주는 조건으로 선과의 파혼을 제의하자 허 서방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원래부터 선과의 혼인이 탐탁하지 않던 참에 아들놈이 저지른 잘못을 덮어줄 뿐 아니라 군수 공장에 이름을 올려 징용까지 면케 해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도련님.”

윤조가 신문을 들었다.

“이제 곧 다리다.”

윤조가 신문을 펼치자 선도 차창으로 얼굴을 돌렸다.

무거운 기차 바퀴가 레일 위를 힘차게 구르며 임진강을 건너 남쪽으로 달려갔다.

팔을 흔드는 손길에 선이 설핏 눈을 떴다.

“일어나. 도착했어.”

흐릿하던 눈앞이 차차 맑아지자 기름기 흐르는 염소수염을 비비적거리는 노신사의 음흉한 시선이 느껴졌다.

왜 저러지?

의아해하던 선은 자신이 윤조의 어깨에 기대고 있음을 깨닫고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경성을 지나며 절정에 달한 선의 흥분은 수원 즈음부터 서서히 가라앉았다.

비슷비슷한 광경에 지루해진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멀미였다.

회복이 덜 된 몸으로 잠을 설친 데다 익숙지 않은 속도감과 덜컹거림에 속이 메슥거려 점심 도시락도 마다한 선은 대전쯤부터는 거의 축 늘어져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윤조의 어깨에서.

모자 아래로 멸시의 눈짓을 교환하는 여인들의 키득거림에 선은 민망해 죽을 지경이건만 윤조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속은 괜찮아?”

“예.”

기차가 멈추자 윤조가 가방을 선반에서 내리며 말했다.

“사람이 많으니 잘 따라와.”

“예.”

땅에 발을 디디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어질어질할 만큼 인파가 넘쳐나는 부산역 안은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 비린내 섞인 쇠 냄새, 여독 가득한 고린내로 선을 괴롭혔다.

선이 혼잡한 역사(驛舍) 안 인파에 치여 비틀대자 윤조가 대합실 의자에서 걸음을 멈췄다.

“잠깐 앉아 있어.”

“도련님은……?”

“금방 돌아올게.”

윤조가 어디론가 사라진 후 딱딱한 나무 의자 끄트머리에 하릴없이 걸터앉은 선의 얼굴이 갈수록 불안해졌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

지친 선에게 필요한 것은 신선한 공기였다.

그때 윤조가 멀미에 시달려 핼쑥해진 선에게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선이 놀라서 윤조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미루꾸(ミルク, 캐러멜)가 아닙니까?”

언젠가 큰서방님이 아기씨 사다 주신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태운 조청처럼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작고 쫀득한 갈색 사탕을 환장하고 먹던 아기씨들.

나중에 그 엄지손톱만 한 한 알의 가격이 찹쌀떡 몇 개와 맞먹는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이것을 왜……?”

“점심 못 먹었잖아. 단 게 들어가면 힘이 좀 날 거야.”

나 때문에 이 귀한 것을 일부러 사오셨단 말인가?

선은 어안이 벙벙해서 노란 상자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뭐해?”

윤조가 미루꾸 상자를 뜯으려 하자 선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있다가요. 그보다 여길 나가고 싶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이쪽으로 와.”

미루꾸 갑을 소중히 쥐고 윤조를 따라 나간 선의 입이 떡 벌어졌다.

몇 걸음 밖에서 선을 맞이한 풍경은 뾰족한 지붕을 얹은 높은 서양식 건물이 눈 닿는 사방마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별천지였다.

땡땡 소리와 함께 오가는 전차.

벌여 놓은 난전들을 피해 광장을 가로지르는 목탄 화물차와 자전거.

인력거에 내린 일본 여자가 게다를 끌고 되똑되똑 역사로 들어가자마자 지게꾼을 앞세운 중국 남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선은 마치 기묘한 요지경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불이 난 모양입니다.”

제 몸뚱이만 한 등짐을 짊어진 군인들의 행렬을 홀린 듯 뒤따라가던 선이 기차역 지붕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관부연락선이야.”

“연락선이요?”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 아까 기차에 탔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배로 환승해서 일본으로 가지.”

윤조의 표정이 울적해졌으나 선은 멀게만 느껴지던 일본을 배만 타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방금 나온 부산역을 경외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웅장한 역사는 다른 건물들처럼 붉은 벽돌이면서도 가장 공들인 느낌이 여실해서 마치 다른 건물을 거느린 주인처럼 당당해 보였다.

“보십시오. 시계가 있습니다.”

꺾일 듯 목을 젖힌 선이 꼭대기 시계탑을 가리켰다.

“어찌 저렇게 큰 시계를 달아 놓았을까요?”

“멀리서도 보고 기차나 배 시간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선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친절하네요.”

“……친절?”

찡그린 윤조가 뭔가를 말하려던 참이었다.

30대 중반의 서글서글한 남자가 윤조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안 나오셔도 된다니까요.”

“그게 아니라, 저기…….”

남자가 멋쩍게 가리킨 방향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차는 왜?”

“화연 아가씨가 아까부터 기다렸습니다.”

마치 불리길 기다렸다는 듯 화려한 깃털 모자를 쓴 여자가 우아한 자태로 차에서 내렸다.

“미야코다 상! 기차 도착한 지가 언젠데 왜 이제야 나와요? 한참 기다렸잖아요.”

윤조를 도항 허가증을 발급받기 위해 만든 일본식 성(姓)인 미야코다(都)로 부르는 여자, 화연에게서 선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진 엽서 속 여배우보다 아리땁고, 젖보다 하얀 살결을 가진 화연은 공주님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온몸에서 기품이 흘렀다.

“여긴 웬일이오?”

“추석 보내고 동경(東京)으로 돌아가기 전에 윤조 씨를 만나고 가려고 기다렸죠.”

거리낌 없이 윤조의 팔짱을 낀 화연이 뒤늦게 선을 발견했다.

“이 애는 누구예요?”

윤조와 가까운 사이라면 자신에게도 상전이겠기에 선은 얼른 허리를 굽혔다.

“살림을 도와주러 본가에서 보낸 아이요.”

“의령댁 있잖아요.”

“몸이 안 좋아서.”

화연이 샐쭉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의령댁하고 그 손자 애는 내보내실 참이세요?”

“같이 지낼 거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주인이 어디 있담?”

하녀와 단둘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이 됐는지 밝아진 화연이 선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얘, 너 얼굴이 왜 그러니? 누구한테 맞았니?”

선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저리 고운 분 앞에서 자기의 몰골이 얼마나 초라할까 생각하니 어디론가 꺼져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땀 좀 봐. 겨울도 아닌데 웬 목도리까지 둘렀어, 미련스럽게.”

“이만 가지. 차에 타.”

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루 종일 기차에서 시달린 끝에 겨우 땅 위를 걷게 되었는데 또 뭔가를 타야 한다고?

생각만 해도 배 속이 울렁거렸다.

“저기 도련님, 조금만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왜?”

“속이…….”

“아직 안 좋아?”

“뭐예요?”

뒷좌석에 오른 화연에게 윤조가 물었다.

“조금 있다 출발해도 되겠소? 기차는 처음이라 멀미가 진정이 안 되는 모양이오.”

힐긋 선을 살핀 화연이 자비를 베풀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래요, 뭐. 급한 일도 없으니.”

“고맙습니다, 아가씨.”

선은 거슬리는 가솔린 냄새를 피하려 차에서 서너 걸음 물러나 소금기 어린 공기가 들이마셨다.

한 번 두 번, 연이은 심호흡에 좀 진정이 되니 윤조와 화연의 대화가 들렸다.

“중국은 잘 다녀왔소?”

“그 얘긴 꺼내지도 말아요.”

“무슨 일이 있었소?”

“창가(唱歌)나 좋아하는 천박한 군인들 앞에서 가곡을 부르는 내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아세요? 황군(皇軍) 위문하려다 내 자존심이 다 깎였다고요.”

윤조의 미소에 화연이 어리광 섞인 신경질을 부렸다.

“웃지 말아요. 작위는 아버지가 받았지, 내가 받았나? 국방 헌금으로 비행기 한 대 값을 바쳤으면 됐지, 왜 나를 그런 험한 데 못 보내서 안달이신지 모르겠어.”

“자작님은 안녕하시오?”

“너무 건강하셔서 아주 절 볶아 먹으니 탈이죠. 요번에도 북쪽 탄광으로 도는 위문 공연단에 참여하라는 걸 오라버니가 막아 주셔서, 참! 오라버니께서 내년에 부산 재판소 판사로 부임하실지도 몰라요. 그때 나도 따라오려고요.”

“당신이 여길?”

“내년에 음악 학교를 졸업하면 틀림없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실 게 뻔한데…….”

어느새 선은 멀미도 잊고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자동차 곁에서 화연과 얘기를 나누는 윤조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도련님은 개성에 오실 적마다 낯설어져 갔다.

그땐 단지 오랜만에 봬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오묘한 황록색 광채가 도는 연갈색 눈동자가 고인 연못 같던 개성에선 튀다 못해 어색했었는데 부산이라는 이국적인 도시에선 이질감 없이 착 어울린다.

전쟁 중이라 너나없이 우중충한 국민복에 몸빼가 일상이건만 성공한 사업가와 귀족이라는 특권층에 걸맞게 화사하고 세련된 두 사람은 한 쌍의 서양 인형처럼 완벽하게 어울렸다.

선은 밀물이 밀려오듯 천천히 깨달았다.

개성은 작은 세계였음을.

윤조는 휘황찬란한 도시와 같은 남자로 성장했고, 그 옆에는 응당 자작의 딸이자 음악 학교를 다니고, 판사 오라비를 둔 화연 아가씨가 있어야 하는 거였다.

“얘 아직 멀었니?”

화연이 재촉했다.

“갑니다, 아가씨.”

땀이 식어 선뜻해진 목덜미 위로 목도리를 단단히 여민 선이 치미는 메슥거림을 짓누르며 차에 올랐다.

선이 불만스레 입술을 물었다.

일본식 문화 주택인 윤조의 부엌엔 놋그릇은 아예 없었고, 이 빠진 사기그릇 몇 개에 일본제 나무 그릇이 대부분이었다.

옻칠이 된 붉은 식기는 분명 고급이었지만 조선의 밥과 찬과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맛만큼이나 담음새에 신경 쓰는 개성식 음식 치레에 익숙한 선으로서는 상을 내놓기가 영 꺼림칙했다.

“뭐하노? 아직 멀었나?”

“다 됐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상차림에 입이 벌어졌던 의령댁이 이내 뚱한 얼굴로 손자 순용에게 말했다.

“아나, 나라 팔아묵은 민가 년 갖다주라.”

선이 놀라자 순용이 민망해하며 상을 들고 갔다.

“뭐! 와 쳐다보노, 가스나야!”

“거, 들리겠습니다.”

문간방에 앉아 있던 권 주임이 의령댁에게 핀잔을 주었다.

의령댁은 열여섯 살 손자를 둔 할머니답지 않게 젊은 날의 고운 태가 남은 여인이었지만 풍상이 많았던지 태도와 눈빛이 영 거칠고 배타적이었다.

“듣든가 말든가. 내가 틀린 말 했나?”

“이 시국에 밥술이나 뜰 수 있는 게 누구 덕인데 그래요? 시내 나가 봐. 택시까지 죄다 징발당한 마당에 우린 가소린(가솔린) 배급까지 받는구먼.”

“아이고마! 참새 눈물만큼 쬐매 주는 거, 마 징발하라 하소. 요새 나리가 저 애물단지를 타기나 하는교? 순용이 놈만 아침저녁으로 닦아대지.”

그래서 윤조가 역 앞에서 차를 보고 놀랐던 거구나.

그러고 보니 집까지 오는 동안 본 차라곤 연기 나는 목탄 화물차와 군용 지프뿐이었다.

“그라고 밥 묵는 게 민가 년하고 뭔 상관이고?”

“아주머니, 암시장에서 저 비린내 나는 걸 사오는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정말 몰라 그래요?”

마침 석쇠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를 옮겨 담던 참이라 선의 귀가 쫑긋해졌다.

고등어를 암시장에서나 구할 수 있다니.

그럼 생선 한 마리도 몰래 사고판단 말인가?

“어데서 나오기는. 지점장 나리가 따박따박 생활비를 주시가…….”

“그 생활비 나오는 구멍이 영도 조선소잖소. 전쟁 나면 돈 버는 장사는 군수업체뿐이에요. 전투기, 군함, 총, 군복 같은 거. 그 정도는 알죠?”

얘기 끝나길 기다리다가는 식겠다 싶어 선이 밥상을 문간방으로 들여갔다.

“드시면서 말씀하세요.”

하지만 권 주임은 김이 설설 오르는 밥상을 받고서도 계속 열변을 토했다.

“돈 좀 있다는 사람이면 죄다 조선소에 투자하고 싶어서 난리였어요. 화연 아가씨 부친이 없었으면 생판 외지인인 지점장님이 조선에서 유일하게 배를 만들 수 있는 회사에 줄이나 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다 식는다. 고마하고 밥이나 묵으소.”

마침 순용이 돌아와 밥상 앞에 앉자 의령댁이 손을 내저었다.

“말조심하란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처럼 콩깻묵으로 연명하고 싶지 않으면……. 어,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선이 끓인 국을 맛본 권 주임의 얼굴에 확 생기가 돌았다.

“와? 별론교?”

의령댁이 부엌 한쪽에 서 있던 선을 째려보았다.

의령댁에게 선의 등장은 실직의 불안과 혼자 쓰던 방을 낯선 사람과 나눠야 하는 불편을 동시에 안겨 준 못마땅한 사건이었다.

“가스나, 부득부득 지가 한다드만! 어린 게 음식이 하믄 얼매나 잘한다꼬 배급도 모자란 판에 군입을 늘이노.”

이상하다. 아까 간을 봤을 땐 괜찮았는데.

여태 가라앉지 않는 울렁거림 때문인가 싶은데 권 주임의 감탄사가 터졌다.

“너무 맛있는데!”

“맛있기는. 어제도 묵었던 된장인데 뭐시 다르다고…….”

“아니다, 할매! 진짜 끝내준다.”

손자까지 나서자 국을 그릇째 들어 후루룩 마신 의령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묵을만하네.”

“묵을만한 정도가 아니다! 이래 맛있는 배춧국은 처음 묵어본다. 안 그런교, 주임님?”

대답 대신 밥을 마는 권 주임을 보며 의령댁이 입맛을 다셨다.

“장승처럼 서 있지 말고 내 거도 퍼봐라.”

선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달고 아삭한 개성 배추로 끓인 것만은 못하지만 이 집에 자리 잡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했다.

“니는 안 묵나?”

“속이 불편해서요. 좀 있다 먹을게요.”

“어이, 난 한 그릇 더 줘.”

“저도요!”

순용과 권 주임에게 더 주고 나니 넉넉하게 끓였다고 생각했던 국이 거의 바닥을 보였다.

마음이 놓인 선은 몰려드는 노곤함에 슬그머니 문간방 옆 순용이 혼자 쓴다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보퉁이를 끌어당긴 선이 윤조가 준 미루꾸를 꺼내 물끄러미 보다 조심스레 껍질을 벗기고 한 알을 먹었다.

깜짝 놀랄 만큼 낯선 단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샘물처럼 침이 솟으며 오늘 하루 일어난 일이 꿈같이 느껴졌다.

선은 벽에 기댄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혀로 천천히 미루꾸를 굴렸다.

‘조금만 쉬었다가 도련님 식사 끝나시면 치우고, 설거지하고, 이부자리 봐드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던 선을 깨운 건 밝고 상냥한 의령댁의 목소리였다.

“아이고마, 벌써 가십니꺼! 내일 일본으로 가신다면서예? 그라믄 겨울이나 돼야 뵐 낀데 섭섭해서 우얄꼬.”

“내년부턴 지겹도록 볼 텐데 뭐.”

화연이 가려는 참인가 보다.

나가 봐야 하는데 눈꺼풀에 추가 달린 것처럼 선은 눈이 떠지지 않았다.

“저녁은 입에 맞으셨습니꺼? 오늘 처음 온 아가 굳이 지가 한다고 설치 갖고 함 맡기 봤는데…….”

“어쩐지 맛이 다르더라. 본가에서 일부러 보낼 만했네요, 윤조 씨.”

입가를 씰룩대며 표정 관리를 하고 있을 의령댁이 떠올라 선이 비시시 웃었다.

“근데 어디 갔어, 그 애?”

눈이 번쩍 떠졌다.

화연은 도련님의 손님.

나는 도련님의 하녀.

시중을 드는 것이 당연하건만 긴장이 풀리긴 했나 보다.

입 안에 얇은 종잇장처럼 남은 미꾸루 조각을 꿀떡 삼킨 선이 종종걸음으로 나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화연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냐, 먼 길 왔는데 고단하겠지. 저녁 잘 먹었어.”

“감사합니다, 아가씨.”

구두를 신은 화연이 갑자기 앙증맞은 손가방을 뒤져 일본제 루주를 건넸다.

“좀 쓰긴 했는데 나하고 색깔이 안 맞아서.”

화연과 눈이 마주쳤으나 선은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윤조가 준 미루꾸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이 머뭇거리는 틈을 타 의령댁이 낚아채듯 루주를 가져갔다.

“매번 오실 때마다 이래 귀한 거를 받아가 우짜노. 잘 쓰겠습니더.”

나라 팔아먹은 민가 년 운운할 때와는 영 딴판인 할머니의 태도에 순용의 눈길이 곱지 않았으나 의령댁은 화연이 차에 탈 때까지 간이라도 빼줄 듯 굽실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권 주임이 운전하는 차가 순용이 열어 준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장수통(長手通, 광복동)에 화연이 늘 묵는 ‘호테루’라는 고급 서양식 여관으로 간다고 했다.

“뭐꼬! 거지도 아니고 반도 넘게 쓴 걸 던지 주노.”

루주를 열어 본 의령댁이 투덜댔다.

“색깔이 너무 시뻘건 거 아니가? 마, 누부(누나)나 주소.”

의령댁이 손자에게 하얗게 눈을 흘겼다.

“이 자슥이 뭐라 카노.”

“다 늙은 할매가 구찌베니(くちべに, 입술 연지) 바르고 어딜 갈기라고. 누부한테 더 어울리겠구만은.”

“됐다. 새파란 가스나가 이런 거 바르고 댕기믄 요릿집 기생인 줄 안다.”

행여 뺏길까 걱정이 됐던지 치마를 추킨 의령댁이 루주를 속바지 주머니 깊숙이 넣고 쌩하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매, 욕심은…….”

뒷문을 닫는 순용에게 선이 물었다.

“장수통이라는 데는 여기서 멀어요?”

“차로 가믄 금방입니더.”

“그럼 곧 돌아오시겠네요?”

“지점장님 기다리는 거믄 안 그래도 됩니더. 외박하실 때도 많아서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자라고 하셨습니더.”

외박? 혹시 화연과……?

선은 왠지 명치가 저릿해서 잡초가 무성한 텃밭 앞에 섰다.

김을 제때 매주지 않아 양분을 다 뺏긴 상추와 쪽파가 시들시들했다.

돌봄을 못 받은 건 텃밭만이 아니었다.

느슨한 빨랫줄에 걸쳐진 옷가지.

돌담 아래 방치된 낡은 가재도구와 뭐가 든 건지 알 수 없는 포대자루들.

창문 하나 없이 나무로 대충 마감된 밋밋한 뒷벽.

“누부라고 해도 되지예? 저는 세 살 아랩니더. 말씀 놓으이소.”

선이 고개를 끄덕했다.

“너도 편하게 해. 차는 여기 세워 두나 봐.”

“원래 출퇴근용으로 쓰셨는데 요샌 가소린이 없어가 그냥 세워 놓십니더.”

“우물은 없어?”

“쪼매만 올라가믄 마을 공동 우물이 있심니더. 제가 새벽마다 길어온다 아입니꺼.”

“아. 힘들겠다.”

선이 앞마당으로 걸어갔다.

차를 타고 바로 뒷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아직 집을 정면에서 못 봤던 것이다.

윤조의 초량 집은 목조로 된 단층주택으로 작지만 꽤 번듯했다.

가파른 기와지붕과 돌출된 현관, 유리로 된 분합문은 서양식과 일본식이 적당히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마당만은 전형적인 일본풍으로 현관까지 이어진 디딤돌 주위로 하얀 자갈이 곱게 깔려 있었고, 석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대문 양쪽에는 벚나무와 금목서가 한 그루씩 심겨 있었는데 봄과 가을에 각각 꽃이 피우는 나무로 안배하여 심은 듯했다.

왼쪽 금목서 아래 화단엔 가을 국화가 소담했고, 오른쪽 벚나무 옆엔 작게 연못을 파서 윤조의 방에서도 잉어가 노니는 것이 내다뵐 것 같았다.

아기자기한 정원을 보니 선은 버려진 듯 허술한 뒷마당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경성에서 고보를 다니시던 시절, 식민 통치를 반대하는 학생 운동에 가담했다 고초를 겪었던 윤조가 이젠 일본식 집에서, 친일 귀족의 비호를 받으며, 일본을 위한 군수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니.

그래서, 마음이 힘들어 그리 그늘이 짙어지셨던가?

순용이 조용해진 선의 눈치를 살폈다.

“안 피곤합니꺼?”

“아까 좀 졸았더니 괜찮아.”

“음식 솜씨가 진짜 좋데예. 우리 할매는, 진짜 친할매지만 할 수 없어가 먹는 긴데…….”

그때 골목 어귀에서 술에 취한 듯 떠들썩한 남자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놀라지 마이소. 일본군들입니더. 근처에 장교 숙소가 있어가 가끔 술 먹고 저래 돌아댕깁니더.”

군인들이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불러대는 일본 노래는 모르긴 몰라도 유행가 같지는 않았다.

“무슨 노래야?”

“군가 아입니꺼. 이기겠다고 고향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내는 안 죽는다. 뭐 그런 뜻입니더.”

“그걸 다 알아들어? 대단하다.”

선의 찬탄에 덩치만 커다랗지 아직 사춘기 소년인 순용이 코를 벌름거렸다.

“어려운 말도 아닌데예. 누부는 일본말 못 합니꺼?

“응.”

“하나도예? 곤니찌와, 스미마센 이런 것도?”

“……응.”

“어데 살았는데 세 살짜리도 하는 걸 못 하는교?”

“저기,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일본말 가르쳐 줄 수 있어?”

뜻밖인지 순용이 머리를 긁적였다.

“보통학교 1학년 댕기다 말아서 글은 잘 모르는데…….”

“나도 글은 몰라. 그냥 말만 가르쳐 줘. 물건 사고, 길 물어보고 그 정도.”

“그거면 뭐…….”

“가르쳐 주는 거지?”

윤조의 옆자리에 앉아 부산으로 오며 이대로 도련님과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선은 화연을 만나는 순간 백일몽에서 깨어났다.

개성만 떠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착각했던 자신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립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선은 마음을 다잡았다.

“뭐하느라 이제 밥을 먹어?”

혼자 늦은 저녁을 먹던 선이 나무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부뚜막에서 일어났다.

“왜 그렇게 놀라?”

부엌문 앞에서 윤조가 말했다.

“순용이가 외박이 잦으시니 기다리지 말라고…….”

윤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새 친해진 모양이지?”

“예?”

“별 얘길 다 했다 싶어서. 순용이가 혼자 다니지 말라는 얘기도 해?”

영문 모를 소리에 선이 고개를 저었다.

“봐서 알 테지만 여긴 개성과 달라. 나갈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특히 청관(淸館) 쪽으론 절대 혼자 가지 마.”

지척에 있는 청관거리는 만둣집으로 위장한 아편굴과 모루히네(모르핀) 밀매상이 득실거리는 데다 사건 사고도 심심찮게 터지는 위험한 동네였다.

하지만 청관이 뭔지도 모르는 선은 무안해서 입가만 훔칠 따름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알겠습니다.”

돌아서려는 윤조에게 선이 한 발짝 다가섰다.

“잠시만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선이 정원으로 나가 대문 기와지붕을 뒤덮고 있는 금목서 아래 걸음을 멈추자 가지 가득 다닥다닥 피어난 잔잔한 주황색 꽃에서 향기가 비 오듯 쏟아졌다.

“뭔데?”

“저, 도련님…….”

“여기선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럼 어찌……?”

“지점장이라고 불러. 다른 사람들처럼.”

지점장?

마치 연습이라도 하는 듯 선이 입술을 작게 벙싯거렸다. 그러곤.

“지점장님은 돈을 잘 버시지요?”

곧바로 본론으로 뛰어들었다.

“뭐?”

“아까 들었습니다. 배 만드는 회사에 투자해 돈을 많이 버셨다고.”

“그래서?”

어딘가 삐딱한 윤조의 말투에 선은 주눅이 들지 않으려 애를 써야 했다.

“저도 급료를 받고 싶습니다. 다른 남의집살이하는 사람처럼…….”

“남의집살이?”

“……제집은 아니니까요.”

윤조가 쓰게 웃었다.

“데려가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더니 왜 마음이 변했어? 혹시 아직도 어머니를 찾아가겠다는 생각을 못 버린 거야?”

귀신인가?

도무지 숨을 데가 없는 윤조의 통찰력에 선은 마른침을 삼켰다.

“언젠가 다시 뵐 때를 대비하려는…….”

“안 돼. 중국에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말 한마디 못 하면서 겁도 없이.”

“배우면 되지요. 저 멍청하지 않습니다. 중국말이든, 일본말이든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멍청하지 않다? 좋아. 어디서, 누구한테 배울 건데?”

“순용이가 일본말은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중국말도 차차 배우면 되고요.”

윤조가 팔짱을 끼더니 선을 관찰하듯 보았다.

“알겠어.”

선은 어리둥절해졌다.

“뭘요?”

“급료. 준다고.”

“참말이십니까?”

“그래. 개성에서 일했던 것까지 전부 셈해서 주지.”

선의 눈이 어둠 속에서 하얀 목련처럼 덩그렇게 커졌다.

“정말이요!”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어.”

“어, 어떤?”

눈앞에 목돈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되자 선은 목소리가 떨렸다.

“첫째, 나한테 조선 글부터 배워. 자유롭게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한 수준까지.”

“조선 글이요? 전 일본말을 배우고 싶은데…….”

“모국어를 모르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배로 더딘 법이다.”

“그렇다 쳐도 어찌 도련님께서……?”

“왜? 멍청한 머리를 들킬까 봐 무서우냐?”

선이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그게 아니라……! 바쁘시잖아요. 순용이가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순용이는 가게 일에 집안일까지 하는 일이 많다. 너까지 부담을 얹을 셈이냐.”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뭐 조선 글이든 일본말이든 배우긴 하는 거니까.

“두 번째는 뭡니까?”

“한글을 다 떼면 믿을만한 사람과 짝지어 살림을 내주마. 급료는 그때 한꺼번에 계산해 주지.”

반짝이던 희망에 윤조가 찬물을 끼얹자 선이 소리를 질렀다.

“예에! 그런 법이 어딨습니까?”

“싫음 말고.”

“도련님……!”

선이 돌아선 윤조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절 묶어 두실 수는 없습니다. 도망가 버릴 거라고요!”

집으로 들어가려던 윤조가 무서운 얼굴로 다가와 선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내가 널 도망가게 둘 것 같아?”

선은 쥐가 나서 꼼짝달싹 못 하게 된 사람처럼 굳어 버렸다.

윤조의 숨결이 선의 뺨에 쏟아지자 오싹하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가 금목서 짙은 향기처럼 둘을 감쌌다.

가늘게 떨리는 선의 입술을 보던 윤조가 팔을 내리고 비틀대며 물러났다.

“그러니 들어가. ……어서.”

선은 황급히 부엌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윤조의 그런 표정은 처음 보았기에 쉬이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갑자기 왜 저러시지?

부산으로 가자 한 때부터 도련님이 이상해졌다.

오늘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기차에서 어깨를 빌려주신 것이나 미루꾸를 사주신 것, 글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

전부 다 하나같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이상한 것은 방금 전 그 눈빛.

밀쳐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당기는 것도 같았던, 차갑기도 뜨겁기도 했던 눈빛이 떠오르자 선은 새삼 어깨를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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