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쏴아아-.
장마는 계속되는 중이었다.
며칠째지? 잠깐 의문을 품었지만, 날짜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라 모르겠다. 딱히 중요하지도 않았다.
도중에 비가 그친 날도 있었는데 밖에 나간 적이 없어서 실감하진 못했다.
나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천장의 모빌을 올려다보며 숨을 들이마실 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잘 잤어?”
처음 몸을 섞은 날 이후로 옆집 남자는 매일 나를 찾아왔다. 당당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제집처럼 드나드는 것을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가 앉아 있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제가 소파에 앉고 나를 허벅지 위에 앉혔다. 이것도 레퍼토리가 일정해서 그냥 묵묵히 있었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그의 앞섶이 서서히 부푸는 게 느껴졌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그는 쉽게 발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물씬 풍기는 진한 향부터 음미했다. 덕분에 눅눅한 공간이 상쾌해지는 착각이 일었다.
“내 냄새가 그렇게 좋아?”
“무슨 향수인지 가르쳐 줘.”
“그냥 매달려서 맡아.”
“치사하다.”
투덜대며 그에게 담배를 물려 주곤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상쾌하고, 단단하고, 넓어서 마음에 들었다.
“밥은?”
“안 먹었어.”
“뻔하지 뭐. 이따 나랑 먹자.”
그가 아래를 은근히 치대며 속삭였다. 남자가 여기 오는 목적은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남자의 방문을 내버려 두는 이유도 하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곧 남자의 손이 잠옷 안으로 들어와 맨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매일같이 몸을 섞으니 딱히 속옷을 입을 필요성이 없어서 안 입은 지 꽤 되었다. 엉덩이 골을 따라 내려간 손가락이 젖은 질구를 깔짝거렸다.
“뭘 했다고 벌써 젖었어.”
“파블로프의 개라고 알아?”
“종 치면 침 흘리는 멍청한 개새끼?”
“응. 내가 그래.”
찌걱찌걱, 젖은 음순을 휘젓는 소리가 음란했다.
“네가 비밀번호 누르면 그때부터 젖어.”
“개새끼 됐구나.”
“그런가 봐.”
“불쌍해서 어쩌지.”
담배를 퉤, 뱉어 낸 남자가 나를 안은 채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냥 누운 게 아니라 내 몸을 돌려서 누웠다.
그러니까 내 얼굴이 남자의 사타구니를 향해 있고, 내 아래는 그의 얼굴 앞이었다.
“불쌍하니까 빨아 줄게.”
“선심 쓰는 척하네.”
쏘아붙이자 그가 나지막이 웃으며 바지를 허벅지 중간까지 내렸다. 엉덩이를 내리누르고 아래에 혀를 붙여 오는 것에 허리가 절로 움직였다.
츄읍, 츕. 음순 사이사이를 핥아 주는 섬세한 혓바닥을 느끼며 나도 남자의 바지를 풀었다.
나는 얇은 고무줄 잠옷인데, 남자는 귀찮은 슈트 바지였다. 불공평한 거 아닌가.
“벗기기 쉬운 거로 입고 와.”
“싫어.”
그가 아래에 대고 대답했다.
“폼 안 나잖아.”
“어차피 홀딱 벗을 거면서 무슨 폼을 찾아.”
“잘생겨서 빨아 줬잖아.”
“…….”
“그러니 더 가꿔야지.”
헛소리 같으니 흘려 넘기고 버클을 풀었다. 두툼하게 솟아 있는 까만 드로어즈를 잡아 젖히자, 묵직한 성기가 투웅 튀어 올라 턱을 때렸다. 어이가 없다.
“나 지금 너한테 맞았어.”
“조심 좀 하지.”
굵고 단단해서 그런지 상당히 아팠다.
턱을 문지르며 꺼떡대는 기둥을 흘겨보다 손톱으로 꾹 누르자 남자가 장난스레 아픈 척을 했다. 흥, 가벼운 콧소리와 함께 젖은 성기에 혀를 가져다 댔다.
며칠 붙어먹다 보니 어떻게 빨아야 남자가 가장 빨리 반응하는지 정도는 진작 깨우쳤다.
귀두를 혀로 빠르게 할짝대면 그렇게 좋아한다. 턱을 맞았으니 가벼운 복수심으로 귀두 대신 기둥을 핥아 올렸다. 내 속셈을 읽었는지 남자도 음핵 대신 별 느낌도 없는 음순만 깨작댔다.
“으응, 응.”
엉덩이를 좀 더 내밀고 음핵을 가져다 댔지만, 남자가 골반을 들어 저지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은근히 쪼잔한 구석이 있다 싶더라니, 역시나 치사했다.
마지못해 귀두를 입에 물고 사탕처럼 쪽쪽대자, 그제야 남자도 음핵을 빨아 댔다.
“후으…….”
빨리면서 빠는 건 굉장히 복잡한 짓이다. 살면서 이런 멀티 작업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한쪽에 신경을 기울이면 다른 한쪽은 형편없었다.
허리를 흔드느라 귀두가 입에서 툭 빠졌다.
“뭐 해, 물어.”
“그치만, 으응.”
찰싹. 남자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아프게 때린 건 아니나, 좆으로 턱을 맞은 것보다 더 어이가 없어서 돌아봤다.
“왜 때려?”
“말 안 들으니까.”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 슬쩍 턱짓을 했다.
“또 때려 봐.”
“뭐?”
“좀…… 나쁘지 않았던 거 같아.”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남자가 이내 다시 엉덩이를 내리쳤다.
찰싹! 아까보다 강도가 더 셌다. 동시에 음부가 움찔 좁아 들었다. 역시, 착각한 게 아니었어. 달아오른 얼굴을 그의 성기에 문지르다 입에 물었다.
츄읍, 츕. 빨면서 엉덩이를 슬쩍 흔드니 그가 기대에 부응하며 다시 손찌검을 했다.
찰싹!
“흐읏!”
“좋아?”
“그런 거 같아.”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나도, 흣, 지금 알았잖아.”
마약 사범이었던 다섯 살 많은 언니도 엉덩이 맞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맞는 게 좋으냐며 몇 번을 되묻곤 했었다.
‘그냥, 망가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직접 맞아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커다랗고 힘센 남자의 손이 나를 내리칠 때마다 내가 부서지는 듯한 기묘한 느낌은 아래를 쑤실 때와 비슷한 자극을 주었다.
그럼 박히면서 맞으면 두 배로 자극적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있는 힘껏 그의 성기를 빨아 대며 몇 번이고 엉덩이를 맞았다. 그가 내 입에 사정을 했을 땐 양쪽 엉덩이가 붉게 물들어 얼얼할 지경이었다.
고개를 뒤로 쭈욱 빼고 바라보자 남자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 뻔뻔한 얼굴을 했다. 애초에 탓할 생각도 없었는데 굳이 저러니까 얄밉다.
“때리라고 했지, 빨지 말라고는 안 했는데 왜 안 빨아?”
“지금 빨아 주려고 했지. 이리 와서 위에 앉아 봐.”
그가 내 바지를 마저 벗겨 내곤 얼굴 위를 가리켰다. 지금도 얼굴 앞에 앉아 있는 거나 다름없는데 뭔 소린가 했더니, 아예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앉아서 버티기를 바란 거였다.
남자의 얼굴 옆으로 무릎을 딛고 몸을 세우자 그가 화끈거리는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딱히 없는데.”
“잘 생각해 봐. 좋아하는 음식 없어?”
“빨기나 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달달한 거 좋아해? 케이크라든가.”
“아니. 싫어해.”
곧장 대답했다.
“그럼 뭐 좋아해?”
아, 귀찮아.
“아무거나 상관없어. 저번에 사 온 김밥 먹든가.”
“그래, 그럼 끝나고 김밥 먹으러 가자.”
“알아서 하고. 빨리.”
“대신에.”
그가 가슴팍을 짚고 있는 내 손을 잡아 허공으로 띄웠다.
“중심 잘 잡아 봐.”
“뭐?”
“아무 데도 안 짚고 잘 버티면 오빠가 맛있는 거 많이 사 줄게.”
“됐어, 필요 없…… 흐응…….”
질구 안으로 혓바닥이 수욱 파고들었다. 단단한 성기나 손가락과 달리, 혓바닥은 축축하고 말캉거려서 느낌이 꽤 묘하다.
안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찌걱거릴 때마다 나의 세포들은 역시나 침입자를 쫓아내기 위해 애썼다. 그 거부를 뚫을 때, 보다 큰 쾌락이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다. 다행히 남자는 그럴 에너지가 충분했다.
“허벅지, 흣, 힘 빠져.”
꾹꾹, 내벽을 누를 때마다 쾌락을 좇는 몸뚱어리는 자꾸만 주저앉으려 들었다.
푹 앉아서 더 깊이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슬그머니 몸을 내리자 남자가 잘 버텨 보라는 듯 엉덩이를 짝! 내리쳤다. 꽈악 좁아진 질벽이 그의 혓바닥을 조였다.
“아응, 흣!”
혀로 질구를 아무리 파헤쳐 봐야 절정을 느끼기엔 한참 부족하다. 혀로는 그냥 음핵이나 굴릴 것이지, 감질나게 뭐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허리를 이리저리 들썩거리며 끙끙대다 참지 못하고 남자의 얼굴에 푹 앉았다. 곯려 주기 위해서였다.
“흐응!”
그러나 남자는 당황하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 흡착한 입술로 음부 전체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입술로는 음핵과 음순을 비벼 대고 혀는 질구를 계속해서 파고들며 정신없이 빨아 대는 바람에 결국 나는 그의 몸 위에 풀썩 엎어져야 했다.
“버티라니까.”
“그걸 어떻게 버텨. 그리고 어차피 김밥 먹고 싶지도 않았거든.”
“괜찮아. 신음이 예뻐서 그냥 사 주기로 마음먹었어.”
그가 내 엉덩이를 끌어 올려 다시 입술을 묻었다. 중심을 잡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나는 남자의 배에 기댄 채 좀 더 편안하게 몸을 내맡겼다.
넓은 혓바닥이 질구부터 음핵까지 주욱 핥아 올린 뒤 이내 음핵을 집중적으로 굴렸다. 허리를 흔들며 신음하자 그가 엉덩이를 또 한 번 때리며 호응했다.
“아아……!”
비로소 찾아온 절정에 허벅지 안쪽이 바들바들 떨리고 질구가 연신 뻐끔거렸다.
이제 안을 쑤셔 줄 차례라 기다리는데 대뜸 몸이 번쩍 들려 소파 옆에 세워졌다.
“나가자.”
남자가 젖은 얼굴로 부어오른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 * *
박하 맨션에 온 뒤로, 건물 밖에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비가 내리고, 퀴퀴한 냄새가 나고, 쓰레기 더미가 바로 앞에 보이는, 첫날과 딱히 달라진 것 없는 외관을 심드렁하게 훑었다.
“올해는 장마가 길어질 거래.”
멋대로 신발장에 있는 장우산을 챙겨 나온 남자가 우산을 펼쳐 그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냥 네가 사 오면 되지 나는 왜 끌고 나와.”
귀찮아 죽겠는데 강제로 옷이 입혀진 채 끌려 나온 탓에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내 어깨를 멋대로 감싸 왔다.
저 퀴퀴한 냄새를 덮을 만큼 강렬한 향수 냄새가 아니었으면 봐주지 않았을 거다.
“비도 오는데 귀찮게.”
“인간은 동물이라지만, 난 식물에 가깝다고 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비가 내려서인지 한여름인데도 덥다기보단 서늘했다. 온기를 찾아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자, 그가 내 귀를 살살 주물렀다.
“광합성도 하고, 물도 좀 맞아 주고 해야 생생하게 살아나지. 지금 넌 너무 시들시들해.”
“…….”
“그래도 처음 봤을 때보단 사람다워지긴 했는데, 아직 멀었어.”
“인간이 식물? 웃기지 마.”
어느새 귀에서 내려와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남자의 손등을 찰싹 쳐서 떼어 냈다.
“너처럼 동물적인 놈은 생전 처음이다.”
“그럼 정정할게. 너만 식물 해.”
“뭐래.”
“나는 초식 동물.”
느물느물 웃는 얼굴이 조금만 못생겼으면 미웠을 텐데, 잘생겨서 귀여워 보이는 것도 운이라면 운이겠지. 나는 밉지 않게 남자를 흘기며 자꾸 가슴을 만지려는 손등을 이로 콱 깨물었다.
“귀찮다는데 끌고 나온 벌이야. 밖에서는 손대지 마.”
“저런, 다시 들어가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자는 꿋꿋하게 골목을 걸어 나갔다. 마지못해 그에게 끌려가다 무심결에 박하 맨션을 돌아봤다.
빗물에 젖어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건물을 대충 훑어보던 그때, 꼭대기 층 창문에 서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인가, 여자인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성별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쪽을 보고 있는 건 확실했고, 아마도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지?
“뭐 해?”
“아, 저기…….”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기에 4층을 가리키는데, 잠깐 눈을 뗀 틈에 사람은 사라진 뒤였다.
“왜?”
“저기 사람 있었는데, 들어갔어.”
뒤늦게 돌아본 남자가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나를 잡아끌었다.
“있겠지. 사람 사는 건물인데.”
“그건 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놀렸다.
가슴을 못 만지게 했더니 그는 어깨, 팔뚝, 귀를 번갈아 가며 만지작댔다. 특히 귓바퀴를 손가락으로 쓸면서 귀 뒤를 간지럽힐 때는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그의 허리를 더 끌어안고 바르작거리게 되었다.
“되게 앵기네.”
마음에 든다는 뉘앙스였다.
골목을 완전히 벗어나 큰 대로변까지 나오니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박하역 지하철 입구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 커다란 파라솔을 치고 과일을 파는 사람, 우산을 붙잡고 앞만 보고 걷는 사람, 우비를 쓰고 배달하는 사람, 우리처럼 한 우산 안에 붙어 있는 남녀도 있었다.
“너랑 나도 연인처럼 보이겠다.”
중얼거리자 그가 피식 웃더니, 대뜸 입술에 뽀뽀를 했다.
“이 정돈 해야, 그렇게 보지.”
“…….”
어이없어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당사자인 남자와 나보다 그들이 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남자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쪼개기만 했다.
“너 진짜 가볍다.”
“저기야, 분식집. 가자.”
“그냥 굶고 싶은데…….”
조그맣게 투덜댔지만 무시당했다.
문 앞에 담배와 음식을 놓고 갈 때부터 대충 알았지만, 남자는 먹이는 것에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나를 찾아올 때마다 음식을 포장해 오거나, 배달시켜서 억지로 먹게 했다.
목적이야 뻔했다. 다 먹고 나면 곧바로 옷을 벗겼으니, 잘 먹여서 제가 잡아먹으려는 음흉한 의도겠지.
밥이야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배가 든든하면 섹스할 때 좀 덜 지치는 듯해 나는 그냥 남자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편이었다.
“여기 떡볶이도 맛있어. 그것도 먹어.”
“마음대로 해.”
“떡 먹고 떡 치면 더 쫀득하겠다.”
분식집 앞에서 남자가 장난스레 말했다. 멀쩡한 얼굴로 헛소리를 하는 남자를 대충 위아래로 훑으며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웃으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밥 먹으러 왔어?”
나를 맞이하는 건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었다. 작고 허름한 분식집 안은 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작고 주름진 노인의 앞에서 뻣뻣하게 굳었다. 다름이 아니라, 살면서 이렇게 늙은 사람을 맞닥뜨리는 것은 처음이라 뭐라고 말문을 열어야 할지 몰라서였다.
어버버하며 우산을 우산꽂이에 던져 넣는 남자를 돌아봤다.
“노인네 가게 망했어?”
남자가 휘적휘적 걸어 들어오자 할머니가 쯧, 혀를 찼다.
“쟤랑 같이 온겨?”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진짜 망한 거야?”
“망하긴. 점심 장사 끝내고 이제 좀 쉬려는데 온 거 아녀.”
남자는 할머니와 잘 아는 사이 같았다. 너무도 버르장머리 없는 말투라 기가 막혔지만, 당사자들끼리는 아무렇지 않아서 잠자코 지켜봤다.
“이 아가씨는 누구? 애가 왜 이렇게 창백한겨?”
“알아서 뭐 하시게. 김밥이나 줘.”
“싸가지 없는 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머니가 대신해 줘서 속이 시원했다.
할머니는 남자에게 대충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나를 힐끔 보곤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남자가 몇 안 되는 테이블 중에서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아 손짓했다.
사방이 낯선 것들뿐이라 왠지 기분이 불편해 남자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가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나를 돌아봤다.
“보통은 마주 보고 앉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낡은 메뉴판과 지저분한 벽, 누군가 먹고 간 흔적으로 보이는 테이블 위의 그릇들을 둘러보며 남자에게 더 달라붙었다. 그가 순순히 팔을 벌려 받아 주었다.
“쫄았어?”
“무서운 게 뭐 있다고 쫄아?”
“아니면 말고.”
맹세코 쫀 것은 아니나, 박하 맨션으로 돌아가고 싶긴 했다. 그나마 익숙한 공간이 그리워, 슬쩍 제안해 보았다.
“포장해서 집에 가서 먹을래?”
“귀찮게 뭐 하러. 그리고 여기 포장도 안 해 줘.”
별수 없지, 뭐.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 그의 옷깃에 코를 묻어 킁킁댔다. 자꾸 파고드는 내가 흥미로운지 남자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또 관찰하는 것 같았다.
“애인인겨?”
할머니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일 만도 하다.
“몰라도 돼. 눈은 좀 어떠시고? 내 얼굴은 보이는 거야?”
“보이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라, 이놈아.”
테이블 위에 김밥 한 줄과 새빨간 떡볶이, 어묵탕과 순대가 나란히 올라왔다. 남자는 김밥만 주문했는데 돌아온 건 진수성찬이었다.
“보여, 아직은. 가게 문 닫으면 안 보이는구나, 생각하고 말어.”
시큰둥하게 대꾸한 할머니가 또 나를 힐끔 보곤 이내 주방으로 사라졌다. 얼떨떨하게 남자를 올려다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눈알 맛 가서, 조만간 안 보일 거래.”
“으응.”
“먹어. 맛은 있으니까.”
되게 친해 보이네. 남자와 주방을 번갈아 보는데, 그가 제 옷자락을 잡고 있는 내 손에 포크를 쥐여 주었다.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건드려야 할지 막막했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 입 안으로 불쑥 김밥이 들어왔다.
“씹어.”
본인도 김밥 하나를 털어 넣은 남자가 빵빵해진 내 볼을 찌르며 종용했다. 순순히 우물대다 넌지시 물었다.
“친해?”
“그런대로.”
“그래 보여.”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밥을 삼켰다.
먹을 게 들어가니 역시나 무시했던 허기가 솟아올라 포크가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빨간 양념이 묻은 떡볶이를 쿡 찔러 먹어 보니, 남자의 말마따나 맛이 괜찮았다.
달짝지근한 양념과 말캉한 떡이 마음에 들어서 작은 콧소리를 뱉자, 그가 피식 웃으며 떡볶이 접시를 내 앞으로 놔 주었다. 개인적으로 김밥보다 이게 더 입맛에 맞는 것 같다.
“너 꼭 말로만 다이어트하는 사람 같다.”
“무슨 소리야?”
“말로는 안 먹는다고 하면서 막상 입에 들어가면 정신없이 먹잖아.”
뜨끔했다. 이것 역시 지독한 생존 본능이라 세포가 멋대로 움직이는 건데, 거기까지 설명하긴 귀찮았다.
“혹시 다이어트 중인 거면 포기해. 여기서 더 빠질 데라곤 가슴이랑 엉덩이뿐이야.”
“무슨 상관이야.”
“왜 상관이 없어?”
“내 몸이니까.”
“그러니 상관이 있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그가 순대를 내 입에 넣어 주며 말했다.
“내 좆이 갑자기 작아진다고 상상해 봐.”
“왜 그런 걸 상상해야 돼?”
“그러면 누가 아쉽겠어.”
“너.”
냉큼 대답했다.
“네 몸이니까.”
“아니지. 나야 그걸로 오줌만 갈기면 그만이야.”
“…….”
“손톱만 한 걸로 깔짝대면 아쉬운 건 너지.”
“그렇게나 작아지는 거야?”
“상상은 극단적으로 해야 재미있으니까.”
이번엔 어묵이 입에 물렸다. 대충 이로 끊어 내자, 남자가 남은 걸 제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다부진 턱이 움직이는 걸 잠깐 구경했다. 보는 사람도 식욕이 돌게 잘 먹는다.
“근데 내가 그 상황에도 너랑 자진 않을 텐데.”
“왜, 내가 쓸모없어지면 버리고 다른 데 앵기려고?”
“그렇겠지. 너도 그럴 거잖아.”
극단적인 상상이라.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만약에 내가 죽고 없어지면, 너도 다른 여자 찾아서 욕구 해결해야 할 거 아냐.”
“뭘 또 죽는 거까지 가.”
“극단적인 게 재미있다며.”
“예쁜아, 재미가 있으려면 말이야. 네 가슴이 똑 떨어져 나가거나, 아랫도리에 갑자기 좆이 생기면 어쩔 거냐고 물어야지.”
“…….”
“내 건 불가능한 픽션이고 네 건 아니잖아. 후자는 재미없고 숙연해지기만 한다고.”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그럼 네 말대로 가슴이 떨어져 나가고 좆이 달리면, 다른 여자 만날 거잖아.”
“그럴 일 없는데 왜 그딴 걸 생각해.”
“…….”
“먹기나 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
어이가 없다. 본인이 먼저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했으면서 이제 와 혼자 쏙 빠져나가다니.
나만 이상한 애로 만드는 남자를 황당하게 돌아보자, 그가 내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억울해.”
남자가 내 감정을 생중계했다.
“이 새끼 미친놈이야.”
“…….”
“나만 바보 됐어.”
“…….”
“그런 얼굴이네.”
“잘 아네.”
다시 떡볶이를 입에 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우물거리다 다시 획 노려보자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다.
왠지 짜증이 솟구쳐 주먹으로 어깨를 쾅 내리쳤다. 남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빙글거렸다.
“자자, 다시 상상해 보자. 지금 네 그 주먹질로 내 어깨가 산산조각 나면 누구 손해야.”
“…….”
“앵길 데가 없으니까 네 손해 아니야?”
“작작 해라.”
단호하게 경고했다. 그제야 남자가 지껄이던 걸 멈추곤 계속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렇게 분한 기분이 드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헛소리인데 이렇게까지 발끈할 필요가 있나 싶다. 점차 마음이 가라앉으니 조금 전의 대화가 아주 한심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거기에 진심으로 반응한 나 자신이 가장 바보 같았다.
나는 금세 잔잔해진 심정으로 포크를 내려놓았다.
“뭐야. 벌써 다 먹…….”
다시 남자에게 달라붙었다. 말끝을 흐리는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방금 내가 때린 어깨에 볼을 비볐다.
“갑자기 왜 이래?”
“모르겠어.”
“나보단 알지 않을까?”
“몰라.”
그는 갑자기 엉겨 붙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냥 때린 게 좀 신경 쓰였다.
가끔 얄밉고 귀찮을 땐 있어도 대체로 남자는 나에게 유용하지 않나. 수시로 담배도 사다 주고, 쾌락도 주고, 좋은 냄새가 나서 붙어 있으면 기분이 나아지고.
때릴 필요까진 없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동물적인 남자는 내가 달라붙자 금세 다리 사이를 부풀렸다. 은근슬쩍 내 손을 그리로 가져가는 것에 힐끔 주방을 살폈다.
“여기서?”
“옷 위로 만져 봐.”
“되게 밝힌다, 너.”
가볍게 타박하면서도 일단은 옷 위로 성기를 느릿느릿 주물렀다.
남자의 커다란 성기는 항상 오른쪽 허벅지를 타고 수납되어 있다. 가뜩이나 두꺼운 허벅지가 성기와 합쳐져 내 다리의 두 배가 넘었다.
“꺼내도 돼.”
“그건 좀…… 누가 올지도 모르잖아.”
“네 몸도 아닌데 뭘 그렇게 아껴. 난 내 좆 남이 봐도 상관없어.”
“…….”
“거리 한복판에서도 깔 수 있으니까, 참고해.”
“그럼 풍기문란죄로 신고할 거야.”
“풍기가 문란해질지 열광할지 내기해 볼까?”
“헛소리 좀 그만해.”
그제야 그가 입을 다물고 내 손길을 느꼈다.
단단해진 기둥을 손으로 슥슥 문질러 주는데 아무래도 이것이 나를 여러 번 절정에 오르게 했던지라, 흥분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파블로프의 개. 별수 있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달뜬 숨을 뱉자 남자도 내 속내를 눈치챈 듯 고개를 들이미는 찰나였다.
Rrrr-. Rrrr-.
그의 슈트 안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흐름이 끊긴 남자가 못마땅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아래를 쓰다듬었다.
Rrrr-. Rrrr-.
“…….”
“왜 안 받아?”
휴대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이내 내 손을 떼어 내고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전화받고 올게.”
“여기서 받아.”
“금방 와. 먹고 있어.”
긴 다리로 훌쩍 나가 버리는 남자를 눈으로 좇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할머니가 주방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도중에 몇 번 살폈을 땐 아무도 없었으니, 이제 막 나온 듯했다.
“…….”
“…….”
할머니가 묘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불편한 시선에 입맛이 뚝 떨어져 눈을 피하는 그때였다.
“아가씨.”
“……네?”
움찔하며 대답하자, 할머니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저놈이랑 어울리지 말어.”
“…….”
“별로 질 좋은 놈 아니여.”
‘하는 일 없이 여자 꾀어서 떡만 치는 동네 한량이었어. 그런 놈이랑 얽혀서 득 될 거 없으니까 조심해.’
할머니의 말은 민영의 충고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애초에 옆집 남자가 어떤 놈인지는 알고 있었고, 그건 나한테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니까.
딱히 새겨들을 만한 오지랖은 아닌 것 같아 대충 고개를 끄덕이다,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돈 안 내고 가는 거 아니에요. 다시 올게요.”
혹시 오해할까 봐 그렇게 덧붙이곤 남자에게 가려고 문을 밀었다.
“저렇게 팔자 사나운 놈이랑 얽혀서 좋을 거 없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 할머니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바깥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슬아슬하게 간판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눈을 굴리는데, 분식집 옆 골목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도 오고, 차도 오가고, 사람들도 지나다니는 시끄러운 거리인데도 잘 들리는 건, 역시 백색 소음 빗소리 덕일까?
“그거 하나 알아서 해결 못 해서 전화질이야?”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어투가 거칠고 사나웠다. 대체로 느물거리는 것만 봐서인지 낯설게 들렸다.
“쓸 만하게 만드는 중이라고 전해.”
왠지 달라붙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안으로 들어가자니 할머니가 부담스럽고.
팔자 사나운 놈. 할머니가 마지막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실 그런 거라면 나도 못지않다.
“…….”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며 눈을 굴리는데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내 또래의 젊은 남자가 눈이 마주치자 급히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이쪽을 봤다가, 도로를 살피다가, 또 나를 보는 등의 산만한 시선 처리를 이어 갔다.
뭐지, 저 이상한 놈은.
대뜸 그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호전적인 기세라 움찔하며 문에 달라붙는 찰나, 그가 내게 무언가를 훅 내밀었다.
칼인가?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는 때였다.
“버, 번호 좀 주세요!”
“…….”
“너무, 너무 예쁘셔서, 제가 원래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아서…….”
다시 눈을 떠 보니 목덜미까지 붉어진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들이밀고 있었다. 행인들이 이쪽을 흥미로운 눈으로 흘깃댔다.
“그냥 친구로 지내도 좋으니까 번호 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받아 적어. 공일공.”
“고, 공일…… 네?”
불쑥 옆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와 낯선 이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언제 통화를 끝낸 건지 남자는 담배를 물고 내 옆에 서 있었다.
“받아 적으라고. 공일공.”
“어…….”
“사사사사.”
“…….”
“사사사사.”
“…….”
“응. 꺼지라는 소리야.”
당황한 눈으로 나와 남자를 번갈아 보던 낯선 이가 ‘죄송합니다!’ 외치며 재빨리 자리를 떴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았는데 정류장을 지나 멀찍이 가 버리는 걸 보니 창피하거나, 쫄았거나, 혹은 둘 다인 것 같았다.
“왜 나와 있어?”
그가 연기를 허공에 뱉어 내며 물었다. 잠시 그의 까만 눈동자가 내 얼굴을 훑어 내렸다.
착각인진 모르겠으나,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느낌. 통화를 들었을까 봐 그러나? 막연히 짐작만 했다.
비를 피하고 있는 나와 달리 그는 그새 쫄딱 젖은 채였다. 잠깐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다 다가가 품에 안겼다.
“집에 가서 섹스나 하자.”
“…….”
그가 고요히 숨을 뱉었다.
* * *
푸욱. 푹.
“들어가서, 으응! 하면 안 돼?”
“어느, 세월에, 들어가.”
그가 안을 쑤셔 댈 때마다 짚고 있는 현관문이 시끄럽게 울렸다.
신발은 한쪽만 겨우 벗은 상태였다. 내 바지는 딱 엉덩이 밑까지 내려갔고, 남자는 지퍼만 열어 성기를 꺼내고 있었다.
코딱지만 한 집인데 침대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신발장에서 이러는 건지.
“이 짐승 같은…… 아!”
바스락. 바스락. 손목에 걸린 비닐봉지가 움직일 때마다 요동쳤다. 포장은 안 된다더니, 도중에 나간다고 하니 할머니가 싸 줬다. 또 남자가 거짓말을 한 거였다.
그는 착하긴 한데, 은근히 거짓말을 잘하는 것 같다.
‘쇼하는 거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런 말을 했나.
“응! 으응!”
남자는 내 뒤에서 개처럼 허리를 흔들어 댔다. 몸놀림이 거칠수록 젖은 그의 머리와 옷가지에서 튄 물이 나를 적셨다.
기어이 그는 신발장에서 한차례 사정을 하고 난 다음에야 급한 불을 끈 사람처럼 여유를 되찾았다.
“좀 씻을까?”
그가 헐떡이는 나를 똑바로 일으켜 세우곤 다리 사이로 흐르는 정액을 손가락으로 훑어 냈다.
서서 하려니 힘은 들었지만 어쨌든 원하던 쾌락을 맞아 상쾌해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분식집 봉지를 바닥에 던지곤,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힘드니까 네가 옮겨.”
“네, 네.”
남자가 피식 웃으며 나를 번쩍 안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안아서 옮겨 준 거로도 모자라 남자는 직접 내 옷을 벗겨 주기도 했다. 손쉽게 나를 알몸으로 만든 그가 제 옷도 벗어 던지고 샤워기 아래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 해 봐.”
입을 벌리자 그의 손가락이 파고드는데, 비린 맛이 느껴졌다. 좀 전에 허벅지에서 정액을 훑었던 게 떠올라 인상을 찌푸리자 그가 피식 웃었다.
“안 빨고 뭐 해.”
“…….”
거절할 이유는 없어 순순히 손가락을 빨아 올렸다. 마디 끝까지 입에 넣었다가, 입술로 조이며 끝까지 빼내고, 혀를 밖으로 내어 어린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듯 긴 손가락을 핥아 댔다.
“우응.”
한참을 그렇게 물고 빨고 놀다가 놓아주니 남자의 손가락이 쪼글쪼글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남자 몰래 수도꼭지를 열었다.
쏴-.
“아.”
머리 위에 매달린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며 남자의 얼굴에 직격타를 날렸다.
다짜고짜 찬물을 맞은 그가 질끈 눈을 감는 게 우스워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사선으로 뻗은 물줄기의 사각지대라 보송할 수 있었다.
고개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 낸 남자가 벽을 짚고 양팔 사이에 나를 가두었다.
“오빠 가지고 노니까 재미있어?”
“응.”
“나도 그래.”
생긋 웃으며 받아치는 그는 아까 통화로 화를 내던 사람과 다른 인물 같았다.
목덜미로 쏘아진 물줄기가 등과 어깨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이 섹시해서 조각품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그도 나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서로 씻겨 줄까?”
그가 제안했다. 잠깐 겉모습에 현혹되어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얼른 사리 분별을 했다.
“싫어.”
“왜?”
“불공평하잖아. 넌 내 몸의 두 배니까 나만 고생할 게 뻔해.”
“그럼 내가 두 배로 정성 들여 씻겨 줄게.”
그가 입술을 쪼옥 빨곤 귀엽게 웃었다.
“이것도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그럼 앉아 봐. 키라도 맞춰.”
잠깐 고민하다 바닥으로 턱짓을 하자 그가 순순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얼추 가슴까지 내려온 까만 정수리에 샴푸를 주욱 짜내고 양손으로 보글보글 거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간지러워. 좀 세게 해 봐.”
“그럼 너 머리 피 나.”
“귀엽긴.”
무시하는 듯해 보란 듯이 손가락에 힘을 주고 벅벅 긁어 댔지만, 그는 실실 쪼개기만 했다.
“더 세게.”
“지금도 손 아파.”
“팔을 써야지.”
그가 내 팔뚝을 멋대로 잡아 흔들었다. 귀찮은 얼굴로 내려다보는데 남자의 시선이 내 가슴에 고정되어 있었다. 팔이 움직일 때마다 살덩이가 출렁이자 남자가 입맛을 다셨다. 하여튼 되게 밝힌다니까.
거품을 충분히 내자마자 예고 없이 샤워기를 남자의 머리 위로 쏘았다. 눈에 들어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대충 헹궈 내니 그가 한쪽 눈을 감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따가워.”
“잘됐네.”
“호, 해 줄래?”
“호.”
말로 툭 내뱉고 외면하자 그가 큭큭대며 내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쫄딱 젖은 그와 달리 나는 아직 보송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덕분에 강제로 축축해졌다.
말캉한 살덩이 가운데에 코와 입술을 비비적거리던 남자가 방향을 틀어 유두를 혀로 슥 핥았다.
대충 예상하던 전개라 그냥 내버려 두곤 옆에 걸린 샤워 볼로 워시 거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쪼옥, 쪽, 츄읍.
“흐응…….”
확실히 매일같이 빨리니 처음보다는 감각이 예민해진 것 같다. 자극될 때마다 다시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나는 남자의 어깨부터 샤워 볼을 슥슥 문질러 댔다. 그는 내가 씻겨 주는 걸 무시하고, 나는 그가 빠는 걸 무시하며 각자 할 일을 했다.
“아응, 응.”
좀 즐기기도 하면서. 오른쪽 팔을 들어 시커먼 문신 위에 하얀 거품을 묻히며 끙끙대는데, 돌연 그가 유두를 이로 콱 깨물었다.
“하윽!”
한순간 짜릿한 고통이 치고 올라와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샤워 볼을 놓쳤다. 얼떨떨하게 고개를 내리자 남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하곤 제 입술을 혀로 훑었다.
“우리 예쁜이 취향이 아무래도 이쪽 같아서.”
“…….”
“아픈 게 좋은 거지?”
나는 단숨에 달아오른 얼굴을 작게 끄덕였다.
“그런 거 같아.”
“다행이네.”
“뭐가?”
“난 안 가리고 다 잘 먹거든.”
남자가 부어오른 유두를 세게 꼬집어 댔다. 그냥 혀로 빨 때보다 더 견딜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코앞에서 흔들리는 가슴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 흔들어 봐.”
음험한 속삭임에 잠깐 생각하다 거품으로 미끌미끌한 남자의 어깨를 짚었다. 무릎에 반동을 주며 몸을 흔드니 가슴이 꼭 섹스할 때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목울대를 꿀렁이며 나를 응시하던 남자가 불시에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짜악! 내리쳤다.
“흐읏!”
“이것도 좋아?”
“응, 응.”
질구가 연신 뻐끔거렸다. 그 바람에 안에 담겨 있던 남자의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남자도 그걸 발견했는지 내 발목부터 허벅지 안쪽까지 손으로 쓸어 올렸다.
“또 오줌 싼 거야?”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네 거잖아.”
“은근히 사리 분별 잘한다니까.”
“나 언제까지 흔들어?”
“네가 만족할 때까지.”
시킨 건 본인이면서 기준은 내 만족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눈을 흘기다 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의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아으…….”
나는 내내 바짝 서 있던 성기를 붙잡고 음부에 끼워 넣었다. 조금 빠듯하지만 그래도 금방 기둥을 삼켜 냈다.
“하아, 아.”
“편법 쓰네.”
“이러면 만족하면서 흔들 수 있어.”
“너 진짜 귀엽다.”
나는 남자의 허벅지 위에서 몸을 위아래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가슴이 요동치고 아래도 저릿저릿하게 조여들었다.
어설픈 개구리처럼 버둥대며 앉았다 일어나는 나를 남자는 한참 동안 구경만 했다. 왠지 자극이 부족한 것 같아 애타게 올려다보자, 그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나는 남자의 뱀 머리를 툭툭 쳤다.
“엉덩이, 아까처럼, 때려 봐.”
짜악! 지체 없이 손이 날아왔다.
“흑!”
과연 기대했던 대로 섹스와 손찌검의 조합은 강렬했다. 헐떡이며 남자의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또?”
끄덕끄덕.
찰싹!
“흐으응!”
“씨발, 귀여워.”
부어오른 엉덩이를 움켜쥔 남자가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혼자 흔들 때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로 안이 쑤셔 박혔다.
한 손으론 엉덩이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론 반대쪽 엉덩이를 내리치고, 이로는 유두를 씹어 대는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나에게 고통을 수반한 쾌락을 선사했다.
“아아, 아…….”
쩌억-. 쩍-.
한참을 헐떡이는데, 불현듯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은 것이었다.
물리적인 것이 아닌 추상적인 관념.
이게 뭘까?
모르겠다. 그다지 대단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 * *
그렇게 한차례 섹스를 한 뒤엔 남자가 나를 씻겨 주었다.
말이 씻는 거지 음흉하게 몸 곳곳을 더듬더니, 종국에는 안까지 씻어야 한다며 손가락을 쑤셨다. 그것도 모자라서 더 큰 거로 깨끗하게 해 주겠다는 수작질을 내세우는 바람에 결국 한 번 더 몸을 섞어야 했다.
깨끗은 개뿔. 씻기 전보다 몸 안에 정액이 더 가득해진 채 나온 나는 곧장 침대에 뻗었다.
“뻐근해.”
내내 흔들린 가슴이 결려서 투덜대자 남자가 뭔가를 들고 내 옆에 앉았다.
보디로션이었다. 나는 있는 줄도 몰랐는데 용케 찾아온 걸 보니, 역시 민영과 붙어먹었기 때문에 잘 아는 듯했다.
“발라 줄게.”
“싫어. 끈적거리잖아.”
“그럼 더 쫀득하고 좋겠네.”
“너도 참 대단하다.”
수건 하나만 두른 남자의 아랫도리가 또 부풀어 있었다.
어쩌다 저렇게 괴물 같은 체력을 가지게 된 걸까. 한 번만 해도 몸이 눅진눅진해지는 나는 내심 그가 부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종일 쾌락을 좇고 싶지만, 체력이 따라 주지 않았다. 불편한 자세로 세 번이나 섹스를 한 바람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피로했다.
“뻐근하다며. 마사지해 줄게.”
“그러면서 또 할 거잖아.”
“그래도 돼?”
“허락 구하는 척하지 마.”
하품하며 대꾸하자 남자도 덩달아 하품을 뱉었다. 나는 그걸 보고 또 하품했다. 너무 바보 같은 광경이었다.
남자는 하품을 하느라 젖은 내 눈가를 손가락으로 슥 훑어 내곤, 둘둘 말고 있는 수건을 풀었다. 나는 그냥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몸을 늘어뜨렸다.
“다른 덴 다 하얀데 맞은 데만 빨개. 야하다.”
그가 멋대로 내 몸을 반쯤 돌려 엉덩이도 슥 한 번 보곤 바로 눕혔다.
거듭 하품을 하는 사이 남자가 제 손에 로션을 덜었다. 그러곤 그걸 가슴부터 천천히 펴 바르기 시작했다. 민영의 보디로션에선 독한 장미 향이 났다.
“이 냄새 싫어.”
“그러게. 넌 내 냄새 좋아하는데.”
“응. 나 그거 뿌려 주면 안 돼?”
“안 돼. 그건 내 거니까.”
“너 은근히 쪼잔한 거 알아?”
커다란 손이 가슴을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당연히 주물럭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백하게 뭉친 근육을 풀어 주는 듯해 힐끔 내려다보다 다시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
“언제는 착하다며.”
“착할 거면 향수도 좀 써.”
“나 안 착하다니까.”
태연하게 대꾸한 남자가 키스하려는 듯 고개를 꺾어 왔지만, 장미 향이 거슬려서 별로 받아 주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흥,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재밌다는 얼굴로 순순히 물러났다.
어느새 손바닥은 허리와 골반을 문지르고 있었다. 골반을 둥글리던 손이 아랫배와 둔덕 사이를 가볍게 쓸며 은근히 음모를 건드렸다.
“뒤집어.”
“싫어. 그만 발라. 이 냄새 싫다고 했잖아.”
휘릭, 몸이 뒤집혔다. 힘만 더럽게 세다. 입을 삐죽이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로션을 던 남자가 목덜미부터 천천히 몸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척추를 사이에 두고 양손이 동일하게 움직였다. 튀어나온 날개뼈를 거치고,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등허리를 둥글리고, 옆구리의 가장 오목한 부분을 감싸고 엄지로 살살 문질렀다.
“엉덩이는 왜 흔들어?”
“내가 언제.”
“잘못 봤나.”
“그렇겠지. 네가 좀 밝혀?”
“그래. 그런 거로 치자.”
남자의 손바닥이 엉덩이에 닿았다. 조금 쓰라려서 움찔하자, 그가 냉큼 말했다.
“방금은 흔들었지?”
“……흔든 게 아니라 흔들린 거야. 아파서.”
“스스로 흔든 게 아니야?”
“그래. 너도 네 손으로 맞아 보면 똑같이 굴걸.”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프다고 하니 로션을 바르는 손길이 다른 데보다 더 부드러워졌다. 왠지 간지러운 동작이라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냥 넘어갔다.
그는 발가락 끝까지 지독한 장미 냄새로 뒤덮고 나서야 하던 걸 끝내고 내 옆으로 올라와 누웠다. 어느새 허리에 매고 있던 수건도 사라져 완벽한 알몸이었다.
“이불 말아 줘.”
꼼짝도 할 수가 없어서 남자를 시켰지만, 이불 대신 커다란 몸뚱어리가 나를 둘둘 말았다.
양팔이 등과 허리를, 양다리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옭아맸다. 바짝 선 성기는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어 음부에 딱 붙었다. 전신이 그에게 옥죄였다.
“천 쪼가리보단 내가 더 낫지 않아?”
“…….”
그의 말마따나 이불로 압박하는 것보다는 따끈따끈한 살결이 달라붙는 게 더 낫긴 했다.
대답 대신 허리를 끌어안으니 그가 팔에 힘을 주고 입술을 맞대 왔다. 이번엔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입을 벌리자, 미끄덩하게 혓바닥이 파고들었다.
“예쁜아.”
“왜.”
“감방 들어가기 전엔 뭐 하고 살았는지 이야기해 봐.”
그가 키스하다 말고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나른하게 감긴 눈을 뜰 기운이 없어서 그냥 그대로 남자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씻었는데도 남아 있는 그의 상쾌한 냄새가 보디 워시의 파우더 향과 섞여 오묘했다. 기왕이면 방해가 없는 편이 낫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몸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보다는 나았다.
나는 거슬리는 장미 향을 무시하고 탄탄한 근육 위에 코를 비볐다.
“응? 뭐 하고 살았냐니까.”
“기억 안 나. 오래전이라서.”
“잘 생각해 봐. 기억하면 향수 사 줄게.”
“……진짜야?”
간신히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데 눈두덩에 입술이 내려앉는 바람에 다시 감겼다.
“으음…….”
졸리고, 피곤하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잠깐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이라…….
원장을 칼로 찌른 날. 언니가 죽은 날. 사라진 날. 기억이 천천히 되감아지기 시작했다.
“언니한테 케이크 만드는 거 배웠어.”
“케이크 싫어한다며.”
“먹는 건 싫어해.”
쪽, 다시 눈두덩에 입술이 닿았다.
“계속해 봐.”
“언니가 케이크 가게에 취직해서 기술 배운 거 나한테도 가르쳐 줬어. 나중에 같이 디저트 가게 하기로 했거든.”
“재미있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가물가물하다. 피곤해서인가. 느릿느릿 눈을 들자 바로 코앞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남자는 속눈썹이 아주 길었다. 깊게 드리운 음영에 맺힌 고요함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너는 눈에 난 털도 예쁘다.”
내가 아니라 남자가 한 말이었다. 정말이지 그는 나와 생각의 흐름이 비슷한 것 같다.
“그 안에서도 계속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안 했어?”
“응.”
“왜?”
“언니가 없으니까.”
“…….”
“난 케이크 원래 안 좋아해. 언니가 좋아하는 게 좋아서 한 것뿐이지.”
“그럼 네가 좋아하는 건 뭔데?”
“딱히 없어.”
그가 대뜸 혀로 속눈썹을 핥아 왔다.
촘촘한 털을 한 올 한 올 핥는 게 좀 이상한 행위 같으나, 어차피 이 남자랑은 이상한 짓만 하고 있으니 아무렴 어떠냐 싶어 잠자코 있었다.
“또 이야기해 봐.”
“이만하면 됐잖아. 향수 사 줘.”
“그러기엔 에피소드가 짧아서 수지 타산이 안 맞아. 비싼 거라.”
“쫌생이.”
“그러게.”
귀찮아 죽겠다. 졸리기도 하고.
그의 침으로 축축해진 눈이 무겁게 감겼다 떠졌다.
다시금 하품을 하자, 역시나 남자도 따라 했다. 이번엔 바보같이 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아 하품의 연쇄를 끊었다.
“졸려?”
“응.”
“그래. 일단 자.”
“향수는…….”
“에피소드 쌓이면 사 줄게.”
“계산적인 새끼.”
물밀듯 밀려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웅얼대다 몸에 힘을 풀었다.
“잘 자, 예쁜아.”
“응…….”
“허벅지 좀 빌린다.”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전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