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쏴아아-.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서울 남송구 박하동 104번지 박하 맨션.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구식 빌라는 비에 쫄딱 젖어 유난히 거무죽죽했다. 칙칙한 벽면에 달라붙은 시든 담쟁이덩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입구에는 ‘박하 맨션’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걸려 있었는데,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서 덜렁거리는 게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딱히 보안 장치가 달려 있지 않은 공동 현관 앞 처마에 발을 들인 나는 우산을 접어 탈탈 털며 건물 맞은편 담벼락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훑었다. 미관도 후지고, 냄새도 구리다.
“…….”
현관을 밀고 들어가니 더 퀴퀴한 냄새가 나를 반겼다. 비가 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낡은 건물의 고질적인 냄새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하수구에 빠진 기분이라는 건 확실했다.
‘말이 102호지 그냥 지하야. 괜히 어리바리하게 위로 올라가지 말고 밑으로 내려가. 알았지?’
집주인의 충고를 떠올리며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는 1층보다 냄새가 더 지독했다. 건물의 왼쪽으로 계단이 나 있고 오른쪽으로는 두 집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중 102호는 안쪽이었다.
짧은 복도를 지나며 은연중에 옆집에 시선이 닿았다.
‘옆집 또라이는 아직 거기 살려나 모르겠다. 수작 부리면 그냥 거시기를 까 버려!’
집주인 민영은 종종 옆집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는 일 없이 여자 꾀어서 떡만 치는 동네 한량이었어. 그런 놈이랑 얽혀서 득 될 거 없으니까 조심해.’
도어 록 비밀번호는 1028. 민영의 생일이었다. 해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힐 만큼 답답한 공기가 내부에서 쏟아졌다.
누구도 환기를 시켜 주지 않아 6개월 동안 좁은 집을 맴돌았을 공기들이 비로소 탈출했다.
그 심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전부 빠져나가라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 두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민영의 집은 방 하나와 거실, 그리고 작은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아담한 구조였다. 후진 외관에 비해서 내부는 그런대로 깨끗했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본인이 직접 만든 게 분명한 종이로 만든 화분과 모빌이었다.
그녀는 손재주가 좋아서 툭하면 종이나 휴지 따위로 뭔가를 만들곤 했다. 덕분에 우리 방은 교도소에서 가장 생기가 넘쳤다.
집 구경은 이만하면 됐으니,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 소파에 걸터앉았다. 축축하게 젖은 옷감이 소파 가죽에 질척이며 달라붙었다.
열어 둔 현관 쪽에서 연이은 빗소리와 복도 창문을 통한 흐린 햇빛이 함께 들어왔다.
“…….”
나는 소파에 몸을 깊이 묻은 채 천장에 달린 종이 모빌을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나 여기서 나가려면 한참 남았어. 갈 데 없다며. 우리 집 가서 살아.’
민영은 함께 생활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선뜻 자신의 집을 내주었다. 덕분에 이 장마철에 오갈 데 없던 나는 안락한 곳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문득 신발장에 세워 둔 까만 장우산에 시선이 닿았다.
이 집과 마찬가지로 저것도 내 게 아니었다. 우산이 없어서 혼자 비 맞고 가는 게 불쌍했는지 지나가는 행인이 씌워 주고 간 거였다.
우산을 빌려준 행인과 집을 빌려준 민영. 세상엔 아직 착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딱히 고맙단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냥 멍하기만 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낯설어서 그런가. 둘 다인가.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쏴아아-.
5년 10개월. 햇수로는 6년.
오랜만에 나온 교도소 밖은 너무 눅눅했다.
* * *
소파에 앉아 멍청하게 허공만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흔한 벽걸이 시계 하나 걸려 있지 않은 민영의 집은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시간의 흐름은 머리와 옷이 마른 덕에 알 수 있었다.
멍하니 있는 동안 잡념이 하나둘 쌓여 갔다.
‘밖에 비 와. 나가자!’
‘우리 바다 보러 갈래?’
‘뭐 때문에 나 버리고 갔냐고!’
‘죽어!’
쏴아-. 솨아-. 사아-. 사-.
그것들에 휩쓸려 귀가 먹먹하게 가라앉았다. 꼭 물에 잠겨 있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득해지는 그때였다.
탁.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벼운 도화선에 일순 정신이 현실로 되돌아오며, 귓구멍엔 다시 세찬 빗소리가 박혔다.
위치상 신발장에 세워 둔 우산이 쓰러진 것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렸으니 돌아보는,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열린 현관 앞에 서 있는 인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
그새 해가 졌는지 사위가 어두컴컴했다. 집에 불을 하나도 켜 놓지 않아서 더 그랬다.
그런 와중에 보이는 것은 키가 아주 크고, 어깨가 넓은 성인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
“…….”
‘그 새끼 툭하면 나랑 자려고 아주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럴 거면 우리 가게로 오라고 했거든? 근데 또 돈 내고 떡 치긴 싫대. 그래서 몇 번 자 줬더니 지가 내 애인이라도 된 줄 아는지 되게 질척거리더라. 그런 놈한테 시달리느니, 차라리 감방 생활이 훨 나은 거 같아.’
옆집 남자인가 보다. 민영에게 집착했다던. 두 집밖에 없는 지하에 굳이 내려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빈집에 문이 열려 있으니 민영이 돌아왔나 싶어 들여다보고 있었을 테고.
입을 열 기력이 없어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데, 인영이 꿈틀거렸다. 주머니를 뒤지는 것 같더니 이내 탁, 소리와 함께 둥근 불빛이 피어올랐다.
손으로 불 앞을 막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걸 보니 담배에 불을 붙이는 듯했다. 손바닥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 저게 있었지.
순간 최근 들어 가장 강렬한 욕구가 치솟았다. 얼마 만에 보는 담배인가.
“저기.”
홀린 듯 입을 열었다.
“나도 하나만.”
남자가 탁 소리 나게 라이터를 닫았다. 다시 어둠이 도사렸다.
“하나만 줘.”
피식, 어둠 속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흘렀다.
“맨입으로?”
소름 끼치게 낮은 목소리였다.
흔히들 백색 소음이라 부르는 빗소리는 집중력을 강화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유독 남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귀에 꽂혀 드는 건.
“두 배로 갚을게.”
후우, 그가 연기를 내뿜었다. 어두컴컴한 와중에도 흩어지는 연기는 보였다. 어렴풋이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이쯤 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6년간 강제로 묶여 있던 흡연 욕구가 맹렬히 솟아 한 대만 피울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비이성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세 배로 갚을게. 아니면 네 배.”
“시세가 좋네. 더 올려 봐.”
“날도둑놈이야? 담배 한 대로 얼마나 남겨 먹으려는 거야.”
“나도 먹고살아야지.”
금단 증상으로 몸이 덜덜 떨리는 나와 달리 여유롭기 짝이 없는 태도에 짜증이 치밀었다.
“내가 많이 달래? 딱 한 개비만 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아까워?”
맥없이 소파에 기댄 채 씩씩대기만 하자 나지막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왜 초면에 반말일까.”
“옆집 살지?”
“산다면?”
“나 최민영 친구야.”
“그래서?”
“너 걔 애인이잖아. 민영이랑 나이 같다던데. 그럼 나랑도 같을 거 아니야.”
사실 거짓말이다. 굳이 따지면 애인보다는 섹스 파트너에 가까운 것 같았고, 들은 이야기는 대부분 그를 향한 욕밖에 없어서 나이는 알지도 못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반말한 건데 남자가 지적해서 적당히 넘어가려고 둘러대는 거였다.
지금 중요한 건 반말이 아니다. 담배지. 잡담할 여유가 없었다.
“나 민영이랑 친해. 감방에서 같이 지냈어. 이 집도 민영이가 나 지내라고 비밀번호 알려 준 거야.”
“그런데?”
“애인 친구한테 담배 한 대 못 줘?”
그제야 줄 마음이 생겼는지 남자가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낯선 이방인이 가까워지는데도 경계심이 일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담배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어 남자를 경계할 여유가 없었다.
다 필요 없고, 당장 담배를 물지 않으면 이대로 몸이 녹아내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약 같지만, 실제 내 기분은 그러했다.
저벅, 저벅.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오는 발소리였다. 상관없다.
빨리. 빨리. 빨리.
비로소 그가 소파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여전히 캄캄해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가 물고 있는 담뱃불만 선명했다.
나는 애타는 심정으로 간신히 고개를 들어 붉은 불빛을 바라봤다. 그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천천히 내릴 때는 얼굴도 따라 내려갔다.
타악-.
라이터 켜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허공이 밝아졌다. 반사적으로 다시 고개를 들자, 불빛을 사이에 두고 이방인과 눈이 마주쳤다.
“…….”
“…….”
잠깐 의문이 들었다.
엄청 잘생겼는데 왜 그렇게 싫어한 거지?
평소 남자는 얼굴이 전부라고 외치고 다녔던 민영을 아는 나로서는 옆집 남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토록 질색하던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를 맞은 건지 그는 쫄딱 젖은 모양새였다. 이마 위로 가닥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데, 그 물방울이 흐르는 얼굴선이 기가 막히게 완벽했다. 좀 사나운 인상이긴 하나 어쨌든 잘생겼다.
“예쁘게 생겼네.”
눈이 마주친 채로 그가 다시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홀쭉해지는 볼은 섹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시 지금 나에게는 남자의 섹시함보다 담배가 먼저였다.
“담배 피우고 싶어?”
나는 빨리 내놓으라는 뜻으로 손을 까딱였다. 그가 피식 웃으며 담배가 들린 오른손을 사타구니 앞으로 내려 필터를 내 쪽으로 돌렸다.
“이거라도 빨래?”
담배를 빨라는 말이지만 굳이 손을 거기까지 내린 건 의도가 불순했다. 그러면 내가 못 빨 줄 알고 조롱하는 것이리라.
미안하지만, 그렇게 순진하진 않다. 감방 생활 6년이면 갖은 지저분한 세상 이야기는 다 듣기 마련이라, 마음은 닳고 닳았다. 이 정도 희롱에 당황해서 물러날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순순히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남자의 키가 워낙 커서인지 사타구니와 얼추 눈높이가 맞았다.
“새 걸로 주지. 쪼잔하네.”
쏘아붙이며 그의 침으로 눅눅한 필터를 입에 무는 그때, 바로 코앞에 있는 남자의 손바닥에서 이상하리만치 상쾌한 향이 풍겼다.
담배는 아니었다. 묵직한 담배 향 위를 겉도는 듯한 신선한 냄새였는데, 아무래도 오랜만에 음미하는 담배 때문에 코가 맛이 간 것 같았다. 이렇게 진한 담배 냄새를 코앞에 두고 다른 향을 맡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대충 넘기며 그가 그랬듯 볼우물이 파일 만큼 강하게 필터를 빨아들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부를 파고들었다가 코를 통해 빠져나가는 과정이 황홀하기 짝이 없었다.
“하아…….”
“맛있게 빠네.”
“맛있으니까.”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자 그가 손을 가져가 한숨 빨고, 다시 내 쪽으로 내려 주었다.
그렇게 번갈아 몇 번 빨다 보니 담배는 금방 쪼그라들었다. 손가락으로 비벼 끄는 모습을 아쉽게 바라보다 한 번 더 요구했다.
“하나 더 줘.”
“돛대였는데.”
“……진짜야?”
돛대를 나눠 피운 건가. 의외라는 눈으로 올려다보자 그가 또 피식 웃었다.
“큰 결심 했다, 나. 그렇지?”
“그래, 뭐. 덕분에 잘 피웠어.”
“예쁘게 빨아서 보람 있었어.”
남자가 라이터를 다시 껐다.
잠깐 불빛을 봤다고 유독 더 세상이 어둡게 느껴졌다.
“좆도 빨아 볼래?”
은근한 제안이 날아왔다. 담배를 두 번째 입에 물었을 때부터 스멀스멀 부풀기 시작한 사타구니를 알고 있었기에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애초에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의도부터 뻔하다. 옆집 남자가 가벼운 놈이라는 건 민영에게 충분히 전해 듣기도 했고.
수작 부리면 거시기를 까라던 충고를 떠올리며 물끄러미 시선을 들었다.
“난 최민영 아닌데.”
“누가 몰라.”
그새 민영을 잊은 건가. 나중에 면회 가서 이 사실을 알려 주면 좋아하겠다.
“맨입으로?”
남자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자 낮은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동안 소리 내 웃던 그는 이내 슈트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담뱃갑.
“돛대라는 거 거짓말이었구나.”
“응. 교환할까?”
매캐한 맛이 감도는 입 안으로 혀를 굴렸다.
가진 돈은 한 푼도 없고, 담배는 피우고 싶고, 6년 만에 출소했고, 남자는 잘생겼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만한 여러 이유가 떠올랐지만, 그것보단 귀찮다는 생각이 절대적이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법이다. 교도소에서 박하 맨션까지 걸어오느라 가지고 있는 체력을 소진한 지 오래였다.
“됐어.”
“아쉽네.”
내 거절에 남자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민영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질척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깔끔한 태도였다.
“근데, 예쁜아.”
“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가 예쁜 건 아나 보네.”
“여기 나밖에 없어서 대답한 건데.”
“오빠 최민영보다 나이 많아.”
잘생겼는데, 꼰대인가.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존댓말 하라는 거야?”
“설마. 그건 네 자유지. 그냥 알려 주는 거야.”
“그래. 잘 알았어. 이제 가 봐.”
다시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단물만 빨렸네.”
못 들은 척 소파에 몸을 묻자, 이내 남자의 발걸음이 멀어졌다.
들어올 때보다 더 천천히 걸어 나가는 커다란 실루엣을 잠깐 눈으로 좇다가,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눈을 감았다.
“아.”
현관 앞에서 낮은 음성이 들렸다.
“또 빨고 싶으면 오늘처럼 문 열어 놔.”
“왜?”
“이웃 주민끼리 돕고 살면 좋잖아.”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 * *
혹시나 해서 다음 날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투욱-.
뭔가가 문에 걸렸다. 시선을 떨궈 보니 비닐도 뜯지 않은 담배 한 갑과 일회용 라이터가 복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
홀린 듯 그것을 주운 나는 잠시 옆집 문을 돌아봤다. 흘리고 간 건 아닌 것 같고…….
돕고 살겠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의외네. 민영에게 들은 이야기나, 잘생겼지만 사납게 생긴 외모를 따져 봤을 땐 담배를 빼앗으면 빼앗았지 줄 것 같은 놈은 아니었는데.
현관에서 포장을 뜯어 대충 바닥에 버리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밤새 앉아 있었던 소파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탁. 타악. 탁.
오랜만에 라이터를 쥐어서 그런지 손이 버벅거렸다. 마음처럼 불이 잘 켜지지 않아 씩씩대는데 엄지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출소한 이후로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 허기가 느껴지진 않지만 에너지가 부족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타악-.
어찌어찌 불을 붙이는 데 성공하고, 필터를 깊이 빨았다.
에어컨이 없는 민영의 집은 눅눅하고 끈적하다. 밤새 그런 곳에서 축축하게 있다가 알싸한 연기를 흡입하니 좀 개운해지는 것도 같았다.
“하아…….”
그렇게 담배 한 갑을 다 피운 뒤엔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이것 말곤 딱히 할 게 없으니까.
정확하게는, 그러지 않으면 또 생각에 잠식될 테니까.
그러다 문득 잠들기 직전, 어제 옆집 남자의 손에서 맡았던 상쾌한 냄새가 떠올랐다.
그건 뭐였을까?
담배 냄새를 이겨 먹은 그것을 또 맡아 보고 싶은 묘한 충동이 일었다. 다음에 마주치면 제대로 맡아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수마에 잡혀갔다.
* * *
다음 날도 눈을 뜨자마자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담배가 놓여 있지 않았다.
작심삼일도 못 하는 놈인가. 조금 허탈한 심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는데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을 좀 더 열어젖히는 순간, 그 뒤에 서 있는 옆집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담배 냄새.”
그가 손으로 코를 살짝 막았다. 진짜 냄새가 나서 불쾌해한다기보다는 일부러 연기하는 듯한 장난스러운 태도였다.
그는 처음 봤을 때와 달리 보송보송한 상태였다. 머리도, 슈트도, 얼굴도 전부 다. 반면 바깥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막 자다 깨서 몽롱한 상태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코를 킁킁댔다. 또 나네, 좋은 냄새. 멍하니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담배 주러 온 거지?”
남자의 입매가 비틀렸다.
“맡겨 놨어?”
“돕고 살겠다고 한 건 너잖아.”
“하긴.”
그가 현관문을 잡아 활짝 열어젖히더니 멋대로 발을 들였다. 오늘은 신발을 벗었다.
“왜 허락도 없이 들어가?”
뒤따라가며 묻자 그가 슈트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소파 위에 툭 던졌다.
“이웃끼리 돕기도 하고, 집에 초대도 하고 그러는 거야.”
“뭐래.”
“여태 꼼짝도 안 하고 담배만 피운 모양이네.”
그가 소파 밑에 잔뜩 쌓여 있는 꽁초를 보며 혀를 찼다. 나는 대답 대신 담배를 꺼내 물었다.
타닥. 타닥. 타닥. 연이어 불을 붙이는 데 실패하자 남자가 나를 돌아봤다. 어제도 이것 때문에 한 갑을 피우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어제보다 더 기력이 없어서인지 불도 더 안 붙는 것 같다.
“너 혹시 나한테 불량 준 거 아니야?”
애꿎은 남자를 탓하자, 그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에 물린 담배를 빼앗아 제 입에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들어가서 씻고 나와.”
“뭐?”
“그동안 이건 압수.”
그것뿐만 아니라 본인이 준 담배와 라이터까지 가져갔다. 어이가 없어서 그를 위아래로 훑다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내놔. 내 거잖아.”
“누가 그래?”
“네가 줬잖아. 그럼 내 거지.”
“빌려준 건데.”
“…….”
“소유권은 아직 나한테 있어.”
뻔뻔하게 대꾸하며 소파에 앉은 남자가 입술을 움직여 물고 있는 담배를 흔들었다.
“줬다가 뺏는 게 어디 있어.”
“여기.”
“…….”
인상을 찌푸리자 그가 웃음을 흘리며 내 라이터를 켰다. 화르르,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을 빠는 얼굴은 밝은 데서 보니까 더 섹시했다. 하지만 역시 나에게는 담배가 먼저였다.
“줘.”
신경질적으로 다가가 손을 뻗자 남자가 몸을 뒤로 물려 피했다. 한가롭게 소파에 몸을 묻고 입을 뻐끔대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얄밉기 그지없었다. 씩씩대는 나를 보며 그가 보란 듯이 연기를 길게 뱉었다.
“뭐 해. 씻고 오라니까.”
“착한 줄 알았는데.”
“설마 나?”
“…….”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 보네.”
남자는 전혀 굴하지 않을 기세였다. 라이터 켤 힘조차 없는 나와 달리 기운이 좋아 보이니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를 노려보다 억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왜 씻어야 하는데?”
“들어가서 네 꼴을 보면 답 나올걸.”
여기 온 뒤로 안 씻었으니 어떤 꼴일지는 짐작이 되었다.
“남이사 추하든 말든.”
“누가 추하대. 꼴은 그래도 계속 예쁘니까 걱정 마.”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뒤쪽으로 턱짓을 했다.
“다녀와.”
“……씻고 오면 다시 줄 거야?”
“그럼.”
“…….”
믿어도 될진 모르겠지만, 여태 담배를 제공해 준 선의를 믿어 보기로 하고 마지못해 몸을 돌렸다. 당장 급한 건 담배니까.
눈을 뜨자마자 한 대도 못 피워 그런지, 아니면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축축 늘어졌다.
걸음뿐인가. 온몸의 세포가 연약하게 흔들렸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니 예상대로였다. 빗물이 그대로 말라서 덕지덕지 엉겨 붙은 머리카락과 꼬질꼬질한 얼굴이 상당히 추했다.
기운이 없는 상태로 낯선 민영의 화장실에서 간신히 샤워했다.
머리를 감다가 팔을 툭, 늘어뜨리고, 몸에 거품 칠을 하다 샤워 볼을 떨어트리고, 새 칫솔을 꺼내 입에 물다가도 치약을 줄줄 흘리며 대충 샤워를 끝마쳤다.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그냥 입었던 걸 다시 입고 나가자, 남자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
“…….”
화장실 바로 앞이 주방이라 곧장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묘한 얼굴로 눈썹을 들썩였다.
“앉아.”
그가 자신의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새 담배를 다 태운 건지 입에 물린 건 없었다.
나는 황당한 눈으로 그를 훑어보며 일단은 가리키는 곳에 앉았다. 식탁엔 희멀건 죽이 담긴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뭐야?”
“여태 굶은 거 같아서. 먹어.”
“…….”
“다 먹고 나면 줄게.”
그가 제 왼쪽 가슴팍을 툭 쳤다. 어처구니가 없다.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
“글쎄.”
어깨를 으쓱인 남자가 식탁에 턱을 괴었다. 그러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왠지 관찰당하는 기분이라 썩 유쾌하지 않았다.
“왜 사람을 그렇게 쳐다봐?”
“예쁘게 생겨서.”
“…….”
‘그 새끼 툭하면 나랑 자려고 아주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럴 거면 우리 가게로 오라고 했거든? 근데 또 돈 내고 떡 치긴 싫대. 그래서 몇 번 자 줬더니 지가 내 애인이라도 된 줄 아는지 되게 질척거리더라. 그런 놈한테 시달리느니, 차라리 감방 생활이 훨 나은 거 같아.’
민영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가만히 마주 보자 남자가 먹으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귀찮지만, 담배를 받아야 하니 마지못해 플라스틱 숟가락을 들었다.
억지로 한 입 떠먹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기가 밀려왔다.
“…….”
“…….”
내가 정신없이 죽을 퍼먹는 동안 남자는 내내 나를 관찰했다.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배가 불러서 수저를 내려놓았을 땐 아직 죽이 절반 넘게 남아 있었다.
“됐지? 줘.”
“다 먹은 거야?”
“응.”
턱을 괸 자세 그대로 내 얼굴과 죽을 번갈아 본 남자가 이내 순순히 재킷 안에서 내가 원하던 걸 꺼내 식탁에 올렸다. 곧바로 담배를 낚아채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허기를 채워서인지 이번엔 단번에 불이 켜졌다.
타오르는 불꽃에 담배를 가져다 대고 쭈욱 빨아들이다 문득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
처음 보자마자 좆 빨라는 소리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그는 욕구를 감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누가 봐도 꼴린 얼굴로 나를 빤히 응시하는 남자를 향해 숨을 후우 뱉었다. 직선으로 뻗은 연기가 얼굴을 뒤덮자, 그가 능청스레 기침하는 연기를 했다. 그 모습이 좀 재밌었다.
담배를 물어서 그런지 심통이 풀리며 바람 빠지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남자가 더 노골적으로 내 얼굴을 훑어보았다.
“뭘 봐?”
“너 봐.”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모르는 척 묻자, 이번엔 그가 피식 웃었다.
어? 뭔가를 본 것 같은데, 남자가 금방 웃음기를 거두는 바람에 착각인가 싶었다.
“할 말이야 많지.”
그러나 그 뒤로 남자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 *
‘그걸로 나를 찌르기라도 할 셈이냐.’
‘…….’
‘헛짓하지 말고 이리 와.’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윤서하!’
‘죽어!’
악을 쓰며 달려드는 순간, 눈앞이 점멸했다.
“으음…….”
온몸이 끈적해진 채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젖지 않은 곳이 없었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다 몸에 말고 있는 이불을 걷었다. 동시에 한기가 느껴졌다. 땀이 마르며 체온을 떨어트린 탓이다. 웃기게도, 더워서 흘린 땀이 오히려 나를 춥게 만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덜덜 떨며 침실에서 나오자마자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니 담배 한 갑과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일단 담배부터 줍고, 비닐봉지는 잠깐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집어 들었다.
이틀 전에도 이렇게 담배와 음식이 놓여 있길래 담배만 쏙 가져갔더니, 어제는 음식만 덜렁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옆집 남자가 담배만 가져간 것을 응징한 듯한데 이해할 수 없는 오지랖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어제 담배가 없어서 종일 잡념에 빠져 살아야 했다.
그래서 오늘 그런 꿈을 꾼 것이리라.
바스락대는 봉지 안에는 김밥 한 줄이 들어 있었다. 쯧,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와 김밥은 대충 바닥에 던져두고 담배부터 피웠다.
“하아…….”
‘죽어!’
빠르게 숨을 들이켜며 몸 안을 매캐한 연기로 채웠지만, 자꾸 환청이 들렸다. 꿈을 꾼 탓일까. 오늘은 담배도 크게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밖에 비 와. 나가자!’
‘우리 바다 보러 갈래?’
‘뭐 때문에 나 버리고 갔냐고!’
‘죽어!’
쏴아-. 솨아-. 사아-. 사-.
또 귀가 먹먹해졌다.
아예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애초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면 잠겨 가는 것도 모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괜히 팔만 아플 뿐이었다.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해 볼까.
뭐가 있을까.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지만, 내 삶의 어디를 떠올려도 이 좆같은 잡념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그냥 포기하려는 순간이었다.
‘좆도 빨아 볼래?’
불쑥 옆집 남자가 생각났다.
이상한 오지랖을 부리는 낯선 이방인.
손에 들린 담배와 바닥에 나뒹구는 김밥, 닫힌 현관문을 연이어 응시했다.
사흘 전 나에게 죽을 사 먹인 뒤로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담배와 음식이 놓여 있는 걸 보면 옆집에 있는 것 같긴 한데.
‘또 빨고 싶으면 오늘처럼 문 열어 놔.’
나는 잠깐 생각하다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이번엔 아예 활짝 열어 두었다. 첫날 내부 공기를 빼내던 것처럼.
그리고 돌아와 소파에 몸을 눕혔다.
쏴아아-.
땀에 전 몸이 싸구려 가죽 소파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렇게 소파에 붙은 채 나를 관찰하던 옆집 남자의 잘난 낯짝을 되새기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를 생각했다. 이를테면, 그는 왜 나에게 오지랖을 부리는가, 하는.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과거를 제외하곤 나에게 생각할 만한 거리가 옆집 남자밖에 없었다. 그는 내 삶과 무관한 존재니까.
덕분에 숨통이 조금 트였다.
* * *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잘 잤어?”
언제 옆집 남자가 왔는지도.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완전한 밤은 아닌 듯싶지만,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지하인 데다가 집 안의 불을 다 꺼 둔 탓에 눈앞에 보이는 게 옆집 남자라는 것만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꿈을 꾸고 있나 싶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다 문득 낯선 감촉이 몸에서 느껴져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떨면서 자길래.”
“…….”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슈트 재킷이 내 몸에 둘둘 감겨 있었다. 품에 안고 있는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때 물씬, 코끝을 파고드는 향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슈트에 코를 묻자, 아니나 다를까 예의 그 상쾌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진짜 나는 냄새였구나.
나는 남자에게 왜 여기 들어와 있느냐고 물을 생각도 못 하고 킁킁대기만 했다. 남자는 쭈그리고 앉아 그런 나를 물끄러미 관찰했다.
“뭐 해?”
“좋은 냄새 나.”
“그래?”
“향수야?”
“글쎄.”
두루뭉술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흘겨보자 그가 씨익 웃으며 무릎 위에 팔을 세우고 턱을 괴었다.
“왜 여기 있어?”
나는 그제야 물었다.
“문이 열려 있길래.”
“그게 들어오라는 뜻은 아닌데.”
“내가 원래 착각을 잘해.”
“…….”
“그래서 지금도 착각 중이야.”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자 남자가 대뜸 라이터를 탁, 켰다. 동그랗게 퍼진 불빛이 시야를 밝혔다. 정확하게는 그가 불로 나를 비춰 보는 거였다.
“지금 네가 이러고 있거든.”
그제야 나는 내가 여전히 남자의 재킷에 얼굴을 비벼 대고 있는 걸 깨달았다. 머리로는 관둬야지 생각했으나 냄새가 너무 좋은 나머지 멈추지 못했다.
“무슨 착각 하는데?”
“너도 꼴린 건 아닐까, 하는 착각.”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는데, 남자가 재킷을 훅 걷어 갔다.
“아…….”
순식간에 알몸이 된 기분이었다. 분명히 옷을 입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쉬운 심정으로 그와 재킷을 번갈아 보는데, 또 땀이 증발하며 체온을 낮췄다.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웅크리자 남자가 재킷을 바닥에 던지곤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득 어둠과 라이터 불이 만들어 낸 음영 속에서 남자의 오른쪽 광대가 움푹 파이는 것을 발견했다. 저번에 잠깐 웃을 때 얼핏 본 게 이거였나 보다.
“보조개 있네.”
손으로 가리키며 하는 말에 남자가 제 얼굴을 잠깐 쓸었다.
“그래?”
“몰랐어?”
“응.”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 다른 데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이번엔 어때?”
“뭐가.”
“오빠 좆 빠는 거.”
“…….”
“껍데기보단 본체가 낫지 않나.”
그가 바닥에 나뒹구는 재킷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자는 사람을 들여다보고 있던 분위기가 음험하더라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뜬금없긴. 이렇게 문을 훤히 열어 두고.”
“네가 담배 피우고 싶으면 열어 두라며.”
“난 담배라고 한 적 없는데.”
“…….”
“빨고 싶으면 열어 두라고 했지.”
물끄러미 응시하자 남자가 내 쪽으로 턱짓을 했다.
“알고 있었던 얼굴인데?”
솔직히 말하면 그랬다.
“그래서, 어떡할래?”
“맨입으로?”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내놓자 그가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거 때문인지 웃는 얼굴이 꽤 귀염성 있었다.
옆집 남자는 사납게 생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은 것 같다. 착하고, 좋은 냄새가 나고, 웃는 얼굴이 귀엽고.
“맨입은 아니지. 여태 제공해 줬잖아.”
그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담배를 집어 소파에 올렸다.
“그거 시키려고 오지랖 부린 거야?”
“꼭 그렇진 않아.”
“그러면?”
“글쎄.”
대답이 애매모호하다. 나는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남자의 말대로 여태 얻어 피운 담배와 얻어먹은 음식이 있기도 하고, 하루 종일 담배 연기 들이마시는 것 외엔 할 것도 없다.
‘그래도 기분 되게 더러울 때 옆집 남자랑 떡 치면 좀 나아지긴 하더라. 섹스는 잘했거든. 그렇다고 그 새끼가 좋다는 건 아니고. 그 외엔 다 최악이었으니까.’
민영은 섹스를 일탈구로 삼았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재소자 중에는 그런 부류가 더러 있었다. 좆같은 현실은 좆으로 해결하는 거라며 깔깔대던 음성이 떠올랐다.
사실 문을 열 때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자의 의도를 알면서도 문을 열어 둘 리는 없으니까.
나는 잠시 숨을 들이켜 허공에 감도는 상쾌한 향을 들이마셨다.
어제, 남자를 생각하며 좆같은 현실을 잊을 때와 비슷하게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괜찮지 않을까.
대책 없는 일탈욕이 치밀었다.
“까 봐. 보고 내키면.”
그가 라이터를 끄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담배를 나눠 피울 때처럼 사타구니와 눈높이가 맞춰졌다. 커다란 손이 지퍼를 열더니, 한순간 묵직한 기둥이 솟아올랐다.
어두워서 세세한 것까진 보이지 않지만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기우는 성기의 거대함은 실루엣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민영이가 아파했겠다.”
남자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또 웃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꺼떡대는 우람한 기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으로 가볍게 움켜쥐었다. 한 손으로 잡기에는 턱도 없었다.
그 상태로 천천히 훑자 가뜩이나 발기한 것이 더 부푸는 게 손안으로 느껴졌다. 울퉁불퉁한 힘줄 같은 것도 손바닥에 자꾸 걸렸다.
“라이터 다시 켜 봐.”
탁, 불이 켜지고 비로소 성기가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과연 표피가 올록볼록한 것이 흉악한 방망이 같았다.
무섭게 생기긴 했는데 생각보다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아마 남자가 막무가내로 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는 적응할 시간을 주듯 내가 성기를 들여다보고 만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액을 뚝뚝 흘리는 귀두를 엄지로 스윽 문지르다 고개를 들자 남자가 생긋 웃었다. 쓸데없이 예쁜 미소였다.
민영은 정말 왜 그를 싫어했을까.
“남자는 얼굴이 전부라던데.”
“누가?”
“민영이가.”
“그래?”
“너 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남자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잘생겨서 내켜?”
“응.”
“이렇게 낳아 줘서 고맙다고 해야겠네.”
그 너스레에 픽 웃으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젖은 귀두를 혀끝으로 쿡 찌르자 기둥이 또 한 번 들썩거렸다.
그의 옷에서 풍겼던 냄새가 살갗에선 더 진하게 나는 듯해 좀 더 가까이 붙어 핥는 범위를 넓혀 나갔다. 주먹 같은 귀두 주변을 혀로 둥글리다 입에 물자 남자가 목을 울리며 신음했다.
츄읍, 츕. 빨아들이는데 왠지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남자 좆은 맛있는 걸까. 민영은 펠라가 제일 싫다던데. 왜 나는 괜찮지? 쓸모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빨았다.
혀도 쓰고, 입 전체로 할 수 있는 만큼 넣어 보기도 하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데 돌연 그가 예고도 없이 정액을 토해 냈다.
“으으…….”
입에 물고 있는데 쏴 댄 거라 절반은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절반은 입가로 흘러내렸다. 그래도 나는 성기를 뱉어 내지 않았다. 사정을 하고도 다시 단단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맛있게 빨 줄은 몰랐는데.”
“후으…….”
“이야기 안 꺼냈으면 후회할 뻔했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아무런 쾌락이 오지 않는 이딴 행위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정액 맛은 비리고, 살덩어리는 너무 커서 턱이 뻐근하지만 어쩐지 정신없이 빨게만 되었다.
헐떡거리며 혀를 놀리는데 불시에 그가 허리를 뒤로 물렸다. 수욱, 성기가 빠져나가고 입 안이 텅 비어 연유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왜 빼?”
“애태우려고.”
“……못 싸면 자기만 손해지.”
벌떡 선 기둥을 흘겨보면서도 내심 입맛을 다셨다. 잠깐 물고 있던 게 사라졌다고 이렇게 허탈할 줄이야. 입가에 묻은 정액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 내는데 문득 그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나만 빨리면 불공평하잖아.”
“그래서?”
“너도 좀 빨려야겠는데.”
“왜 책임 전가해? 네가 원했으면서.”
“뭐야, 똑똑하잖아.”
그가 태연하게 대꾸하며 기역자로 바닥을 딛고 있는 내 다리를 잡아 양쪽으로 벌렸다.
“장담하는데, 빠는 것보다 빨리는 게 더 기분 좋을 거야.”
“…….”
“어때?”
남자의 손가락이 무릎에서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굳이 저지하지 않고 하는 짓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라이터로 내 얼굴을 확인하는 듯하더니 딱히 거부 의사가 없자, 이내 씨익 웃으며 불을 끄고 소파 위에 대충 던졌다. 그러곤 내가 입고 있는 추리닝 바지를 주욱 잡아 내렸다.
문득 현관문이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문은 계속 열어 둘 거야?”
“스릴 있고 좋지 않아?”
“글쎄.”
“어차피 지하는 너랑 나 말고 올 사람 없어.”
그런가. 대충 수긍하고 있을 때, 남자가 바지를 완전히 벗겨 내고 내 다리를 소파 위에다 개구리처럼 벌리게 했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팬티를 옆으로 젖히며 얼굴을 파묻었다.
“읏.”
젖은 음부에 곧장 물컹한 혓바닥이 닿았다. 생소한 감각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으응, 응.”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몸이 달아오를수록 머리가 하얗게 비어 가는, 이 막 나가는 행위가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으, 읏.”
남자의 입술 위에 아래를 비비며 낑낑대자, 그가 웃으며 내 골반을 잡아 눌렀다.
본격적으로 혀를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여기저기 굴러먹은 놈인지 혀 놀림이 능숙했다. 그만큼 쾌락이 빨리 치솟았다.
“으응!”
탁탁, 살을 치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남자가 내 아래를 빨면서 자위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혀는 성실하게 굴렸다.
“아아……!”
한순간 절정에 도달해 음부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그는 아래를 빨아 댔다. 따끈따끈한 살덩이가 점막을 비벼 대는 느낌이 좋아서 그냥 내버려 두는데, 어느 순간 종아리에 축축한 게 튀었다.
“하아, 하.”
“후.”
남자와 나는 한동안 어둡고 눅눅한 공간 속에서 숨을 골랐다.
특히 그는 더 눅눅했을 거다. 내 다리 사이에 계속 코를 박고 있었으니까.
“할래?”
그가 또 제안해 왔다. 약간 혹할 뻔했지만 나른한 나머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쩔 수 없지.”
그는 이번에도 순순히 물러났다. 그렇게 게걸스럽게 핥아 대 놓고도 여유가 있었다.
생긴 거나 허우대가 훌륭하니 굳이 싫다는 사람 붙잡고 성기를 쑤셔 넣을 만큼 굶주리진 않은 모양인데, 민영에겐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많이 좋아했나? 그렇다고 물어볼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니라 그냥 넘어갔다.
“웃긴 이야기 해 줄까?”
팬티를 다시 원상 복구 시켜 준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벌어진 다리를 오므리고 소파에 길게 누워 그를 마주 봤다.
“사람은 타인의 온기를 느껴야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한대.”
“그런데?”
“덕분에 나도 이제 그런 거 같아.”
그가 바지를 추스르고 바닥에 앉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나를 보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까, 출소하고 처음 느낀 온기가 네 좆이야. 웃기지.”
그래서 유난히 맛있었나 싶다. 쾌락의 여운으로 눈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감방엔 왜 들어간 거야?”
“사람 죽이는 데 실패했거든.”
“…….”
“죽였으면 그냥 계속 거기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아까워.”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혹시 내가 한 짓에 겁을 먹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혼자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그가 조용히 있는 동안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기대했던 대로, 이방인과의 일탈은 담배보다도 더 잡념을 떨치기 좋았다.
개운하다. 이래서 다들 욕구를 해소하고 사는 모양이다.
육체적 쾌락과 담배 한 갑, 그리고 개운함.
굵은 성기를 문 탓에 턱이 뻐근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 이 행위에서 내가 손해 본 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빨았어도 나쁘진 않았겠다 싶어 픽, 웃는데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계속 붙어먹을까?”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왜?”
내가 물었다.
“타인의 온기를 느껴야 살아 있는 걸 실감한다며.”
“…….”
“우리 예쁜이 살려 주려고.”
“…….”
“어때?”
쏴아-.
빗소리가 양 귀를 가득 채웠다. 장마는 얼마나 지속될까. 잠깐 가늠하며 담배를 빨았다.
“그러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