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서 와, 우리 딸. 지상이 어머니는 지난번에 뵈었지?”
“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럼. 나야 잘 지냈지. 어쩜 이렇게 곱고 예쁘게 키우셨어요. 볼 때마다 너무 예뻐서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아.”
어머니와 지상의 어머니는 날 가운데 앉혀 놓고,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날 쓰다듬었다. 인형처럼 앉혀 관찰을 당하고 있자니 부끄러움에 열이 올랐다.
“이렇게 예쁘게 키워서 시집보내려면 얼마나 아까워요. 그렇다고 평생 데리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며느리로 보내주면 내가 애지중지 보살필게요. 우리 지상이도 재이 좋아하니까, 아껴 줄 거고. 오늘은 우리 여자들끼리 친목 도모도 할 겸 같이 얘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려고 불렀어.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네.”
“우리 딸 왜 이렇게 마른 것 같지? 요즘 일하느라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다른 때 같았으면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을 텐데, 일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창 나이라 사실 일 때문에 몸이 축 날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일이 좀 많아서 야근을 했더니….”
“아무리 일이 많아도 그렇지. 피부 상할라. 밥은 먹고 다니는 거니?”
“재현이랑 오피스텔에 따로 나가 산다고 했죠?”
지상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아예 나가 사는 건 아니고, 일이 좀 늦어질 때는 오피스텔에 가서 자기도 하고 그래요. 집이 좀 멀어서 출퇴근 힘들다고, 재현이가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 얻었대요.”
지상의 어머니가 조심스러운 어조의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노파심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오빠랑 둘이서만 사는 건 좀 사람들 보기도 그렇고….”
“남매가 같이 사는 게 뭐 어때서요? 그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죠.”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의 대꾸가 내 양심을 건드렸다. 열이 오른 내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나는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듣자 하니 친남매도 아니라면서요.”
기어이 우려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퍼진 것은 아니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당시 죽은 재이의 장례식에 왔던 사람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그 알 만한 사람 속에 어머니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머니는 기가 찬다는 듯 정색을 하며 따져 물었다.
“어머, 지상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친남매가 아니라니요. 아니, 어디서 이상한 루머를 듣고 와서…!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요.”
뒤늦게 말실수를 한 걸 깨달은 지상 어머니는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제발 방금 했던 말을 취소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곧바로 사과를 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다른 집안 얘기하고 착각했나 봐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사돈.”
“그럼, 그렇지. 깜짝 놀랐잖아요. 너무 기가 막혀서 머릿속이 다 하얗지 뭐예요.”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뒤늦게 안도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마사지실로 들어갔다. 셋이 나란히 누워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등부터 시작해 발, 팔, 복부, 어깨로 이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손길은 그간 쌓였던 내 피로를 말끔히 풀어 주는 듯했다. 그러나 몸이 점점 이완되는 것과는 별개로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재이야, 내 얘기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들어. 아직 나이도 어리고, 사회생활 경험도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괜히 이 남자 저 남자 만나서 좋을 게 뭐 있니. 우리 지상이 내 아들이지만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인물 좋지, 성격 좋지, 능력 있지. 여기저기서 탐내는 사람들이 많단다. 여러 군데서 혼담이 들어왔고, 솔직히 말해서 더 좋은 조건의 집안도 있어. 그래도 나는 집안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지상 어머니의 은근한 설득과 자식 자랑은 마사지의 힐링 효과를 반감시켰다. 그래도 나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향긋한 아로마 향과 잔잔한 음악, 심신을 이완시키는 마사지. 정신적, 신체적 소모가 많았던 나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설핏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마사지가 끝난 후였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꼭대기 층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지상 어머니가 다가왔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네. 사돈이 재이를 친딸로 알고 계셨어.”
“아, 네… 당시의 충격이 무척 크셨나 봐요. 아까는 감사했어요.”
“아까는 어머니 때문에 말을 못 했는데, 아무래도 오빠랑 둘이서만 사는 건 남들 보기도 좀 그러니까,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께 신부 수업도 좀 받고 그러면 어때? 물론 재현이가 어련히 알아서 동생을 잘 돌볼까마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말하기 좋아하잖어. 쓸데없이 관심도 많고 말이야.”
뭐라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지나친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하지 마시라고 대꾸할 수도 없었다.
“오빠랑 상의해 볼게요.”
최고의 셰프에 의해 만들어진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나는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어서 이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상이 불려 왔다.
“이렇게 둘이 나란히 앉혀 놓으니 그림 참 좋지 않아요?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요.”
지상 어머니의 흡족한 미소에 나는 화답하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게요. 신랑 신부로 결혼식장에 서면 주위가 환해지겠어요.”
“재이 미모가 사돈을 닮아 이리 출중한가 봐요. 어릴 때랑은 또 다르니, 길 가다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지 뭐예요.”
“과찬의 말씀이세요.”
“우리는 먼저 일어날 테니까, 둘이 어디 가서 차라도 마시고 와. 네가 재이 집에 데려다줘라.”
그렇게 지상과 나를 남겨 두고 두 어머니는 우아하게 웃으며 퇴장했다. 남겨진 우리는 서로를 보며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어머니는 재이 네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봐. 데이트는 언제 하느냐고, 다른 놈한테 뺏기면 어쩔 거냐고 날마다 성화시더니, 기어이 이런 자리까지 만드셨네. 부담스러웠다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오빠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요, 뭐. 차는 다음에 마셔요.”
“그래도 이렇게 만났는데 바로 헤어지긴 아쉽잖아. 차 한잔하고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재현 오빠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재현이 오피스텔 얻었다며. 오랜만에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싶은데, 마침 잘됐네. 술 사 가지고 가서 집들이 좀 해야지.”
지상은 내가 말리기도 전에 재현에게 전화를 했다. 재현이 밖에서 마시자고 했지만, 지상은 오피스텔로 가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마트에 들러 양주와 와인을 여러 개 구입했다. 마침 경쟁 회사의 신차 출시 행사장에 들렀다 온 재현과 주차장에서 마주쳤다. 지상과 나를 번갈아 보는 재현의 눈빛이 고울 리가 없었다.
지상은 거실 탁자에 양주를 늘어놓았다. 나는 냉장고에서 안주로 먹을 만한 것들을 뒤져 귤과 딸기를 내놓았다. 두 남자는 편하게 자리 잡고 앉아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재이 너도 이리 와. 내 술 한 잔 받아. 너 대학 들어갈 때 같이 한잔하고, 처음인 것 같다.”
지상이 내 잔에 코냑을 따라 주었다. 나는 소파에 기대앉아 있는 재현의 옆으로 가 앉았다.
“재현이 너, 재이가 좋아한다는 그놈 만나 봤냐?”
나는 술을 넘기다 말고 사레에 걸려 기침을 했다. 티슈를 뽑아 흘린 술을 닦고 있는데, 재현이 되물었다.
“재이가 좋아하는 놈?”
“지난번에 만났을 때 그러던데. 엄청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서 나랑 결혼 못 하겠다고.”
재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좋아하는 놈이 누군데.”
그놈이 자신인 줄 알면서도 묻는 건 무슨 심보일까. 이럴 때는 그저 여동생을 놀리고 싶은 오빠 같기만 하다.
“오빠한테는 얘기 안 해줄 거야.”
나도 적절히 받아치고는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오빠가 돼 가지고 여동생이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모르면 되겠냐, 인마. 어떤 놈이 우리 재이를 꼬셨는지, 정신은 제대로 박힌 놈인지, 재이 배경이나 집안을 보고 들러붙은 것은 아닌지 샅샅이 밝혀내야지.”
“우리 재이가 이상한 놈을 만나고 다닐 애는 아니지.”
재현이 내 허리를 잡아 제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허벅지와 허벅지가 맞붙었다. 나는 지상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으려 했지만, 내 허리를 끌어안은 팔은 힘이 무척 셌다.
“그래도 뭐 하는 놈인지 알아보고 정리시켜. 집안에서 절대 좋아하실 리 없잖아.”
내 허리에 감긴 팔에 문득 힘이 빠졌다. 나는 탁자로 조금 더 다가앉으며 딸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양주를 마시고 나자 머리가 몽롱해졌다.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입가엔 실실 헛웃음이 떠돌았다.
난 술에 취하면 웃음이 많아졌다. 별거 아닌 일에도 깔깔거리고, 실실 눈웃음을 치고, 애교를 많이 떤다고 한다.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겐 좀 차가워 보일 정도인데, 술을 마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말도 많아져서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얘기도 늘어놓았다.
지상과 나는 당사자를 바로 옆에 두고 재현의 험담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누가 민재현의 적나라한 성격을 더 잘 알고 있나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는 재현이 옆에 있어 더 신이 났는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때였나? 어떤 여자애가 밸런타인데이라고 초콜릿을 예쁘게 포장해서 저 자식 먹으라고 내밀었어. 그걸 멀뚱하게 쳐다보더니 받아서는 옆에 있는 다른 남학생을 줬어. 그걸 본 여자애는 울면서 뛰어가고, 2박 3일 동안 학교를 못 나왔지, 아마.”
“아마 그때 제가 만든 초콜릿 먹느라고 물려서 그랬을걸요. 제가 해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초콜릿을 잔뜩 만들어 줬거든요.”
“그래도 네가 만들어 준 건 먹냐?”
“그럼요.”
“아무튼 여동생에 대한 사랑은 넘치는 모양이지.”
귤을 깨물다 즙이 지상에게로 튀었다.
“어머, 어떡해.”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고, 지상이 내 손을 가져다 제 뺨에 묻은 즙을 닦아 내며 말했다.
“와, 얘 귀여운 거 봐라. 술 취하니까 엄청 웃네.”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상. 나는 어쩐지 등 뒤가 따가워 움찔했다.
“너 그만 들어가.”
재현이 말했다.
“놔둬. 우락부락한 남자들끼리 마시는 것보다 분위기 좋은데.”
“들어가라고.”
재현은 내게 다시 한번 종용했다. 내가 다른 남자 앞에서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더 이상 안 마실게. 웃지도 않고, 가만히 있을게. 혼자 안에 있으면 심심하단 말이야.”
나는 재현의 옆에 바싹 다가앉아 그의 팔을 잡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재현은 더 이상 들어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하품이 쏟아졌다. 마사지의 여파로 아직도 몸이 노곤했다.
두 남자의 경제 돌아가는 얘기, 일 얘기, 지루한 정치 관계 등을 듣고 있자니 절로 잠이 왔다. 꾸벅꾸벅 졸다가 내가 눈을 뜬 것은 입술에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 때문이었다. 말랑말랑한 아랫입술을 가만히 물었다가 놓고, 혀로 쓸고, 이내 입 안으로 헤집어 드는 축축한 혀의 느낌.
나는 비몽사몽간에 키스를 받아들였다. 익숙한 체취. 익숙한 키스. 그리고 짙은 알코올 냄새.
이건 분명 재현의 입술이고, 손길이었다. 내 뒷머리를 받쳐 든 그가 더욱 깊숙이 침범을 해왔다. 눈을 뜨자 그의 어둠에 물든 눈동자가 보였다.
“지상 오빠는 갔어?”
“…아니.”
재현이 내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제야 우린 아직도 거실에 있고, 중앙등은 꺼졌지만 스탠드가 공간을 밝히고 있으며, 지상이 소파 위에 엎드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재현을 밀어냈다.
“뭐, 뭐 하는 거야.”
나는 속삭이며 몸을 뒤로 물렀다. 금방이라도 지상이 일어나 너네 뭐하냐고 물어볼 것 같았다. 그러나 재현은 그런 내 두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품으로 날 끌어당기며 다시 입을 맞췄다. 그에게서 술 냄새가 꽤나 강하게 배어 나왔다.
탁자에 뒹구는 두 병의 양주가 그의 섭취량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지상과 둘이서 두 병 가까이 비운 것이다.
“오빠, 이러지 마.”
나는 고개를 돌리며 몸을 빼내려 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그의 악력은 평소보다 더 강했다. 손이 불쑥 내 팬티 안으로 들어왔다. 갈라진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손가락이 이미 통통하게 발기한 음핵을 문질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재현의 손가락이 닿은 그곳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미끌미끌한 액을 문질러 바르며 그의 손가락은 유려한 애무를 계속했다.
잇새로 흐르는 신음을 참으려 나는 안간힘을 썼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타는 듯한 눈동자는 내 표정을 샅샅이 살피며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이를 물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부탁이야.”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내 시선은 자꾸만 소파 위의 지상에게로 갔다. 들킬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음부에 가해지는 자극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다리를 오므려 더 이상 그가 자극을 하지 못하도록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은밀한 곳에 닿는 손가락의 느낌은 너무나 선명했다.
나는 밭은 숨을 내쉬며 재현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흐흡… 하읏….”
기어이 손가락 하나가 질구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바득 이를 물었다. 울퉁불퉁한 그의 팔을 붙잡고 나는 사력을 다해 버텼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질벽이 그의 손가락을 바득 물었다. 참을수록 더 많은 양의 물이 새어 나왔다. 내가 거친 신음을 토해 내자, 재현이 입술로 내 입을 막아 버렸다.
“쉿… 다 들리겠다.”
여유롭게 말하는 그를 때려 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화끈거리는 질 속을 헤집는 손가락으로 인해 내 충동과 이성은 점점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손가락 대신 더 크고 단단한 페니스가 들어왔으면 하는 욕망이 날 덮쳐눌렀다.
짧고 가는 손가락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으음… 하아….”
질 내부가 잘게 진동을 했다. 재현은 내 구멍에서 빼낸 손가락을 빨았다. 애액이 잔뜩 묻은 그 손가락을.
“오빠, 그만해, 이제. 응?”
그러나 재현은 그만두기는커녕 내 눈앞에 거대하게 발기한 물건을 꺼내 보였다. 성기는 내 눈앞에서 몸체를 바짝 세우고 흔들렸다. 내가 놀랄 사이도 없이 내 머리를 눌러 입 속으로 팔딱거리는 성기를 물렸다. 지상은 내 등 뒤쪽에 있어 혹시 눈을 뜨더라도 우리가 뭘 하는지 곧바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유추는 가능했다.
입에서 살덩이를 뱉어 내려고 해봤지만, 머리를 누르는 힘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했다. 목구멍 안쪽까지 깊이 들어온 부피감에 질식할 것만 같다.
“저 자식 완전히 취해서 뻗었으니까 걱정 말고 빨아.”
나는 페니스를 입에 문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더 큰 자극이 되었을 뿐.
재현이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내 입 안으로 페니스를 쳐올렸다. 타액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너한테 딸기 냄새난다.”
재현이 내 입에 딸기 하나를 넣었다. 뭉그러지며 즙이 한가득 입 안에 퍼졌고, 절반은 턱밑으로 흘러내렸다. 딸기가 뭉그러진 입 안으로 그가 혀를 밀어 넣었다. 내 입에서 달콤한 즙만 쪽쪽 빨아서 가져갔다. 추릅추릅 소리가 거실에 음란하게 울려 퍼졌다.
밀쳐내는 나와 더욱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키스를 퍼붓는 재현 사이의 실랑이가 한참 계속됐다. 1분이 10분 같았다. 친구가 자고 있는 여기서 이러는 재현이 원망스러웠다.
“진짜 미치게 달콤하다, 너. 하던 거 마저 계속해.”
딸기 향이 가득 퍼진 입술과 혀로 다시 페니스를 빨았다. 아무리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쭙쭙 소리가 났다. 핑크빛 딸깃물이 재현의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재현이 날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가 침대 위에 날 눕혔다. 순식간에 바지가 벗겨지고 내 다리는 접혀서 하늘로 향했다. 방 안에 은은하게 퍼진 불빛 아래 또다시 내 음부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쾌락에의 동경으로 까맣게 물들었다. 나는 다리를 움츠리며 반항했다.
“하지 말라고. 지상 오빠 밖에 있는데 이러면…!”
“그러니까 누가 다른 남자한테 실실 웃으며 애교 부리랬어.”
“그, 그건…!”
넓적한 혓바닥이 음부 전체를 쓸어 올렸다. 다리와 엉덩이가 파들파들 떨렸다. 밖에 다른 남자, 그것도 재현의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날 더 흥분시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이미 흥건하게 흘러넘친 애액을 핥아내며 재현이 또다시 질책했다.
“아무한테나 다정하게 굴고, 웃으며 장난치고, 그럼 돼, 안 돼?”
마치 유치원생을 교육시키고 있는 듯한 말투. 어렸을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재현은 날 교육했다. 사탕 준다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두 번 세 번 주위를 확인해라. 남자들은 다 늑대니까 가까이하지도 말고, 친하게 지내지 마라.
“대답 안 해? 돼, 안 돼?”
도톰하게 솟아오른 음핵을 쭙 빨아들이며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아, 안 돼….”
맛있게 빨아 먹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방 안에 가득 울리고, 밖에까지 다 들릴 것만 같았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붙잡은 나는 아득하게 멀어지는 정신을 챙기려 애를 썼다. 그 와중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참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음부 전체가, 특히 질 내부의 벽이 요동을 치며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빠… 제발….”
애원이 잇새로 흩어진다.
“지상이 저 새끼가 너 귀엽다고 할 때 열 받아 돌아가실 뻔했어. 남자들 앞에서 술 마시지 마. 이건 마지막 경고야.”
“으응…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뭘 그만해.”
“지상 오빠 깨면 어떡해?”
“곯아떨어졌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누가 업어 가도 몰라.”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큼 빨았다고 생각했을 때에야 재현은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로 여기서 지금 하려는 모양이다. 저항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몸을 뒤로 물렸고, 재현은 내 엉덩이를 잡아 쉽게 날 끌어다 붙였다.
“여기서 할까, 밖에서 할까. 지상이 보는 데서 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하게 굴어야지.”
협박을 참 우아하게도 했다. 정말이지 말 안 들으면 진짜로 밖에서 할 기세였다.
“오빠, 미워.”
나는 고작 이런 말로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질질 싸면서 하지 말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 아냐?”
귀두를 음순 사이에 비비면서 그가 느른하게 물었다. 토마토처럼 빨개진 얼굴을 옆으로 돌려 그의 질문을 모른 척했다.
“그래, 그렇게 나한테만 귀여워야지.”
그가 날 놀리기라도 하듯 단숨에 페니스를 찔러 넣었다. 다 들어왔나 싶게 꽉 찼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둥은 점점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완벽하게 몸이 맞물릴 때의 그 엄청난 만족감. 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아래쪽에 두 몸이 퍼즐처럼 맞춰진 느낌이 더 선명했다.
조금 전까지 하지 말라고 울부짖었던 게 민망할 정도로 거대한 쾌감이 빙산의 일각만을 드러낸 채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상이 곯아떨어졌다고 했지만, 언제든 깨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더욱더 내 몸을 민감하게 만들었다.
“흥분하셨어, 우리 꼬맹이. 너무 조이지 마. 참기 힘들어.”
내 몸은 저절로 움직였다. 페니스가 질벽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으면 좋겠는 그 느낌 그대로 엉덩이가 움찔거린다. 재현은 그러는 나를 느른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오, 오빠….”
“왜.”
“해줘.”
“뭘?”
“움직여 줘.”
쾌락에의 열망으로 반쯤 정신을 버린 나는 어느새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을까. 내가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성에 차지 않았다. 쾌감에 한계가 있었다. 그가 내게 키스하며 빠른 속도로 허리를 털었다. 사무칠 듯 강렬한 희열이 빠르게 몸을 휘감았다.
나는 밖에 누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신음을 흘렸다. 그 신음은 재현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재현의 몸은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고. 우리는 서로의 몸을 탐하며 정신없이 섹스에 몰입했다. 하루 종일 섹스를 하고도 모자란 것처럼.
그와의 섹스는 단순한 만족 그 이상의 절정을 선물했다. 우리는 함께 오르가슴을 맞이했다. 가슴이 뜨겁게 차오른다.
***
뉴질랜드에서의 CF 촬영은 5박 6일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출발, 테카포 호수, 푸카키 호수와 마운트 쿡을 거쳐 퀸즈타운,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클랜드로 가는 일정.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었다.
5성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깨끗한 숙소여서 하룻밤 자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어딜 가든 항공기의 비즈니스 클래스만 타던 나는 처음으로 이코노믹 클래스에 앉아야 했고, 방도 혼자가 아니라 다른 직원과 같이 써야 했으나, 큰 불만은 없었다. 다들 그러고 사는데 나라고 못 할 게 없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같이 방을 쓰던 직원은 생각이 없다고 해서 혼자 내려갔더니 잠시 후에 예진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앞으로 와 앉았다. 이른 시각인데도 풀 메이크업에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민낯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나와 비교가 되니 다른 자리로 가 주었으면 싶었다. 그녀는 샐러드 한 접시와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 물에 챙겨 온 티백을 우리며 예진이 입을 열었다.
“일찍 왔네요. 그때 재현 씨랑 자리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게 됐네요.”
“아, 네….”
“난 정말 재현 씨랑 다시 잘해 보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냉정한 사람이라 한 번 마음이 떠나면 돌이키기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난 미련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포크로 샐러드를 뒤적이면서 듣기만 했다. 그녀의 앞에서는 표정도, 말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현이 했던 경고 때문인지 정말로 그녀가 하는 모든 언행들이 연기로만 보였다.
“요즘은 재이 씨가 제일 부러워요. 재현 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잖아요.”
나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전 여동생일 뿐인걸요.”
“그래도요. 아마 민재현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여자가 재이 씨 아닐까요? 재현 씨가 결혼해도 그 마음은 변함없을지 모르죠.”
여동생을 사랑하는 남자라니. 그런 남자가 여자들에게 곱게 보일 리 없다. 물론 예진에게도 그럴 것이고. 다만 날 질투하는 게 몹시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겠지. 다른 여자도 아닌 여동생을 연적으로 생각한다는 건 꽤나 불쾌한 일일 테니.
“그날 재현 씨가 그러더군요.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예진도 샐러드를 뒤적이며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예진을 떼어 내기 위해 댄 재현의 핑계였을 것이다. 나는 대답할 말을 열심히 고민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그 여자 누군지 알아요? 만나 본 적 있어요?”
“아뇨… 나는 잘….”
“오빠가 사랑하는 여자라는데, 여동생이 그걸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오빠는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는 사람 소개해 준 적도 없는걸요.”
“그럼 재현 씨가 날 거절하려고 지어낸 말일 수도 있겠네요.”
“…글쎄요.”
예진의 얼굴에 초조한 빛이 스쳤다.
“그래도 재이 씨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재현 씨가 만난다는 여자가 정말 있는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나한테 꼭 좀 얘기해 줘요.”
나는 하얗게 질리는 내 얼굴을 감추기 위해 커피를 여러 모금 삼켰다. 예진의 말투는 그 여자를 알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떼어 놓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이 정도 되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예진 씨는 우리 오빠 어디가 그렇게 좋으세요? 일밖에 모르는 워크홀릭에다 매정하고 차가운 사람인데.”
“재이 씨는 아직 사회를 안 겪어 봐서 몰라요. 민재현 같은 남자가 얼마나 희귀한 보석인지를.”
“보석이요?”
“이 업계에 있다 보면 별의별 남자를 다 만나죠. 돈이나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치졸해질 수 있는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그들은 돈만 주면 내 몸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죠. 내 마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요. 그저 날 이용할 뿐.”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저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는 예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상류층 남자 중에 유일한 예외가 재현 씨예요. 그 남자 정도 되면 여자를 돈 주고 살 필요도 없겠지만요.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니까. 원하면 어떤 여자든 가질 수 있으니까.”
예진의 눈에는 섣불리 비난할 수 없는 짙은 동경이 담겼다. 민재현이라는 남자를 향한, 그가 속한 세계를 향한. 그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외면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왔다.
재현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한국과의 시차는 네 시간. 지금쯤 열심히 일하고 있겠네. 지난 일주일 나는 오피스텔이 아닌 집에서 출퇴근했다. 마침 생리가 시작된 건 적당한 핑계가 되어 주었다.
지상 어머니가 했던 말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어쩐지 재현과 둘이서만 사는 게 껄끄럽게 느껴졌다. 입양된 여동생과 같이 지내는 오빠. 어떤 이들에게는 충분히 험담 거리가 될 수 있는 문제니까. 거기에 내 죄책감까지 더해지면 더 큰 가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까부터 울리더라. 안 받고 뭐 해?”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며 나온 직원이 내 휴대폰을 가리켰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 왜 전화 안 받아?
“아침 먹고 방금 돌아왔어.”
- 내일 오후에 퀸즈타운에 도착할 거야.
“갑자기 왜?”
나는 옆에서 듣고 있는 직원에게 어떤 단서가 될 만한 얘기를 하지 않기 위해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아직은 국내 사업부 차장, 민재현이 내 오빠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몰랐으면 했다.
- 본부장님 급한 일이 생기셔서 내가 대신 가게 됐어. 일정 끝나면 하루 더 있다가 올 거야. 네 비행기 표 스케줄도 맞춰서 변경해 놓을 테니, 그리 알아.
그 말은 우리 둘이서 하루 정도, 남의 눈치 안 보고 같이 지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빠가 온다는 사실이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러웠다. 예진이 있어서일까.
첫날은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 주로 실내 촬영이 이루어졌다. 예진이 밥을 먹고,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국적인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컷 등을 찍는 촬영이 주를 이루었다. CF는 총 세 편의 시리즈로 방영될 예정이었다.
<성공>, <휴식>, <질주>.
뉴질랜드 말고도 한 차례의 해외 로케 촬영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둘째 날에는 날씨가 화창해 본격적인 야외 촬영에 들어갔다. 1월의 뉴질랜드는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쯤 되는 여행 최적기라 관광객이 많았다.
촬영 팀은 아침 일찍 출발해 테카포 호수로 향했다.
긴 시간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 낸 테카포는 해의 위치에 따라 물빛이 달라진다.
에메랄드빛으로 보였다가 스카이블루로 변하고, 짙은 청록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경관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촬영 팀은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는 조그마한 카페가 있었는데,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먼저 와 산 아래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테카포 호수 다음은 푸카키 호수와 마운트 쿡. 역시 빙하가 녹아 흘러들어 만들어진 푸카키 호수는 눈이 시리게 파란빛이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에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빙하호가 유독 이렇게 파란 이유는 빙하에서 나온 극도로 미세한 바위 입자 때문이란다.
푸카키에는 유명한 연어 사시미 식당이 있어 다들 거기서 점심을 먹으려고 기다렸다. 예진이 통 크게 스태프들에게 연어를 대접해 누군가 ‘할렐루야’를 외쳤다. 푸카키 호수를 지나면 마운트 쿡이 나오는데, 여기 조성되어 있는 ‘후커밸리’에서 약 세 시간의 트래킹을 할 예정이다. 트래킹을 마치면 캠핑장에서 예진이 친구들과 캠핑하는 장면을 찍고,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된다.
고된 촬영 일정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의 대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시원한 바람, 화창한 날씨로 인해 즐거운 분위기였다. 게다가 예진이 촬영에 적극 협조할 뿐 아니라, PD가 원하는 바를 바로바로 캐치해 표현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모두 그녀가 최고의 모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야간 캠핑 장면까지 촬영을 마치고 푸카키 호수 근처에 잡은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재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퀸즈타운에 지금쯤 도착했으려나. 뜻밖에도 재현은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주차장이라고 했다.
“주차장으로 잠깐 나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카디건을 챙겨 입고 건물 뒤쪽 주차장으로 나가니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가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재현이 머리를 뒤로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잘난 얼굴을 보니 심장이 주책없이 뛰기 시작한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를 오빠로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
“퀸즈타운에서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여기 방을 잡아 놨대서 왔어.”
재현이 눈을 뜨고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기까지 운전하느라 피곤했겠네. 세 시간 걸린다고 들었는데.”
“너 보러 온다고 피곤한 줄도 모르겠던데.”
내가 미소를 짓자, 재현이 내 머리를 끌어당겨 키스를 했다. 갑작스러운 키스라 당황스러우면서도 가슴속까지 찌릿해지는 전율이 일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까지 흘리며 키스에 몰입했다. 그의 입 안에 혀를 밀어 넣자, 혀가 세차게 빨렸고, 내 다리 사이에서는 즉각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산뜻한 스킨 향과 축축한 혀의 감촉. 굶주린 듯 게걸스러운 키스는 더욱 내 흥분을 증가시켰다.
“얼굴만 잠깐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그가 키스를 풀어내고 날 끌어다 무릎 위에 앉히려고 했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내며 속삭였다.
“여기선 안 돼. 직원들 지나다녀. 담배 피우러 나온단 말이야.”
재현은 차에 시동을 걸고 후진시켰다. 그러고는 호텔 주차장을 벗어나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끌어다 댔다. 사방이 깜깜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만 무심하게 반짝였다. 차에서 내린 재현이 나를 뒷좌석으로 옮겨 타게 하더니 다짜고짜 시트에 눕히고 바지를 벗겼다.
“오빠, 왜 이래. 정말 여기서 하려고?”
나는 내려가는 바지를 잡아 올리며 사색이 되었다.
“빨리 끝내고 싶으면 협조해야지.”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반항의 여지는 없었다. 바지와 팬티까지 벗긴 재현은 재킷을 벗고,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틈새를 가르고 들어오는 축축한 혀의 느낌.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나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쾌감을 견뎌 내야 했다. 재현이 내 음부를 빠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걸 맛보는 듯 음란한 소리였다. 쪽쪽 소리가 날 때마다 내 엉덩이는 덩달아 들썩였고, 애액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혀로 갈라진 틈을 길게 쓸어 올릴 때마다 조금씩 증폭되던 쾌감은 어느 순간 폭발 직전까지 차올랐고, 입술 사이로 음핵이 흡입당하자 기어이 참았던 희열이 터져 버렸다. 전신이 파르르 떨리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탈색된 것만 같은 기분.
내가 1차로 절정을 맞이한 걸 확인한 재현은 그제야 바지를 벗고, 거칠게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아래를 꽉 채우는 거대한 이물감에 질벽이 꽉 오므라들었다. 강한 만족감이 깃든 재현의 거친 호흡이 들렸다.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그가 내게 키스했다.
진득하게 밀고 들어오는 느낌. 잠시 헤어졌다 다시 하나가 된 충족감. 섹스라는 행위 자체보다 재현과 이렇게 몸을 맞대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비록 정해진 미래는 없을지라도. 우리의 사랑이 어느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를 놓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허리에 다리를 둘렀다. 최대한 그에게 밀착되고 싶어 그를 가득 껴안았다. 서로가 서로를 탐하며 함께 절정에 오를 때의 행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가 깨끗하게 뒤처리를 해주었지만, 내 얼굴은 평소보다 달아오른 상태였고, 잠옷도 약간 구겨졌다.
주차장에 다시 돌아와 차를 주차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뜻밖에 예진과 마주쳤다. 예진의 시선은 나와 재현을 번갈아 훑으며 의구심을 띠었다. 나는 괜히 그녀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인 것 같아 민망했다. 몸 어딘가에 재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재현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지만, 원단이 워낙 좋아 그런가 조금 전 격렬했던 정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재현 씨,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예진이 다가오며 물었다.
“본부장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가 대신 온 겁니다.”
“뉴질랜드에서 만나니 더 반갑네요. 재이 씨 만나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아마도 내 착각이겠죠?”
“공적인 일에 개인사 끌어들이는 취미 없습니다.”
“네, 그러시겠죠.”
말을 하는 동안에도 예진의 시선은 내내 날 향해 있었다. 아무래도 발그레하게 물든 내 뺨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재현의 도착 시간에 맞춰 내려온 PD가 재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PD가 재현을 방으로 안내하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조식당. 자연스레 예진과 재현, PD가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고, 나는 다른 직원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우리 차장님이랑 예진 씨 비주얼로만 보면 참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긴 하죠. 우리 차장님도 어디 가서 빠지는 외모는 아니니까요.”
“소문에 의하면 저 두 사람 사귀었던 적도 있다던데.”
“정말요? 그거 진짜면 대박이겠다.”
“예진 씨가 차장님 쳐다보는 눈빛 좀 남다르지 않아요? 뭐랄까, 좀 애틋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샐러드를 맛도 모른 채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예진이 재현과 함께 거론되는 말만 들어도 불쾌했다.
“내일 예진 씨 생일이래요. 그래서 회비 좀 걷어서 생일 파티 해준다는데, 다들 불만 없죠?”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첫날을 제외하곤 날씨가 좋아 순조로운 여정이 계속되었다. 덕분에 예진의 생일 파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특히 재현의 참석으로 여직원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도착한 날, 차에서의 짤막한 해후 뒤로 재현은 특별히 내게 알은척을 하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촬영장에도 한 시간 정도 모습을 보이는 게 전부였다. 여기까지 와서도 해야 할 일은 많은 모양이었다.
예진의 생일 파티.
“제 생일까지 챙겨 주신 여러분들의 다정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정말 감사하고, 남은 일정도 잘 마무리되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진이 활짝 웃는 얼굴로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생일 기념으로 민 차장님께 소원이 한 가지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와인을 마시며 가만히 앉아 있는 재현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예진 씨 소원이라면 당연히 들어주시겠죠. 안 그렇습니까, 차장님?”
PD의 말에 재현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춤 한 번만 춰요.”
마침 바비큐 가든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주시했다. 조명 아래 선 키가 훤칠하고 몸매가 좋은 두 남녀의 모습은 영화 속 장면처럼 근사했지만, 내 마음속은 질투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예진은 재현의 목에 팔을 두르고 최대한 몸을 밀착시켰다. 재현은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안았고. 예진이 싱긋 웃으며 뭐라고 속삭이자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진에게 아무 감정 없는 재현을 잘 알고 있다 해도,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눈은 선망 그 자체였다. 저들의 눈에 비친 재현과 예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일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저 아웃사이더였고,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나도 모르게 와인을 몇 잔 마시고, 파티장을 나왔다. 더 이상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호텔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여서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지만,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해가 지면 전부 집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지만, 곧 따라잡히고 말았다.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에 기겁하여 고개를 드니 재현이었다. 밀려드는 안도감에 나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 밤중에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면 안 되지.”
“그렇다고 오빠까지 파티장을 나와 버리면 어떡해?”
“그게 걱정됐으면 말도 없이 혼자 나오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질투가 났어?”
그가 설핏 웃으며 물었다. 그러고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재현은 한 손에 담배를 들고, 한 손으론 내 어깨를 안은 채 걷기 시작했다.
“우리 떨어져서 걷자. 누가 보면 어떻게 해.”
“볼 테면 보라지.”
그는 한술 더 떠 내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나는 혹시 누가 봤을까 봐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여행객들 일부가 반대편 보도로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출렁이던 마음이 재현이 곁에 온 순간 진정되었다.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만큼은 예진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니까.
우리는 호텔까지 말없이 걸었다. 이 행복한 순간이 끝나면 어떤 폭풍이 몰아쳐 순식간에 집어삼켜질지 예상도 못 한 채. 촬영 일정이 끝나고 예진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친구가 있어 하루 더 머물다 가겠다고 둘러댔고, 재현은 일을 핑계 대고 뒤에 남았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 둘은 얼굴도 잘 모르는 까마득한 상사와 부하 직원일 뿐이었다.
재현은 운전기사가 딸린 차를 불러 짐을 싣고 오클랜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 마을로 나를 데려갔다. 푸른 잔디 정원이 펼쳐진 아름다운 별장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여긴 어디야?”
“영국에 있을 때 만난 분이 오늘 하루 쓰라고 빌려주셨어.”
“정말? 고마우신 분이네. 이렇게 좋은 별장도 빌려주시고.”
“일종의 셰어 개념이야. 회원들끼리 자신이 가진 전 세계에 있는 별장을 나눠 쓰는 거지.”
별장에는 수영장과 바비큐 시설이 딸려 있었다. 관리인이 나와 두 사람의 짐을 들여 주고, 집과 수영장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재현이 미리 연락을 해둔 덕분인지 냉장고에는 이틀 동안 먹을 음식들이 가득 쟁여 있었다.
태양이 중천에서 강한 빛을 내뿜는 시간.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차가운 물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모든 설명을 마친 관리인이 떠나고, 재현은 한국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정원을 서성였다.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배워 물에서는 자신 있었다. 25m 길이를 네 번 왔다 갔다 한 후 물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팔딱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얼굴에서 물기를 털어 내고, 재현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오빠, 진짜 시원해. 들어와.”
통화를 끝낸 재현이 파란 셔츠 차림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수영장가에 무릎 한쪽을 구부리며 앉았다. 햇살이 그의 유려한 콧잔등을 타고 굴러 내렸다. 나는 그에게 홀린 것처럼 멍하니 그를 보며, 그가 내민 손에 내 물기 젖은 손을 올렸다.
강렬한 햇빛 아래서 더욱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재현. 그가 있어 지금 이 순간이 물비늘처럼 반짝거리는 듯했다. 시간이 여기서 멈췄으면. 앞뒤를 잴 필요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이 상태 그대로 영원히.
“재이야.”
은근히 불러 주는 이름에도 내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응?”
“우리 뉴질랜드에서 살까?”
“오빠랑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
재현이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두려운 걸까. 우리의 미래가. 우리를 반기지 않을 가족과 친구들. 그래서 사랑의 도피를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사랑 하나만 보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에 재현은 야망이 넘치는 남자였다. 워크홀릭답게 일 없이는 제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재현은 일어나더니 그 자리에서 셔츠와 바지를 벗었다. 치골을 드러낸 꽉 끼는 팬티 위로 불룩 솟아오른 그의 페니스. 그가 날 다리 사이에 끼우고 수영장 물가에 앉더니 팬티를 내려 내 눈앞에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오른 물건을 꺼냈다.
“빨아 봐. 너무 오래 참았더니 터질 것 같으니까.”
“여기 CCTV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밤에만 작동되니까, 걱정 말고.”
“확실한 거야?”
“관리인이 작동법 설명해 주고 갔어.”
재현은 내 머리를 페니스에 가까이 갖다 대며 재촉을 했다. 커다랗고 단단한 기둥이 눈앞에서 요동을 쳤다. 페니스의 밑동을 잡고 귀두 부분을 입에 넣자, 재현의 입에서는 나른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혀와 입술로 천천히, 부드럽게 핥고, 침을 묻혀 가며 쪽쪽 소리 나게 빨았다.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듯 혀를 내밀어 아래에서부터 위로 길게 쓸어 올리다가 목 안쪽까지 깊게 삽입하기도 하고, 선단만 흡입하듯 쭉쭉 빨아들이기도 했다.
재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하네. 실력이 많이 늘었어.”
나는 혀를 내밀어 귀두를 할짝거렸다. 이제는 그의 페니스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손 안에서 물고기처럼 팔딱이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애무하는 동안 격렬하게 나오는 반응이 즐거웠다. 한참 열심히 빨던 나는 도중에 페니스를 내려놓고, 도망쳤다.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반대편으로 도망치다가 재현에게 붙잡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깔깔거렸고, 재현은 내게 키스했다.
그렇게 수영을 하다 붙잡힌 나는 선베드에 눕혀졌다. 수영복 팬티를 한쪽으로 밀어 올린 그가 물과 애액에 축축하게 젖은 내 음부를 빨아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물고 핥으며 남은 휴가를 즐겼다. 행복한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다.
***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생각에 잠긴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던 예진은 머리를 뒤로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한 남자.
민재현. 그리고 그의 여동생 민재이. 재현이 푸카키의 호텔에 오던 날 호텔 로비로 나란히 들어서던 두 사람. 어딘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던 재이의 얼굴.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들떠 있는 것 같던 재현.
아무리 지나친 상상력의 발로라고 넘겨보아도 찝찝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수 없는 저들만의 공간이 따로 구획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남매 사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고 야릇한 분위기. 그게 뭔지 꼬집어 말할 수 없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두 사람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 사람들 앞에 까발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그러나 재현은 치밀한 남자였다. 예진에게 빈틈을 보일 리 만무했다. 너무나 완벽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다.
물론 재이는 재현과는 좀 다르다. 생일 파티에 예진과 재현이 춤을 추었을 때, 재이는 분명 언짢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동요하는 얼굴로 와인을 마신 후, 파티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춤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재현도 그녀를 뒤따르듯 자리를 벗어났다.
아무리 여동생을 아끼는 재현이라지만 지나친 반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뭘까.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저보다는 여동생을 더 아끼는 재현의 태도에 서운하기는 했어도 이 정도로 기분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예전 재현의 마음은 더 순수했었다.
예진이 아는 재현은 사회적 상식선 밖의 일을 거침없이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그의 성격상 완벽하지 않은 일을, 완벽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그녀의 의심에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재현과 재이는 다른 스태프들과 떨어져 오클랜드에 하루 더 남겠다고 했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뭔가 꺼림칙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찾게 되었다. 친구들과 가끔 모이는 클럽에서 재현의 친구, 지상을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요즘 잘나가던데요.”
스스럼없는 태도로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는 지상은 언제 만나도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미국에 갔다 들었는데, 돌아왔나 보네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죠.”
“저 요즘 재현 씨 자동차 회사 모델로 일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모르고 계셨나 봐요. 재현 씨가 이젠 제 얘기 잘 안 하죠?”
“워낙 이별 끝이 안 좋았으니까요.”
예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얘기해요.”
“재현 씨 여동생 말이에요. 어렸을 때 많이 아팠나요?”
“재이가 많이 아팠냐고요? 아뇨.”
“동생에 대한 재현 씨 관심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것 같아서요. 우리 사귈 때도 저보다는 항상 여동생이 먼저였고, 그것 때문에 서운한 적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많이 아팠고, 그게 트라우마가 됐나 싶어서요.”
“재현이 진짜 동생 재이는 일곱 살 때 죽었어요. 지금 재이는 그때 입양되어 왔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긴데, 예진 씨는 몰랐어요?”
예진은 충격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허리와 어깨에 바싹 힘을 주었다.
“재현 씨가 그런 얘기는… 안 했거든요.”
“재이 어머니가 당시 충격을 많이 받으셔서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어요.”
“아, 그랬군요. 그래서 특별히 여동생을 더 아끼는 거였네요.”
목소리가 떨려 나올까 조심하며 예진은 숨을 삼켰다. 이제야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여동생을 지나치게 아끼는 재현의 태도와 저를 경계하는 듯한 재이의 태도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 뭔가가 있다. 감정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어쩌면 지금의 상황을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맞출 수도 있지 않을까. 예진은 계산을 하며 지상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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