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9)

#6.

호텔 일식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고 싶다는 재이의 부탁. 재현은 원래의 약속을 취소하고 엠파이어 호텔 2층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예약한 룸의 미닫이문을 열자, 창가 자리에 앉은 재이의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재현의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는 이내 재이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본 순간 지워졌다. 그들이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요 며칠 재이의 이상한 태도가 조예진 때문이었을까. 재이는 지난 사나흘 오피스텔로 오지 않고 굳이 집에 가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루 종일 근무하느라 피곤하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 깊은 고민을 감춰 두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예진에 대한 얘기는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 뒀으니, 혼자서만 끙끙 앓았을 게 뻔하다. 이 자리는 분명 조예진이 만들었을 테고.

“지금 이 상황은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이리 와서 앉아, 오빠. 예진… 씨가 오빠한테 꼭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저녁 같이 먹자고 했어.”

재현의 눈치를 보며 재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분명 할 얘기 없다고 말했을 텐데. 이런 식으로 꼭 재이까지 이용을 했어야 하나?”

재이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 재현의 등 뒤에 대고 예진이 물었다.

“잠깐이면 돼요. 우리 한 번쯤은 풀어야 할 매듭이 남아 있지 않아요?”

“오빠, 난 괜찮으니까 얘기하고 와. 아직 정리할 게 남아 있다면 지금 깨끗이 털고 미련 두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

미련 같은 거 없다고 말하려다 재현은 입을 다물었다. 애써 감추고 있지만 몹시 복잡한 표정의 재이를 보니 이번 기회에 예진과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자리가 무산되면 예진은 언제라도 다른 방법을 강구할 테고, 그녀의 방법이 어떤 식으로든 재이에게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니. 예진은 제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누구라도 이용하려 들 테니까.

“차에 가서 기다려. 얘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아니야, 난 괜찮아. 먼저 집에 갈게.”

“기다리라고 했어.”

재이는 끝내 그러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고집쟁이. 아니다 싶으면 빈말로라도 수긍하는 법이 없다. 재현은 테이블 아래가 파인 자리로 다리를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고 얼음통에 넣은 사케와 술잔, 싱싱한 해산물이 종류별로 먹기 좋게 썰린 전채 접시가 나왔다. 음식은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재현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예진이 잔 두 개에 사케를 따랐다. 길고 진한 속눈썹이 살며시 내려앉은 자태는 어떤 남자라도 반할 만큼 매혹적이었고, 재현도 처음엔 그 모습에 반했었다.

잘 가꾼 피부가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물이 올라 있지만, 그녀의 모습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헤어스타일, 화장법, 액세서리, 가슴이 깊게 파인 까만 레이스 원피스까지.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조예진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아름다워야만 했다. 굴욕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빈틈이 있어서도 안 된다.

“재현 씨 동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변함없이 그대로네요.”

“…….”

“예전에도 그랬잖아요. 나하고 데이트 약속은 잊어도 동생이랑 영화 보기로 한 약속은 칼같이 지켰죠. 내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떠냐는 한마디면 끝이었는데, 재이 씨가 아프다고 하면 열 일 제쳐 놓고 달려가고.”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

“그냥, 새삼스럽게 기억이 떠올라서요. 재현 씨한테 서운했던 것들, 다른 여자도 아닌 여동생을 질투하는 내가 한심하고 못나 보였던 그때의 기억들이요.”

예진은 가라앉은 표정으로 술을 비웠다. 재현은 지금의 날카로운 신경을 술로 덤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도 예진만큼이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계산된 바가 아니라면 패배하거나, 물러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지독한 완벽주의자.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가 예진보다 더 심각한지도 모른다.

“재현 씨처럼 냉정하고 무심한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자상하고 다정할 수도 있구나, 신기하면서도 씁쓸했어요. 그 관심을 나한테 반이라도 나눠 주었다면 우린 어쩌면 헤어지지 않고 아직도 잘 사귀고 있지 않았을까.”

재현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그게 아닐 텐데.”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내가 재현 씨를 사랑했던 것만큼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는 조예진 씨는 날 너무나 사랑해서 다른 남자로 갈아탔나 봅니다.”

재현의 조롱에 예진의 눈 끝이 파르르 날이 섰다.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고, 그 표정조차도 눈에 거슬려 재현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잘 꾸며진 정원이 조명을 받아 고즈넉했다.

“박 감독님께 날 여주인공으로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잖아요. 재현 씨 아버지, 민 사장님께 한마디 언질만 넣어 줬어도 나는 그 역을 맡았겠죠. 그렇게도 원하던, 내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당신이나 당신 아버지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 부탁 하나를 들어주지 않았잖아요. 민재현 씨에게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됐던 거예요. 그리고 배역을 맡지 못한 것보다 재현 씨에게 내 존재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은 저마다 차이가 있다. 각자 자기의 관점에서 편리할 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예진이나 재현도 다를 바는 없었다. 사람들이 예진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그녀를 안타까워할까.

재현은 신경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이 논쟁은 분명 지난번에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예진은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었다.

“일단, 박 감독님의 영화는 이미 여주인공이 정해져 있었어. 내가 아버지에게 압력을 넣어 달라고 했다면 그 배우는 졸지에 제 배역을 잃었겠지. 그 사실을 무시하고 내가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더라도 아버진 들어주지 않았을 거야. 내가 연예계 인사들과 얽히는 것을 몹시 싫어하시거든.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어. 그 영화가 아니더라도 기회는 또 있었을 테니까.”

재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난 그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던 거예요. 다른 영화가 아니라. 박 감독님의 영화가 필요했다고요.”

“그래서 유부남하고 놀아난 건가?”

“……?”

예진은 깜짝 놀란 표정을 뒤늦게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가 아무리 연기로 제 속을 감추려 해도 재현은 그녀의 민낯을 잘 알았다.

“내가 그 사실을 몰랐을 거 같나? 유부남이었던 영화 제작자를 유혹해서 그 역을 차지하려 했지만, 결국 그마저도 실패였지. 그래서 그 남자하고도 헤어졌을 테고.”

“그 사람과는 재현 씨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이혼을 앞두고 있었어요. 몇 번 술자리에서 만나다 보니, 고민도 들어주고 얘기가 잘 통해서….”

“그 말은 그 남자 좆을 빨아 준 적이 없다는 뜻인가?”

적나라하게 묻는 재현의 눈에는 조소와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끝내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이 없는 여자를 데리고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싶었다. 재현은 영화 제작자와 예진이 별장에서 밀회를 즐긴 증거 사진을 갖고 있었다. 같이 차로 이동해서 들어가는 장면과 다음 날 같이 나오는 장면까지 사람을 시켜서 찍어 오게 했다.

예진이 저를 두고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는 자신의 마지막 미련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그 사실만은 믿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두고두고 짓씹기 위해.

“그 남자가 만든 다음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된 게, 좆을 열심히 빨아 줘서가 아니라고?”

“아니에요, 그런 거. 영화 안 봤어요? 그 역에 저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여태껏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거라, 평론가들도 극찬했던 영화예요.”

“난 그딴 거 관심 없어. 네가 누구 좆을 빨아 주든 이제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러니 이런 식으로 재이 이용해서 나와 뭘 어떻게 해보려는 짓은 그만하지.”

재현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나, 아직도 재현 씨 사랑해요.”

이제는 슬슬 화가 나려 했다. 사랑이라는 말로 자신의 필요를 포장하는 그녀가 가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말세를 울부짖는 21세기여도 말이다.

“그땐 어려서 몰랐어요. 사랑보다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어요. 성공한 후에도 사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재현 씨를 잊을 수가 없었어요.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대로 당신을 영원히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한 번만 기회를 줘요. 우리 좋았잖아요. 나랑 세 번만 만나 봐요. 그 후에도 내게 미련이 없다고 생각되면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게요. 지금도 난 내 자존심 다 던지고 당신 앞에 와 있는 거예요. 한때나마 연인이었던 우리 지난날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부탁이에요.”

정말이지 예진의 연기력은 탁월했다. 영화를 보진 않았어도 그녀의 연기가 평론가의 극찬을 받을 정도라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이 담기고, 눈동자는 애절한 빛을 발하며 상대방의 감성까지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덤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연기에 속고 있는 걸까.

“안타깝지만 그 제안은 거절해야겠군.”

“재현 씨.”

“만나는 사람이 있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운 표정의 그녀에게 재현은 쐐기를 박았다.

“그 여자를 사랑해. 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철면피는 못 돼서 말이야.”

“거짓말.”

“…….”

“민재현이 누군가를 사랑하다니, 그게 말이 돼요?”

“그게 왜 말이 안 되지?”

“당신은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잘난 줄 알잖아. 나르시시스트처럼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는 남자. 몸은 줘도 마음은 안 주는 얼음 같은 남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재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맞다. 민재현이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존재하기는 하네.”

“…….”

“재이 씨.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불 속에도 뛰어들 수 있잖아, 당신.”

예진의 눈동자에 스치는 실망감과 질투,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절망을 못 본 척 뒤로하고, 재현은 룸을 나섰다. 차로 돌아왔지만, 재이는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

나는 두더지를 수십 마리 잡았다. 있는 힘껏 망치로 두더지 머리를 수백 번 내리치고 났더니 나중엔 팔에서 힘이 빠져 망치를 들 힘도 없었다.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두더지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때렸는지도 모르겠다. 재현이었는지, 예진이었는지, 아니면 바보 같은 나 자신이었는지.

나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본 인영이 나중엔 기가 질려 내 허리를 끌고 오락실을 나가려 했다. 걸음을 옮기는 내 눈에 마침 사격 오락기가 보였다. 나는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지만, 내 어리바리한 실력에 맞아 주는 목표물이 별로 없었다. 목표물이 재현으로 보였다가, 예진으로 보였다가 중구난방이었다.

침착한 인영은 목표물을 모두 쏘아 맞히고 고득점을 얻었다.

“그만 가자.”

인영이 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두더지 한 판만 더 할까?”

인영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귓속말을 했다.

“여기 남자들 다 너 힐끔거려.”

그런 시선에 익숙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나였지만, 인영이 불편해하는 것 같으니 그만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따끈한 국물에 소주 한잔 어때?”

오락실을 나서며 묻는 내 말에 인영이 대꾸했다.

“우리 집에 가서 먹을래? 너 좋아하는 참치김치찌개 끓여 줄게.”

“콜.”

나도 사람들 북적거리는 술집보다는 인영이랑 오붓하게 마시는 걸 더 좋아했다. 그녀가 불편해할까 봐 자취하는 원룸에 자주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택시 안에서 인영이 물었다.

“인턴 일은 어때?”

그녀는 내가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친구라서 인영이 좋았다.

어렵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가진 건 별로 없어도 마음만은 풍성한 그녀는 내게 늘 따뜻한 위로였다.

“선배들 말이 다 맞더라고. 정말 일에 치여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일이 많아.”

“그래도 넌 오너 딸이니까 잘해 주겠지.”

“우리 부서 직원들은 아직 내가 누군지 몰라. 알리지 말아 달라고 아버지한테 부탁했거든. 넌 준비 잘 되어 가?”

인영은 3월에 있을 공채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5대 광고 회사 중 하나에 입사하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나는 그녀가 잘해 내리라 믿었다. 머리도 좋고, 근성도 있고, 무엇보다 타고난 재능이 번뜩였다.

과에서는 늘 톱이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며, 각종 공모전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녀의 목표는 최고의 AE(Account Executive)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뭐. 오늘은 잘 될 거라고 자신감 뿜뿜 했다가, 내일은 전부 부질없는 짓인 것만 같고.”

“우리 인영이가 안 붙으면 누가 붙겠어. 자신감을 가져. 넌 그래도 돼.”

나는 인영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애정 결핍의 증상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스킨십을 과도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껴안고, 볼에 뽀뽀하고, 손을 잡고, 팔짱을 낀다. 주로 친한 친구들에게 애정 공세를 퍼부었고, 그중 남자는 재현이 유일했다.

물론 재현은 어렸을 때부터도 좀 어려웠던지라 친구들에게 하는 것만큼 스스럼없이 다가가진 못했다. 나와 반대로 오빠는 스킨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인영이 사는 원룸 근처 편의점에서 나는 바구니에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 소주, 맥주, 라면, 참치, 과자, 시리얼, 액상 커피, 개별 포장된 과일, 과일 통조림 등등.

“뭘 이렇게 많이 사?”

“남은 건 너 먹어.”

“네가 지난번에 두고 간 과자도 그대로 남았거든.”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아. 많이 먹고 힘내.”

우리는 봉투 두 개로 나눠 들고 원룸으로 올라가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인영이 원래 살던 곳은 여기보다 월세도 싸고, 어두컴컴한 동네였다. 그 원룸촌에 도둑이 들었다는 얘길 듣고, 나는 이 동네에 방을 알아본 후 그녀를 이사시켰다. 월세의 절반을 내가 냈지만, 인영에게는 이 집 월세가 워낙 저렴해 다들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인영을 키워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명절과 어버이날, 생신 때 잊지 않고 선물을 보냈다. 인영에게는 각종 기념일을 핑계 삼아 옷, 책, 신발, 가방 같은 선물을 떠안겼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할까 봐 참고 있는 중이다.

원룸은 깔끔했다. 넓고 환한 공간이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었다.

인영이 김치찌개를 끓이는 동안 나는 가방 속에서 진동을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재현이었다.

그에게서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예진과 얘기가 끝났나.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넣고, 나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 가슴이 꽉 막혀 답답한 기분. 숨이 목 어딘가쯤에 걸려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재현의 얼굴을 보고, 그의 품에 안기면 막혔던 길이 뚫릴까. 예진과 마주 앉아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지금쯤 예진은 재현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하지 않았을까. 이 전화가 오늘 밤 집에 못 들어간다는 걸 알리는 전화면 어떡하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은 자꾸만 절망적인 방향으로 쏠리고 있었다.

예진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면 재현은 그녀를 안고, 키스…

아니야. 아닐 거야. 오빠가 날 두고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그걸 알면서도 왜 내 상상력은 자꾸만 비약을 하는 건지….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이 언니한테 속 시원하게 얘기해 봐.”

먹음직스러운 찌개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인영이 말했다.

“무슨 일인데? 뭣 때문에 예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데?”

익숙한 동작으로 소주 뚜껑을 따고, 두 개의 잔에 따른 인영은 건배를 외쳤다.

“우리들의 화려한 청춘을 위하여!”

“그래, 화려한 청춘 좋네.”

쨍그랑, 잔이 부딪치는 소리는 경쾌하다. 나는 말간 액체를 목으로 밀어 넣고, 국물 한 모금 맛보았다.

“이 맛이야.”

이번엔 내가 빈 잔을 채웠다.

“얘기 안 할 거야?”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하소연해야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지 막막했다.

내 첫사랑은 왜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 민재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일까. 수많은 남자들 중 왜 나는 그를 사랑하는 걸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우리 관계는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가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인영아,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누군데.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어떻게 알았어?”

나는 조금 놀란 눈을 들어 친구를 쳐다보았다.

“네 얼굴에 쓰여 있잖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그 표정. 원래 사랑에 빠지면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법이거든.”

사랑이나 남자에 관해서라면 나보다는 인영이 더 해박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대학 4년 동안 두 번의 연애와 두 번의 이별을 했으니까. 내 세상은 분명 핑크빛은 아니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블랙과 화이트의 어느 중간쯤. 그러니까 회색 지대쯤 되려나. 처음엔 흰색에 가깝던 색이 점점 블랙을 향해 짙어 가는 중이다.

“그렇게 힘든 사랑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마음만 다쳐.”

“나도 내 마음을 동전 뒤집듯 뒤집을 수 있다면 좋겠어.”

내 사랑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고, 뒤집을 수도 없다. 재현이 나를 놓지 않는 한, 내가 그를 먼저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너도 나도 잘 알잖아. 그렇다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그렇게 말하는 인영의 어조는 제법 비장했다. 나는 세 번째 잔을 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멈출 수 없다면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겠지. 그 아찔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회생이 불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영이 라면을 끓여 왔다. 찌개와 라면, 소주 한 병을 먹고 나는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버렸다. 졸음이 쏟아졌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래. 그래도 되지?”

“너 아까부터 전화 오는 것 같던데, 왜 안 받아?”

“안 받아도 돼….”

그 말을 끝으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목이 말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내 시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오피스텔 침실 벽에 걸린 벽시계였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분명 어젯밤 인영의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잠이 든 이후의 일은 생각나는 게 없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재현이 누워 있는지 살폈다.

침대에는 나 혼자였다. 재현이 옆에 잠들었던 흔적조차 없다. 침대에 일어나 앉는 순간 머릿속이 울렸다. 숨결에서는 알코올 냄새가 배어 나오고, 옷은 어제 입었던 원피스 차림 그대로였다.

일단 재현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침실을 나와 거실을 보니 재현이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이마에 팔을 얹은 채 반듯이. 잠이 든 건지, 눈만 감고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날 여기 데려다 놓고 예진을 만나러 간 건 아닌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 그다음엔 휴대폰을 확인했다. 인영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 너 일어나면 놀랄까 봐 알려 주는 거야. 어젯밤 네 오빠한테 전화가 왔어. 진동이 계속 울리는데 너 어디 있는지 걱정하는 것 같아서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고 말했어. 그랬더니 널 데리러 오셨더라고. 넌 완전히 뻗어 버려서 깨워도 안 일어나고. 그래서 네 오빠가 너 안고 가셨어.

후우….

기어이 날 데리러 왔었구나.

나는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살금살금 방을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술 냄새가 없어질 때까지 이를 닦고, 가글액으로 입을 헹궜다. 그리고 꽤 긴 샤워를 했다. 꼼꼼히 씻고, 머리를 감고, 오랫동안 따뜻한 물 아래 서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그 물에 씻겨 내려가길 바라면서.

오빠는 왜 날 굳이 여기로 데려왔을까. 그냥 인영이네서 자게 내버려 둬도 되었을 텐데.

재현은 화가 나 있을 게 틀림없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연락조차 없는 내게. 자신의 허락도 없이 예진을 만나게 해놓고,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는 내게.

나는 사실 재현을 마주하기가 겁이 났다. 그에게서 나올 이야기들이, 결심들이, 계획들이 두려웠다. 쉽게 예진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부스러기 한 톨 만큼이라도 그녀에게 마음이 남아 있을까 무서웠다.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잠옷을 입고, 스킨과 로션까지 바르고 나니 더 이상 욕실에서 할 일이 없어졌다. 욕실을 나오자 살짝 열린 거실의 블라인드 틈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재현이 어둑어둑한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내게로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날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처럼.

그는 마른세수를 하더니 벌떡 일어나 옷걸이에 걸린 점퍼를 들고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은 표정과 어깨에서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오빠, 어디… 가?”

그는 대답 없이 나가 버렸다.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그가 사라진 현관문만 바라보았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빠는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재현의 차가운 등을 보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일단,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생각하자.

깊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침잠하는 기분을 애써 다잡으며 집에서 가져다 놓은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점퍼만 걸치고 나간 거면 어디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만, 저녁때까지 돌아오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스럽긴 했다. 나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빠도 어젯밤 날 이렇게 기다렸을까. 나는 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어서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걸지도 몰라. 다른 여자가 아닌 내 생각을 하면서 찾아주길 기다렸던 건지도….

다행히 재현은 두 시간 정도 지나서 돌아왔다. 점퍼를 벗자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셔츠가 보였다. 조깅을 했거나 체육관에 갔다 온 듯싶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VIP 전용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했다. 보통은 거기서 샤워를 하고 회사에 간다. 오늘은 씻지 않고 바로 온 모양이다.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나는 욕실 문 앞에서 서성였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떻게 해야 오빠의 화가 풀릴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건 싫고. 그렇다고 저렇게 화가 난 재현을 내버려 두는 건 상황만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았다.

욕실에서 나온 재현은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 침실 문을 열어 보니 재현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젯밤 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건가 싶어 미안해졌다. 어쨌든 내가 사과를 하는 게 옳았다. 연락도 없이 사라진 건 내 잘못이니까.

나는 침대 이불을 들추고 그의 등 뒤에 누웠다.

“오빠, 미안해.”

“…….”

“내가 잘못했어.”

“…….”

“전화 안 받아서 미안하고… 연락 못 해서, 걱정시켜서 미안해.”

그에게선 어떤 반응도 대꾸도 없다. 너무나 싸늘한 침묵. 뒤에서 그를 껴안고 가슴에서부터 배로 허리로 손을 옮겨 가며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의 맨몸은 근육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손대지 말라고 밀어내지 않는 것에 용기를 얻어 더 아래로 손을 내렸다. 이미 단단하게 발기한 페니스의 끝이 만져진다. 남자들은 원래 아침이면 이렇게 발기가 된다고 재현이 말했기에 나는 당연히 그런 거라고 받아들였다. 바지 위로 기둥을 쓰다듬자 꿈틀거렸다. 바지 속으로 손을 넣으려 하자 재현이 내 손목을 잡고 제지했다.

“할 기분 아냐.”

“난 하고 싶어.”

“…….”

“빨고 싶다고.”

“씨발.”

그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더니 몸을 뒤집어 내 위로 올라왔다. 내 두 손을 잡아 내 머리 위로 짓누르면서. 씩씩거리는 그의 호흡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네 멋대로 전화 안 받고, 연락도 없이 외박하고, 그럴 때는 나랑 끝장낼 생각 아니었어?”

“그런 거 아니야.”

“네 맘대로 조예진이랑 약속 잡아서 만나게 해놓고, 멋대로 삐쳐서는 잠수 타고. 사람 미쳐서 돌아가게 전화도 안 받고.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나 엿 먹이려고 작정한 거야?”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매서운 비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는 한마디면 끝나? 걱정하는 거 말고는 사람을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놓고, 술을 먹고 뻗어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그 여자한테 돌아가길 바라? 내가 그 여자랑 다시 잘 됐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런 짓 해놓고 도망쳤냐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 눈은 분명 여동생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그건 분명 집착이었다. 한 여자를 향한 욕망과 소유욕.

그 대상이 조예진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에 나는 목덜미가 찌르르 울릴 정도로 짜릿함을 느꼈다.

그건 우리가 나눈 어떤 섹스보다 더 큰 쾌감이었다. 온몸의 피가 끓을 정도로. 열이 올랐다. 섹스가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가 내 음부를 빨아 줬으면 좋겠고, 나 또한 그의 페니스를 빨고 싶었다. 재현이 열에 들뜬 눈으로 날 보며 참을 수 없는 오르가슴에 도달하기를 원했다. 그의 눈과 마음에 온통 나로만 가득 찼으면. 나를 향한 욕정만을 품은 채 절정에 올랐으면.

“키스해 줘.”

“…….”

무겁게 내쉬던 그의 호흡이 잠시 정지했다.

“빨고 싶어.”

“하아… 민재이, 너 진짜….”

“오빠 거, 내 입에 넣어 달라고. 먹고 싶다고.”

그의 눈에 갈등이 일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을 앞에 두고 흔들리는 모습조차 섹시했다. 욕정에 잠긴 눈이, 길게 뻗은 코가, 무겁게 숨을 내쉬는 입술이 살아 있는 조각상 같다. 나는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어 저 혼자 꺼덕거리고 있는 페니스를 살살 어루만졌다.

매정하게 내 손을 뿌리치지 않는 걸 위안 삼아 나는 상체를 일으켜 오빠의 바지를 벗겨 내리고 검붉은 기둥을 꺼냈다.

제 주인의 감정까지 오롯이 받아 안은 물건은 분노에 차 잔뜩 힘이 들어갔다. 기둥을 잡았는데도 길들지 않을 것처럼 날뛴다.

나는 고개를 숙여 혀로 귀두를 핥아 올렸다. 재현이 잔뜩 응축된 신음을 내뱉으며 침대 헤드를 붙잡았다. 쿠퍼액을 머금은 구멍 근처를 혀로 살살 문지르며 귀두 전체를 혀로 휘감았다. 본능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오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혀끝에, 손 안에 느껴지는 그의 반응에서 이러면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몇 번 해봤다고 이제는 커다란 기둥이 그리 무섭지도, 흉측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어딜 핥으면 기분이 좋은지, 어떻게 애무해야 흥분하는지 제대로 알고 싶다는 그런 궁금증.

페니스에도 잘생기고, 못생긴 게 있다면 재현의 것은 주인을 닮아 분명 잘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남자의 것은 본 적이 없으니 비교는 못 하지만, 길고 두껍고, 휜 데 없이 반듯하고, 흉터 없이 깨끗한 자태에 자만심이 가득했다.

귀두를 입에 물고만 있는데도 내 은밀한 곳에선 애액이 흥건하게 팬티를 적셨다. 이렇게 화가 났는데도 내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는 재현을 보며 나는 상상 이상으로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둥근 부분을 사탕처럼 빨면서 기둥을 잡은 손은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아… 젠장….”

기둥을 잡은 채 나는 아래서부터 위로 길게 핥아 올리며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내가 빨면서 눈을 맞춰 주는 것을 좋아했다. 페니스를 빠는 내 얼굴을 보면 쾌감이 배로 치솟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내 얼굴을 태워 버릴 듯 뜨거웠다.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 있는데도, 가슴속까지 찌릿하게 만들 정도로 섹시했다.

저 얼굴을 쾌락에 들떠 무너지게 만들고 싶었다. 내게 그럴 파워가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페니스가 막대사탕이라고 상상했다. 쭙 빨아당기고, 혀로 살살 핥으면서 맛을 보면 달콤함이 목구멍을 타고 몸속의 피까지 전해지는 그런 사탕.

그런 생각을 하자 입 안에 타액이 잔뜩 고였다. 단단한 살덩이를 입 안 가득 물었다 빼면서 움직이자 타액이 기둥을 적시고 흘러넘친 액은 실처럼 늘어져 내렸다.

강렬한 자극을 참지 못한 재현은 손으로 내 머리를 붙잡고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마치 내 입이 질 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빠르고 힘있게 박아댔다. 흥분에 못 이겨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귀두만 빼고 전부 빠져나갔다가 뿌리까지 입 안에 박혀 들어올 때는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꾹 참고 견뎌 냈다. 내 입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에는 너무나 깊이 들어와 숨이 막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기침을 했다. 코끝이 시큰하고, 턱은 얼얼했다.

재현이 상체를 숙여 엉망으로 범벅이 된 내 입술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 그의 페니스를 핥던 내 혀를 입 안으로 끌어들여 빨고, 문지르며 거칠게 키스했다.

혀가 뽑혀 나갈 것 같은 고통에 내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고, 내가 우는 것에 재현은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검게 물든 눈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다시는 내 전화 피하지 마. 다시는 날 미치게 하지 마. 알겠어?”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옷 셔츠가 벗겨졌다. 재현은 베개 두 개를 침대 헤드에 겹쳐 놓고 날 거기 기대게 했다. 두 개의 복숭아처럼 솟아오른 내 젖무덤 사이로 재현이 페니스를 끼워 넣었다.

“손으로 잡아.”

나는 시키는 대로 내 가슴을 잡아 가운데로 모았다. 그 사이로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페니스가 드나들었다. 내 피부와 단단한 페니스의 살갗이 마찰하면서 묘한 감각을 일으켰다. 핑크빛 젖꼭지가 단단히 서버렸다.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재현이 입으로 빨아 주었으면 싶었다.

몇 번 비벼서 타액이 점점 마르자, 재현은 내 입에 페니스를 다시 넣어 푹 젖게 만들었다. 가슴 사이에 끼워진 커다란 기둥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곧 내 가슴은 타액으로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꼭 그만큼 재현의 얼굴도 쾌락에 젖어 이지러졌다. 눈썹이 꿈틀거리고 황홀한 감각에 몸을 내맡긴 그는 정액을 내 가슴에 쏟아 내고, 유륜과 젖꼭지 전체에 펴 발랐다.

“빨아.”

하얀 액이 묻어 번들거리는 귀두를 입에 넣고 정액을 핥아 삼켰다. 약간 비릿한 맛이 났지만 역겨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내 몸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재현이 남아 있는 정액을 손으로 밀어 내보냈고, 나는 그걸 입으로 쪽쪽 빨아내 마셨다.

몹시 만족스러운 눈매로 날 내려다보는 재현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입술에 묻은 것까지 혀로 핥았다. 이렇게라도 해서 그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으면 좋겠다. 꽤 많은 양의 정액을 분출하고도 그의 물건은 여전히 발기한 채였다. 그는 언제고 한 번으로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내 얼굴에 얼룩덜룩 남아 있는 눈물을 입술과 혀로 닦아 주었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그러고는 티슈로 가슴에 펴 발라진 정액도 깨끗이 지워 냈다.

재현은 재이의 잠옷 바지와 팬티를 끌어 내리고 다리를 벌려 접어 올렸다. 재이의 음부는 애액으로 흘러넘치다 못해 밑의 시트까지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번질번질한 액이 고인 틈은 유난히 번들거렸다.

구멍은 깊은 삽입을 갈망하며 벌름거렸고, 살포시 고개를 내민 음핵은 단단하게 일어나 그의 손길을 기다렸다.

요망한 몸. 남자를 흥분시켜 잡아먹고, 정신을 잃게 만드는 요사스러운 그곳은 짙은 향으로 그를 유혹한다. 냄새뿐 아니라 생긴 것도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제법 살이 오른 둔덕은 하얗고 매끄럽다. 틈을 벌리면 빨갛게 드러나는 속살은 녹을 것처럼 부드럽고. 구멍은 또 어찌나 좁은지 한번 비집고 들어가려면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그의 페니스를 오물오물 삼키는 것만 봐도 사정감은 턱밑까지 치달았다.

조금 전 재이의 입 속에 남은 정액을 모조리 토해 내고도 처음처럼 발기한 그의 기둥은 또다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재이가 순진한 얼굴로 빨고 싶다고 말했을 때, 재현의 머리꼭지는 돌 것만 같았었다.

어젯밤 수십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을 때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보디가드를 붙여 놓을 생각을 했을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게.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절대 용서하지 않으려 했다. 쬐끄만 게 사람을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재현은 매끈한 다리 사이로 입술을 갖다 대며 재이의 열 오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애무를 원하는 눈동자가 촉촉하다. 정말이지 온몸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달콤해서 참을 수 없다.

입을 벌렸다가 오므리며 입술로 음순을 빨자, 재이의 몸이 잘게 떨렸다. 쪽 소리가 났다. 체액이 그의 입 안으로 쑥 빨려 들어왔다. 한번 사정을 한 그는 아까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재이가 그만하라고 애원할 때까지 빨 생각이었다. 주말 이틀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그의 욕구를 채워야 할 터였다. 그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음핵을 혀로 꾹 누르고 돌리고, 쭉 빨아들이다가 갈라진 틈 사이사이를 혀로 길게 핥아 올렸다.

둔덕을 손가락을 잡아 벌린 채 더 안쪽까지 혀를 밀어 넣으니 재이는 다리를 오므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오빠… 아읏… 제발….”

그러면서도 엉덩이를 들썩이니 재현의 혀는 저절로 틈 사이를 왔다 갔다 자극을 멈추지 않았다.

“오빠…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이런 정도로 벌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재현은 더욱 강도를 높이며 구멍 안으로 혀를 내밀어 찔렀다가 빼기를 몇 번 반복했다. 연신 거친 신음 소리가 터지고, 자잘한 경련이 일었다. 손가락 두 개를 안으로 박아 넣고, 동시에 음핵을 굴리며 빠니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재이는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애액이 왈칵 터져 나옴과 동시에 엄청난 경련이 전신을 관통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재이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쾌락에 푹 젖은 얼굴이 사랑스럽다. 나른하게 풀어진 그녀를 일으켜 앉혔다. 재이가 앉았던 자리에 재현은 기대어 앉고 재이를 등이 보이게 돌려 앉혔다. 잘록한 허리와 탐스러운 엉덩이, 그리고 엉덩이 골 사이의 갈라진 틈. 하얗고 탱탱한 엉덩이가 들려 올라가는 걸 보기만 해도 페니스는 요동을 쳤다.

“네가 끼우고 돌려 봐.”

재이는 그가 시키는 대로 페니스를 잡아 구멍에 맞춰 끼웠다. 천천히 엉덩이 아래로 사라지는 굵은 기둥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질 속으로 미끄러지듯 끌려 들어간 페니스가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전신을 감싸고도는 황홀한 쾌감에 몸을 맡기며 재현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질 내벽이 바득 기둥을 물고 조이는 느낌은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었다.

어젯밤의 스트레스가 그 안에서 녹작지근하게 풀어졌다. 품는 것만으로도 벅찼는지 재이는 페니스를 끼운 채 움직이지 못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귀두 끝이 질의 가장 안쪽 예민한 부분에 닿은 것만으로도 재이는 몸을 떨었다.

재현은 상체를 살짝 일으켜 재이의 잘록한 허리를 잡았다.

“움직여.”

그의 재촉에 재이는 천천히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내보내기도 아쉬운 듯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질벽의 느낌이 선연했다. 엉덩이가 들려 올라가면 재이의 작게 오므라진 항문이 보였다. 잘게 주름진 항문은 색깔도 예쁘고 오므린 모습도 귀여웠다.

재현은 손을 내려 탱탱한 둔부를 쥐었다가 펴고, 톡톡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질 내부가 움찔거리며 더욱 강하게 페니스를 쥐어짰다.

“우리 재이, 엉덩이도 예쁘네. 나 말고는 어떤 놈한테도 보여주면 안 돼. 알겠어?”

“…….”

“대답 안 해?”

“으응… 알았어.”

재현이 엄지손가락에 애액을 묻혀 항문을 부드럽게 문지르자, 재이는 괄약근을 조이며 엉덩이를 비튼다. 그럴 때마다 질 내벽도 페니스를 뽑아 버릴 듯 무섭게 수축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강렬한 쾌감에 재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하아… 오빠, 거기는….”

“좋아? 빨아 줘?”

“시, 싫어… 하지 마….”

“다음에 또 이런 짓 하면 여기 갈 때까지 빨아 버릴 테니까, 명심해.”

재이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열심히 요분질을 쳤다. 쾌락에 중독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으으읏….”

페니스가 박힐 때마다 요란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이러다 금세 절정에 도달할 모양이다. 재현은 그녀의 오르가슴을 돕기 위해 강한 힘으로 허리를 쳐올렸다.

쾌감을 부르짖는 자지러지는 소리. 경련을 일으키며 뜨거운 열기에 휩싸이는 질벽. 페니스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오르가슴의 결정체.

재현이 재이를 살짝 밀어내며 페니스를 쑥 뽑아내자, 애액이 주르륵 그의 허벅지로 흘러내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떠는 재이를 돌려 앉혀 품으로 끌어안고 누웠다. 품 안에서 파들거리는 작은 몸이 사랑스럽다.

오르가슴의 잔흔이 여전히 남은 작은 구멍 안으로 다시 좆을 밀어 넣었다. 재이는 움직일 힘도 없는 듯 그의 가슴 위에 기대 늘어졌다.

“말해 봐. 어제 왜 그랬는지.”

재현은 이불을 끌어다 재이의 등에 덮어 주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정말 나를 그 여자한테 보내줄 셈이었어? 내가 그 여자한테 돌아간다고 할까 봐 겁이 났나?”

재이가 고개를 들어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본다. 쾌락에 잠긴 얼굴이 요망스럽다. 그건 어쩌면 한때는 여동생으로만 생각하던 아이라서 더 그럴지도 몰랐다. 녀석과 섹스를 할 때마다 뱃속 깊이 치고 오르는 배덕감이 더욱 그를 광분시키는지도.

“어제… 무슨 얘기했어?”

조심스러운 질문 어딘가에 밴 질투가 그를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나랑 다시 잘해 보고 싶다고 하더군. 아직 사랑한다고.”

“…….”

재이는 시선을 내리깔며 부풀어 오른 빨간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관심 없다고 했더니, 세 번만 만나 보자고도 했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글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페니스를 쳐올리는 속도를 점점 높이며 재현이 되물었다. 여동생을 놀리고 싶은 흔한 오빠들의 장난기 같은 거였다고 해두자.

“정말 세 번만 만나 볼까? 내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아니면 미련 따위 깨끗이 털어 버린 건지 확인해 봐?”

“…….”

“대답해 봐.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세 번만 만나 봐?”

곧이라도 울 것 같은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며 재이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만나지 마.”

“어제 그러라고 연락도 없이 사라진 거 아니었어? 속이 상해서 소주 한 병을 들이마시고 정신 놓은 거 아니었냐고.”

살과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찌걱찌걱 울린다. 그의 좆이 재이의 질 내부 속 깊숙한 곳까지 닿을 때마다 재이는 입술을 깨물며 덜덜 떨었다. 턱, 턱. 서로의 몸이 부딪는 소리가 음란했다.

“날 다른 여자한테 양보할 생각이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말해.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얘기하라고.”

재이의 몸이 말을 타듯 그의 몸 위에서 흔들렸다. 출렁이는 탱탱한 가슴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재현은 상체를 일으켜 한쪽 가슴을 움켜쥐고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우악스럽게 빨아 당기며 주물럭거리자 가슴이 터질 듯 손 안에서 뭉그러졌다. 젖꼭지를 빨 때마다 질 내벽도 수축을 거듭한다.

“아무한테도 가지 마. 그 여자한테 보내기 싫어. 만나지 마. 오빤… 내 거야.”

“세 번만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싫다고 했잖아.”

“미련이 남았을 수도 있다며.”

“그건….”

재이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그를 밀어냈다. 입 안에 가득 머금은 가슴을 빼내고,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도망치는 허리를 잡았지만, 재이는 몸을 비틀며 반항했다. 그런 소리는 듣기 싫다는 듯이. 그런 얘기하려면 내 몸에 손대지 말라는 듯이.

재현은 그녀를 침대로 자빠뜨리고 두 팔을 잡아 머리 위로 올려 눌렀다. 다리를 벌리고 구멍에 귀두를 맞췄지만 넣지는 않았다. 허리를 제멋대로 움찔거리는 통에 빠져 버린 좆이 사납게 위로 치솟았다.

“말해. 다시 박아 달라고 애원해.”

그가 사납게 으르렁거리자 재이는 끝까지 싫다며 고집을 부렸다.

“오빠야말로 그 말 취소해. 세 번 만나 본다는 말, 미련이 있는지 확인한다는 말.”

숨을 헐떡이면서도 제법 당돌하게 요구한다.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흔들렸다. 붉은 입술은 유혹하듯 달싹였다. 빌어먹을. 왜 이렇게 예쁜 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네가 만나지 말라면 안 만나. 지금 내 눈에 다른 여자가 들어오게 생겼어? 어? 씨발, 이렇게 예뻐 가지고.”

탱글탱글한 엉덩이를 쥐고, 구멍으로 페니스를 다시 박아 넣었다. 이미 페니스 크기에 맞춰 벌어진 구멍은 쉽게 그를 받아들였다. 재현은 재이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 때까지 정신없이 허리를 쳐올렸다.

그의 눈앞에서 제 커다란 좆이 조그만 재이의 구멍 안으로 사라질 때마다 온몸의 피가 머리끝으로 몰리는 기분이 들었다. 재현은 음부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민 클리토리스를 엄지로 짓눌러 돌렸다. 재이의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부딪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시커먼 절정의 파도가 엄청난 기세로 두 사람을 덮쳐눌렀다. 분출하는 정액을 재이의 음부에 발랐다. 음핵과 음순과 둔덕에 바르고, 구멍에도 문질렀다. 참을 수 없는 쾌감에 이가 떨릴 지경이다.

***

재현의 티셔츠는 엉덩이를 덮고, 팔은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내려왔다. 소매를 접어 올리고, 아래에는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은 재이는 재현이 달걀 프라이를 하는 동안 샐러드와 프렌치토스트를 준비했다. 소시지를 굽고, 샐러드에 발사믹 소스를 뿌려 접시에 담으니 괜찮은 늦은 점심이 완성되었다.

커피도 진하게 내려 식탁 위에 올렸다. 아침부터 거친 섹스를 한 데다 아침 식사를 걸러 몹시 허기가 졌다. 우리는 샤워를 하고 세 시간 내리 잠을 잤다.

달걀 프라이를 잘라 한 입 입에 넣으니 행복했다.

어젯밤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재현도 한결 느긋한 표정이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샐러드와 소시지를 같이 입에 넣는다.

재이는 항상 그가 왕족 같다고 생각했다. 로열 블러드가 정말로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그 피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준수한 외모뿐만 아니라 몸짓과 표정에서 우아함과 고상함이 배어났다.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천박하거나 경박해 보이지 않는 신기한 그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할 얘기 있어?”

재현이 토스트 조각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내가 잘생긴 건 알겠는데, 그렇게 자꾸 쳐다보면 꼴려.”

“오빠도 참. 그런 저속한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우리 재이는 그런 말 배우지 않아도 되고.”

“욕도 잘 하더라.”

나는 재현이 그렇게 욕을 거침없이 내뱉고, 비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인 줄 근래에 들어서야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그와 섹스를 하게 되면서 처음 들었다.

“흥분하면 저절로 나와.”

“욕하지 마. 듣기 싫어.”

“그래, 알았어.”

“오빠,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조예진에 대한 얘기를 꺼내 간신히 찾아온 평화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예진 씨랑 왜… 헤어졌어? 혹시 그때 하던 일 그만두고 영국으로 갑자기 유학을 간 것도 그 여자 때문이야?”

재현은 포크를 내려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조예진이 널 이용해서 내게 다시 접근하려 할지도 몰라. 어제 일도 분명 그랬을 거고.”

“사실은… 사진 촬영 당일에 사진작가가 일정을 펑크 냈거든. 근데, 그 사진작가랑 조예진 씨랑 잘 아는 사이였나 봐. 그 사람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내게 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진다.

“그 여자는 그런 여자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용할 가치가 있으면 친하게 지내다가, 가치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여자.”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조예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연기력이 뛰어나거든. 그 여자가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철저히 계산된 거야.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원하는 대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얘기를 들었다. 세상에 그토록 영악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왠지 믿기지 않았다.

“조예진에게 관계는 두 가지야.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되지 않거나. 나를 원하는 이유는 나를 발판 삼아 내가 사는 세계로 넘어오겠다는 계산이야. 부와 인기를 얻었으니, 이제 지위를 얻으려 하겠지.”

“그 말은 조예진 씨가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거야?”

“맞아.”

“그럼 예전에 오빠도 그 여자한테 이용당하고… 버려진 거야? 그래서 미련이 없는 거고?”

재현의 일그러지는 눈빛을 보면서 나는 내 추측이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로 그렇다면 오빠의 자존심에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고, 그만큼 예진을 향한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는 의미였다.

“그 여자를 이번 신차 출시 모델로 세우는 게 아니었어. 여러 가지 정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니 조심해. 그 여자한테 이용당하지 않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관계에 조예진이 끼어든 게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다.

“내가 그 여자한테 돌아가는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 그것만큼은 날 믿어야 해.”

“알았어. 오빠 믿을게.”

“너, 그 옷….”

재현이 눈짓으로 내가 입은 셔츠를 가리켰다. 목 부분이 헐렁해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

“이거 오빠가 잘 안 입는 거 같아서. 난 이 옷이 무척 마음에 들거든.”

“너 그러고 있으면 내가 밥을 먹다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하다니?”

나는 눈을 깜박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으로 재현은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밥 먹다 말고 욕실은 왜?”

그가 칫솔에 치약을 짜서 내게 건네고, 본인도 이를 닦기 시작했다.

“빨리 닦아. 이 안 닦고 키스하면 싫을 거 아냐.”

나는 이 남자가 진심으로 하는 얘긴가 싶어 거울 속의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옆에는 하얀 어깨를 드러내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봉긋하게 솟은 가슴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난 내가 있었다. 대충 올려 묶은 머리에서는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흘러나와 매끄러운 목덜미와 어깨에서 찰랑거렸다. 거울 속의 내가 어쩐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순진한 여대생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 남자의 사랑을 받는 요염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눈에 나는 최고의 미녀고,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요부였다. 마치 날 보기만 해도 음욕이 솟구치는 것처럼 그가 날 원한다. 새벽부터 그에게 빨린 음부는 아직도 얼얼하고, 격렬한 쾌감은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오빠, 설마 또 할 생각은 아니지?”

“왜 아니야. 그런 모습으로 유혹해 놓고, 발뺌할 생각은 아니겠지.”

“이거 오빠 유혹하려고 입은 거 아니란 말이야.”

“모르고 유혹한 것도 책임은 져야지. 이거 봐.”

그러면서 재현은 바지를 조금 내려 커다랗게 부푼 페니스를 꺼내 보여주었다. 울근불근 튀어 오른 핏줄들이 험악했다. 그는 내 왼손을 가져다 페니스를 잡게 했다.

“만지고 있어.”

내 손 안에서 물건이 점점 더 커지는 건 내 착각이 아니었다. 살살 흔들면서 나는 이를 닦았다. 거울에 우리 둘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쳤다. 다른 연인들도 이런 음란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부끄러움에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조금만 빨아 봐. 바로 들어갈 거니까 아프지 않도록.”

양치를 마치고 나자 재현이 내게 요구했다. 나는 변기에 걸터앉아 검붉은 기둥의 뿌리부터 귀두까지 흠뻑 젖도록 타액을 묻히며 빨았다. 재현은 내 레깅스와 팬티를 벗기고 나를 안아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려 앉히며 질 속으로 기둥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닫혀 있던 길이 바득 열리면서 꽉 채워지는 느낌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결합되어 안은 채로 재현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걸을 때마다 내 엉덩이가 흔들렸고,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며 흥분을 돋웠다. 재현은 나를 소파 등받이 위에 눕혔다. 등받이가 사람 하나가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꽤 두껍고 넓었다.

내 다리는 접혀서 들어 올려지고 재현은 선 채로 우리의 결합 부위를 내려다보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는 빨리 끝낼 생각이 없는 듯 천천히 나갔다가 천천히 들어왔다. 들고나는 마찰의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섹스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그 쾌감을 점점 더 강렬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느끼는 수준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쾌락을 찾아 움직였다. 내 아래쪽을 꽉 채우는 거대한 존재를 갈구했다. 내 욕망을 채워 주기를. 날 쾌락의 파도에 태워 천국으로 데려다주기를. 재현이 내 손을 잡아 음부로 내렸다.

“자, 여기를 만져 봐.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의 손에 잡힌 중지가 내 음핵을 문질렀다. 느낌이 점점 야릇해졌다. 구멍 속을 파고드는 단단한 기둥과 음핵을 문지르는 손길이 동시에 감각을 지배하는 것만 같았다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강렬하게 파고드는 희열에 질벽은 저절로 수축을 했다.

재현의 잘생긴 얼굴이 이지러졌다. 클리토리스에서 시작된 자잘한 경련이 전신으로 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재현은 날 다시 안으며 키스를 했고, 소파로 옮겨 앉았다. 전화가 온 것은 재현이 내 셔츠를 벗기고 젖꼭지를 입에 머금었을 때였다. 탁자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재현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말릴 새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어머니.”

나는 기겁을 하며 허리 놀림을 멈추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통화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설상가상 그는 느긋하게 페니스를 깊이 삽입했다 길게 빼는 동작을 계속했다.

- 재현아, 지금 재이랑 같이 있니?

“네. 지금 옆에 있어요.”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재현의 눈은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차분했다. 마치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섹스가 아닌 소꿉장난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뿐 아니라 전화기를 들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조금 전까지 입으로 빨고 있던 내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의 팔목을 잡아 떼어 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무슨 일로 그러세요?”

- 재이한테 할 말이 있는데, 바꿔 줘.

재현이 내민 휴대폰을 외면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잠깐 방심한 사이 내 귀에 휴대폰이 닿았다.

“받아 봐. 할 말이 있으시대.”

나는 있는 힘껏 그를 노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엄마?”

- 재이야, 지금 시간 되니?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가만히 있어 주면 좋으련만, 재현은 내가 몹시 민망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 걸 눈앞에 두고 보면서도 허리를 쳐올렸다. 그가 페니스를 깊게 박을 때마다 내 몸이 흔들렸다. 당연히 목소리도 떨려서 나왔고.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재현의 다리를 붙잡았다.

- 네가 꼭 좀 필요해서 그러는데, 엠파이어 호텔 2층 ‘휴 에스테틱’으로 와 줄 수 있겠니?

“지, 지금요?”

- 네가 회사에 출근한 뒤로 우리 모녀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진 적이 없잖니. 수다도 떨고 싶고, 소개해 줄 사람도 있고. 지난번에 보니까 네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던데, 맛있는 것도 좀 먹이고 싶어.

어머니의 말이 길어질수록, 걱정하는 음색이 짙어질수록 내 긴장과 죄책감은 더해 갔다. 이 와중에 구멍 안에 민감한 지점을 연신 건드리는 재현이 얄미워 죽을 것 같았다. 그 부분이 찧어질 때마다 작은 비명이 터질 것 같아 불안했다.

페니스를 빼내려 그의 가슴에 손을 짚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나를 끌어안은 재현은 더욱더 속도를 높였다. 바득 이를 뚫고 새어 나오는 신음에 나는 울고 싶어졌다.

- 재이야, 어디 아프니? 왜 그래?

나는 머리를 굴려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다고, 이따가 다시 전화한다고 재빨리 통화를 끝냈다. 그러고는 재현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이게 무슨 짓이야. 엄마랑 통화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진심으로 그가 미웠다. 재현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내게 키스하며 내 허리를 잡고 우리의 몸이 완벽하게 하나로 들어맞을 때까지 나를 눌러 앉혔다. 더는 들어올 공간도 남아 있지 않은 몸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앉은 그의 몸이 버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숨이 멈추지 않도록 호흡하는 것뿐이었다. 재현은 날 소파에 기대 놓고, 소파 밑으로 내려가 꿇어앉은 채 내 음부를 정성스레 핥았다. 물이 흥건하게 고인 구멍과 클리토리스 주변을 혀와 입술로 빨아들였다. 화끈거리던 속이 조금 진정되는 기분은 착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날 올려다보면서 느긋하게 둔덕을 핥고 깨물었다. 음부와 항문 사이를 혀로 건드렸을 때는 목덜미가 찌르르 울리며 몸이 떨렸다. 조금 전까지 그를 원망하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또다시 절정이 기어들고 있었다.

“오빠, 넣어 줘.”

내 재촉에 재현은 빙긋 웃으며 천천히 페니스를 끼워 맞췄다. 재현은 내가 오르가슴에 오르자, 내 엉덩이에 사정을 하고, 내 입에 페니스를 넣어 남아 있는 정액을 빼냈다. 완전히 지쳐 버린 나는 한참 그의 품에 안겨 있다가 샤워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은 스킨로션으로만 간단하게 마쳤다.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으려면 어차피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재현이 날 호텔까지 데려다주고, 전화하면 다시 데리러 오기로 했다.

사모님들 사이에서 요즘 ‘핫’하다는 마사지 숍은 젊고 싱그러워지길 원하는 중년의 사모님들로 북적였다. 어머니는 럭셔리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휴게실에서 지상의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상이 어머니가 날 보고 싶어 불러낸 듯싶었다. 내 마음은 부담감으로 무거워졌다. 재현은 날 선주 그룹으로 시집보낼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이런 자리에 불려 나간 걸 알면 화를 낼지도 몰랐다. 지상이 어머니를 만나는 자리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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