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0)

06

멀리서 들리는 소란에 해율이 시선을 돌렸다. 기민하게 반응하는 청각과 달리 시선은 느리게 돌아갔다. 혈기 넘치는 남자아이들은 저들끼리 몸을 서로 부딪치고 또 이리저리 치대면서 그 왁자하고 떠들썩한 공기를 여과 없이 내뿜었다.

우리 족구하러 가자.

야야, 그러지 말고 노래방 어때? 우경아, 괜찮아, 시간?

아니면 우경이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되냐?

우경이네 정원 존나 넓어서 족구 완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 놀러 와. 지하에 노래방 기계도 있으니까.

오오, 미친. 쩐다.

해율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정제되지 않은 흥에 차 있는 무리 안에서도, 어딘가 조금 독보적으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였다.

이름이 불린 현우경은 장난스레 웃으며 친우들과 이리저리 장난을 치면서도 절대 경박하지 않았고, 또 그 나이 또래 특유의 치기 어린 활달함을 보여 주면서도 어딘가 어른스러움이 묻어났다.

해율이 보기에 우경은 그랬다.

옥상에서 그와 말을 주고받은 뒤부터 우경은 해율의 시선을 하릴없이 사로잡았다. 누구나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 싶고 누구나 친해지길 원하면서, 또 어디에서도 주목을 받는 우경의 탓도 크리라.

해율은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우경을 볼 때마다 자꾸만 간지럽게 뛰는 심장을 애써 무시했다. 언젠가는 우경에게 고백을 한다며 저들끼리 소란스럽게 비밀스러운 수다를 떠는 반 여자아이들을 보면서도 그저 그렇구나, 하고 동요를 감췄다.

고백은 애초에 해율에게는 닿지 않는 머나먼 이야기였다.

그녀에게는 간호가 필요한 가족이 있었다. 매일이, 그리고 일과가 재난이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담임에게 양해를 구하고 야간 자율 학습에서 빠져나와 이모의 병간호를 하러 달려가야 했다. 그리고 주말에 시간을 내어 아르바이트하고, 또 틈틈이 미뤄 둔 공부를 해야 했다.

시간이 모자랐다. 일주일,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해율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철부지 같은 놀음과도 같게 보였다.

현우경을 보며 요동치는 감정을 속으로 삼키고 묻어 둔 이유가 그랬다. 그녀의 삶에 사랑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여유 없이 빡빡하게 들어찬 현실이 그렇게 만들었다.

마음은 그랬다. 조급했고 좁디좁았다. 하지만 시선이 절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다.

우경은 운동을 잘했다. 농구나 축구, 야구까지. 학교에서 개최하는 운동회나 친구들끼리 가볍게 하는 경기에도 그는 빠지지 않았다. 아니, 비단 운동만이 아니었다.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이었고 선생님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주위의 말에 귀 기울이는 타입이 아니었던 터라, 그의 집안에 대해 반 친구들이 무어라 수군대는 소리는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그가 돈 있는 집 자식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쩐지 더욱더 먼 세계 같은 느낌이었다.

최초로 옥상에서 그를 만났던 그날이 오히려 그와 가장 가까웠던 것 같은 느낌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거리는 멀어져 갔지만 감정은 조금씩 더 깊어져 갔다. 가랑비를 조금씩 맞은 마음은 어느덧 정신을 차려 보니 물기를 뚝뚝 흘리며 잔뜩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해율은 그 마음을 외면하고 도망치기에 바빴고, 그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사실 그에 관한 기억은 이미 케케묵은 그 무엇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과 그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니 하나였다. 지금은 우경이 자신에게 시선을 주고 있다는 것. 비록 몸뿐이지만 그와 가까이 닿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었다.

그때는 ‘어차피 지나갈 감정이야.’라고 가볍게 치부하던 것이 지금은 그 몸집을 커다랗게 부풀렸다. 우경이 입을 맞춰 올 때마다, 그가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자꾸만 더욱 커져 갔다.

한낱 사랑이었다.

누군가는 몇십 번을 한다고 하기도, 또 누군가는 유일한 사랑이라고 믿었다가 도장을 찍은 종이 한 장으로 헤어지기도 한다는. 지나가는 열병과도 같은, 고작 사랑이었다.

* * *

[금요일에 갈게요.]

[우리 집으로 와요. 데리러 갈까요?]

[괜찮아요. 금요일은 수업이 늦게 끝나요.]

[알겠어요.]

누가 보면 업무라도 보는 줄 알 듯한 간단한 용무가 오가는 문자였다. 하지만 해율은 짧은 호흡을 반복했다. 긴장에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이미 과외 때문에 오간 적 있는 익숙한 번호의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과외가 목적이 아니라 우경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을 올라갔다. 아직 붉은 해가 건물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커다란 대문 앞에 서서 벨을 울렸다. 그런데 벨이 울리자마자 덜컹, 하고 대문이 열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란 정원을 가로질러 열려 있는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해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경이었다.

그는 홈 웨어를 입고서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 있었다. 하지만 자못 편안해 보이는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해율이 들어오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러자 그의 입가에 호선이 걸렸다. 작은 동물을 안심시키려 제 우리 안으로 꾀어내려는 듯한, 달콤하리만치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들어와요.”

“네.”

해율이 깔깔한 목을 가다듬었다. 몇 번이나 와 본 곳임에도 어쩐지 기분이 새로웠다. 숄더백을 고쳐 올리며 신발을 벗고 그를 따랐다.

“목마르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래요. 그래도 물 좀 가지고 올라갈게요.”

“마시고 오세요. 기다릴게요.”

“아뇨.”

그가 해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위에서 내려오지 않을 예정이거든요, 오늘 밤은.”

농밀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둘을 에워쌌다. 해율의 눈가 밑이 화드득 달아올랐다. 도톰한 입술을 벌리며 무어라 답할 줄 몰라 달싹이자, 그가 슬리퍼 소리도 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올라가 있어요. 금방 갈게요.”

“알, 겠어요.”

자꾸만 제 의지와 다르게 말이 더듬더듬 나왔다. 몸을 휙 돌려 계단을 올랐다. 그의 방은 위층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디일까. 왜 지금 그의 집 지하에 노래방 기계가 있다는 게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해율은 그의 집을 구경하러 온 게 아니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여기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다니. 웃길 일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뻘쭘하게 서 있다가 괜히 고개를 휘휘 돌렸다. 그와 격렬하게 몸을 섞었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왜 그러고 서 있어요?”

“네? 아.”

그때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해율의 몸이 튀었다. 그리고.

“아, 흡.”

우경이 해율을 뒤에서 살포시 껴안으며 들린 그녀의 고개를 덮듯이 입술을 맞춰 왔다. 우경은 어쩐지 격하게 그녀를 옭아맸다. 입술을 빨고 타액을 훔쳤다. 해율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자 작게 웃는 듯하더니 이내 그녀의 몸을 바로 돌려 엉덩이 밑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아!”

몸이 공중에 붕 떠올라 놀라서 그의 목 뒤로 팔을 두르자 이번에는 해율의 얼굴이 우경의 위로 올라왔다. 기실 얼굴의 위치는 중요치 않았다. 오히려 위에서 압박하듯 키스할 때보다 더욱 깊게 입술을 붙여 왔다. 해율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려 우경의 뺨을 간지럽혔다. 그는 그게 기분이 좋은지 혀를 더욱 깊숙이 들이밀었다.

젖가슴이 그의 턱밑에서 흔들렸다. 그는 한쪽 팔로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젖가슴 밑을 부드럽게 감쌌다. 커다란 남자의 손으로도 다 들어오지 않을 풍만한 가슴을 어루만지듯 쓰다듬는 손길은 외려 외설스럽기 짝이 없었다.

“흐응…….”

춥, 추읍. 타액끼리 엉기는 소리가 끔찍하게 야했다. 어느새 침대에 다다른 우경이 그녀를 푹신한 매트 위로 눕혔다. 해율이 잠시 당황했다.

“저 씻고 올게요.”

“지금요?”

“학교에서 바로 와서요.”

“안 되겠는데요.”

“네?”

생각지도 못한 거부의 말에 해율이 반문했다.

“오늘은 해율 씨 이 방에서 안 내보낼 거거든요.”

짓궂게 웃으며 말하는 우경을 보며 해율이 불만스레 말했다.

“그래도 안 씻으면 찝찝해요. 땀도 조금 흘렸어요.”

“괜찮아요. 내가 말 안 했었나? 나 해율 씨한테서 나오는 거 다 좋아한다고. 냄새든, 뭐든.”

귓가를 후벼 파는 외설스러운 저음이었다.

“……그런 말 정말 이상해요. 너무…….”

“변태 같아요?”

“네.”

해율이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문득 그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하지만 그는 무언가 유쾌한 듯 눈가를 찡그리며 해율을 바라봤다. 머리맡에 받쳐진 우경의 팔뚝 위로 핏줄이 돋아났다. 해율이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큰일 났네요, 해율 씨.”

우경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아졌다.

“내일 못 걸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무슨, ……아!”

그 말과 동시에 그가 상체를 숙여 왔다. 입술이 다시금 맞닿았다.

“하아, 침 모아 봐요.”

“흐읏, 침……, 아……!”

“응. 그렇게. 후우. 그렇게 모아요. 내가 빨아 먹기 쉽게.”

해율은 그가 말하는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입에 자꾸만 고이는 침을 삼키지 못해 입술 끄트머리까지 넘칠 정도로 타액을 입 안에 머금었다. 우경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녀의 입 안은 아래처럼 좁디좁았다. 입을 벌려도 깊숙한 점막까지 우경의 혀가 닿지 못할 정도였다. 살덩이를 조금만 밀어 넣어도 그녀는 아픈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우경의 아래는 이미 엉망이었다. 바지 안에서 갑갑증을 호소하는 그의 성기는 귀두 끝에서 흘러나온 선액으로 진즉 진창으로 젖어 있었다. 아래가 꿉꿉할 정도로 질척한 느낌이 선연했다.

“흐으…….”

역시나. 우경이 혀를 길게 빼내어 입천장을 비비대자 해율이 우경의 어깨를 저도 모르게 밀치려고 했다. 호흡이 가빠 오는 듯 작은 가슴이 파르르 흔들렸다. 그녀의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해율의 옷차림은 평범하다 못해 수수하기 그지없는 차림이었다. 하지만 해율의 육감적인 몸매는 숨기지 못했다.

뭇 남자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떼를 지어 그녀에게 모여들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해율의 손목을 잡아챘던 그 새끼처럼.

그리고, 자신처럼.

우경이 그녀가 듣지 못하게 속으로 욕설을 짓씹었다. 소유욕이 들끓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가 두려워 도망가지 않도록 조심히, 부드럽고 다정하게 그녀에게 자신의 몸을 가르쳐 나갈 생각이었다. 흠뻑 빠져 앞으로 절대로 헤어 나가지 못하게 공을 들여서…….

“후우, 흐으.”

우경의 뺨 위로 간질이는 듯한 바람이 훗, 훗 불어왔다. 해율이 코로 숨을 쉬고 있었다. 자신이 가르쳐 준 것을 그대로 행하는 순진한 그녀의 모습이 우경의 음습한 욕망에 불을 지핀다는 것을 그녀는 모를 것이다.

“아아. 하……. 어떻게 이렇게 다 맛있어요.”

우경이 입술을 목덜미로 미끄러트려 내려왔다. 습한 숨이 해율의 살갗을 간지럽혔다. 동시에 그가 닿은 부위로부터 찌릿한 쾌감이 일었다. 우경이 그녀의 여린 살을 깨물고 빨았다. 숨이 거칠었다. 우경도 자신만큼 흥분에 찼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해율의 아래가 빠르게 젖어 갔다.

“하아. 여기 빨아 줘요, 내 목. 응, 그렇게요.”

우경의 요구에 따라 해율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입술로 그의 목덜미를 덮었다. 어설픈 동작으로 혀를 빼꼼 내밀어 핥다가, 쿵쾅거리는 혈맥 부근을 작은 입술로 덮어 살며시 빨자, 그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전혀 색기가 묻어 나오지 않는 그녀의 소심한 행위에도 우경의 성기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불알은 숫제 탱탱하다 못해 빳빳하게 굳어질 지경이었다.

우경이 어금니를 까득 물었다.

“더 세게요.”

그의 낮은 요구에 해율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금 더 세게 빨아 왔다. 울혈은커녕 피부색 하나 변하지 않을 세기였다.

하, 귀여워 미치겠네. 젠장.

“아응!”

우경의 손이 거침없이 티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찢어발길 듯이 티셔츠를 들어 올린 그가 다소 다급하게 가슴에 얼굴을 묻어 왔다. 얇은 옷가지를 훌훌 벗겨 버린 그의 축축한 점막이 향한 곳은 해율의 젖꼭지였다. 옅은 분홍색의 그것은 그새 입 안에서 빨리는 쾌감을 익힌 것처럼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우경의 애무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우경은 해율의 젖가슴을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감싸며 젖꼭지를 게걸스럽게 빨았다.

작은 젤리같이 말랑한 유두를 입 안에 넣고 마음껏 굴렸다. 해율의 입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렀다. 허리를 움찔거리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더욱 내밀었다.

해율의 성감은 그녀의 빈약한 경험과 달리 환장할 만한 곳에만 집중해 있었다. 입술을 갉작여도 흥분하고, 젖꼭지를 핥은 것만으로도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아래는 또…….

정말이지 쾌락에 약한 몸이었다. 머리가 어떻게 될 정도로 사랑스러운.

우경이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의를 내려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양쪽 젖꼭지를 오가며 부르틀 정도로 쭉쭉 빨았다.

우경은 거친 손짓으로 자신의 성기를 밖으로 내보였다. 질금 새어 나온 쿠퍼액으로 인해 얼핏 비릿한 내음이 감돌았다. 씨근덕거리며 핏대를 세운 성기가 흉흉한 기세로 해율의 허벅지께에 맞닿았다.

“해율 씨, 나 한 번 쌀게요. 지금 이 상태로 넣으면 해율 씨 다치게 할 것 같아요.”

경고와도 닮은 배려였다.

“나 좀 도와줄래요?”

“하으, 아……! 어떻게요, 흐읏.”

“보지 빨면서 싸고 싶으니까 다리 좀 벌려 주세요.”

“그,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돼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경이 해율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더니 돌연 손가락으로 해율이 젖은 젖꼭지를 퉁 튕긴다.

“내가 이런 말 지껄일 때마다 여기가 엄청 딱딱해지는데요.”

“흣, 거짓말.”

당황한 해율이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저도 모르게 검지로 우경의 아랫입술을 찰싹 때렸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그저 살짝 건드린 것과 진배없는 미미한 타격이었다. 하지만 해율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당황했다. 우경 또한 그러했다. 그녀의 돌발 행동은 언제나 우경에게 의외로 다가왔다. 곧 그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방금 그대로 쌀 뻔했어요.”

우경이 얕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떡하지. 나한테 이런 취미가 있는 줄 미처 몰랐네.”

그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해율 씨, 앞으로 나 빨리 싸게 하고 싶으면 이렇게 때리면 돼요.”

“네?”

해율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음성을 높였다.

쿡쿡 웃는 우경은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곧 하던 행위를 재개했다. 해율의 옷가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벗겨 냈다. 해율의 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침대 위로 흐트러진 새까만 머리카락에, 물결 진 굴곡까지. 그 모든 것을 빠짐없이 제 시야에 박제하려는 듯 그가 샅샅이 훑었다.

해율의 무릎이 설핏 벌어졌다. 그 틈을 우경은 놓치지 않았다. 이미 한계치였다. 우경이 양손으로 허벅지를 잡고 양쪽으로 벌렸다.

해율의 입에서 작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음부를 내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였다. 하지만 우경은 더욱 얼굴을 가까이 댔다. 작게 오므라진 구멍은 손가락 마디보다 더 좁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흘러나온 애액은 이미 해율의 흥분을 증명하고 있었다. 음란한 액체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샘솟아 엉덩이 골까지 적시며 음순에까지 엉겨 붙어 있었다.

“그새 좁아졌네.”

굵고 장대한 크기의 성기에 언제 뚫렸냐는 듯, 또 며칠 전에 손가락으로 마구 흔들어 댔던 게 언제냐는 듯 아주 작은 틈새만 빠끔거릴 뿐이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우경은 그녀의 무릎이 조금씩 좁아지기 전에 얼른 얼굴을 깊이 처박았다. 잘 뻗은 콧날이 발갛게 통통해진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하읏!”

그는 입을 크게 벌려 혀를 질구로 밀어 넣었다. 날개처럼 덮고 있는 음순을 다독이듯 혀로 쓸며 옆으로 젖혔다. 음란한 냄새가 콧속으로 들이쳤다. 우경의 눈매가 위험스러운 빛을 띠며 좁아졌다.

그녀의 애액 냄새만으로도 귀두가 벌름거렸다.

쭙, 추웁, 츕. 맛을 음미하듯 고개를 이리저리로 돌려 가며 그녀의 보지를 빠는 우경은,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성기를 훑고 있었다. 해율의 입에서 교성이 터졌다. 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그가 음부를 빠는 소리인지 아니면 그가 자위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도록 엉망으로 뒤섞였다.

“아, 우경 씨, 흐윽.”

“응.”

대답인지 혹은 단순한 응수인지 모를 음성을 질구 속으로 뱉자, 진동으로 인해 내벽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해율이 아랫입술을 질근 물었다. 콧날이 짓뭉개질 정도로 그의 혀가 안까지 깊숙이 들어왔다가, 고개를 뒤로 물려 넓적하게 만든 뒤 음순에 묻은 애액까지 남김없이 핥았다.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정신을 잃은 짐승처럼 사납게 맛본 그가 참지 못하고 이를 드러냈다. 그러고는.

“아아!”

빳빳하게 융기한 클리토리스를 잘근 깨물었다. 동시에 굵은 손가락 한 마디를 구멍에 처박았다. 해율이 신음을 내질렀다.

“흐아, 아아……!”

해율이 몸을 굳힐수록 우경은 좀 더 깊게 손가락을 넣고 쑤석거렸다.

“빡빡하네. 저번보다 저 좁아진 것 같은데. 나 없을 때 자위는 안 했어요?”

“흑, 아, 아니. 안 했, 흐읏.”

“앞으로도 하지 마요.”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문득 그렇게 중얼거린 우경이 공을 들여 안을 넓혔다. 개수가 두 개에서 세 개로, 그리고 네 개로 늘어났다. 해율이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유심히 살핀 그가 손가락을 전부 넣은 채로 잘잘 털었다. 흡사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정한 말과는 달리 안을 넓히려는 난잡한 손동작의 간극에 해율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그가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이었다.

“아읏, 이거, 너무, 앙, 너무 이상해요! 흐아!”

감당할 수 없는 쾌락이 해율을 덮쳤다. 아직도 음부에 고개를 박고 있는 그의 머리칼을 손아귀에 쥐며 밀어도 그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는 해율의 구멍을 유린하고, 또 한 손으로는 자신의 성기를 흔들고 있었다.

절정이 눈앞이었다.

마지막으로 우경이 손을 전부 넣을 기세로 퍽, 손가락을 짓친 순간, 해율의 허리가 활처럼 휘며 순식간에 절정에 이르렀다. 내벽이 손가락을 잘라 먹을 듯이 꽉 죄었다가 풀어 대며 마구 경련했다.

“하.”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의 손바닥 위로 사정액을 분출했다. 사출을 시켜 머리끝까지 달아오른 흥분을 가라앉히는 게 목적이었음에, 쥐어짜듯이 좆을 훑어 정액을 뱉어 냈다. 진득하게 싸지른 그가 손에 묻은 정액을 해율의 다리에 찐득찐득하게 펴 발랐다.

침대 위로 기진한 채 뻗은 해율이 숨을 헐떡이는 사이에, 그는 콘돔을 끼운 자신의 성기를 느릿하게 훑으며 무릎으로 섰다.

해율은 반쯤 감긴 눈으로 그의 몸을 응시했다. 약간 시선을 내리자 아랫배까지 올라붙은 성기가 보였다.

사실 조금 놀랐다. 저런 게 내 몸에 들어왔었다니. 다음 날 온종일 느꼈던 이물감의 원인이 저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납득이 됐다.

“더 빨리 싸라고 그렇게 쳐다보는 거예요?”

웃음과 함께 내뱉은 우경의 말처럼, 페니스가 성이 난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냥 너무, 커서요.”

“아, 정말 빨리 쌌으면 좋겠나 보네. 일부러 그러는 건가.”

혼잣말처럼 유쾌하게 읊조린 그가 손가락 마디만큼 작게 헤벌어진 구멍에 성기 끝을 맞춰 왔다. 금방이라도 푹 쑤셔 올 것처럼 조준한 그가 숨을 골랐다.

잔악한 웃음은 뒤로 숨겼다. 여린 몸을 하고 바르작거리는 해율을 보는 와중에도 흉포한 마음이 거세어졌다.

정말 어쩌지. 한 발 뺐는데도 여전히 욕구가 들끓었다. 스스로가 어이없을 정도의 포악한 감정이었다.

가랑이 사이에 저를 집어삼킬 흉기가 들이밀어진 줄도 모르고 커다랗게 젖은 눈망울을 깜박이며 저를 보는 해율의 시선에 우경이 아찔함을 느꼈다.

“으흑, 아, 아아!”

즈즛, 소리를 내며 어린아이 주먹만 한 귀두가 새빨간 여린 점막을 갈랐다. 해율의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아래가 눅진해질 때까지 빨고 흔들어 잔뜩 흐물흐물하게 만들었음에도, 그새 조금 다물어져 버렸기에 진입이 쉽지 않았다.

푸욱.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 해율이 마치 쇠꼬챙이에 찔린 것처럼 바르르 떨며 시트를 움켜쥐었다.

평소에는 한없이 냉정하고 차갑게 서 있으려고 하면서 정작 이렇게 허물어지니, 안 미치고 배겨.

우경의 가슴팍에서 땀이 샘솟았다. 곧바로 허리를 마구 흔들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는 탓이었다.

해율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우경의 손짓을 느끼면서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아래가 완전히 열릴 때까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괜찮아요? 하고 물어 오는 눈빛에 가슴이 아려 왔다.

첫 번째 관계는 충동적이었지만 지금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행위라서일까. 아니면, 그의 태도가, 그의 행동이 어딘가 가슴을 짓누를 것처럼 사랑스럽다는 듯 자신을 향해 있기 때문일까.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과 기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해율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가슴 한쪽이 찌릿찌릿했다.

“……해율 씨.”

“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한숨과 함께 그렇게 말한 우경이 몸을 내렸다. 그는 인내의 고통에 휩싸여 무척 힘이 들어 보였다. 두툼한 어깨가 해율의 입술 근처에 다가왔다.

“아프면 나 깨물어요. 피 날 정도로 세게. 알았죠?”

끄덕.

해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를 조금 더 받기 쉽도록 다리를 벌렸다. 우경의 턱이 빠듯하게 불거졌다.

퍼억!

“흑!”

퍽, 퍼억, 철퍽!

육중한 성기가 안을 완전히 가르고 들어왔다. 엄청난 기세로 짓쳐들어옴과 동시에, 온갖 음탕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해율의 몸 또한 요란하게 흔들렸다. 입이 크게 벌어졌다.

우경이 도끼로 내려찍듯이 그녀의 안을 쑤석거리며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해율이 흐느꼈다. 절박하게 우경의 어깨를 껴안자, 우경이 팔을 휘감아 그녀를 꽉 옥죄듯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아, 아! 으흑……!”

“후우, 큿.”

찐득한 액체가 실처럼 뒤엉기며 성기가 마찰하는 접합부에서 하얀 거품이 일었다. 해율의 다리가 위로 붕 떴다. 하얗고 가느다란 다리가 공중에서 속절없이 흔들렸다.

우경이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자신의 어깨에 얹혔다. 그리고 상체를 조금 들어 자세를 다시 잡았다.

촉. 말랑한 종아리에 잔키스를 뿌린 우경이 허리 아래를 다시금 뒤로 뺐다가 짓쳐 올렸다.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그녀의 가녀린 몸매와 상반되는 풍만한 젖가슴이 이리저리로 흔들렸다.

쪽, 쪽. 퍽, 퍽.

솜털 같은 버드 키스와 상스러운 추삽질이 번갈아 이루어졌다. 해율이 눈꼬리에서는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경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 벌리고서는 그녀의 눈물을 죄 빨아 마셨다.

“나, 흐윽, 아읏, 아래, 아래가, 흑!”

“응. 왜요. 아래가 왜?”

해율이 두서없이 뱉는 말에 우경은 성실히 대꾸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제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초점이 풀려 있었다. 이성이 살짝 나간 듯도 해 보이는 우경은 자신이 어느새 반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래가 아파? 흣, 응? 아니면, 후, 보짓물 흘릴 것 같아서?”

“아니이, 하윽, 아아! 응, 으응!”

“싸도 돼. 읏, 내가 다, 하, 먹을 거야, 내가 다.”

다 내 거야.

점막과 살덩이가 맞붙은 아래쪽이 뜨겁다 못해 탈 것 같았다. 상스러운 말은 달콤한 음율이 되어 귓가에 내려앉았다. 응당 지저분하다고 느껴야 할 감상은 우경에 한해서 한없는 설렘으로 느껴졌다. 해율은 이런 자신이 약간 미친 것 같았다.

우경의 말과 몸이 이제껏 단단히 걸어 잠갔던 빗장을 우악스럽게 풀어 헤치고, 그 구둣발을 들이밀어 제 안에 성큼성큼 발자국을 찧어 대는 것 같았다.

흐릿하게 남아 있던 옛 발자국조차 전부 그의 것이었다. 그러니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해율은 쾌감에 눈물을 흘리고 흔들리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흥분에 차올라 땀을 뚝뚝 흘리는 그의 뺨 위로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아래를 험악하게 짓쳐 올리는 그의 눈은 해율에게서 떠나지 않은 채였다. 해율의 온기가 그의 몸에 와 닿자, 순간 그가 동작을 멈췄다.

무슨 뜻인지 헤아리는 듯했다.

“하아.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해율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작은 음성은 마치 신음처럼 가녀렸다. 그의 뺨을 보드랍게 쓸어내렸다. 가느다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순전히 체력 탓이었다.

“더, 더 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까 그랬잖아요. 아예 걷지도 못하게……. 할 거라고. 그래서…….”

우물거리면서도 또박또박 얘기하자, 우경이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얼굴을 했다. 언제나 이지적이고 여유에 넘치던 그가 할 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자.

“아…… 이렇게 정말, 불시에 솔직하게 말하니까, 내가 완전히…….”

하하. 중얼거린 우경이 속으로 웃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탄성과 함께 터트린 말에 해율이 눈을 깜빡였다.

“그런 뜻 아니었어요?”

목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음란하고 저속한 농담을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해율은 자신이 무언가 착각했었나 싶은 얼굴이었다.

“아니, 맞아요. 그냥 순간, 내가 너무 저질 같아서요.”

“……우경 씨가 변태면 나도 변태인가 봐요.”

“음? 왜요.”

“나도 이 방에서 나가기 싫, 아흑……!”

해율이 조곤조곤하게 읊음과 동시에 그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아래를 흔들었다. 잘게 흔들기만 해도 그녀의 성감을 모조리 자극하는 거대한 크기였다. 질벽을 꽉꽉 메운 페니스가 뿌리 끝까지 들어갈 것처럼 깊숙이 박혔다.

“정말 미치겠어…….”

너 때문에.

마지막 말은 입 안으로 삼켰다. 그리고 해율의 부드러운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가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었다. 우악스럽게까지 느껴지는 허리 짓은 엄청난 속도로 재개됐다. 안에서 돌려지고, 비벼지고, 찔리며 마구 흔들렸다. 해율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아래가 깊은 호수에 잠긴 느낌이었다. 찌릿한 전율이 계속해서 온몸에 치달았다.

허리가 활처럼 휜 해율이 흐느꼈다. 곧 커다란 절정이 파도처럼 그녀를 집어삼켰다. 비명과 닮은 신음이 울음과 함께 터졌다. 쾌감을 이기지 못해, 그녀가 손톱을 세워 껴안은 우경의 등에 박았다.

우경의 몸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온몸의 혈류가 자글자글 끓어올라 폭발할 것만 같은 지독한 사정감에 몸을 맡겼다.

해율의 음부에서 쏟아져 나온 물이 파묻힌 성기에 가로막혀 내부에 고였다. 동시에 그가 싸지른 뜨끈한 정액이 콘돔 안에 막혀 있음에도 배 속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흐윽…….”

“하…….”

만족감이 깃든 나직한 탄성이 해율의 머릿결을 어지럽혔다. 우경이 콩닥콩닥 뛰는 해율의 심장 위로 물컹하게 입술을 짓눌렀다. 다디단 내음을 흠뻑 들이켜니 아래에 다시금 힘이 몰렸다.

“아……. 잠깐만요. 잠깐, 빼 주세요…….”

해율이 바르작거리며 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자 그가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허리를 비틀었다.

“아까 내가 뭐라고 알려 줬었는지 기억나요?”

“뭐를요?”

“나 빨리 싸게 하려면, 깨물거나 때리라고.”

“그런…….”

“괜찮아요. 원래 몸에 익으려면 반복 학습이 중요하니까. 처음만 힘들지.”

“농담하지 마세요.”

“진짠데.”

해율이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자 우경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허리를 뒤로 물렸다. 금세 딱딱해진 성기가 음부 밖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흐윽.”

밑으로 계속해서 물이 흐르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해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을 꽉 메우던 살덩이가 빠져나가자 어쩐지 조금 안이 텅 빈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 생각이 너무나 생경해서 해율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눈가가 붉어졌다. 힘이 빠져 버린 무릎을 채 모으지 못하는 동안 우경이 아래를 살폈다.

“아, 보지 마요!”

“조금 빨개졌네요. 많이 젖었지만 짓무르지는 않았어요.”

그는 마치 그녀가 대단한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칭찬하는 어투로 얘기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아래를 스윽 핥았다. 토닥이는 것처럼 빨갛게 융기한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핥다가 입술을 맞물려 비볐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해율이 허리를 튀었다.

“엄청 벌름거려요. 내 자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봐요. 자꾸 조르는 것 같아서 귀여워.”

“……우경 씨는.”

“응. 왜요?”

“……그런 말버릇이에요? 원래부터…….”

“글쎄요. 아마도.”

우경이 씨익 웃었다. 그가 여자와 관계한 것이 자신이 첫 상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우경이 침대 위에서 이면의 성정을 내보일수록 어쩐지 과거 지나간 그의 관계들이 생각나서 조금 침울해지는 해율이었다.

“원래부터 이랬는지도 몰라요.”

“네?”

“그런데 나는 해율 씨 앞에서만 이래요.”

우경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하지만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지금은 믿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욕심이 났다. 과거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 당장의 그가 욕심이 나는 마음을, 해율은 순수하게 인정했다.

“그럼…… 제 앞에서만 해 주세요.”

몸뿐인 관계지만 이런 요구쯤은 그가 농담으로 치부하더라도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 나 지금 당장 해율 씨 안에 안 들어가면 미칠지도 몰라요. 엉덩이 들어요. 바로 박을 거예요.”

가만히 듣던 우경이 돌연 새 콘돔을 씌운 자신의 성기를 퍽, 박았다. 질구는 언제 커다란 살덩이를 받았냐는 듯 다시 그의 성기를 꽉꽉 조이고 물어 댔다.

해율은 난폭한 움직임을 하는 우경의 등 뒤로 손을 둘러 꽉 안았다.

그가 문득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엄청난 자극에 의해 거의 까무러치기 직전인 해율의 귀에는 먹먹함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어차피 해율의 귀에는 들릴 일이 없었다. 질척한 소리에 묻힌 음성은 혼잣말과 가까웠기에.

……어쩌면 처음부터였는지도 몰라.

* * *

아.

목 안쪽이 까끌까끌했다. 눈을 떠 겨우 시야를 확보하자 해율의 눈에 익숙한 공간이 보였다. 순간 떠오른 익숙한, 이란 감상에 속으로는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침대 위를 짚어 상체를 일으켰다. 목 끝까지 덮어 둔 이불이 상체를 쓸어내리듯 아래로 떨어졌다.

방 안은 껌껌했다.

“우경……. 흠, 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목을 감싸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계속해서 내지른 교성 때문이리라. 하긴, 목이 상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우경은 해율이 거의 울어 젖히다시피 하며 진저리를 칠 때까지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그녀의 안을 들쑤셨다. 괜찮다고, 곧 끝내겠다고 다정하게 위로하는 그는 말과는 달리 아래를 난폭하게 헤집었다.

눈물을 입으로 죄 빨아 마시고 아래에도 얼굴을 붙여 사납게 흔들면서도, 또다시 해율이 흥분하면 언제 사정했냐는 듯 부풀어 오른 성기를 뿌리 끝까지 처박고는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었다. 나중에는 그의 불알까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 지레 겁을 먹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지만.

네 번째, 다섯 번째……. 얼마나 했더라.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목이 탔다. 고개를 돌려 사방을 휘 둘러보니 우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해율이 살며시 다리를 침대 밖으로 꺼냈다.

“흣.”

가랑이 사이가 아려 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 퉁퉁 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끈적거리거나 찝찝한 느낌은 없었다.

‘씻겨 준 건가.’

덤덤하니 멍하게 생각하다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신을 잃은 자신의 몸을, 그가 물에 젖은 수건으로 닦아 주던 게 얼핏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으응, 하고 뒤채는 해율을 토닥이며 차갑게 식은 물을 아래에 가져다 대고 열기를 식혀 주었다. 많이 부었네, 안쓰러워라. 그렇게 중얼거리는 음성이 문득 생각났다. 하지만 걱정 어린 어조와는 달리 기쁜 듯해 보이는 미소가 어른거리는 시야에 잡혔던 것도 느닷없이 뇌리에 스쳤다.

‘진짜 변태.’

그가 이럴 줄은 몰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끔하고 단정한, 그야말로 잘 자란 도련님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우경이었다.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해율이 이불을 몸에 둘둘 두르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물병을 분명히 가지고 왔던 것이 기억이 났는데 어디에 둔 건지 모르겠다. 우경을 불러 보려 입을 열었다가 콜록 기침만 터졌다.

우경의 방 안은 넓었다. 가구도 큼직큼직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커다란 책상과 커다란 책장. 하지만 옷가지를 넣는 옷장은 없었다. 아마 드레스 룸이 따로 있을 것이었다. 이런 커다란 저택은 으레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해율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책장에는 책이 가득했다.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해율의 가장 커다란 흥밋거리 중 하나이기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그의 성정을 대변하듯 책들이 크기별로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눈에 닿는 칸부터 찬찬히 훑었다. 수필부터 시집, 추리 소설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었다. 그것조차 칸별로 장르를 구분해서 꽂아 둔 것이 해율의 눈에 들어왔다. 철두철미한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했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모습을 해율은 조금 알 것 같았지만, 이렇듯 그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은 뭔가 새로웠다. 책등을 보며 어쩐지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까지 빠질 정도였다.

책 취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혹자는 반대할지도 모르겠지만 해율은 어느 정도는 찬성하는 편이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묘한 친밀감이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그의 책장에서 그녀가 재미나게 읽었던 번역 소설을 발견하고 나서 떠오른 감상이었다.

이 책 나도 있는데. 몇 번이나 정독했을 정도로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해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느새 책장을 훑어 내리는 그녀의 얼굴에는 유쾌함이 가득했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연결된 것 같았다.

어쩌면 그와 책에 관한 얘기를 오랫동안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오른쪽 책장으로 건너가자 이번에는 영어로 된 원서가 나열해 있었다. 독일어를 배우고 싶었다던 그는 아마 영어 정도는 충분히 마스터했을 것이었다.

몇 개는 고전 작품도 있었다. 해율이 눈을 빛내며 손으로 그것들을 훑었다. 그러다.

‘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해율의 고개가 사선으로 기울어졌다. 책이 들쭉날쭉하게 꽂혀 있었다. 왼쪽 책장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이지만 시리즈물이 분명한데도 중간에 다른 책이 끼워 넣어져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건…… 독일어였다. 독일어로 된 책이었다.

해율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책장 자체가 그의 머릿속을 대변하는 것처럼 확연히 취향이 드러나 있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장식용으로 책을 꽂아 둔 게 아닐 터였다. 그런데 독일어로 된 원서라니.

독일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니, 일부러 사 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미리 책을 사 두고 언어를 배운 다음에 읽으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해율이 조심스레 그 책을 꺼냈다. 하지만…… 도무지 새 책 같지는 않아 보였다. 책 귀퉁이에 사람 손때가 묻어 있었다. 홀린 듯 커버를 열었다. 그러자 중간쯤 어느 한 페이지가 자연스럽게 훌쩍 열렸다. 꼭 누군가가 한참을 읽다가 만 것처럼, 모서리가 조금 접혀 있었다.

“일어났어요?”

“아.”

뒤에서 들린 소리에 해율이 놀라 책을 확 덮었다. 그리고 허둥지둥 책을 꽂아 넣으며 대답했다.

“우경 씨.”

“배고플까 봐 요기할 거리 좀 가져왔어요. 뭐 보고 있었어요?”

“고마워요. 그냥, 책장 보고 있었어요.”

“음. 뭐 재밌는 거라도 발견했어요?”

“네?”

나른하게 웃으며 던지는 말에 해율이 입을 달싹였다.

“소설이나 시집도 많이 보시나 봐요.”

“가끔요. 요새는 바빠서 도통 시간이 안 나네요.”

“그래요? 원서도 많이 있더라고요.”

“아아. 저희 부모님 취미세요, 원서 모으는 거. 그래서 저도 덩달아 보지도 않는 원서를 책장에 꽂아 넣게 됐네요. 당신들 책장 공간이 부족하다고 하시면서.”

“그렇구나.”

해율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럼 독일어 원서로 된 책은 부모님이 보던 걸까? 누가 봐도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던 흔적이 묻어 있던 책이었다. 독일어를 아예 몰라서 과외를 구한다던 우경이 원서를 볼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우경의 설명에 그럼 부모님이 보시던 거구나, 하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 해요?”

“아, 아무것도요. 그냥 배고파서…….”

해율이 고개를 내젓자 그가 훗, 하고 웃었다. 이불을 돌돌 말아 머리께까지 둘러쓴 해율은 우경의 어깨높이 정도 신장이었다. 그게 못내 귀엽다는 듯 그녀의 모습을 훑은 그가 치아바타나 버터 등이 올려져 있는 트레이를 협탁 위에 놓았다.

“아래는 괜찮아요?”

그리고 한 걸음씩 다가왔다. 해율이 말간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자 그가 말을 덧붙였다.

“보지 안 아픈가 해서요. 많이 부었던데.”

“아.”

단정한 입매에서 뱉어지는 노골적인 언사는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을 때면 더더욱.

얼굴을 물들이며 시트 자락을 꼼지락거렸다.

“괜찮아요. 조금 쓰리긴 한데 그래도 걸을 만해요.”

“그래요? 그럼 안 되는데.”

“뭐가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의 해율을 향해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귀까지 덮은 하얀 시트 위로 그의 뜨거운 숨결이 와 닿았다.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안아 준다고 했잖아요.”

마치 서로 약속했다는 듯 태연한 그의 말에 해율이 입술을 내밀었다.

“저 그럼 집에는 어떻게 가라고요.”

“어떻게 가긴요. 여기 있으면 되죠.”

“장난하지 말아요.”

시답잖은 농담이 오갔다. 문득 이렇게 서로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그와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것을 상상해 보지 않았다. 현우경은 해율에게 있어 빛바랜 추억 속 첫사랑일 뿐이었는데.

우경이 입술을 내렸다.

해율이 작게 입을 열었다. 미지근한 살이 호흡 사이로 뭉개졌다. 어느새 책장의 일은 해율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잊혀 갔다. 뜨거운 체온을 나누며 그의 품 안에서 잔뜩 헐떡였다.

* * *

“하.”

조 모임을 포함한 학교생활은 순조로웠다. 우경과의 농밀한 밤 이후로도 해율은 일상을 평소처럼 영위해 갔다. 그가 자신에게 품는 감정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으리라고 자신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그렇게 심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기에 해율 또한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홀로 마음을 삭이고 지금의 체온만 나눌 수 있으면 그대로도 족했다.

하지만 반작용은 무척 심했다.

집에 와서 통장 앱을 열어 이달 치의 이자를 매달 송금하는 계좌로 부쳤다. 정확히는 이자와 원금 일부였다. 그래 봤자 아직 갈 길이 구만리였다. 갚아야 할 금액이 한참 남아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해율의 유일한 피붙이인 이모가 질병을 앓으면서 들어간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골병이 든 것이 틀림이 없었다.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줄 다른 어른도 곁에 없었다. 자신의 돌봄이 필요한 이모는 병상에 누워 있었고, 하루 입원비만 해도 해율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기다 신장 이식까지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불법 사채업자에게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1년만 버티면, 이모가 조금만 더 버텨 주면, 함께 힘을 모아서 금방 갚아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이모는 해율이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리고 해율에게 남겨진 것은, 엄청난 빚더미뿐이었다.

그나마 부모님의 빚은 이제까지 아끼고 아껴 가며 모은 돈으로 얼마간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채 빚은 달랐다. 끝이 없는 암흑이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무저갱이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었다. 그나마 이자만은 어떻게든 갚아 나갈 수 있었지만 원금은 달랐다. 갈수록 불어 가는 원금은 불시에 해율의 가슴을 턱 막히게 했다.

“후.”

이체 완료.

겉으로는 꽤 신사적이고 합법적인 모습을 꾸미고 있는 이 사채업자 집단은 해율에게 직접적으로 빚을 채근하는 일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이체하고 있는 탓일까.

그래서였다. 우경과 떨어져 있는 지금, 우경의 집에서 한 발자국만 걸어 나온 지금, 해율의 앞에 닥친 것은 한없이 까마득한 절벽뿐이었다.

순식간에 현실로 끌어 내려졌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을 간신히 버틸 뿐이었다.

샤워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툭툭 털었다. 벽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삼켰을 때였다. 손에 든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누구지. 휴대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미간이 설핏 찡그려졌다. 오형욱……. 그 이름을 보자마자 대번에 피로가 훅 몰려왔다. 하아. 입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던 사이에 발신음이 뚝 끊겼다. 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이 꺼지기도 전에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도 오형욱이었다. 해율이 아랫입술을 잘근 물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어, 해율아. 야야, 너 지금 뭐 해? 혹시 자고 있었어?

“아니.”

단답식으로 대답했다. 통화 건너편에서 라디오 소리와 내비게이션 안내 음이 뒤섞여 먹먹하게 들려왔다.

- 너 그럼 나올래? 야경 좋은 데 가서 우리 한잔하자. 어때?

“…….”

이런 야심한 시각에 대뜸 전화를 걸어 놓고, 오형욱은 아무런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 어투로 제멋대로 떠들었다. 해율이 한숨을 삼켰다. 이제 확실히 말할 때가 온 듯했다.

“형욱아.”

- 어. 준비 얼마나 걸리냐?

“정말 미안한데, 이제 연락 안 해 줬으면 좋겠어.”

- 뭐?

“이제 앞으로 나한테 이렇게 사적으로 연락 안 했으면 좋겠어. 네가 이러는 거 나는 상당히 부담스러워.”

-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정색한 그의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내 말 그대로야. 사실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친구로라도 연락하자는 말은 하지 않을게. 너한테 괜한 기대만 줄 바에야 그냥 서로 앞으로 모르는 척하는 게 나은 것 같아서 그래.”

- 하.

짧게 헛웃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끼익- 하고 차가 급정지하는 브레이크 소리까지.

- 너 혹시, 저번에 학교에 왔던 그 새끼 때문이냐?

“무슨 소리야?”

- 씨발. 왜 모른 척하는데. 너 아주 샅샅이 발라먹을 것처럼, 날 아주 죽일 것처럼 쳐다보던 그 새끼 말이야.

해율이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혹시나.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 하, 맞구나? 이런 씨발, 너 걔한테 다리라도 벌려 줬냐? 어? 걔랑 붙어먹어서 이래?

“너 지금 말 과해. 선 넘었어.”

들려오는 모욕적인 말에 해율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오형욱에게 던지는 말미가 살짝 떨렸다.

- 아……. 미안. 내가 말실수했다. 야, 미안, 미안. 우리 그냥 만나서 얘기하면 안 될까? 나 지금 너희 집에…….

“아니. 그냥 이걸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 동기로서는 잘 지내 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여기서 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가 해율에게 다가오는 행동들은 해율을 피곤하게만 만들었다.

“미안해. 이렇게밖에 말을 못 해서.”

냉정하게 말하지 않고 에두르면 안 될 것 같았다.

- …….

“끊을게.”

뚝.

한 번의 터치로 통화를 바로 종료했다. 너무 심했나. 아니, 하지만, 잘한 거야.

휴대폰을 들었다. 이후로 걸려 오는 통화는 없었다. 오형욱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나 어설프게 거절하느니 이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학교생활에 크게 욕심이 없는 해율이었기에 그가 어디에 가서 뭐라 하든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저 지금은 쌉싸래한 후련함이 앞섰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갔다. 일주일에 두 번, 우경을 만나는 날 이외에는 그저 무미건조한 일상생활만 영위할 뿐이었다. 시간의 흐름만 기다리는 어리석은 아이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과외를 하는 날과 섹스하는 날을 분리하고 난 후, 처음 맞는 수요일에도 해율은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해율을 맞이했고, 또 그날은 도우미 아주머니도 저택에 함께 있었다. 과일과 주스를 가져다준 것은 우경이었지만, 1층에서 들리는 생활 소음에 해율은 어깨에서 긴장을 풀고 진지하게 가르치는 데에 임했다.

그리고.

“아, 흐응…….”

또다시 찾아온 금요일.

우경은 마치 이틀간 이때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차에 올라탄 해율에게 키스부터 퍼부었다. 수요일로부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고, 과외를 할 때의 우경은 전혀 성적인 긴장감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잘 듣는 학생으로 해율을 마주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해율을 잡아먹기 위해 작정을 한 성인 남성이었다. 분위기부터 아예 달랐다.

해율을 대하는 시선과 눈빛, 그리고 목소리 톤까지 다르게 느껴졌다.

아니, 아닐지도 몰랐다.

그 차이를 느낀 것은 해율의 자의적인 판단일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음에도 해율이 금요일의 그를 더욱 색스럽게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춥. 젖은 소리를 내며 맞물렸던 입술이 떨어졌다.

동그란 어깨를 만지작거리던 커다란 손이 아쉬운 듯 멀어졌다.

“큰일이네요.”

뭐가요? 라는 눈빛으로 촉촉하게 젖은 눈을 하고서는 쳐다보자, 우경이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얼굴로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집까지 못 참을 것 같아서.”

“…….”

그 말에 해율의 아래가 지끈거렸다. 아랫배가 꽉 죄어들었다. 지금 차는 해율의 집 근처 골목에 세워 둔 상태였다. 바로 저번에 그의 손가락이 안을 헤집었던 바로 그 가로등 아래였다.

……인적이 드문 곳이긴 하지만, 순간 떠오른 생각에 해율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저번에도 행인이 지나다니지 않았던가. 밖에서 음란한 행위를, 그것도 섹스하는 것 자체는 해율로선 이제껏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우경과 함께하며 어느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해율의 속을 알아챘는지, 아니면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혼자 쩔쩔매고 있는 해율의 반응이 그저 웃긴지, 그가 문득 입매를 길게 늘어트려 웃었다.

“얼른 출발할게요. 이러다가 해율 씨 얼굴 터지겠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이라면.”

해율이 말꼬리를 길게 늘렸다.

아, 내가 무슨 말을. 이제는 목덜미까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아.”

해율이 스스로 뱉은 말을 철회하려 급히 입을 열자, 우경이 나직한 한숨과 함께 차 핸들에 머리를 내렸다.

“왜 그러세요?”

“아, 해율 씨 때문에 미치겠어요.”

“뭐가요?”

“자지 터질 것 같아요.”

느닷없는 노골적인 언사에 해율이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여기서는 안 해요. 그래도 급한 불은 좀 꺼야겠어서.”

우경이 상체를 세우더니 이내 기어를 바꿔 넣었다.

“해율 씨가 원하는 대로 해야겠네요.”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해율이 황급히 손을 내젓자 그가 씨익 웃으며 해율에게 시선을 던졌다. 하아. 어깨가 아래로 늘어졌다.

“그래도 안전 운전해 주세요.”

“네? 아하하.”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던 우경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못 당하겠다는 듯 입에서는 연신 피식피식 바람이 샜다.

내가 그렇게 웃긴 말을 했나? 해율의 입술이 조금 앞으로 튀어나왔다. 유독 우경의 앞에서는 제 속내가 여실히 겉으로 드러났다. 요새 들어서 특히 그러했다.

그러자 우경이 뾰족해진 해율의 입술을 제 것으로 잡아챌 기세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미미하게 그려진 입술의 호선 외에는 웃음기가 싹 가셔 있었다.

진짜 쌀 것 같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해율의 귀까지 들리지 않았다.

* * *

“아, 아아, 흐으아……!”

거친 숨소리가 귓가로 흩뿌려졌다. 자지러지는 신음이 차 내부를 가득 메웠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새벽의 어두컴컴한 산길 초입이었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터였지만 해율은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래도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동그랗게 올라붙은 엉덩이가 가죽 시트 위에 뭉개졌다. 뒤로 뻗어 상체를 받치던 팔의 힘이 자꾸만 풀렸다.

“으응!”

해율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아.”

그때 우경이 해율의 가랑이 사이에 파묻었던 얼굴을 위로 들었다. 우경의 눈빛은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짙게 번들거리는 다갈색의 눈동자 안에는 정염이 고요히 넘실거렸다. 그의 입술과 주변은 애액으로 잔뜩 번지르르했다. 그가 지금까지 코를 처박고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행색이었다.

“조금 더 엉덩이 들어 볼래요? 응. 그렇게.”

“아아!”

어질어질한 머리로 우경의 말을 따라 엉덩이를 조금 들썩이자, 그가 손쉽게 해율의 허리를 받치고는 하체를 아예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쭈붑, 쭈붑 하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리도록 음부에 또다시 얼굴을 내려 게걸스럽게 빨아 대기 시작했다.

우경의 단정한 머리는 옅게 맺힌 땀에 의해 끄트머리가 젖어,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물기 어린 눈으로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해율이 교성을 참지 못하고 내질렀다. 그가 입술로 클리토리스를 갉작이며 물어 온 탓이었다.

이미 해율의 상의는 가슴 위까지 끌어 올려져 있어, 그가 훑고 지나간 흔적만을 하얀 살결 위에 가득 남긴 채였다. 가슴 위로 흩뿌린 울혈과 같은 애무가 음핵에 가해지자, 해율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그, 그만요. 거기, 흐윽. 그만…….”

“응……. 알겠어요. 나도 이제 한계에요.”

절박한 해율의 말에 우경이 퉁퉁 부은 음핵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한 차례 훑은 그는, 상체를 올려 해율의 턱 끝에 쪽,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입술을 붙였다.

하아. 해율이 뜨거운 숨을 내쉬며 우경을 바라봤다. 공중에서 시선이 얽혔다. 그 또한 해율을 진득하게 바라봤다.

“…….”

달아오른 공기가 머리를, 그리고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우경의 매끄럽게 뻗은 콧날과 티 한 점 없는 미끈한 피부, 그리고 아직도 젖어 있는 관능적인 입술을 눈에 담았다. 고등학생 때에도 어른스러운 얼굴이라고 반 아이들이 저들끼리 떠들고는 했었지만, 지금의 그는 이제 앳된 티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완연한 직선만을 담고 있었다. 가파르게 깎인 턱 아래로 이어진 두꺼운 목이 그런 남성스러움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민망하고 흥분되는 행위에서 기인한 감정이 아닌 것을 자신도 알 수 있었다. 해율이 입을 달싹였다. 그도 해율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얄팍한 숨이 그의 얼굴 위로 흩어졌다. 그의 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율이 이윽고 입을 열었을 때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가방 안에 담긴 해율의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라 어깨를 굳힌 해율이 가방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아, 전화…….”

“…….”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경의 팔 안에 갇혀 있는 해율은 벗어나는 몸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한 얼굴로 가만히 있자 한참을 울리던 전화는 곧 뚝 끊겼다.

하지만.

뚜르르르. 뚜르르르.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받아 봐요.”

“네.”

우경이 상체를 일으켰다. 해율이 더듬더듬 자신의 가방 안으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꺼냈다.

눈이 크게 뜨였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오형욱이었다. 대체, 왜. 분명히 그렇게 단호하게 말했는데, 다시금 연락이 오다니. 해율이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만 있자, 우경이 고개를 기울였다.

“받아요. 괜찮으니까.”

“아, 아니. 안 받아도 돼요.”

해율이 고개를 내젓자 다시금 벨 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아예 전화를 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우경이 해율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오형욱.”

“동기예요.”

“저번에 그 남자, 맞죠?”

“네.”

순간 우경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괜찮으니, 받아요.”

강요도 무엇도 아니었지만 해율은 어쩐지 그가 이 전화를 받았으면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해율의 손에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이미 통화 버튼은 눌려 있는 상태였다.

“어?”

통화가 시작된 것을 알리는, 초시계의 숫자가 바뀌는 화면을 얼떨떨하게 바라보고만 있는데, 스피커를 통해 오형욱이 해율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율아, 해율아.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부르는 소리에 오싹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지만 해율은 “잠시만요.”라고 우경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귀에 휴대폰을 가져갔다.

하지만.

“흡!”

해율이 경악에 눈을 크게 떴다.

스피커에서는 계속해서 여보세요? 하는 걸걸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율의 신경을 앗아 간 것은 오형욱이 아니었다.

“으, 흡.”

해율이 자신의 손바닥으로 제 입을 꽉 틀어막았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통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경이 다시금 자신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은 것이다.

아, 안 돼. 해율이 우경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아래에서 물소리가 연신 울렸다. 통화를 꺼야 해. 해율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휴대폰의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자꾸만 터지는 신음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힘이 빠진 손에서 휴대폰은 시트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아!”

순간 교성이 짧게 터졌다. 고개를 가로로 내저어도 우경의 애무는 더 과격해져 갔다. 두툼한 혀가 음순을 옆으로 밀어 헤치고 질구 안으로 쑥 들어왔다.

미쳤어. 어떡해.

이런 상황에서도 애액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우경은 그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핥아먹을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려 쭉쭉 빨아 댔다.

흐으응!

신음을 삼키는 것이 고역이었다. 눈꼬리 끝에 눈물이 맺혔다.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시간이 카운트되고 있었다.

안 돼요. 그, 그만…….

속삭이는 말조차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앙!”

우경이 혀를 갈고리처럼 만들더니 질 내벽으로 쑤셔 박아 왔다. 그리고 안에서 질금질금 흐르는 애액을 혀로 모아 제 입으로 가져가 꿀떡꿀떡 삼켜 댔다. 마른 목을 축이는 짐승 같았다.

하아. 나른한 탄성을 뱉은 그가 이번에는 혀를 넓적하게 만들어 음핵부터 회음부까지 넓게 쓸어내렸다. 해율이 울먹이며 고개를 젖혔다. 머릿속에는 전화를 꺼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몸은 쾌감이라는 파도에 이리저리 부딪쳐 부표처럼 속절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우경이 눈을 위로 떴다. 그리고 흘긋 아래에 놓인 휴대폰을 보더니 부러 소리를 내려는 듯 춥, 쭈웁 소리가 나도록 진득하게 아래를 핥았다. 느릿하면서도 게걸스러운 동작은 정말로 짐승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고개를 올리더니 부풀어 오른 음핵을 입에 담고는, 빠끔거리는 질구에는 손가락 두 개를 한 번에 박았다.

“……!”

해율이 입술을 짓씹었다.

안 돼, 소리가. 도저히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해율이 겨우 손을 들어 우경의 어깨를 손가락 끝으로 쳤다.

하지 마요, 제발. 해율의 눈에서는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문득 아래에 뜨끈한 한숨이 터지는가 싶더니, 우경이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들어 올려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툭 던지고는.

“아앙, 아, 아아……! 흐읏! 아!”

구멍 안에 손이 전부 들어갈 기세로 손가락 네 개를 한꺼번에 퍽, 박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강하게 박아 넣은 손 전체를 탈탈 털 듯이 좌우로 흔들며 클리토리스를 입술로 짓씹었다.

감당할 수 없는 자극에 해율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몸을 떨었다. 내벽이 손가락을 전부 잘라 먹을 듯이 꽉 죄어들었다. 아랫배가 저릿했다. 강한 자극에 흔들리던 해율이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하지만 아래가 좀 더 조여들기 직전, 돌연 우경이 손가락을 훅 빼내며 상체를 세웠다.

가득 차 있던 안이 텅 빈 느낌에 해율이 어리둥절해 있던 때였다.

“흐앙!”

퍽!

우경이 잔뜩 성이 난 성기를 곧바로 벌어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치골과 엉덩이가 철썩,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한껏 들러붙었다가 끈적하게 떨어지는 소리까지 선연했다.

목덜미에 핏대가 굵게 일어선 우경이 허리를 길게 뒤로 물렸다가 다시 짓쳐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해율의 마른 허리를 양손으로 옥죄듯 부여잡고는 허리를 흔들었다.

우경의 입에서 욕설이 맴돌았다. 하지만 잇새로 흘러나온 것은, 어금니를 꽉 다물어 목구멍 새를 비집고 나온 신음이 짓이겨지는 소리뿐이었다.

“아, 안, 잠까, 흑, 너무, 아아, 빠, 빨, 으응!”

차체가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지러운 감각이었다. 빠르게 처박다 못해 음핵이 뭉개지는 감각에 입이 크게 벌어졌다.

씨발, 이렇게 맛있어서는. 문득 우경이 낮게 지껄였다. 해율은 우경의 상의를 거의 뜯어 발길 듯이 꽉 그러쥐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독한 쾌감 탓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교는 해율을 봐줬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금 우경의 허리 짓은 가히 너절하다고 치부해도 좋을 만큼 음탕하기 짝이 없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과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엉덩이 골로 흐른 액체로 인해 가죽 시트와 살갗이 쩍쩍 들러붙었다. 우경이 해율의 작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감싼 채 들어 올렸다. 더욱 결합이 깊어졌다.

우경의 돌덩이 같은 몸이 바짝 굳었다. 가뜩이나 좁은 내벽이 우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해율이 키스라도 해 준다면 곧바로 사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한번 깊숙이 파고들 듯 좆을 처박았다.

“다리를 내 뒤로 감아요.”

“흣, 히, 힘들, 으흑.”

“어서.”

낮게 뇌까린 말에 해율이 덜덜 떨리는 다리로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더욱 깊숙이 맞물렸다. 더, 더 깊게 들어갈 수 없음에 우경이 탄식을 삼키며 접합부를 내려다봤다. 어찌나 격하게 몰아세웠던지, 하얀 거품이 새어 나와 성기 사이에 끈적하게 엉겨 있었다.

우경은 당장이라도 해율의 휴대폰을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아까 해율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우경은 어떤 생각을 떠올렸던가.

그는 이제껏 패배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남자였다. 누군가의 발밑에 꿇어 본 적도, 누군가에게 빌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새카만 눈동자에 우경은 애원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면, 그는 뱉어 냈을 터였다. 그조차 예상하지 못한 아주 처절한 애원을 그녀에게 뱉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꿈틀거리는 점막이 우경을 빠짐없이 감쌌다. 우경은 이를 빠득 갈더니 다시금 추삽질을 재개했다.

강렬한 전율이 온몸을 치달았다. 그녀의 안은 좁디좁았다. 그리고 따듯했다. 영원히 이 안에 있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는…….

“흐!”

“아아……!”

우경이 난잡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억센 움직임에 암석처럼 단단해진 허벅지가 그녀의 무게를 오롯이 받쳐 주었다.

“우, 우경. 우경 씨……. 나, 나 이상, 흑, 이상해요, 하읏!”

“어디가, 후, 이상한데.”

“밑에, 이상하, 흐윽, 나올 거, 아, 아아…….”

“괜찮아요. 내가 다 해결해 줄게.”

말과 동시에 우경이 좀 더 빠르게 허리를 털어 댔다. 치대는 소리가 낭자하게 울려 퍼졌다. 해율의 발끝이 뻣뻣하게 곱았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요란하게 경련을 시작하며, 음부에서 물이 터졌다.

우경이 성기를 단번에 빼냈다. 그리고 아까처럼 아래에 얼굴을 붙였다.

“으, 아아, 안, 흐아아!”

연신 빠끔거리는 구멍에서 애액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쏟아졌다. 우경은 이때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입술을 흡착시키고는 꿀꺽꿀꺽 전부 받아 마셨다. 덜덜 떨리는 하얀 허벅지를 부여잡고는 머리를 돌려 가며 액체를 남김없이 목구멍 뒤로 삼켰다.

“하…….”

만족스러운 탄성과 함께 잔뜩 젖어 있는 음부와 허벅지, 그리고 회음부로 이어지는 골짜기까지 삭삭 핥았다. 깨끗하게 정리하면서도 맛을 음미하며, 젖은 입술에 호선을 걸친 그가 상체를 세우더니 손으로 제 성기를 빠르게 훑었다.

그러고는.

“흣!”

울컥울컥. 그의 요도구에서 터진 희끗한 정액이 해율의 허벅지에 흩뿌려졌다. 뜨거움에 기진해서 몸을 늘어트린 해율이 몸서리쳤다. 길고 질긴 사정이었다. 커다란 성기를 물고 있던 탓에 새빨갛게 부은 점막이 엿보일 정도로 벌어진 구멍을 보며, 우경이 남아 있던 정액까지 전부 짜내듯 그녀의 허벅지를 점액질로 더럽혔다.

“하아, 하아…….”

가슴팍이 격하게 들썩일 정도로 격렬한 성교에, 해율은 팔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눈이 끔뻑끔뻑 자꾸만 무거워졌다.

“해율 씨.”

“으응…….”

해율은 부름에도 어설피 대답하며 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까 전 울렸던 통화 따위 안개처럼 희미해져 있었다. 지금 당장은 지친 몸을 쉬고 싶었다.

해율이 멍한 얼굴로 우경을 바라보다 작게 그를 불렀다.

우경 씨…….

그러고는 설핏 미소 지었다. 눈꼬리를 휘고 작은 입술을 초승달처럼 예쁘게 접어서는, 그를 향해 사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일순간 우경이 숨을 멈췄다.

“……나, 졸려요…….”

그녀가 그 말과 함께 스르르 잠에 빠졌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 짐승에 몸을 내맡기듯, 그렇게 안심한 얼굴로 미미한 미소를 머금고는 눈을 감았다.

색색거리는 숨이 들렸다. 그녀는 피곤하면 쉽게 잠드는 스타일이었다. 일전에도 같은 일이 있지 않았는가.

“……해율 씨.”

우경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고른 숨뿐이었다. 우경이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푸스스 입에서 새어 나온 다디단 숨이 얼굴 위에 흩어졌다.

아.

우경이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가슴 부근에 손을 올렸다. 어디라고 할 수 없는 부근이 미친 듯이 아려 왔다. 들숨을 한껏 콧속으로 들이켠 우경이 해율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언어가 되어 나오지 못한 말이 입 안에 맴돌았다.

우경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해율의 단 내음만을 쫓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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