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46)

Final Movement

1.

[……(전략) 왕자의 사생아라 주장하는 아이를 안고 창월궁으로 쳐들어간 헤냐 로페르 양의 행위는 천박하고 뻔뻔하며 수치스러운 것이라 매도하는 목소리가 높다. 린스베른 왕자 측이 그녀를 망상증을 앓는 가련하고 불쌍한 미치광이로 몰아 대고 있는 가운데, 본 기자는 헤냐 로페르 양의 뒤를 이어 줄줄이 치안 본부에 모습을 드러낸 왕자의 피해자들에게 주목했다. 나이도, 출신도, 심지어는 혼인 여부도 제각각인 이들이었으나 공통점은 뒤를 돈 채로 사진을 찍었을 때 명백해졌다.

린스베른 왕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누나와 저렇게나 뒷모습이 닮은 여자들만 골라 추행했던 걸까? 본 기자가 독점적으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치안 본부에 찾아간 여자들의 몸에는 약속이나 한 듯 흉터가 남을 정도로 심한 채찍 자국, 날카로운 것으로 베인 자국, 뜨거운 것으로 지져진 자국이 있었다 한다. 그들의 공통된 증언에 따르면 왕자는 성행위 시에는 언제나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엎드린 자세에서 가혹행위를 포함한 성교를 했다고 한다.

본 기자는 이전에 레티시아 공주의 정식 약혼자가 된 레스 키시르 경이 꽤 많은 양의 퇴직금을 누군가에게 보내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 수령자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 수령자들의 대다수가 이번 사건으로 치안 본부에 찾아간 여자들이라는 것이었다. 키시르 경은 한정된 퇴직금을 쪼개고 쪼개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보낸 것임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레스 키시르 경이 근무 중 주둔지를 이탈해 민간인들을 겁간해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었다. 셀레스트 전선의 주변 마을 출신인 왕자의 피해자들에게 이 사실을 물으니 입을 모아 그것은 사실무근이라 주장했다. 레스 키시르 경이 마을에 찾아왔던 것은 당시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왕자를 찾기 위해서라는 말만 덧붙였다.

그러면 본 기자는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레스 키시르 경이 강간했다는 그 수많은 피해자는 어디에 있는 것이며 이것이 혹시나 사실무근인 소설이라면 대체 누가, 무엇을 목적으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이 스캔들의 이면에 얼마나 소설 같은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될 뿐이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오늘 자 조간을 뒤적이고 있던 레오르나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누군지 머리 좋은데?”

별 영양가 없는 가십들만 써 재끼기에 저평가되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으나 기자들은 본래 머리가 나쁜 족속들이 아니었다. 힌트만 적당히 주면 알아서 아주 진실에 가까운 답을 찾아낸다.

레오르나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고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왕태녀 전하! 이 전대미문의 스캔들에 대해서 뭐라고 한말씀 해 주시지요!”

“왕자님 측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시는데 이걸 믿으시는지요?”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야 이 일을 공론화시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전하께서는 헤냐 로페르 양의 아이가 정말 왕실의 핏줄이라 생각하십니까?”

아이를 안아 들고 창월궁 앞으로 찾아왔던 헤냐 로페르를 비롯해 그 뒤를 따르듯 찾아왔던 세 명의 여자들이 조사를 받는 브륀셸 경시청 앞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규모 스캔들의 냄새를 맡고 대기 중이던 기자들과 이로 인해 변화할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업가들과 정치가들의 비서들, 그저 흥미를 위해 몰려든 일반 군중까지. 득달같이 몰려든 이들의 무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레오르나는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앞장서는 경호원들이 없어도 군중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 길을 비켰다.

그녀가 경시청 안으로 들어가자 일대에 소란이 일었다.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건물의 심장부, 고위 귀족과 왕족들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 수사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마주친 수사관들이 기겁했다.

“와, 왕태녀 전하, 여긴 대체 무슨 일로―.”

“공무로 잠시 실례하지.”

당황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는 수사관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자 순식간에 수사관들이 뒤처졌다.

“더 이상 들어가시면 안 됩…….”

그녀를 막으려는 목소리가 경호원들의 몸에 막혀 사그라졌다. 감히 그녀의 몸에 손을 대 막을 수도, 상징적으로나마 경시청의 수장인 국왕의 적장녀를 쫓아낼 마땅한 명분도 없어 수사관들이 재빨리 그녀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러다 청장이 찾아오면 문제가 복잡해지기에 레오르나는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브륀셸의 경시청장은 모왕의 가장 큰 지지자 중 하나이고, 덕분에 그는 그녀와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라니까 왜 입을 다물어?”

특수부에 가까워지자 벽 너머로 탕탕 책상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지금 9개월이면 18개월에서 최소 16개월 전에 임신했다는 말이잖아. 그사이에 왕자님과만 관계를 맺은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아니, 그 상대가 왕자님이었다는 걸 확신이나 할 수 있어? 어두웠다면서.”

“…….”

“어둡고, 뒤에서 덮쳐져서 반항하기도 어려웠다면서. 눈이 가려지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박혔다면서 어떻게 그게 왕자님이었다는 걸…….”

똑똑, 일부러 크게 인기척을 내자 헤냐 로페르를 잡아먹듯 몰아 대고 있던 수사관의 말이 뚝 끊겼다. 낭패라는 듯한 표정을 애써 숨긴 수사관이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왕태녀 전하, 여긴 대체 무슨 일로.”

“왕실의 일인데 모왕께서 다망하시니 내가 직접 살펴볼 수밖에.”

파라락, 소리와 함께 수사관 앞에 놓여 있던 수사일지의 페이지가 넘어갔다. 가볍게 훑어본 것만으로도 대단히 엉성하고 성의 없게 작성된 일지. 남자 귀족이나 부유한 중상층의 사생아 스캔들이 늘 그렇듯 그리 어느 순간 소리소문없이 묻히고 없던 것이 되어 버리겠지.

“헤냐 로페르 양 되는가? 레오르나 레반스타인이다.”

“전하.”

자리에서 급히 일어서 깊게 몸을 숙여 예의를 표하는 여자를, 그녀의 붉은 머리칼을 바라보며 레오르나는 린스베른을 향한 생리적인 혐오감에 솟아오르는 구역질을 참았다. 레오르나의 몸이 헤냐 로페르와 함께 낮아지더니 결국은 그녀보다 낮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전……!”

“이런 일로 만나게 되어 유감이다.”

놀라 크게 눈을 뜨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마음대로 사용해 주세요.’

레스 키시르가 데려온 여자는 오히려 텅 비어 보였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바득바득 키우고, 자신의 폭행범에게 배신당한 남자를 찾아내어 동료로 삼고,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 앞에 무릎까지 꿇어 가며 설득해 린스베른 레반스타인의 몰락을 설계했던 여자는 판단을 흔들리게 하는 분노도, 행동을 망설이게 하는 두려움도, 징벌을 무디게 하는 자비심도 모조리 쏟아 내어 버리고 그저 목적만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 같은 모습이었다.

‘신께서 왕자님을 내시고 저까지 내신 이유는 왕자님을 끌어 내려서 다른 이들에게 똑똑히 경고하라는 뜻이시겠지요.’

그 목숨을 바친 결심을 이용하는 입장으로서 레오르나는 헤냐 로페르의 결심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내가 약속할 수 있는 일은 공정하고 강압 없는 조사가 이루어지리라는 것과 그 상대가 누구든, 그 지위가 어떻든 합당한 처벌을 받으리라는 것.”

그 말에 어느새 모여들었던 수사관들의 얼굴에 적나라한 갈등이 스쳤다. 특히 황급히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경시청장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레오르나는 입술을 살짝 달싹였다.

줄을, 똑바로, 서는 게, 좋을 거야.

“청월 옥좌를 걸고 맹세한다.”

* * *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집무실의 마호가니 책상이 흔들렸다. 서슬 퍼런 이스칸타 3세의 기세에 집무실 안의 문관들은 숨소리도 참으며 고개를 처박았다. 책상을 후려친 왕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레오르나가 청월 옥좌를 걸고 그런 말을 했다고.”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간 그대로 폭발할 것 같은 왕의 기세에 재상은 소리 죽여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왕은 왕태녀의 경시청 방문을 신문 기사를 통해 알았다. 경시청장이 슬쩍 보고할 법도 했는데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왕태녀가 왕실을 대표해 헤냐 로페르 스캔들의 피해자를 하나하나 찾아가 격려했다는 기사를 읽은 왕은 거의 이성을 잃었다.

소소한 일들에 한해 왕태녀의 선까지만 보고가 올라가는 것은 왕태녀의 집권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기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왕태녀는 언젠가 왕이 된다. 왕은 언젠가 왕이 아니게 된다.

곤란하다는 표정을 겨우 감추는 재상이 눈에 들어오는지 아닌지 왕은 신문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조각조각 흩어진 레오르나가 다감한 미소를 띠며 헤냐 로페르와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 여유작작한 얼굴이 그녀를 비웃는 듯했다.

저 아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저랬다.

“제가, 벌써 왕이라도 된 듯.”

그녀의 배 속에서 제 아비의 유전자만 골라 태어난 것처럼, 부녀가 똑 닮아서는.

‘선양하십시오.’

그녀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했다. 고고하게 서서 사람을 내려다보며 눈빛 하나만으로 경멸과 실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했던 남자.

‘아무도 당신을 평가질하지 않고, 아무도 당신의 실수를 들춰 대며 책임을 묻지 않는, 그런 평화로운 곳에서 조용히 사십시오.’

태어났을 때부터 모든 게 다 쉬웠을 그 천재에게 제 권위를 세우랴, 전문가들 사이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랴, 제 잇속만 채우려는 의회의 앞에서 목소리를 내랴 전전긍긍하는 그녀 따위는 아주 우스워 보였으리라.

다른 왕족들이 다 죽어서 어쩌다가 얻어 쓴 왕관이기에 그만큼 가볍게 던져 버릴 수 있다고 제멋대로 생각했으리라. 그 지극히도 이성적이고 머리가 좋은 기계 같은 남자는 자질이 떨어지는 그녀는 일찌감치 사라져 버리고 좀 더 자격 있는 이가 왕이 되는 게 합리적이라 여겼으리라.

‘제가 함께 떠나 드리지요.’

제 것이 아닌 장난감을 부여잡고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듯, 그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며.

“폐하, 어찌하시겠습니까.”

재상의 나직한 목소리에 왕은 상념에서 깨어나 머리를 짚었다. 죽은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부글거리며 뒤집히는 속에 이를 잘근잘근 깨문 그녀는 토해 내듯 내뱉었다.

“레티시아에게서 리베르탄의 영주 직을 거둬 가겠다.”

“폐하! 어째서 갑자기―.”

“공주들이 맡은 일이 많아지니 자신의 주제를 자꾸 잊는 듯하여 어쩔 수가 없지.”

“그게 무슨…… 폐하, 리베르탄에서의 공주님의 지지도는 높습니다. 반발이 클 텐데 갑자기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리베르탄은 왕실 직할령이다.”

“그렇사오만―.”

“그리고 그 통치권은 오롯이 내게만 있지, 아니 그런가? 리베르탄의 통치자를 정하는 것도, 해임하는 것도, 오롯이 내 권한이 아닌가! 이런 것까지 내가 네게 허락받아야 하는가?”

날카로운 추궁에 그제야 재상의 입이 닫혔다. 분명히 그녀가 원하던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거늘 쥐죽은 듯 숨을 죽인 채 할 말을 삼키는 이들을 보니 콱 숨이 막혔다.

‘헤르마냐.’

죽은 남편의 목소리가 조롱하듯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옥좌에 앉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죽어서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가.

“그리고.”

아아, 그것은, 분명히.

‘어머니.’

당신을 지독히도 닮은 딸이, 당신과 똑 닮게 성장해서.

‘당신께서는 잘못 선택하신 겁니다.’

……당신이 지껄이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니까.

“레오르나를 왕태녀 자리에서 폐할 것이다.”

“폐하!”

“그것은! 왕태녀의 지위를 이용해 공명정대해야 했을 수사 과정에 압력을 넣었다! 저번에 제멋대로 동생에게서 지휘권을 빼앗아 전권을 휘두른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거늘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어.”

어차피 왕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후계자의 자리이다. 지금까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본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어차피 나이 순으로 세워 앉힌 자리다. 성품이나 자질과 관계없이 줄 세워 차기 왕을 뽑는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마치 갈망하듯, 매달리듯 바라보던 짙은 늪 같은 눈동자를 떠올리자 소름이 끼쳤다.

“레오르나를 폐해라. 반박은 받지 않겠다.”

치를 떨며 손을 저어 버리는 왕의 말에 재상은 결국 몸을 깊게 숙였다.

“……예, 폐하.”

* * *

왕태녀 책봉식 때도 고작 인장 하나만 건네주고 말더니 폐태녀 선고 때도 고작 종이 한 장으로 끝이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레오르나는 그저 말없이 그 종잇조각을 바라보았다.

“……왕태녀 전하.”

“이제는 더 그리 부르지 마세요, 재상.”

오히려 왕명을 전하러 온 재상이 더 침울한 표정이어서 레오르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녀는 잉크 자국으로 엉망이 된 팔뚝을 소매를 내려 가리고 잠을 설쳐 피곤한 눈을 손끝으로 비비며 지난 몇 시간 동안 꼼짝도 못 하고 앉아 있었던 책상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몸이었는데 이리 물러나니 오히려 더 홀가분하군요.”

“부족하다니…… 전하께서는 훌륭하셨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하군요. 이 기회에 저는 영지로 내려가 쉬면서 더욱 공부에 전념해야겠습니다.”

그 말에 재상은 뭐라 더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고개를 젓곤 깊게 몸을 숙여 예를 표했다.

탁, 문이 닫히며 재상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레오르나는 그가 두고 간 칙서를 펼쳐 들었다. 화려하고 멋들어지게 쓴 필체로 사무적이기 짝이 없는 내용이 아주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아주 예상 그대로의 모습에 핏,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이렇게 하시나.”

양미간이 지그시 아파져 눈을 꽉 감자 등 뒤에서 나긋한 팔이 안겨 왔다.

“언니.”

확 꽃향기가 퍼지며 레티시아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좋아? 언니 주식이 이렇게 화려하게 폭락해 버렸는데.”

“남 말할 신세가 아닐 텐데? 나는 적어도 영지라도 있지.”

“땅이야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거고.”

“그 돈도 권력이 있어야 유지되는 거지.”

“그래서 차세대 권력에게 빌붙으려 하고 있잖아.”

키득거리며 내뱉는 말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레오르나는 동생의 보드라운 머리칼을 쓱쓱 쓸어넘겼다. 혈통 좋은 고양이처럼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 손길을 즐기던 레티시아가 눈을 슬쩍 굴려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언니, 내가 어떻게 해 줄까?”

많은 것이 함축된 질문이었다. 예리한 빛을 띠며 응시해 오는 시선에 레오르나는 느릿하게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살짝 의문만 던지면 되겠지.”

왕실이 힘을 많이 잃었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직 이 나라의 지배자가 왕이라는 생각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 군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 부서의 상징적인 수뇌로서 왕에게는 아직도 나라를 꽤나 심각하게 망칠 수 있는 권력이 있다. 왕으로서의 이스칸타 3세의 점수는 그렇게 좋지 않고, 왕태녀로서의 그녀의 점수는 꽤나 준수한 편이었다. 후계자를 고르는 것은 오롯이 왕의 권한이라고는 하나 란스타인에서 왕은 혼자서는 군림하지도, 통치하지도 못한다.

“머리가 있는 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야. 헤냐 로페르의 스캔들에 뭐가 걸려 있기에 의례적인 치하 한 번 했다고 왕이 지금까지 잘하고 있던 왕태녀를 날려 버린 걸까, 뭐 그런.”

“맡겨 둬.”

생긋 웃으며 레티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나도 소설은 꽤 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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