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46)

8.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목 끝까지 잠근 옷깃과 혈색 없는 얼굴에 도드라지는 광대뼈. 보고 있는 사람이 덩달아 불안해질 것 같은 얼굴의 하인스 키시르는 구부정하게 숙인 어깨를 간헐적으로 떨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흘끗 바라보던 란스타인 일보의 기자, 피오른 라셔는 느긋하게 손깍지를 끼며 그의 건너편 소파에 몸을 묻었다.

“긴장하셨군요.”

“아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인터뷰를 한다는 건 많은 분들께는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거든요. 그래도 처음에만 이렇게 어려워하시지 두 번째 인터뷰부터는 아주 사람이 바뀌어 저희를 쥐락펴락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하, 소탈하게 웃으며 피오른 라셔가 그의 앞으로 차를 따랐다. 진한 향의 홍차가 가득 찻잔 안에 차올랐다. 일렁이는 찻물 위로 잔뜩 경직된 그의 모습이 비쳤다.

“부탁부탁해서 모셔 온 것은 저희니까 키시르 씨가 눈치를 보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흰 어떤 이야기든 감지덕지하니 그냥 편히 이야기를 나눈다 생각하세요.”

말은 그렇게 해도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표정 너머로 날카롭게 해부하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왕자와의 끈이 없었더라면 같은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했을 대형 언론사의 중견 기자. 그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펜과 수첩을 들었다.

“지금 대대적으로 화젯거리가 되는 레스 키시르 경의 형님 되시는 분이시니, 저희가 모르는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으시겠군요.”

동생. 내 동생.

배 속을 서늘하게 하는 단어에 하인스 키시르는 쥐고 있던 찻잔 손잡이에 꽉 힘을 주었다. 얼마 전 보았던 조간의 흑백 사진 속 동생은 공주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동생을 마지막으로 직접 보았던 것은 군사 재판소의 독방에서였다. 데캉트 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동생이 난데없이 배신자로 몰려 군사 재판소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겨우 몇 분 얻어 낸 면회 시간이었다.

‘형, 도와줘.’

형아, 형아, 생글생글 웃으며 졸졸 쫓아오던 어린아이의 모습은 간데없었다. 고향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후로는 본 적 없었으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얼굴이 이렇게 되어 버렸나 싶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팔로 철창에 매달린 동생의 눈은 실핏줄이 터져 벌겠다.

‘뒤통수를 맞았어. 기자들이 떠들어 대고 있는 그 모든 말, 다 거짓말이야. 내가, 내가 한 게 아니야.’

그 역시도, 일간지들이 한목소리로 떠들어 대는 것들이 정말 동생이 한 짓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형,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게 도와줘. 여기서 나가야 해. 여기에 더 있다간 정말 미쳐 버릴 거야.’

동생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 나가서 어쩌려고.’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 자기 탓으로 죽은 이들의 가족들을 기만한 대가, 자기를 살리려고 끝까지 싸우다 잡힌 이들을 외면한 대가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치르게 할 거야.’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미진도 없었던 말이었다. 동생이 한 말이 모조리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왕자의 죄는.

반역죄일 텐데.

‘레, 레스, 굳이 그래야겠어? 상대는 왕자야! 왕이 미쳤다고 사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일을 인정하겠어? 네, 네가 다칠 거야!’

그는 겨우 구했던 직장을 떠올렸다. 별 볼 일 없는 상인의 비서직이긴 해도 이 불경기에 구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직장이었다. 그는 결혼한 지 반년이 되어 갓 임신한 아내를 떠올렸다. 정말 별 볼 일 없는 그를 가끔은 채찍질하고, 끝없이 격려하며 언제나 곁에 있어 줬던 이였다.

그는 왕가가 저들을 거역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알았다. 그 증거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형, 여기서 더 떨어져 봤자 얼마나 더 끔찍해지려고.’

하인스 키시르는 그렇게 말하며 웃어 버리는 동생을 괴물 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는 이보다도 더 깊은 지옥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도, 동생은 잘 타이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린스베른 레반스타인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필사적으로 애걸했다.

이건 모두를 위해서야.

이건 모두를 위해서야.

이건 모두를 위해서야.

‘제가 책임지고 조심시킬 테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는 린스베른의 보좌관이 되었고, 레스는 합당한 치료를 받은 후 아무 탈 없이 풀려났다. 그는 그 진창 같은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했다.

이 이상을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결과였다.

“그, 그 애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이 품 안의 진단서를 꺼내 들었다. 피오른 라셔의 눈이 사냥감을 발견한 맹금처럼 날카로워졌다. 그 시선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어 하인스 키시르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셀레스트 전선이, 그 아이에게는 무,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네 탓이야. 네 탓이야.

이 모든 게 다 쓸데없는 짓을 포기하지 않은 네 탓이야.

* * *

[……키시르 씨는 이 시점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동생의 병력에도 불구하고 형제의 사이는 매우 좋았으며 그는 이번에야말로 동생이 병을 이겨 내고 정상적인 삶을 영유하기를 바랐기에 최근의 일련의 일이 괴롭기 그지없다 말했다. 키시르 씨는 동생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져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반면, 그렇게 되면 레스 키시르 경은 이 새로운 지위를 이용해 분명 셀레스트 참사 당시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라 했다. 그렇기에 키시르 씨는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고 이 혼담이 확정되어 키시르 경이 왕가의 일원으로 부분 면책권을 갖게 되기 이전, 셀레스트 참사의 책임을 확실히 지게 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셀레스트 참사는 D. H. 275년 2월 벌어졌던 데캉트 왕국과의 격전 중의 하나로…….]

“거 아가씨, 살 거요, 말 거요?”

한참을 매대 앞에 서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 여행자를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곁눈질하고 있던 잡화점 주인은 결국 벌컥 소리를 질렀다.

“……실례했습니다.”

그에 여행자는 순순히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많아 봤자 고작 한 살 정도 된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여자였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웨이브 진 붉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어 올린 채 암울한 표정의 구석구석 피로가 묻어났다. 꽤 오랜 시간을 여행했는지 짙은 암회색 치마는 밑자락이 다 닳아 있었다. 그녀는 지갑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더니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돈을 받아 든 주인은 공연히 헛기침을 해 대며 위협적으로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여자는 매대에 있는 신문이란 신문은 종류별로 한 가지씩 모조리 쓸어 담았다. 지나가는 이마다 한 번씩 하릴없이 뒤적거린 탓에 꾸깃꾸깃하게 접은 자국이 남은 신문의 1면에는 커다랗게 인쇄된 뷘터하우젠 시절의 레스 키시르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두루두루 욕먹고 있군요.”

“욕먹어도 제깟 게 할 말이라도 있겠어? 얼마나 문제가 많은 놈이었으면 자기 형까지 나서서 욕을 해 대?”

“문제요.”

“셀레스트 전선에서 술 퍼먹고 놀러 나갔다가 데캉트 놈들한테 기밀 누설해서 자기 부대 몰살시키고 그걸 자길 감싸 준 왕자님한테 뒤집어씌우려 했다잖아? 그 형이 내놓은 뭐냐, 진단서를 보니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는 걸로 유명했던 모양이던데.”

퉤, 침을 뱉으며 상점 주인은 혀를 쯧쯧 찼다.

“얼굴 반반하게 생긴 게 뭐라고 공주님은 그런 놈을 싸고돌고 말이야. 그런 새끼는 공개적으로 목을 매달아 버려야 하는데 말이지!”

“그렇군요.”

무미건조하게 동의하는 여자의 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이가 칭얼대며 울어 댔다. 여자는 아이를 무성의하게 토닥이며 가방을 열었다. 제게 눈 한 번 돌리지 않는 엄마의 시선을 끌려는 듯 아이가 짧은 팔을 뻗으며 더욱더 서럽게 울어 댔다.

“거, 애가 많이 우는데 뭘 좀 먹여야 하는 거 아니요? 먹일 게 없다면 자투리 치즈가 좀 있긴 한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여자는 신문을 어깨에 매단 짐가방 안에 쑤셔 넣으며 주인이 붙잡을 새도 없이 몸을 돌렸다.

“아니, 무슨 젊은 여자가 저렇게 재수가 없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욕지거리를 무시한 채 여자는 엉엉 울어 대는 아이를 한쪽 팔에 안고 브륀셀 중앙 가도를 따라 걸었다.

하늘은 맑았다. 초겨울의 옅은 햇볕이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떨어져 내렸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눈으로 가지를 장식한 상록수의 푸른 잎이 풍경처럼 흔들렸다. 여자는 상점가를 지나 얼어붙어 버린 분수가 있는 중앙 광장을 가로지른 후 완만하게 경사가 진 언덕길을 걸어 올랐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 양옆을 장식하는 조경이 화려하고도 고급스러워졌다. 마차를, 말을, 가끔은 자동차를 타고 그 언덕길을 올라가는 귀족이 분명한 이들이 마치 서커스의 짐승을 구경하듯 그녀를 흘끗거렸다. 언덕길의 끝에는 푸른 초승달 문양이 돋움 새김이 된 검은 철문이 버티고 있었다.

국왕이 거하는 창월궁이었다.

“정지! 여긴 허가증이 없는 이들은 출입할 수 없다. 신분을 밝혀라.”

날카로운 경비병의 목소리에 여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품 안의 아이는 이제는 거의 갈라진 목소리로 꺽꺽거리며 울고 있었다.

“국왕 폐하께 정식으로 알현을 청합니다.”

그 말에 입장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서 있던 이들의 이목이 단번에 쏠리는 게 느껴졌다. 경비병의 얼굴이 황당함과 비웃음으로 비틀리기 전, 여자가 한 톤 목소리를 높여 낭랑하게 외쳤다.

“여기, 그분의 손자를 데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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