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근처의 빈방에 숨어들자마자 흠뻑 젖어 더 이상 의복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드레스와 속치마까지 모조리 벗겨 낸 레스는 그녀의 두껍고 긴 리본을 풀어 그녀의 눈을 가렸다. 겨우 어둠에 익숙해졌던 시야가 다시 깜깜하게 어두워졌다. 시야가 차단되자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하게 곤두선다. 그녀는 가려진 눈 위로 가볍게 내려앉는 입맞춤이 간지러워 킥킥 웃었다.
“이런 게 취미야?”
“예쁜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일간지들이 워낙 떠들어 대서 비밀이라 할 수도 없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레스가 다시 한 번 눈두덩에 입을 맞췄다.
“그다지 예쁘지는 않은 모습이라서요.”
“그런― 흣!”
입을 막는 듯한 키스가 내려앉았다. 예민해진 감각에 까끌까끌하고 아직 차가운 입술이 닿아 왔다.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들인 레스가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감쌌다.
‘손이 커.’
마른 체격 때문에 어쩐지 왜소하다는 인상이었으나 직접 몸을 맞대어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굳은살이 박인 커다란 손은 목덜미 전체를 넉넉하게 감싸고 지그시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장난치듯 그녀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놓기를 반복하던 레스는 순간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으응.”
어느새 느슨하게 벌어졌던 입술 너머로 들어온 혀가 그녀의 혀를 휘감자 레티시아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레스의 목을 감았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의 몸이 앞으로 당겨지며 그가 고개를 젖히는 게 느껴졌다. 훤히 드러난 허벅지의 안쪽으로 남자의 몸이 느껴졌다.
‘말랐어.’
목덜미를 끌어당기던 손을 내려 등을 쓰다듬자 예복 위로도 툭툭 등뼈의 골격이 그대로 만져졌다.
마른 체형의 남자들과도 자 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레티시아는 적정량의 근육이 붙은 상대를 더 선호했다. 남자의 몸은 그쪽이 더 보기 좋고 만지기도 좋다는 지극히 속물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뷘터하우젠 출신의 장교들은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사람을 몰아넣는 특유의 체력 단련 과정을 통해 황금 비율의 근육과 지방과 뼈대를 자랑했다. 전쟁이 아무리 힘들었다고 해도 장교씩이나 되는 이의 식단이 부실했을 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 말랐을까.’
갈비뼈가 도드라진 상체를 허벅지로 느릿하게 비비자 그가 도망치고 싶다는 듯 몸을 흠칫흠칫 뒤틀었다. 아주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신음이 남자의 목구멍에 차올랐다가 사그라졌다. 습관처럼 소리를 참는 남자였다.
마른 몸과 눌러 삼키는 소리는 마치 그녀가 레스 키시르를 괴롭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다른 생각 하시지요?”
“아니― 흐앗!”
어느새 입술을 떼어 낸 남자의 숨결이 귓가를 간질였다고 생각한 것도 순간, 가볍게 벌을 주듯 귓불이 깨물렸다. 흠칫 몸을 튕긴 레티시아의 허리를 다른 손으로 감아올리며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바싹 당겨 앉았다.
“키, 시르 경.”
부름에 대답하듯 커다란 손이 그녀의 가슴을 감싸듯 덮더니 느릿하게 애무했다. 손바닥에 닿은 유두가 천천히 단단해지더니 바짝 섰다. 예민해진 정점이 단단한 남자의 손바닥에 닿아 야릿한 쾌감이 번져 갔다.
애를 태우는 듯한 동작이 감질났다. 어느새 천천히 허리가 떨리는 걸 느끼며 레티시아는 레스의 허리에 비비고 있던 허벅지에 꾹 힘을 주어 그를 결박하듯 발목을 겹쳤다.
“더, 좀 더, 세게.”
그 말에 충실히 응하며 레스의 손이 조금 더 힘을 주어 가슴을 자극했다. 손안에 가득 찬 새하얀 살덩이가 곧 모양을 일그러트리며 무너졌다. 손가락 사이로 가슴살이 넘쳐나듯 빠져나오고, 강약을 조절해 꽉꽉 쥐어지며 원을 그리는 와중에도 손바닥은 이제는 빳빳하게 선 유두를 굴리듯 자극했다.
“아, 아읏, 좋아, 그거.”
어느새 다른 상념은 머리에서 사라진 후였다. 빛이 차단된 안대 속의 검은 어둠 안, 레티시아는 더욱 가슴을 내밀며 숨을 헐떡였다.
‘뭐야, 잘하잖아.’
기대도, 예상도 못 했던 사실이었다. 남성적인 매력은 찾아볼 수 없을 이 왜소한 사내는 놀라울 정도로 여자를 기쁘게 하는 데 능숙했다. 저 또래 남자들이 그렇듯 저 혼자 흥분해 헐떡이며 달라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녀의 반응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했다. 싫어서 몸을 흠칫 떠는 것과 쾌감에 떠는 것을 귀신같이 구분해 싫어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한 부분만 골라 집요하게 쫓았다.
“아흣, 으응, 아아!”
어느새 그녀는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발뒤꿈치로 남자의 등골을 긁듯 움직이며 그녀는 천천히 젖어 드는 비부를 그의 가슴께에 밀착했다.
“아흑!”
그리고 허벅지를 쓰다듬던 손이 정확하게 음핵에 닿는 순간 레티시아는 펄쩍 뛰듯 허리를 튕기며 교성을 흘렸다. 달래듯 가슴을 애무하던 손이 아랫배를 몇 번 쓰다듬더니 다른 손으로 예민한 돌기를 지그시 누르며 자극했다.
“읏, 거기, 아앙, 더, 거기, 하읏, 좋아!”
헐떡대는 숨소리에 토해 내는 목소리가 가닥가닥 끊겼다. 배를 쓰다듬다가 어느새 다시 가슴으로 올라온 손이 이번에는 집요하게 유두를 희롱했다. 손가락 사이에 쥐고 굴리다가, 살짝 힘을 주어 꼬집었다. 그녀가 못 견디겠다는 듯 신음성을 내며 몸을 뒤틀면 달래듯 유륜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아.”
레스의 한숨 같은 숨결이 귓가를 간질이고 뜨거운 혀가 연체동물처럼 귓바퀴를 핥았다. 말랑한 연골을 따라 혀를 움직이고 살짝살짝 이를 세워 깨물다가 다음 순간 혀를 뾰족하게 하여 귓구멍을 범했다.
“하으윽!”
귓가에서 직접적으로 쏟아지는 질척한 소리에 레티시아는 몸을 떨었다. 동시에 만져지고 있는 아래에서도 호응하듯 젖은 물소리가 났다. 질구에서 흘러내려 회음을 적시는 애액의 홍수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쾌락을 기대하며 아래가 빠끔히 열려 벌름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빨리, 흐응, 빨리이, 넣어.”
보채듯 아래를 비비며 레티시아는 엄한 데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남자의 어깨를 밀어 귀에서 떼어 냈다. 아무 기대치도 없는 것이 가장 큰 만족을 얻는 방법이라는 것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숙지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비이성적인 기대감에 몸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어서, 으응, 어서, 해.”
팔을 아래로 뻗어 더듬자 남자의 매끈한 배 아래 단단하게 뭉쳐 곧추선 열기가 있었다. 손으로 꽉 쥐어 보자 지금까지 소리 하나 내지 않던 남자가 억눌린 신음을 참으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 반응을 확인하며 엄지로 미끈거리며 젖은 첨단을 만지려 하자 그가 손을 뻗어 그 손을 떼어 냈다.
“레이디들은 남편과의 밤이 불만족스러울 때 그런 말을 한다던데요.”
“무슨, 흐응, 무슨―.”
“빨리 넣고 싸서 끝내라는 뜻으로.”
놀리는 듯한 말과 함께 제 성기에서 떼어 낸 손을 마주 잡았다.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밀려 들어와 빈틈없이 깍지를 꼈다.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니, 그런 거― 흐앙!”
고개까지 저어 가며 부정하려 했던 목소리가 한 톤 높은 교성이 되어 내뱉어졌다. 배에 조금은 거칠거리는 머리카락이 닿았다. 단단한 손이 허벅지를 그러쥐었나 싶었더니 곧 뜨거운 숨결과 함께 축축한 혀가 가장 민감한 돌기에 닿았다.
“읏, 앙, 앗!”
끊어질 듯 숨을 헐떡이며 레티시아는 레스의 지푸라기 같은 머리칼을 꽉 그러쥐었다. 양 허벅지를 넓게 잡아 벌리고 얼굴을 그녀의 비부에 묻듯이 하여 그는 갈라진 틈으로 흘러내린 애액을 모조리 핥아 먹었다. 울컥울컥 맑은 점액성의 액체가 화수분처럼 솟아 흘렀다.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레티시아의 몸이 경련하듯 튀었다. 새하얀 피부가 발갛게 물들고 머릿속은 반대로 새하얘졌다.
“아윽, 겨, 경, 키, 키시르 경!”
언어 기관이 퇴화한 듯 제대로 의미를 가지지 못한 소리만이 단발적으로 토해졌다. 허벅지가 아플 정도로 레스의 머리를 조여 대며 벌벌 떨렸다. 발가락이 곱고 손가락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뽑을 듯 그러쥐었다.
시야가 차단된 어둠 속에서 음란하게 철퍽거리는 젖은 소리에 흐트러진 숨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그녀는 레스 키시르의 흉곽이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느꼈다. 숨이 막혀 헐떡임에도 그는 마치 그녀의 애액이 생명수라도 된 듯 집요하게 흡입했다.
부러질 듯한 몸. 끊어질 것 같은 호흡. 제 오라비의 부관을, 어머니에게 훈장을 받은 승전 장교를 개처럼 꿇려 아래를 핥게 한다는 고양감에 허리가 떨렸다.
“아읏, 아, 아앗, 흐윽!”
머리칼을 그러쥔 손으로 남자의 뒤통수를 꽉 힘주어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달했다.
온몸의 근육이 확 조여지는 것과 함께 왈칵 애액이 터졌다. 온몸을 쓸고 지나간 절정의 여운에 몸에 힘이 쫙 빠졌다.
“큭, 콜록.”
온몸이 부유하는 듯한 나른하고도 기분 좋은 여운에 녹아내리던 그녀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몇 번이나 이어진 기침 소리였다. 레티시아는 아직도 힘이 잘 안 들어가는 손을 억지로 들어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밀어 냈다.
차단되었던 시야에 창백하게 쏟아져 내리는 달빛이 들어왔다. 눈을 두어 번 깜박여 채광에 익숙해지자 어느새 한 발짝 물러선 곳에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레스 키시르가 보였다.
달빛을 받아 안 그래도 창백한 피부가 푸르스름하게도 보였다. 도드라진 뼈대 때문에 뚜렷하게 드리워진 음영이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반은 빛에, 반은 어둠에 잠긴 남자의 코와 입술이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아직도 채 가라앉지 않은 호흡 탓에 살짝 벌어진 입술과 물기 어린 눈꼬리가 붉었다. 전라가 된 그녀와는 달리 예복의 단추 하나도 풀지 않은 채였다.
‘……황금색.’
그녀는 처음으로 그 눈동자가 황금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길게 차양처럼 드리워진 속눈썹 아래의 눈동자는 가장자리의 색이 진하고 홍채에 가까워질수록 투명하고도 옅은 색을 띠었다. 추수를 앞둔 가을의 들녘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색이다.
마치 마법에 걸리듯 그녀는 그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곧 그 눈이 사르르 접히며 눈웃음을 지었다.
“제가 공주님을 모시는 데에 부족함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그 말에 레티시아는 그대로 남자를 바닥에 밀어트리고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