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막간 크싸레(크레이지 싸이코 레즈) 시엘
* * *
"이상해, 이상하다구..."
어째서 리비티는 여기에 없는거지? 어째서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해 답장을 하지 않는거지? 무려 한달동안이나!
"...물어봐야겠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레드네홀 왕국의 수도, 아룬의 왕성에서 한달에 한번 주기로 열리는 귀족들의 친목회. 그것에 참가한 나 '시엘'은 소중한 친구인 리비티의 아버지, 이프스터 백작이 홀로 음료가 든 잔을 훌쩍이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네요, 이프스터 백작."
"아, 시엘 후작 영애. 저 역시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런데 저에겐 무슨 용건이 있으시길래..."
"긴말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리비티는 지금 어디있습니까?"
"......"
이프스터 백작, 나의 질문에 대답을 똑바로 하지않고 시선만 피하고 있어... 아무래도 리비티의 신변에 뭔가 문제가 발생한건 확실한것같네.
"리비티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거죠? 병에 걸렸나요? 사고를 당했나요? 그것도 아니면..."
"크흠!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것 같군요."
"...그렇네요."
이프스터 백작의 말이 맞았다. 이번 친목회에 참가한 이들 모두가 후작 영애인나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비슷한 나이대의 귀족들과 놀아나지 않고 최소 20세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이프스터 백작과 열띤 대화를 하는것처럼 비치는 지금의 내 모습, 평판에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겠지.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그래도 대답해주셔야겠어요. '저의' 리비티가 지금 어떤 상황에 부닥친건지 확실한 설명을...!"
"...? 리비티는 저의 딸아이입니다만. 시엘 영애,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게 아닌지?"
"리비티가 당신의 딸이란건 잘 알고있다구요. 하지만 리비티는 '저의 것'이에요."
이프스터 백작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당연하겠지. 남의 딸을 자기것이라 칭했으니. 그렇지만 사실인걸? 리비티는 나만의 것, 나만의 친구, 나만의 충실한 애완 고양이인데... 고작 그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뿐인 이 남자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리비티를 감추고있어.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는것을 느꼈다.
"휴우... 후작 영애, 일단 테라스로 갑시다."
"네."
연회장 바깥의 테라스로 따라나오라는 이프스터 백작의 제안을 나는 받아들여,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며 함께 걸었다. 잠시 후, 타인의 시선이 연회장보다는 확실히 줄어든 이곳에서 이프스터 백작은 내가 가장 궁금해했던 리비티의 근황을 밝히기 시작했다.
"후작 영애, 리비티의 친구인 당신을 믿고 말하겠습니다. 사실 리비티는... 가출했습니다."
"......네?"
"위치 추적용 마도구를 사용해본 결과 이웃나라인 아이르키에스 왕국의 어딘가에서 몸 성히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뿐, 그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잠깐만요. 리비티가, 리비티가 가출을 했다구요??? 당신이 내쫓거나 한게 아니라?!"
"후작 영애. 말이 심하시군요. 제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아이를 핍박하는 못난 아비로 보이십니까!"
이프스터 백작이 화를 냈다. 음, 조금 미련한 단어선택이었네. 나의 소중한 애완동물인 리비티의 깜찍한 개성인멍청함을 그 아이의주인인 나도조금 옮기라도 한걸까... 어쨌든 나는 재빨리 그를 향한 사과의 말을 전하며 리비티의 근황정보를 더 캐물었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실언을 용서해주시길."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이만 대화는 여기까지..."
"잠깐 기다려주세요. 리비티가 가출을 해서 아이르키에스 왕국으로 넘어가버렸는데, 어째서 다시 찾아 데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거죠? 당신에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아이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몸은 멀쩡해도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생겨났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나의 사랑스러운 리비티에게 상처라도 생겼다간... 나는 도저히 분노를 참지 못해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내가 아닌 다른 인간이 나만의 리비티에게 상처를 입힌다니, 너무 부러운일이라 내 마음속 음습한 질투심이 폭발해서 즉시 각혈을 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나의 리비티를 NTR 당한다는 상상을 조금 했을 뿐인데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기 시작해서... 으윽......
"하아, 하아, 하아... 으, 으윽...!"
"이런! 시엘 영애!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아요... 그보다 리비티를, 어째서 그 아이를 한달동안이나 방치해두신거냐구요...!"
"그야 당연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지금 무슨
"리비티도 벌써 성인식을 끝마친 어른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아이를 보지 않고 있던 사이 어느새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마법서를 완독까지 한 이후더군요. 리비티가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개소리를
"물론 정식 마법귀족인 제가 잠재적인 적국인 아이르키에스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이유로 오래 머물게 된다면 뭔가 좋지않은 분쟁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공식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 레드네홀와 아이르키에스의 국력과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레드네홀이 확실히 우위이긴 하나, 그래도 쓸데없이 분쟁을 일으켜서 양국의 관계에 불화를 일으킬 수는..."
지껄이는거야
"크흠. 시엘 후작 영애, 제 말의 뜻을 이해하셨습니까? 물론 저도 리비티를 계속 내버려두지만은 않을겁니다. 1년, 1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국가간의 분쟁이 생길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제가 직접 나서서..."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이프스터 백작. 그럼 이만..."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서 재빨리 등을 돌려 다시 연회장으로 향했고, 그 남자가 지껄여댄 개소리를 한시라도 빨리 잊기위해 귓구멍을 피가 새어나올정도로 거칠게 쑤시며 긁어댔다.
"하아, 하아, 하아... 저딴게 나의 리비티의 아버지...? 절대로 인정못해...!"
리비티, 나의 리비티, 나만의 리비티...! 아아, 누구도 너를 도와주려하지 않는구나. 심지어 아버지란 작자까지도, 너를 구하려 하지 않아!
가문에 전해져오는 마법서를 완독해서,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힘을 얻었다고? 그래봤자 리비티는 리비티, 그 멍청한 지능수준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그래, 오직 나뿐이야. 보나마나 사소한 이유로 가출놀이를 했겠지. 하지만 그날의 넌 지독하게 운이없어서 진짜로 국경을 넘어버리고 만거야. 그런 너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에오직 나 혼자뿐인걸.
"리비티, 리비티, 리비티이이이..."
더는 참을 수 없어, 한달이란 시간동안 나는 충분히 참았어...! 그러니 이제 못참아.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리비티... 내가 다시 널 되찾아올테니까. 하아, 하아...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두번다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목걸이는 사랑스러운 리비티의 눈동자 색깔과 비슷한 주홍빛이 좋겠지. 사슬도 리비티의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인 백금으로 주조한, 미리 만들어뒀던 그걸 쓰는거야. 그리고 앞으로는 쉽게 걸어다닐 수 없도록 다리 한쪽도 부러트리자. 물론 내손으로 직접! 그건 누구에게도 양보못해. 사랑하는 리비티에게 고통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만으로 충분한걸. 하지만 걱정하지마 리비티, 네가 아픈만큼 나도 확실하게고통받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리비티...♡ 내가 곧 만나러갈테니까... 후히히헤크헤힛...♡"
앗, 입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남들눈에 띠기전에 빨리 화장실로 가야해!
......
"후우, 하아, 후우우......"
다행히 남들에게 추태를 들키지 않고 화장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경솔해져버렸어. 이것도 리비티에게 옮은거겠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닮는법이라니까.
"하아, 하아, 하아아......"
아이르키에스 왕국... 그곳 어딘가에 리비티가 있어.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일은 하나뿐이겠지.
"리비티... 하아...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그 약소국을 멸망시켜버리는한이 있더라도, 사랑스러운 저의 애완 고양이인 당신만은 반드시 구출해올테니!!"
목적은 정했다. 그 망할 약소국을 두들겨 패서라도 리비티를 무사히 데려오는것. 그럼 제일 먼저... '그 남자'랑 상담을 해야겠어. 역시 국가간의 분쟁이 유발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나 혼자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네. 도움을 받는 수밖에.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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