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무전취식 영애와 무기상의 주인 #1
* * *
"타흐노엘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모험가 이십니까?"
"후흥! 날 알아서 받들어 모시는구나? 그런태도 싫지않아. 그런데 나 모험가는 아니다? 그런 평민들이 할만한..."
"실례했습니다, 들어가시죠."
리비티는 자신의 키와 비슷한 높이의 성벽이 둘린 타흐노엘의 입구에 도착해 입구의 경비병으로부터 가벼운 안내 인사를 받은 뒤 별다른 통행증따위를 제시하지도 않았는데 출입을 허가받았다.
'쯧쯧, 요새 인간들은 경계심이 너무 떨어지잖아? 나때엔 인간들의 도시는 죄다 고립되어서 이방인의 출입을 엄금했었는데...'
타나토스가 그런 옛날 추억에 빠져있는사이 리비티는길을 열어준 경비병들을 지나쳐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마을 안에 들어섰다.
"배고파~! 어디 이 동네에 식당은 맛있는곳이 있으려나?"
'이 년... 뭐, 고생좀 해보라지.'
집에서돈 한푼 안들고 나왔으면서 식당에 쳐 가겠다는 리비티를 타나토스는 딱히 막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적당한 술집 겸 음식점을 발견한 리비티는 고소한 튀김요리 냄새에 이끌려 코를 킁킁대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오너라~!"
마침 해도 슬슬 져가는 이른저녁시간대라 그런지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오는 술집에서 리비티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더해져 봤자 신경쓰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유리잔을 헝겊으로 닦고있는 바텐더의 앞에 자리잡고 앉은 리비티는 주문을 외쳤다.
"제일 자신있는 메뉴로!"
"손님. 음식 주문은 저기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는 종업원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저는 술에 관련된 주문만 받습니다."
"응! 알겠어."
'의외로 말을 잘 따르잖아?'
건방지고 오만한 리비티가 의외로 바텐더의 말을 잘 따라 자리가 비어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앉아 앞치마가 달린 유니폼을 차려입은 여성중 한명을 부르는것에 타나토스는... 딱히 리비티에 대한 생각을 재고하지 않았다. 그녀는 쓸데없이 자존심이 강하고 터무니없이 오만한 자기과신 대갈텅텅빡대가리일 뿐이었다.
"거기 종업원!"
"네! 주문받겠습니다!"
"이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메뉴로!"
"제일 맛있는 메뉴 1인분 접수했습니다. 10분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10분 뒤, 종업원이 들고 온 튀김꼬치와 달달한 계란 오믈렛, 무알코올 탄산주를 리비티는 마음껏 먹고 마셔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냠냠, 맛있어!! 쩝쩝, 이것도 맛있어!! 캬아아아!! 음료수는 최고로 맛있어!!!"
그렇게 혼자서도 즐겁고 신나게식사를 마친 리비티는 맛있는 식사를 먹여준 이 가게의 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는것도 잊지 않고 가게 바깥으로 나갔다.
"잘 먹었습니다~! 가게가 앞으로도 번창하길 기원할게!"
'아니 시벌, 이년 요금을 안냈잖아! 무전취식했다고! 근데 왜 아무도 잡으러 안오는건데?!'
타나토스가 속으로 어리둥절하며 그런 생각을 했지만, 리비티가 요금을 받지 않은 무전취식을 했는데도 아무도 리비티의 앞길을 제지하지 않은것엔 이유가 있었다.
'아... 쳇, 운도 좋은 년이군.'
가게 안으로 들어올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가게 입구의 문짝 위에 붙어있는 쪽지를 타나토스는 이제야 보게되어 납득했다.
[오늘 하루 이 가게의 매상은 내가 책임진다! 모두 마음껏 먹고 마셔라!! 던전에서 대박을 건진 모험가 이즈넥]
'돈을 많이 벌었으면 자기 미래 설계나 걱정할것이지, 하여튼 인간들의 허영심은 얼마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질 않아...'
어쨌거나 가게 매출을 하루동안 전세낸 모험가 덕분에 리비티는 저녁을 공짜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잠은 어디서 잘 생각이지? 노숙이라도 하려나? 크큭, 그래준다면 바로 노숙자들을 유인해서...'
타나토스가 나쁜 계획을 세우는 사이에도 사람이 장난아니게 많이 지나다니는 이 마을의 곳곳을 둘러보며 걸어가던 리비티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대로 괜찮아보이는 무기와 방어구들이 대량으로 진열된 상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이리오너라~!"
"뭐야, 손님? 이런곳에 뭐 사러 오기엔 영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아가씨구만."
가게 안으로 들어온 리비티를 카운터에서 맞이한 직원은 대머리에 약간 근육이 붙어있는 체형의 구릿빛 피부 남성이었다.
"흐음~. 나는 문무겸비의 대마법사 리비티라고 해 아저씨!"
"아저씨라니? 아직 장가 안갔거든? 어쨌건 그쪽에서 먼저 자기소개를 했으니 나도 하마. 내 이름은 나레투르. 이 장비상점의 주인이자 대장장이이기도 해."
"대장장이?! 그러면 여기있는 무기랑 방어구, 전부 아저씨가 만든거야?!"
"아저씨 아니래도? 어쨌거나 질문에 답을 하자면,아니야. 대장장이 일은 겉핥기식으로 배운거고, 본업은 엄연히 상인이거든.여기 진열된것 중에 내가 직접 만든건... 이 방어구 하나뿐이다!"
그렇게 말하며 가게주인 나레투르가 집어든 물건은,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여성용의 붉은색 비키니 아머였다.
"뭐야그거? 속옷?"
"이렇게 무거운 속옷이 있을리가! 물론 모양은 좀그렇긴하지만 일단 방어구라고?"
"방어구? 이게? 이걸로 어떻게 방어를 하는데?"
"크흠... 사실은 관상용에 가깝긴 하지. 하지만 이런것도 은근히 수요가 있다고? 다른 도시에선 잘만 팔렸어!"
"다른 도시에서 잘 팔렸다는건, 이 도시에선 안 팔렸다는 뜻?"
"정확해."
'이년은 똑똑한건지 멍청한건... 킁, 당연히 멍청한년이지.'
의외로 비키니 아머의 수요를 나레투르의 말꼬리를 집어서 잘 읽어낸 리비티에게 타나토스는 괜히 속으로 신경질을 내며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들었다.
"사실 나는 이곳 타흐노엘에 온지 겨우 1주일밖에 안됐거든. 이전까진 이 나라의 수도에서 장사하다가, 여기가 요새 새로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라는 소리를 듣고 가게째로 이사온거야. 그런데 말이지, 여기서는 수도랑 다르게 이런 관상용 물품이 잘 안팔린단 말이지. 도대체 이유가 뭘까?"
"실용성이 없잖아."
"하지만 수도에선 잘 팔렸는데?"
"그래? 그럼 대천재인 나도 모르겠는데."
"어휴, 너 말이다... 음... 으음...... 으음?"
"?"
리비티의 자화자찬에 그녀와 만난지 몇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약간 지친듯한숨을 뱉던 나레투르는 갑자기 리비티의 쭉쭉빵빵한 몸매를 위아래로 스캔하더니 기묘한 신음성을 내면서 말했다.
"너 이름이 리비티라고 했지. 리비티, 너 우리가게에서 일해보지 않을래?"
"일? 이런가게에서? 그런건 하찮은 평민들이나..."
"일당 3000골드를 주마."
"...3000골드?"
"오늘 시간이 늦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부터 당장 일을 시작한다면 오늘 일당도 당장 줄게!"
"좋아! 할게할게~!"
'워우.'
타나토스가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리비티의 태세전환 속도가 엄청났다. 경제관념이 쥐뿔도 없어서 3000골드로 정확히 무슨 일들을 할수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엄청난 결단력... 그래도타나토스가 리비티를 다시보게되는 일은 없었다.
"그럼 잠시 가게 뒤편으로 들어가서 이 갑옷을 입고 나와봐."
나레투르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붉은색 비키니 아머를 리비티의 손 위에 쥐여주었다.
"...어, 어엇?! 이, 이 비키니 아머를?!"
"응. 그게 내가 너한테 오늘부터 당장 일당 3000골드를 주는 조건이야."
"으응... 어쩔 수 없네. 좋아, 할게. 대천재이자 대마법사인 나 리비티를 직원으로 받게된걸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아!"
"헤헤, 그 옷을 확실히 입고 나오면 칭찬해줄게."
"칭찬?! 칭찬 좋아해! 좋아, 당장 입고나올게!!"
그리고 리비티는 손에 쥔 비키니아머와 함께 나레투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카운터 너머의 가게 뒤편으로 들어갔다.
'존나 쉬운년이다.'
"헤헤... 존나 쉬운년이잖아?"
우연히도 타나토스의 속마음과 자신을지켜보는이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지금나레투르가 뱉은 혼잣말이 일치했지만... 타나토스는 딱히 별다른 감정을 품지 않았다. 뭔가 리비티를 향해서 음흉한 마음을 품은 나레투르를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계속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