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4. 다가오는 빛과 그림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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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다가오는 빛과 그림자 (1)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피아에게 물었다.
“참관수업이라며?”
그녀는 물론 세리아까지 참관수업이라고 말해서 그저 이름만 개방 행사라 붙였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것만을 보여주고 끝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이 교수가 설명해준 내용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건 마치.
“시험 아니야?”
“하암... 시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아무리 봐도 그런 거 같은데.”
개방 행사는 아카데미를 후원해주는 사람들과 우리들의 보호자에게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너무나도 괜찮은 취지다.
학생들은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을 할 테고, 후원자를 비롯한 외부 인사들에게는 뛰어난 능력의 인재를 선점할 기회가 될태니까.
하지만 그걸 증명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다.
‘솔직히 종목 자체는 나쁘지 않은 선정이야.’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1대1 토너먼트.
4명이 팀을 이뤄 임의의 상대와 대련을 펼치는 단체전.
홀로그램을 이용한 마수 사냥.
개인의 기량부터 팀워크와 순간적인 판단력, 지식과 그걸 사용할 수 있는 행동력까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과거에 1대1 토너먼트로만 실력을 판가름하던 것에 비하면 많은 게 발전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벌어질 결과가 너무나도 눈에 훤했기에 자연스럽게 입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
“별로 안 좋은데.”
관중이 없는 상태에서 치러진 걸 보여주는 거라면 모를까 이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했다.
피아는 오전에 있었던 대련 때문에 피곤한지 꾸벅꾸벅 조느라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평범하지 않아?”
수첩에 프레이 교수님이 했던 말을 정리하던 서아가 펜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고.
“그냥 하던 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잖아.”
휴대폰을 붙잡고 다급한 표정의 동기들을 찍고 있던 유리가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들로서는 뭐가 됐던 누가 있던 평상시처럼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거만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맞는 말이야.”
그녀들의 말은 너무나도 옳았고, 아카데미 또한 그걸 원하고 있을 태였다.
하지만 이제 막 능력을 개화시켜나가는 이들에게 그게 가능할까?
여태까지는 어찌어찌 잘 해왔을지도 모르겠으나 참석자랍시고 살아생전 한 번도 보기 힘든 존재들이 온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거다.
뛰어난 가문의 지원을 받아 떠받들어지며 오냐오냐 자라온 저놈들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와중인데 평범한 학생들이 평소와 같이 행동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없는 그것을 걸고 장담하건대.
“무조건 이상한 짓거리를 시도하는 애들이 생길 거야.”
평소보다 무리를 하는 정도라면 다행이겠지만, 분명 금지된 마법이나 주술 혹은 제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결코, 그것이 자신의 실력이 될 수 없고 무조건 들킬 수밖에 없음에도 인간의 탐욕이란 쉽게 멈출 수 없는 거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가장 먼저 상황파악을 끝낸 서아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가 걱정하고 있던 내용을 입에 담았다.
“휘말릴 상대편과 그걸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이 문제라는 거지?”
정답이었다.
서아의 말대로 내가 걱정하는 건 금술을 사용할 애들의 목숨이 아니었다.
“맞아. 걔들은 자업자득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
“교수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부족하려나?”
“평범한 폭주라면 상관없는데 발동되는 게 금술 같은 종류라면 그들로는 힘들 거야.”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뛰어난 건 알고 있지만, 그들이 모두를 신경 써가며 지킬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나서주면 되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대마법사인 유지아를 제외하고선 인간들을 선뜻 구해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혼란을 틈타 레아가 세리아에게 덤벼들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결국에는 애초에 그런 행동을 벌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이미 SNS를 타고 소문이 퍼져나갔으니 막지는 못할 거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유리의 말에 따르면 이미 상황은 기정사실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후….”
“방법이 없을까.”
모두가 선뜻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침묵이 유지될 때쯤 품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총장... 눈... 도움...”
언뜻 들으면 잠꼬대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분명히 지금 사태에 대한 대답이었고, 단어를 조합하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총장의 능력이 도움이 된다는 거야?”
“응….”
피아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으나, 나는 그녀의 말이 정답이라는 걸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분명 총장님이 격을 넘고 얻은 게 눈과 관련된 능력이란 소문이 있긴 한데.”
“본질을 꿰뚫는 눈이라나? 마음을 읽는 눈이라나 뭐 그렇게 불리긴 하지.”
서아랑 유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한몫했지만.
내가 봤던 그는 눈에 신비한 마력을 두르고 있었고, 그건 격을 넘고 얻은 능력이 맞았다.
“바로 출발하자.”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다음 주에 있을 행사를 준비하라며 모든 교수가 자리를 비웠고, 우리의 억제기인 담당 교수들이 없는 지금 아카데미 내에서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그곳이 총장실이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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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멈춰봐.”
호수로 향하던 나의 뒤쪽에서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라봤자 교실 안의 상황을 수습하느라 1시간은 걸릴 줄 알았건만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탐탁지 않아서겠지만.
“빠르나 늦으나 상관없겠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어차피 물건은 이미 준비되어있었고, 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려 했었기에 수고를 덜었다.
“이걸 봐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 그녀가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녀가 모든 걸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한 거라면....
나는 뒤를 도는 즉시 그곳에 서 있는 꼭두각시를 베어내야만 했다. 결코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아까부터 자꾸 뭔 소리하는 거야.”
“그럴 줄 알았어.”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라고 할까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진에 묻어있는 기운을 느꼈을 그녀에게선 아주 조금의 적의조차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옆으로 다가와 내가 들고 있는 사진 속 인물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그거 좀 줘봐.”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어?”
“이렇게 봐서는 모르지. 자세히 봐봐야 알 거 같은데.”
“그럼 한번 확인해봐.”
평상시라면 그녀의 속을 조금이라도 긁으려 노력했겠으나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사진을 넘겨줬다. 이렇게 된 이상 사진 속 인물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어놔야 했으니까.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닌가. 분명 외모는 맞는 거 같은데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무슨 소리야? 누군지 알고 있다는 거야?”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1주일간 수없이 많은 범죄자와 정보조직을 쥐잡듯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던 그년에 대한 단서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온 것이다.
“당연하지 얘를 어떻게 잊어.”
“당연하다니?”
그러나 다급한 나와 달리 내 앞에 서 있던 그녀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그런 질문을 왜 하냐는 듯이.
“스토킹하듯이 이지훈을 관찰한 네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내가 모를 리가 없다라...
분명 그녀의 반응을 봐서는 장난을 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눈앞에 있는 회색머리의 하프 뱀파이어는 나이만 잔뜩 먹었음에도 감정을 숨기는 걸 그 누구보다 못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사진 속에 있는 인물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보고 듣고 익혀왔던 모든 것을 기억한다 자부하지만, 저 여자만큼은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저렇게 생긴 사람을 봤다면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온전한 얼굴이 보이는 사진은 아니었지만 베일 속에 자리한 순백의 머리카락과 황금빛의 눈동자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 진짜 인간이 되더니 노망난 거야? 이지훈도 알고 레아도 알고 나도 알면서 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 생각해?”
그런데 지상에서 나를 가장 오랫동안 봐온 이지윤이 저렇게까지 확신을 가질 정도라니.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어째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기억의 결손.”
“뭐?”
“누군가 내 기억에 손을 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