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3. 아카데미 개방 행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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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아카데미 개방 행사 (2)
“생긴 거와 다르게 유머러스하시네요. 끽해봐야 협회장이나 올 텐데 괜히 겁주려고 힘 빼지 마시죠.”
“교수님. 누가 오든 제가 상관할 바 아니니 빨리 해산 좀 부탁드릴게요.”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은 프레이 교수의 말에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후…. 이럴 줄 알았어.”
어찌 보면 너무나 예상됐던 반응이었다.
누가 참석하는지 알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괴담보다 소름 끼치는 말이겠지만, 그걸 모르는 이들에게 있어서 아카데미 개방행사에 참여하는 손님 따위야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프레이 교수님이 뜸 들이지 않고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이런 거에 쫄만한 가문의 애들이 아니야.”
“쯧…. 실력만 믿고 까부는 모습이 언제 봐도 역겨워.”
서아나 유리의 말처럼 성격이야 어쨌든 그들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지금도 평범한 B급 헌터라면 비등비등하게 상대할 수 있을 건데, 20대 중반이나 후반에 접어들어 기량이 만개한다면 대부분 격을 넘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 중 피아만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네 왜 저래? 미친거야? 아니 오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저렇게 비웃을 수 있는 거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문화가 많이 다른 마대륙 출신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어떤 식으로 말해줘야 그녀가 왜곡해서 듣지 않을지 고민했다. 이건 한국사람 모두가 알고 있지만 공공연하게 밝힐 수는 없는 치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결론은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해주는 거였다. 어차피 지금의 나는 서큐버스를 책임져야 할 퀸이지 인간의 앞길을 책임져야 할 이단심문관이 아니었다.
지금의 주제가 거론된게 부끄러운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서아를 지나 피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곳에 있는 동기들처럼 뛰어난 실력을 갖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
재능?
노력?
“마계는 그럴지 몰라도 이곳은 전혀 아니야.”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재력이 없다면 도태된다.
노력이 있어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재능이 없다면 그건 쓸모없는 발버둥일 뿐이다.
“지금 저들이 있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가문과 혈통 이 두 가지뿐이야.”
참으로 불쾌한 사실이지만 이 시대에서 헌터의 실력이라는 것은 99%가 혈통과 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야 했다.
300년 전에도 혈통과 가문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때 당시에 그런 것들은 후순위에 불과했다.
고블린의 목을 벨 수 있는 티끌 같은 재능만 있어도 전투와 전쟁을 통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력을 성장시켜나갔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녀와 나를 포함해 빌어먹을 용사 파티원들이 그랬지.’
하지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며 자력으로 실력을 쌓을 기회는 제한되어버렸고, 거대한 가문만이 뛰어난 실력을 가진 헌터를 키워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가문과 가문. 즉 뛰어난 헌터들끼리 뭉치게 되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뛰어난 혈통을 물려받아 남들보다 큰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이렇게 본다면 훨씬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별문제 없었어. 아니 오히려 정부나 협회, 길드에서는 더 좋아했지.”
가문에서 헌터를 키워내 협회나 길드에 보내는 건 언제나 있었던 일이고, 더욱 뛰어난 재능을 가진 헌터들이 생기는 거에 축복이라 생각하며 기뻐했었다.
그러나 흐르지 못하고 고여버린 물은 언제나 그렇듯 썩는 법.
보이지 않는 계급 격차가 생겨나고, 평범한 헌터들이 도태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생겼다. 그래도 그 정도 부작용에서 멈췄더라면 실수라 불리지 치부라 불리지는 않았을 거다.
가장 큰 문제는 영웅이 되는 헌터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거다.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격을 넘어야 하지만 실전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걸 넘을 수 있는 재능을 얼마나 되겠는가. 이윤우 정도를 제외한다면 없다고 봐도 좋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에는 이미 가문들이 모든 걸 장악해 돌이킬 수 없게 늦어버린 뒤였고.
결국에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실력은 부족한. 그렇다고 성격 또한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닌 개차반이 된 저런 놈들이 만들어진 거다.
피아는 이제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두려울 게 없으니 저런 식으로 막 나갈 수가 있는 거구나.”
“뭐, 서아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다른 동기들처럼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고위급 헌터가 저런 식이겠지.”
루퍼트에게 노예상과 관련해서 보고를 들었을 때도 어이가 없었는데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있자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명단을 부르는 프레이 교수님의 말꼬리를 하나하나 붙잡아가며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겁을 줘놓고선 헌터협회 개성지부장이랑 제1즉응단장이래.”
“봐봐 끽해봤자 군바리랑 협회 지부장급이라니까.”
아무리 협회랑 정부가 가문의 손아귀에서 절절매고 있다 할지라도 저런 반응은 조금 그랬다.
“에휴... 저런 쓰레기 같은 가문 놈들이 무시해도 될만한 분들이 아닌데.”
서아의 말대로 저들은 저런 식으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과거의 같은 위치에 있던 인물들과 연합작전을 벌여왔기에 그들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졌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최전선을 담당한 지부장이면 협회장과 거의 동급의 지위를 갖고 있다 봐야 했고.
제1즉각대응단은 300년 전부터 최전선만을 담당해온 유서 깊은 부대일뿐더러, 단장이라면 한 군의 참모총장을 맡을 수 있는 4성 장군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무지에 의해 프레이 교수님이 무시당하는 상황에서도 나와 서아는 함부로 끼어들지 않았다. 교수님의 생각도, 머지않아 나올 이름들도 알고 있었으니까.
곧 있으면 자신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 입들이 전부 조용해질 것이었다.
“이상이 전년도와 같은 참석자 명단입니다. 이제부터는 특별 참석자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특별 참석자라 해봤자 뭐 있겠어?”
프레이 교수님은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아주 담담하게 참석자의 이름을 읽어내려갔다.
“대마법사 유지아님.”
그리고 교실은 침묵마법이 시전된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뒤에 있던 교수들도 앞에서 비아냥거리던 미친놈들도 심지어는 관심이 없다는 듯 휴대폰을 보던 동기들까지 모두가 입조차 벌리지 못한 채 프레이 교수만을 바라봐야 했을 정도로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의 무게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마왕님이 서아네 어머님을 궁금해하시던데 이번 기회에 보면 되겠다.”
“응…? 우리 어머니를?”
“인간들의 마법에 대해 알고 싶으신가 봐.”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상치 못한 인물도 아니고 그저 같이 다니는 친구의 어머니일 뿐이지만.
대마법사란 칭호는 현시대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간 마법사에게만 주어지는 것일뿐더러 그녀는 인간 측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러나 모두가 충격을 받아 조용해졌음에도 프레이 교수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 봐도 좋았다.
“검은 달의 마왕과 에스티리아 공작부부.”
너무나도 귀에 익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인 피아의 부모님들과 세리아 에게 들었던 그 미친 데스나이트의 후계자인 마왕이 언급되었고.
“로렌시아의 여왕 레아 엘름.”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리의 보호자인 하이엘프도... 응?
“여왕님도 오신다고 했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유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알기로 분명 그녀가 정식으로 바깥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고 엘프답게 기본 1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머지않아 만나기로 했다면서. 이곳에서 나랑 친구분을 만나는 김에 겸사겸사 너도 본다고 하신다던데?”
“그…. 그래.”
이름을 들으면 들을수록 속이 배배 꼬여가는 거 같았지만, 아직 마지막 한 명이 남아있었다.
“레드문의 세리아.”
예고했던 대로 나를 감시하러 찾아오는 세리아까지.
결국, 명단을 정리해보자면 단신의 힘으로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소리였고.
프레이교수가 말을 마쳤을 때 교실 안에 펼쳐진 분위기는 그녀가 의도하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미쳤군. 협정도 아니고 개방행사 따위에 저런 사람들이 왜 오는 건데.”
“빨리 가문에 연락을 취해야 해.”
주위를 둘러보자 비웃던 인원들은 어디 갔는지 경악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연락을 날리고 있었는데, 자만심은커녕 언뜻언뜻 깊은 두려움까지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정리한 것은 은연중에 신성력을 흩뿌려 압박감을 불어넣고 있던 프레이 교수였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도 협박을 하지도 않고, 단 한마디로 모든 학생을 얌전하게 만들었다.
“이제 여러분께 개방행사에 대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을 마친 프레이 교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너무나 익숙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이미 한번 거부했던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해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준비가 되신 거 같으니 이제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설명을 듣지 않았다가 추태를 보이거나 실수를 한다면 자신들이 믿고 있던 가문이 가루가 되는 것쯤이야 너무도 간단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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