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2. 아카데미개방 행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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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아카데미개방 행사 (1)
“저거 내가 알던 걔 맞아?”
“그때 만났던 하이엘프가 변장하고 왔다는 게 더 신빙성이 높겠는데.”
피아와 서아는 단상 위에 서 있는 전학생의 존재를 보고는 자꾸만 현실을 부정했다.
프레이 교수를 따라 교실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없어진 휴일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겠다며 이를 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순간 나조차도 헷갈릴뻔했어.’
전학생이라고 찾아온 로렌시아의 공주는 우리가 익히 알던 검은 머리의 하프엘프가 아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백금발의 머리와 연신 쫑긋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엘프 특유의 귀. 그리고 강하게 풍겨오는 숲의 기운까지.
서아의 말대로 레아의 모습과 더 가깝다 봐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앞에 있는 저 하이엘프가 우리가 알던 하프엘프라는 것에 100퍼센트 확신을 갖고 있었고, 피아랑 서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저 단아한 얼굴에 속지 말고 자세히 봐봐.”
로렌시아에서 해어졌을 때와는 다르게 엘프 특유의 귀를 드러내고 백금발의 머리를 하고 있다지만, 저 숨길 수 없는 분위기는 분명 김유리였다.
“우리 속의 동물인 양 쳐다보며 속닥거리는 건 조금 기분 나쁘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반갑습니다.”
그도 그럴 게 특별반에 소속된 모든 교수와 동기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저런 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학생이 누가 있겠는가.
나와 그녀를 제외한다면 전무하다 봐도 좋았다.
“하긴 맞는 말이야.”
“저런 성격을 가진 하이엘프가 세상에 2명이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피아랑 서아는 앞에 있는 하이엘프가 김유리라는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가 속닥거리는 사이 생각 외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소개가 끝나있었고. 단상 위에 서 있던 교수는 작게 박수를 치며 김유리에게 의견을 물었다.
“질문을 받고 싶으면 받아도 좋고 이대로 끝내고 싶다면 끝내도 괜찮습니다. 유리 엘름 학생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죠.”
“음….”
김유리. 아니 이제는 유리 엘름이 된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교실을 살펴봤는데. 이내 우리를 발견하고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 죄송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해후를 나누고 싶기에 이대로 끝냈으면 싶네요.”
“별말씀을요. 빈자리에 가서 앉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교수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는데. 목소리와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묻어나는 너무나 단아하고 자애로운 모습이었다.
한평생 왕성 안에서 공주로써 교육을 받았을 것만 같을 정도로.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차례 그녀를 겪어봤던 나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저게 무슨 공주야 맹수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그녀의 눈빛은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의 범을 연상케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균열을 빠져나와서 예상치 못하게 레아를 마주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욱더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혼자라면 모른 척이라도 해보겠지만,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할 게 앞에 있는 호랑이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런 반응인데 뒤에 있던 그녀들은 어떻겠는가.
“나. 조퇴할래.”
피아는 기세에서 눌려 불안한지 나의 팔을 송곳니로 잘근잘근 씹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1주일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 있는 건데...”
서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선 우리를 감싼 단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민반응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령과의 상성도 좋지 않은 편인 데다 짧은 기간 동안 업보를 많이 쌓아뒀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스렸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법.
김유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이 잔뜩 난 그녀도 진정시키고 뒤에 옹기종기 숨어있는 두 마리의 토끼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당황해서는 안 됐다.
일단은 피아와 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어느샌가 다가온 김유리를 향해 차분하게 우리가 겪었던 상황을 설명하려했다.
충분히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로렌시아에 너를 두고 온 건 어쩔 수 없는...”
하지만 생각처럼 말을 끝마칠 수는 없었는데.
“숨 막혀….”
“놀랐잖아.”
조금 전까지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환한 미소를 짓고는 피아랑 서아를 꽉 껴안은 그녀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이 말을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자. 리에나 너도 빨리 나한테 와서 안겨.”
김유리는 멍하니 서 있던 나에게도 빨리 다가오라며 손짓을 했고, 나는 마지못해 피아와 서아의 사이에 들아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과거에 레아가 돌아왔을 때처럼 그녀가 아카데미로 돌아왔을 때 하고 싶었던 말을 입에 담았다.
“기다리고 있었어.”
* * *
다사다난했던 김유리의 소개시간이 끝나고, 교수들은 다음 공지 전까지 같은 반 동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친목을 다지라며 잠시 자리를 비워줬다.
그러나 여태껏 한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대화를 나눌 리가 있겠는가.
‘그게 가능했다면 문제아들로 불리지도 않았겠지.’
겉으로는 성적 상위자 10명을 모아놓은 반이라 말하지만, 학생들 사이에 도는 소문으로는 제어하기 힘든 10명의 문제아를 모아놓은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피아나 서아 김유리를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5분쯤 지나자 혼자서 휴대폰을 보거나 서로 안면이 있던 사람끼리 모이게 되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김유리를 포함해 네 명이서 지금까지의 근황을 나누게 되었다.
“그래서 1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연 사람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나였다.
무릎 위에 피아를 올리고선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김유리를 향한 질문을 던졌는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별거 아니긴 한데 정말 듣고 싶어?”
“응. 꼭 들어야만 해.”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리의 반응으로 봐선 정말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앞으로의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는 중요한일일 수도 있었다.
‘흐름이 개입한 것인지 확인해야 해.’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은 웬만해서 내 상식선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외형이 변하고 순수한 하이엘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부터, 어떻게 해서 아무 탈 없이 아카데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까지 김유리와 관련된 것은 그 어떤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가 모르는 변수가 출현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흐름과 관련되어있다면 조치를 해야만 했다.
그런 내 간절한 마음이 통했을까.
“그렇게 궁금해하면야 어쩔 수 없지.”
김유리는 주변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정령 마법을 사용하고는 자신이 깨어났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아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논의 끝에 로렌시아에 추적당하지 않게 걸어놨던 제한을 풀고, 정식으로 로렌시아의 후계자라는 직위를 부여받는 등.
자세하게 말하면 하루는 그냥 넘어갈 만한 내용이었으나 중요한 부분만 짚으며 빠르게 얘기해 나갔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오늘 이곳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이 정도가 끝이야.”
김유리는 주변에 덧씌운 마법을 해제하고선 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지긋이 바라봤고, 나는 그녀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유리 네가 아니었다면 실수를 할뻔했어.”
“궁금해하던 건 해결됐어?”
“덕분에 내가 조금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흐름이 개입한 게 아니라 내가 지금의 로렌시아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서 벌어진 문제였다.
그렇게 나와 김유리의 대화가 끝나고 피아랑 서아가 끼어들어 여러 가지 잡담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드르륵
교실의 문이 열리며 나가 있던 모든 교수들이 걸어들어왔다.
매우 익숙한 이지윤이나 서아의 교수들부터 정말 처음 만나는 드워프 교수까지 그 면면이 매우 다양했는데, 그들의 중앙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프레이 교수였다.
“아. 진짜 저 신입 마음대로 하게 둘 거야?”
“저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총장님의 명령이 있었잖습니까.”
몇몇 교수들이 언짢은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나 그녀는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짓고는 우리를 포함해 모든 학생을 쭉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을 이곳에 모으고 제가 마이크를 잡은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곧 있을 아카데미 개방행사에 관련된 얘기를 해드리기 위해서죠.”
순식간에 주변이 웅성... 거리진 않았다.
잠시 지켜보고서 깨달은 거지만 이곳에 있는 학생들 대부분이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놈들이었다. 그깟 개방 행사 하나 한다고 놀랄 애들이 아니라는 소리다.
“아…. 네.”
“귀찮은데 언제 끝나요?”
그저 그런 게 있냐는 듯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프레이 교수는 이런 냉담한 반응 속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좀 더 진한 미소를 그렸다.
“여러 얘기를 해드려야겠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 관계로 제일 중요한 참석인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듣고서야 그녀가 하고자 하는 행동을 깨달아버렸다.
분명 자기들이 최고인 줄 아는 놈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고이긴 했지만….
‘충격을 안 받으려나 모르겠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을 듣고도 제대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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