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41화 (41/48)

〈 41화 〉 41. 짧은 휴일이 끝나고

* * *

41. 짧은 휴일이 끝나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호숫가와 오늘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지켜보는 프레이 교수.

항상 있었던, 언제나와 같은 평범한 하루다.

“혈액을 연성시키는데 반응이 늦어!”

“나도 알고 있으니 좀 조용히 좀 해봐!”

허공에 수많은 붉은 창을 연성하는 피아와 그걸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지윤이나.

“거기에서는 마검….”

“짬도 낮은 놈이 뭔 개소리야! 이럴 때는 마법으로 찍어눌러야지!”

“에잉…. 쯧. 요즘 놈들이라고는. 지금은 신체 강화로 달라붙어서 근접 마법을 사용해야 한단다.”

여전히 단합 따위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3명의 교수와 신체 강화 마법을 걸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서아가 없었다면 말이다.

“이곳이 떠들썩해진 것도 벌써 5일째네요.”

멍하니 벤치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프레이 교수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담겨있는 거로 봐서는 지금의 상황을 재미있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저 두 명의 대련이 아닌 내가 처한 상황을 말이다.

“그러게요.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는데.”

처음에는 길어봤자 하루 이틀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일이었으니까.

‘그 누가 눈을 뜨니 휴일이 끝나있다고 생각했겠어.’

피아와 서아가 기절하다시피 잠들 때 다음날 내가 무조건 깨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푹 자도 괜찮다고 말해뒀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혹여나 변수가 생긴다 하더라도 세릴은 둘째치고 미야가 나서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숲속의 저택도 남은 휴일도 아닌. 등교를 알리는 종소리와 차게 식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피아와 서야였다.

“억울하지는 않아?”

“음…. 제 잘못은 맞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변명을 하자면 못할 것도 아니었고,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놀이공원에서 즐거워했던 모습과 남은 휴일을 기대하는 모습들을 보아왔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휴일이 영원히 지속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약속을 잊고 있던 나조차 너무나 재미있었는데 이날만을 기다려온 그녀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 결과 나무 그늘 밑에서 얼음이 담긴 시원한 음료수를 준비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렸다만, 기숙사의 침대가 내 묫자리가 되는 것에 비해 이런 게 대가라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거였다.

“부러운 관계네요.”

눈을 감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레이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나무 그늘 밑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싱긋 미소지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얼음이 담긴 시원한 음료수 잔을 들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떠맡은 메이드 역할은 할 만한가요?”

“일단 그걸 마셔보세요.”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음료수를 마시길 권했다. 정상적인 입맛을 가졌다면 내가 답을 해주지 않아도 그걸 마시는 순간 깨달을 수 있을 때였다.

그만큼 지금 맡고있는 역할과 만들어낸 음료수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반쯤 강제적으로 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주자는 생각이었으니까.

“역시 재미있네요.”

프레이 교수는 그 말을 남긴 채 망설임 없이 곧바로 음료를 삼켰고.

“어떤가요? 되게 맛있지 않나요?”

나는 곧바로 감상을 물어봤다.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한 맛에 감탄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열기는커녕 나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미간을 구기고는 연신 끙끙거렸고, 나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뱉으라는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 제가 맛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상하다면 뱉어도 괜찮아요.”

날이 덥거나 대련 중 흘러나온 마력 때문에 음료가 변질된듯싶었다.

“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용사가 마계에서 벌레를 주워 먹을 때와 비슷한 표정으로 힘겹게 음료 삼키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어떤 걸 넣었나요?”

“별거 안 넣었는데….”

“그럼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별다른 짓도 안 했는데….”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만드는 방식이나 재료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에게 교수직까지 내걸며 결단코 이 정도 날씨와 마력 변화에 음료가 변질될 일은 없으니 만든 과정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모조리 말하라고 했다.

“처음에 들어간 재료는요….”

결국에 나는 음료를 만들게 된 과정부터 왜 이런 재료들을 넣었는지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했고, 점점 사색이 되어가는 프레이 교수를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게 문제였을까요?”

“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연신 한숨을 내뱉던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료를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더니 결론을 내렸는데.

“리에나 학생은 될 수 있는 한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거로 하죠.”

그 어떤일이 있더라도 요리를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앞에 이런저런 미사어구들을 붙이며 열심히 돌려 말했지만 요약해보면 그냥 재료의 조합, 손질 방식 등등 요리에 대한 기본개념부터가 글러 먹었단다.

그리고 내가 요리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운 사람은….

“후….”

숨을 깊게 내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당장이라도 사령술을 익힌 다음 부단장의 영혼을 소환해 잘근잘근 짓밟고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기에 업보를 하나 더 쌓아두는 거로 넘어가야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이지윤과 전투마법학 교수의 반응으로 봐서 대련의 끝이 다가왔단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좋아! 코찔찔이 놈들의 후손에게 지는 건 두고 볼 수 없지.”

“하하하 즐거워하는 와중에 미리 죄송한 말씀을 전하자면 이번 승부는 서아 학생이 이길 것 같군요. 최종전적은 3승 2패가 되겠네요.”

“늙은이가 눈이 삐었나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어디서 주책이야.”

“늙은이라뇨? 제가 알기로 지윤 교수님의 나이가 분명….”

“너 진짜 뒤질래?”

그들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대련장에서 점점 커져가는 마력의 흐름 또한 느껴졌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어찌 됐든 간에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바로 피아와 서아의 요구대로 대련이 끝나기 전에 시원한 음료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프레이 교수님 한 번만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더 이상 시간이 없었기에 이곳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대에게 고개를 숙였고.

“제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교수의 일이겠죠.”

프레이 교수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내가 꺼내둔 과일이 아닌 아공간에서 새로운 과일들을 꺼내 들었다.

* * *

‘후…. 다행이다.’

피아와 서아가 곁에 있었기에 겉으로는 티를 내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도 시간 안에 맞출 수 있었고, 대련을 끝내고 음료수를 마신 피아와 서아의 반응 또한 매우 좋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네.”

“평상시에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끔찍한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이 정도라면야.”

남들이 보면 그저 그런 반응 같아 보이겠지만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연신 음료수를 홀짝이는 거로 봐서는 꽤나 취향에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음료수의 이야기로 분위기가 풀려가던 것도 잠시.

“그래서 리에나. 네가 보기에는 누가 이긴 거 같아?”

피아가 브로치가 동시에 깨져 무승부로 판정이 난 대련의 결과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러고보니 너의 의견도 궁금하긴 하네.”

더러워진 옷을 정리하고 있던 서아도 내심 궁금했는지 눈을 빛냈고.

“노망난 늙은아. 아무리 생각해도 마력 고갈을 일으킨 네 제자의 패배다.”

“체력이 바닥난 피아 학생의 패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지윤과 전투 마법학 교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싸우고 있었기에 큰 변화는 없었다만 은근히 대답을 바라는 듯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대답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게 제일 현명한 처사겠지만 그건 분위기상 불가능한듯했고, 피아와 서아의 표정으로 봐서 무승부라는 대답 또한 전혀 원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기에 일단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미뤘다.

“하하…. 어려운 질문이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머릿속에서 이미 승패는 결정 나 있었다.

프레이 교수의 요리를 보느라 대련을 쭉 지켜봐 온 건 아니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계속해서 마력의 흐름은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걸 말해주는 건 좀 그렇지.’

파아랑 서아가 대련에서 졌다고 열등감이나 복수심을 품을까 봐 같은 하찮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녀들이 그런 속 좁은 존재가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저 이유를 지금의 피아와 서아에게 말해줄수가 없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의 대련 결과에 실력이 아닌 다른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흐름이 개입을 해오다니.’

걱정해야 할만큼의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걸 말했다가는 그녀들의 성장에 예상치 못한 방해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야 빨리 말해봐. 분명 피아의 승리가 맞다니까?”

“리에나 학생 실전에서 체력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외부의 개입을 느끼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무승부라는 이야기로 대충 넘어가려던 찰나.

“이지윤 교수님. 전투마법학 교수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않을까요?”

잠시 손을 씻으러 간다고 사라졌던 프레이교수가 나타나 지금의 상황을 단번에 해결했다.

신성력의 흐름으로 봐서는 말하기 전부터 이미 두 명의 교수들의 입을 강제로 막은 듯 보였지만 방법이 어쨌든 덕분에 곤란한 상황은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도와주는 행위인지 몰랐던 피아와 서아에게는 항상 남들 앞에서 미소를 짓기만 하던 그녀가 다른 교수들의 입을 막으면서까지 등장한 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혹시 실습 때처럼 습격이?”

그걸 위험 신호로 느낀 그녀들은 다급하게 무기를 꺼내들었지만.

싸늘한 눈빛으로 이지윤을 바라보던 프레이 교수는 급한 일은 아니라는 듯 다시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짓고는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각자의 담당 교수가 전달해야 하지만, 두 교수님이 말을 못 하시는 관계로 제가 대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공지사항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어찌 보자면 아직까지도 끝내지 못한 휴일을 끝마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특별반에 전학생?”

“엘프왕국 로렌시아의 공주라고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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