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31화 (31/48)

〈 31화 〉 31. 코스프레 (2)

* * *

31. 코스프레 (2)

리에나가 입었던 드레스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면 될 문제였기에 세릴의 집요한 권유를 뿌리쳤다.

결국, 내기의 내용대로 피아와 서아만 옷을 착용하게 되었는데.

“편해.”

“그러게... 오래전부터 입었던 옷 같아.”

조금의 거부감을 보이던 그녀들도 놀랄 만큼 두 옷은 지금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너무 완벽하게 어울렸다.

“역시 잘 어울릴 줄 알았어요!”

환희에 차서 반쯤 공중에 떠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 세릴의 말대로였다.

피아의 매끄럽고 풍성한 하얀 머리와 새하얀 피부는 검은색의 고풍스러운 시스루 잠옷과 대비되어 더욱 반짝거렸고, 푸른 네글리제를 입은 서아의 모습도 어느 부분에서도 흠잡을 곳이 하나 없었다.

그러나 잘 어울리는 것과는 별개로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잠깐만.”

다급하게 문 앞으로 몸을 들이밀어 피아와 서아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가려던 세릴의 앞을 막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것과는 별개로 이걸 입고 돌아다니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너무 눈에 띄어.”

잠옷과 네글리제 자체가 외출용이 아닌 것은 둘째치고, 지금의 피아와 서아는 눈앞에 있는 고위 서큐버스인 세릴보다도 더한 매력을 내뿜는 중이었다.

그녀들을 계속 옆에서 봐온 자신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가 힘든데 다른 남자들이 저 모습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다른 건 모르겠지만 평온한 휴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인식저해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어.’

인식저해마법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마법이라 서큐버스인 나와 뱀파이어인 피아는 마력의 특성상 효율적으로 다뤄낼 수 없고 오로지 서아만이 남들에게 이질적이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저 옷의 주인이 누구던가.

대전쟁을 거쳐 지금껏 살아있는 진조 뱀파이어와 수백 년이 지났어도 가장 위대했던 마법사로 불리는 그녀가 마법을 걸어둔 옷이었다.

아무리 복잡한 공격마법들이 아니고 외형적인 효과에만 잔뜩 치중한 마법이라고 해도 아직 격을 넘지 못한 서아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릴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나를 지나쳐 문을 열며 말했다.

“제가 그런 것도 생각을 못 했을까요. 일단 따라오세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할 걸 알았을뿐더러, 이미 전부 계획해뒀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에 일단은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딸랑­ 딸랑­

그리고 출입문을 지나 가게 바깥에서 본 풍경은 우리가 아까까지 알던 놀이공원이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자주 보던 건데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색다르네.”

“그러게 말이야.”

가볍게는 경갑이나 미니 드레스에서부터 조금 더 나가면 전투할 때 입을 것처럼 보이는 중갑과 교단에서 사용하는 예식용 복장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평범한 복장이 아니었는데 세릴은 이걸 기획했던 듯싶었다.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피아와 서아를 대신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세릴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모든 손님에게 코스프레를 시킬 수 있었던 거야?”

아무리 우리가 설명을 듣고 옷을 갈아입는다고 한 시간가량을 가게 안에 있었지만, 한 시간이 긴 시간도 아니고 이런 의상들을 전부 준비한다는 게 쉽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세릴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음… 이건 코스프레라고 하기가 조금 그렇네요.”

“코스프레가 아니라니?”

그녀는 손가락을 뻗어 후룸라이드 앞을 지나는 한 쌍의 커플로 보이는 인물들을 지목하곤 질문을 건넸다.

“뭐가 보이시나요?”

그곳에는 거대한 대검을 등에 차고 있는 중갑의 기사와 붉은 로브를 입고 주위에 오브를 띄우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다.

언뜻 보면 특이할 것이 없는 B급 정도의 헌터들로 보였지만, 세릴의 말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살펴봤고.

나는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짜였구나.”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기사와 마법사 코스프레를 한 일반인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들이 사용하던 의상과 무기를 꺼내입은 헌터나 아카데미 학생이었다.

“어떤가요? 리에나님에게 내기 내용을 듣고부터 준비한 것들인데 이러면 그대로 입고 나간다 해도 눈에 덜 띄겠죠?”

세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모든 손님들이 이런 식이라면 걱정했던 것보다야 눈에 안 띌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해결된 건 또 아니었다.

“그렇긴 한데 이걸로는 부족해.”

가게에서 나온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시선이 모이고 있었으니.

만약 우리 앞에 날개와 꼬리를 파닥거리고 있는 세릴이 아니었다면 이미 수많은 남자들이 다가와서 추파를 던져대며 귀찮게 굴었을 거다.

아무리 헌터들의 화려한 복장들로 시선을 분산시킨다고 하더라도 피아와 서아의 매력을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세릴은 이미 지금의 상황까지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저도 리에나님의 친구분들이 옷을 입었을 때부터 이것만으로 부족하리란 걸 예상했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두 개의 물건을 꺼냈는데, 저렇게 신성력이 떡칠 되어있으며 인식저해의 가호가 담겨있는 하얀색의 가면과 망토는 내가 알기로 세상에 하나뿐이 존재하지 않았다.

“천신교가 레드 문이 주최하는 경매에 내놓은 걸 제가 뒤에서 몰래 구매했죠.”

어쩌다가 경매에 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성녀 그 정신 나간 놈이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내서 나에게 뺏기기 전까지 사용하던 신기.

그것도 일방적인 성검 3개 분량의 신성력과 가호가 들어간 정신 나간 신기였다.

“이것만 있으면 리에나님이 홀딱 벗고 노출 플레이를 즐기신다 하더라도 아무도 못 알아볼 거에요.”

세릴이 가면을 나의 얼굴에다 가져다 대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건 둘째치고,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이곳에 갑작스레 대악마나 대천사급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저것들에 씌워진 가호를 꿰뚫고 정체를 알아볼 사람은 없을 거였다.

“리에나. 저거면 괜찮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조금 그렇고, 다른 의상을 입기에는 내키지 않아서.”

피아나 서아도 동의하는 거 같고, 나도 저 옷들을 입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어….”

“제가 써도 괜찮은데.”

세릴은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한발 먼저 속이 훤히 비치는 피아에게는 망토를 걸쳐주고, 서아에게는 레이스로 만들어진 가면을 씌워주고는 입을 열었다.

“두 분은 같은 물건을 사용하고 계시니 문제 없을 것이고. 리에나 님은 잘 확인되시나요?”

“응 문제 없는 거 같아.”

저 물건에 새겨져 있는 가호는 마나의 양을 통해 간파가 가능한 일반적인 인식저해마법과 다르게 격이 높아야지만 인식할 수 있었는데.

일단은 대악마인지라 조금 존재감이 흐릿하게 보이긴 했지만, 문제없이 피아와 서아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나의 대답을 들은 세릴은 다시 한번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고, 허공을 더듬어 피아와 서아를 찾은 뒤에 우리의 등을 밀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재미없는 저와 시간 낭비하시지 말고 빨리 휴일을 즐기세요.”

* * *

그렇게 세릴에게 떠밀어진 우리는 놀이공원으로 돌아와 휴일을 만끽했다.

“우와. 저 워 울프는 우리 성에서 키우는 것보다 큰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마대륙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니 신기하네.”

옷이 옷인지라 아까와 같은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는 타지 못했지만 수많은 동물과 마계에서 키우는 마수들을 풀어놓은 사파리도 구경했고.

“맛있어.”

“이거 식재료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놀이공원 안에 마련되어있는 레스토랑에서 미야가 준비해둔 특별한 식사를 마쳤으며.

“리에나. 왜 저기에 있어?”

“아니야 피아 잘 보면 여러 부분에서 달라. 가슴이라던가. 가슴이라던가.”

어째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300년 전 리에나의 모습을 한 거대한 서큐버스 조각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즐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리에나 맞지? 빨리 좀 와봐.”

피아와 서아는 발견하지 못했는지 나의 팔만을 붙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는 익숙한 모습의 아카데미 동기였다.

“어…. 알겠어.”

일단은 다급해 보이는 표정이기에 군말 없이 가고 있기야 했는데, 누구인지를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서 따라오던 서아가 동기에 대한 설명을 귓가에 속삭여줬다.

“이름은 김유리. 우리와 같은 특별반 학생이고 정령을 사용한 원거리 저격을 주 무기로 삼고 있어.”

흔치 않은 공격방식인지라 곧바로 생각이 떠올랐다.

실력테스트에서 유난히 나를 거슬리게 했던 그 저격수. 뛰어난 매개체를 사용해서 정령과 계약만 한다면 이윤우 정도는 가볍게 찍어누를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으며, 유난히도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동기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이런 휴양지에서 아는 척을 하며 다급하게 데려간 곳이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잡견들이 짖는 걸까?”

“입학하면 꼬리를 말고 배나 뒤집어 깔 놈들이 어디서 눈을 뒤집어 까고 지랄이야.”

누굴 보고 따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익숙한 도발을 날려대는 20여 명에 달하는 한국 헌터 아카데미 1학년 동기들과.

“여기가 아카데미인 줄 알고 그러는 거냐?”

“새끼들아 니네 부모가 잘난 거지 너희들이 잘난 게 아니야.”

“밟아라! 밟아라! 밟아라!”

5배는 많아 보이는 숫자의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는 장소였다.

그들은 모두 세릴의 계획으로 인해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고, 덕분에 가벼운 말싸움으로 끝난 일이 거대한 난투극으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김유리는 그런 그들의 중앙으로 나를 밀어 넣고는 모두의 이목을 끈 뒤 크게 외쳤다.

“우리 아카데미의1등을 데려왔으니 정정당당히 1대1로 붙자!”

나의 의견 따위는 물어보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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