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30. 코스프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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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코스프레 (1)
“잠깐만 멈춰봐.”
입구에 도착해 티켓을 꺼내려던 피아와 서아의 손을 제지했다.
놀이기구를 타는 건 타는 거겠지만, 이렇게 된다면 도발에 걸려 아무것도 모른 채 속은 나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손가락으로 놀이기구 맞은편에 있는 가게를 가리키고는 당황스러워하는 그녀들을 향해 제안을 건넸다.
“우리 내기를 하자.”
내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여러 코스튬들을 빌려주는 곳이었는데, 헌터들을 위한 구역에 위치한 곳이다 보니 수위가 매우 높은 의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슴 부분에 바람이 잘 통할 것같이 생긴 메이드복이라던가 꼬리를 꽂아 넣어 수인체험을 해볼 수 있는 액세서리들 같은.
그러나 그녀들은 그것을 보고 어떠한 가게인지 확인까지 했음에도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리에나는 저기 초대 성녀 복장이 잘 어울릴 거야.”
“저런걸 입고 다녀도 정말 괜찮겠어? 그래도 입고 싶다면 나는 이단심문관복장을 추천할게”
오히려 이미 이긴 내기인 양 내가 입을 옷을 골라주겠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것도 정확히 내가 싫어할 것들만 골라가며 말이다.
“그래서 할거지?”
그렇기에 속으로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겉으로는 더욱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도발한 그녀들에게서 확답을 받아냈다.
“그래, 리에나가 입고 싶다는데 받아줘야지.”
“나도 상관없어.”
그리고 이제야 내가 생각하고 있던 아주 불공정하며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의 내용을 말했다.
“사진의 좋아요를 더 많이 받은 순으로 하자.”
놀이기구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자동으로 찍히는 사진을 이용한 내기였다.
찍힌 사진들은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배치되어있는 화면에 띄워지는데, 좋아요를 제일 많이 받은 사람에게 소정의 상품이 주어지는 구조다.
“리에나 너무 비겁한 거 아니야?”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도를 깨달은 피아가 살짝 경멸 섞인 표정을 보냈지만, 조금도 자괴감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우는 자는 그녀들일 테니까.
“설마 내기 때문이 아니라 놀이기구가 무서워서 못 타는 거야?”
나는 그녀들이 절대 도망칠 수 없는 한마디를 남기고 재빨리 입장해버렸고, 그녀들도 한숨을 내뱉으며 따라와 내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세 명의 운명을 건 후룸라이드가 출발장소로 되돌아왔고.
“내..내가. 내가 이겼어.”
헛구역질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진이 걸려있는 화면 앞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사진속의 나는 피아와 서아랑은 다르게 눈도 뜨지 못하고 머리 또한 산발이었지만 결국 2배에 가까운 표 차로 내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매료마법만큼은 유지하고 있었던 게 정답이었다.
나는 그녀들의 팔을 붙잡고는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코스프레 샵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이끌었다.
“리에나 괜찮은 거 맞아?”
“내기는 우리가 진걸 인정할 테니까 일단 조금 쉬었다 갈까?”
내 상태가 정말 좋아 보이지 않았는지 그녀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걸 인정하면 내기에 이겨 먹겠다고 리에나의 얼굴까지 활용한 자신에게 자괴감이 올라올 것 같았기에 못 들은 척 가게의 문을 열었고.
딸랑 딸랑
“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방금까지의 모든 생각을 강제적으로 잊을 수 있게 만들어줬다.
이곳은 평범한 서큐버스와 동정이 아닌 남성들과 조금 특별한 취향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평범한 서큐버스가 아니고 동정인 자신과 강제적으로 끌려온 피아와 서아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겠지만 말이다.
“어머…. 혹시나 해서 문을 열어둔 건데. 정말 오실 줄은 몰랐네요.”
그리고 멍하니 신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게를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저게 뭐야….”
“리에나. 코스프레는 다른 곳에서 꼭 할 테니까 나가면 안 될까?”
말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그녀는 서큐버스였는데, 피아랑 서아를 경악하게 만든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양손에 들려있는 자동으로 꿈틀거리는 고양이와 강아지의 꼬리.
평범한 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그것들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이 필요해서 오셨나요? 리에나님이라면 저의 애널딜도 1호 컬렉션인 이것들도 빌려줄 수 있는데 말이죠.”
위잉 잉 위잉 위이이잉
그녀가 장난기가 많은 성격인 건 알고 있고, 저런 행동들도 내 옆에 있는 피아와 서아의 새하얘진 얼굴을 보고 그런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조금만 더했다가는 정말로 울 것 같고.
나조차도 더 이상 꿈틀거리는 그것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에 입을 열었다.
“세릴, 그것 좀 치워줘.”
“네.”
세릴은 그제야 그것들을 아공간에 넣었고, 피아와 서아의 표정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자신과 코스프레 삽의 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레드 문에서 사내 이사를 맡고있는 세릴이라고 합니다. 저의 취미생활의 하나인 서큐버스의 보물창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난교클럽의 점장 역할을 맡았던 소피아와 직원 역할을 맡았던 미야와는 다르게 정말로 세릴이 운영을 하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모아둔 코스프레 복장과 여러 기구를 모아두고 관리하던 장소였지만.
월급을 받는 것보다 신작들을 사 모으는 게 더 많이 들어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판매와 대여를 해주는 가게로 용도를 변경한 곳이었다.
설명을 마친 세릴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듯한 짓고는 아공간에서 수많은 물건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리에나님과 친구분들은 무엇이 필요해서 오셨나요? 딜도? 로터? 코스튬? 그것도 아니면. 서큐버스 특제의 불법 미...”
“거기까지.”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입을 막아야만 했다.
고위 서큐버스들이 전부 특이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세릴은 그중에서도 대하기가 어려웠다.
처음 만났을 때도 옷도 안 입고 있는 나에게 딜도를 들이밀며 오래 쌓였을 테니 필요하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어쨌든 지옥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피아와 서아의 표정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곳에 온 용건을 말했다.
“그냥 간단한 내기를 해서 코스튬을 입기로 한 거야.”
“에이…. 초 희귀 SSS급 기구 컬렉션들을 소개해줄 수 있을 기회였는데 아쉽네요. 대신 남들에게는 빌려드리지 않는 코스튬들을 보여드리죠.”
세릴은 꺼낸 물건들을 집어넣고는 우리를 가게 한쪽에 있는 방으로 데려갔고. 꺼져있던 조명을 켠 순간.
“와….”
나를 포함해 모두에게서 전과 다른 의미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곳은 바깥에 있는 천박한 코스튬과는 달리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이곳이 전혀 코스프레 삽 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복장들이 마네킹에 걸려있었다.
“저를 따라오시면 처음부터 설명해드릴게요.”
세릴은 우리를 데리고 코스튬 하나하나의 담겨있는 역사를 설명해줬다.
12대 성녀가 입었던 예식용 복장부터 해서 붉은 바람이라 불렸던 여자 용사가 입었던 갑옷, 심지어는 유명한 듀라한이 입었던 갑옷과 머리까지. 종족, 성별, 옷의 형태 그 어느 것조차 역사적 가치가 없는 것들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녀의 옷에서는 신성력이 느껴졌고, 용사의 갑옷에서는 바람의 기운이. 듀라한의 갑옷에서는 탁한 마나가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진품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놀랄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코스튬에 다다라서 교묘히 숨겨져 있던 새로운 문고리를 잡은 세릴이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에게도 여기까지만 보여주는데. 리에나님이 있으니 특별히 진짜 컬렉션을 보여드릴게요.”
이것이 진짜 월급이 부족한 이유라고 말하며 열린 문 안으로 보인 것들은. 보존·보호마법이 걸려있는 장식장에 진열되어있는 옷들이었는데.
“미친….”
“저게 왜 저기 있어?”
지금까지와는 달리 감탄사가 아닌 경악을 불러 일으킬만한 것들이었다. 정말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었으니까.
“자자. 입만 벌리지 말고 가까이서 구경하시죠.”
세릴은 우리의 등을 밀어서 가장 앞에 있는 두 개의 장식장으로 데려갔고.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지 얼굴을 붉게 달아오른 채로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아끼는 것들이지만 이 두 개는 조금 더 특별합니다. 역사상 가장 강했던 10명을 뽑으라면 꼭 들어가는 인물들의 옷이에요.”
그러나 나는 설명을 듣지 않고서도 이 의상들이 누구의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마법 수식들이 적용되어있는 검붉은 드레스는 붉은 달의 주인이자 대악마인 서큐버스 퀸이 마지막 전투 때 입고 있었던 것이고. 하얀 미스릴로 만들어진 신성력으로 둘러싸인 순백의 경갑은 검마이자 이단심문관 단장인 이지훈이 입고 있었던 옷이다.
“아직도 이 두 명이 이것들을 입고 싸웠던 공간은 금지로 지정되어있을 정도니까요.”
이것들이 어찌 이곳에 있는지 알기 위해 세릴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자신의 컬렉션을 처음 소개하는 것에 푹 빠져버렸는지 우리를 이끌고 다른 장식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어진 다른 의상들의 설명은 나를 제외하고도 피아와 서아의 혼을 빼놓기에도 충분했다.
“아빠….”
피아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을 만큼 당황하게 만든. 공작부인이 침실에 들어갈 때 입었다는 검은색 시스루 잠옷이 걸려있었고.
“아우….”
서아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 흑염의 용사파티의 대마법사가 관계 중 즐겨 입었다던 푸른색의 얇은 네글리제도 있었다.
그 이후로도 수십 개에 달하는 코스튬들의 설명을 마친 세릴은 우리를 바라보며 머지않아 승천할 것 같은 미소를 짓고는 양팔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서큐버스! 뱀파이어! 대마법사! 드디어 제 소원처럼 저것들을 입어줄 사람이 찾아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