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25. 마수애호가
* * *
25. 마수애호가
“으하하하 시작됐군. 시작됐어.”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착착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광소가 터져 나왔다.
삼두견이 안 본 사이에 삼두랑이 되어버린 것은 예상외였지만, 반인반수들은 타이밍에 맞춰 전투에 끼어들 수 있었고, 자신은 떨어져 있던 보호자들의 발목을 붙잡아둘 수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이고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보호자 중 하나인 대호의 부길드장이 위협적인 표정으로 자신을 협박했으나.
“일단 나를 걱정해주기 전에 자신의 앞가림부터 해야겠지?”
그를 위해 준비한 마수조차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귀여운 앙탈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상대가 검은 달의 주인이든 용사든 자신을 찾지 못할 거였다.
문제는 모든 게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무언가 한구석이 찜찜했다는 건데, 그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저 신성력을 두르고 있는 미친년이었다.
자신이 맡은 학생들이 위험에 처하고 마수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처음에 만났을 때와 같이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지?”
자신이 부화시키고, 육성시키고, 세뇌시킨 마수들이 그녀에게만큼은 대적하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명령을 내려봐도 가까이 다가가면 세뇌가 풀린 채 도망가기만 할 뿐,
다행히도 능력을 사용하는 동안은 이동할 수 없는지 자리에 계속 서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나의 계획은 실패했을 거였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예정을 조금 바꿔 너도 살려서 데려가면 되는 거니까.”
어차피 이제 와서 지금의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었고, 어떤 방식으로 실험 아니 고문을 하여 비밀을 파악할지 고민하던 찰나.
저벅 저벅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던 미친년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키에에에엙
캬악
그녀가 다가올수록 주위를 지키던 마수들은 괴성을 지르며 물러났고.
한 발짝... 두 발짝...
미쳐 날뛰는 마수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다가온 그것은 나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지금의 모든 상황이 그저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만 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졌고.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껏 자신은 배우들을 움직여 이야기를 연출하는 감독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크크킄... 으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모른 체 상황을 지휘하고 있던 자신도 그녀를 즐겁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니.
“극중극이라니 생각지도 못했어.”
나는 감독이 아니라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사였을 뿐이고.
지구의 미래라는 거대한 판돈을 걸고 만든 나의 이야기는 저 괴물이 기획한 무대 외곽에서 치러지는 작은 인형극이었을 뿐이다.
내가 작은 인형극을 연출하며 재미를 추구하는동안.
거대한 무대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의도대로 발버둥 치는 나와 배우들을 구경하는 진짜 감독인 당신은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지만.”
크아아아아아악!
“프레이 교수님! 빨리 리에나에게!”
인형극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반인반수의 울부짖음과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자신의 인형들을 보고는 모든 게 어그러졌다는걸 다시 한번 깨달았지만.
“당신의 생각대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내가 연출한 인형극은 끝나지 않았어.”
나한테는 내가 쓴 이야기의 끝을 봐야 할 책임이 있었다.
“마음껏 피날레를 장식해보시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지금까지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은 괴물은 인형 탈을 벗은 배우를 맞이하러 움직였고, 자신은 거대한 무대속 인형극이 진행되고 있는 작은 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은.
“기분 안 좋으니까 걸리적거리지 말고 꺼져.”
쾅
손짓 한 번에 반인반수들을 날려버리는.
무대를 기획한 괴물이 자신의 연극에 심어놨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하하하.”
검은 머리와 붉은 눈을 가진 두 번째 괴물을 보고 있자니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고, 부길드장과 목표물들을 마법으로 재운 뒤 결계를 치고 이곳에 도착한 첫 번째 괴물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네가 기획하고 주연배우가 이끄는 무대 위로 올릴 생각인가?”
평범한 빌런인 자신 따위로는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에 소름이 돋았지만.
애초에 모든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감독이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배우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그러나 자신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가 주연배우이고, 제가 무대를 만든 건 맞습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감독은 아닙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뇨. 저는 당신과 다르게 그저 배우들의 연기를 그저 지켜볼 뿐인 관객입니다.”
모든 상황을 기획하고 저딴 괴물까지 무대에 배치해놨는데 그게 감독이 아니다?
“당신도 만만치 않게 뒤틀려있군.”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또 다른 괴물 때문에 일단 말은 삼갔다. 지금의 상황을 만든 자신에게 분노를 표출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요사스런 붉은 마력을 줄기줄기 내뿜으며 다가온 괴물은 나를 지나치고는 뒤쪽에 있던 괴물의 멱살을 잡으며 으르렁거렸다.
“네가 무슨 짓을 했던 줄 알아?”
“오랜만이네요. 스텔라.”
그러나 멱살을 잡힌 괴물은 당장이라도 마력에 압사당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멱살을 잡은 괴물이 고통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으면 나는 물론이고 이지훈까지 뒤질뻔했어. 근데 보자마자 하는 말이 오랜만이네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그녀들의 관계는 그저 교수와 학생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독과 주연배우 같지도 않았고.
마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비슷한 느낌을 찾아낼 거 같았지만 일단 여기까지였다. 눈앞에서 믿기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분명 너라면 미리 알고….”
멱살이 잡혀있던 그녀는 괴물을 와락 끌어안아 말을 끊고는 강제로 수혈을 짚어 재워버렸다.
“농축된 정기를 갑작스레 투여해서 감정이 오락가락할 거야. 지금은 푹 쉬고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자.”
그리고 그녀는 쓰러진 괴물을 받아들고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분명 멱살을 잡고 있던 괴물의 눈에 비친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그런데 그걸 조금의 감정 동요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하며 저딴 짓을 벌이다니.
“너는 인간이 맞나?”
아무리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죽여온 빌런이라 할지라도,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끼던 재료가 죽으면 아쉽고, 좋은 일이 생기면 즐겁고, 귀찮은 일이 생기면 짜증이 난다.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괴물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인간의 기운을 내뿜으며,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지만, 그 본질은 마치.
“위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신 같군.”
그리고 내 말이 괴물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지금까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 같은 쓰레기의 눈에도 제가 신으로 보입니까?”
정말 몰라서 물어본 건가 해서 할 말을 잃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자 헛웃음을 지으며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해줬다.
“다른 사람들의 눈은 잘 속이고 있는 거 같지만, 동류의 눈은 못 속은 거야. 아무리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 해도 너는 신이니까.”
고양이가 줄무늬를 긋는다고 호랑이가 되는 게 아니고, 호랑이가 줄무늬를 없앤다고 고양이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본질은 바꿀 수 없는 거였다.
“어이가 없군. 제대로 된 신도 아니고 이딴 놈한테 걸리다니.”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방금까지 타오르던 삶의 의미가 전부 사라져버렸다.
자신은 죽기 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그렇게 거대한 무대를 연출한 사람의 감상을 듣고 싶었던 거지. 재미 삼아 인간을 갖고 노는 신 따위의 감상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신답지 않게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고있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적이나 신과 같은 입장을 전부 배제하고, 내 마지막 무대를 연출해준 너에게 충고를 하나 해주마.”
죽을 때는 깔끔하게 죽자는 게 신조였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이도 저도 아닌 새끼한테 죽으며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도 않았기에 작은 씨앗을 하나 심어두기로 결정했다.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둘 중 한 명은 포기해.”
솔직히 이걸 귀담아듣든 듣지 않든 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이건 대화와 상황을 유추하여 지어낸 제법 그럴듯한 말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충고가 앞으로의 행보에 아주 작은 머뭇거림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자신이 죽더라도 그녀가 계획한 거대한 무대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했다.
“먼저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신이 지옥을 올지는 모르겠지만.”
당황한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며 노예상에서 심어뒀던 자폭 장치를 가동시켰다.
거대한 댐을 무너트리는건 단 하나의 균열에서 시작되는 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