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24화 (24/48)

〈 24화 〉 24. 다가오는 악의 (3)

* * *

24. 다가오는 악의 (3)

검성, 검왕, 검제 등 검에 관한 수많은 별호가 있음에도 내가 검마로 불리게 된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검마(??).

단어 그대로 남들의 눈에 마귀처럼 보일 만큼 검에 미쳐있었기 때문이다.

“검마의 검술은 특별해.”

크아아아악­

또 한 번 그 평범한 찌르기를 피해내지 못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삼두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검의 재능이 없는 자가 만들어낸 특이한 검술이거든.”

검왕이 되었던 남자는 신성력이나 사용하라며 충고를 줬고, 검후가 되었던 그녀는 선봉은 자신에게 맡기라 했으며,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던 검성조차 재능이 전혀 없으니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싸우라고 단정 지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남들처럼 화려한 검술을 쓸 수도 없고 실력이 늘지도 않았지만, 자신에게 있는 넘칠듯한 신성력을 이용하여 한계에 다다른 육체를 끊임없이 회복시키며 정신력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그저 오기였다. 재능이 없다고 단정 짓던 사람들에게 틀렸다는걸 증명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1년. 2년... 5년.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위치와 주변의 환경이 모두 변해가며 검을 잡을 필요가 없어졌고, 나에게 검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음에도 손에서 검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검을 휘두름으로써 답을 향해 점점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재능을 키우는 방법도 아니었고 어울리는 검술을 찾아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검의 근본. 즉 개념을 파악하고 그걸 충실히 수행할 뿐이었다.

“솔직히 이걸 검술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

다른 사람들이 검술이라고 좋게 말해주니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검술이 아니었다.

초식 명도 없이 베기, 찌르기, 막기 이 세 개만 존재하는 검술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막 검을 쥐어본 열 살짜리도 미숙할지언정 할 수 있다고 말할 게 분명했다.

근데 베기, 찌르기, 막기가 그리 단순한 걸까?

아무리 화려한 동작을 추가하고 멋진 초식 명을 붙이며 개념을 추가해봤자 그건 결국 베기, 찌르기, 막기의 연장선일 뿐이 아닐까?

그렇다면 열 살짜리도 할 수 있는 베기, 찌르기, 막기로 극의에 도달한다면 최상위 개념의 검술을 익힌 검수들에 못지않은 거 아닐까?

그 의문에서 검마의 검술은 시작됐고 답을 내리며 완성되게 된다.

결국, 검의 근본이란 효율적으로 적의 목을 베고, 심장을 찌르며, 공격을 막는 것에서 이루어지니까.

“이 찌르기도 마찬가지야.”

나는 남들이 수많은 개념을 추가한 화려하고 유려한 찌르기를 사용할 줄 몰랐지만, 그저 검을 들고 목표를 뚫는다는 그 단순한 행위는 재능이 없더라도 할 수 있었다.

크아아악­

앞발이 꿰뚫린 삼두랑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의 베기도 마찬가지지.”

모든 것을 짓누르는 베기를 사용할 수 없더라도 검을 들고 목표를 자르거나 가르는 것은 할 수 있었다.

천천히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검은 자연스럽게 삼두랑의 한쪽 머리를 베어나갔고.

크악! 캬아아아악­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고요한 숲에는 머리가 떨어진 늑대의 고통 섞인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언제든지 달려 나올 준비를 하고 있던 피아와 서아는 몸부림치는 삼두랑의 상태를 보고는 나를 재빨리 뒤로 끌어냈다.

“리에나!”

“일단 치료부터 받아.”

그녀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니 내 꼴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한 듯싶었지만, 어차피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아무리 검마의 검술이 기본적인 베기와 찌르기로 보여도 그건 무한한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일종의 법칙이다.

그리고 육체의 붕괴를 회복시켜줄 신성력도 없고, 대악마라지만 완성되어있지 않은 이 몸으로 법칙을 다룬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 어땠어? 약속 지켰지?”

나는 그녀들을 보고 웃어주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한번 검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

근육이 파열된 손발이 덜덜 떨리고, 반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끌어쓴 마력 때문인지 내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보호되고 있던 심장 또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한 번만 더 믿어줘.”

최악의 상황에서도 검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수많은 좌절과 시련 속에서 이지훈을 유지해온 긍지이자 검의 재능 없이 검의 끝을 본 검마의 자부심이었다.

크르르륵­

잘린 목이 있던 부분에 불을 피워 지혈을 마친 삼두랑 또한 투지를 잃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았고.

“퉤…. 개새끼가 어디서 사람에게 기어오르려고 해.”

피가 섞인 가래를 내뱉은 나도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려 삼두랑의 남은 두개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검과 발톱이 격돌하기 직전.

쿵­!

거대한 굉음과 함께 상황이 급박하게 변해갔다.

나와 삼두랑의 공격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존재에 의해 막혔으며. 그들은 곧바로 이곳에 있는 모두를 무력화시키려 했다.

가장 먼저 노려진 건 그들과 가장 가까웠던 자신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공격이 막히면서 걸린 역동작에 다가오는 손을 피할 수 없어 보였다.

“리에나!”

그러나 다행히도 늦지 않은 서아의 마법 지원으로 붙잡히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고, 삼두랑이 몸을 돌린 미지의 적들을 공격했기에 잠깐의 대치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반인반수.”

피아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소의 뿔과 도마뱀의 꼬리가 달린 인간들을 바라봤다면.

“저런걸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마수애호가 뿐일 텐데. 설마 노예상이 움직인 건가.”

서아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는지 저들에 관해 설명해줬다.

노예상과 그들의 간부 중 한 명인 마수애호가.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마수와 반인반수들.

전부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의 상황과 조합해보면 마수애호가란 자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긴장한 표정의 그녀들을 향해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유일한 방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한 번만 말할 테니 집중해서 들어.”

저 반인반수라는 자들의 능력은 한 명 한 명이 삼두견이랑 비슷해 보였기에 피아랑 서아가 한 명을 삼두랑이 한 명을 잡는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지만, 전투에서 조금 전에 싸웠던 적이 동료가 되는 그런 만화 같은 전개를 바라면 안 될뿐더러.

부상자인 자신이 노려지는 한 그녀들은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할 태였다.

“무조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프레이 교수가 있는 곳으로 도망쳐서 상황을 알려.”

그녀 정도 되는 존재가 왜 마수 따위에게 묶여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벌일 일을 생각한다면 실력을 꼭꼭 숨기고 있는 그녀만이 자신을 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무기를 연성하고 마법을 캐스팅하며 앞을 막아섰다.

“리에나. 개소리하지마.”

“고집을 들어주는 것도 이제 끝이야.”

나를 희생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살린다고 착각한 모양인데 절대 그럴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어. 그저 프레이 교수의 도움이 필요할뿐더러 내가 너희들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했기에 하는 말이야.”

그녀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헌터협회까지 부숴가며 챙겨온 물건을 아공간에서 꺼내 보여줬다. 그것은 하나의 주사기였는데, 서큐버스가 아닌 자들이 봐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남성들의 정기가 농축되어 있었다.

“처음 써보는 거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거든.”

웬만해서는 세리아의 통제하에 소량씩 시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 외에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아는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지만, 같은 악마이자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던 피아는 내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 죽지는 않더라도 다시 되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알아?”

“잘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남자의 농축된 정기를 강제적으로 주입해 서큐버스 본연의 힘을 낼 수 있는 이런 방식을 생각해낸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부작용이 많을 것이란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본능에 먹혀버린 색마가 될 수도 있고, 정기가 폭주해 자멸할 수도 있겠지.”

원래부터 남자의 정기를 흡수하지 못하는지라 더욱 심각한 부작용 몇 개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이 정도였다.

“근데, 괜찮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서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확실히 대답해주기는 뭔가 애매했다. 그냥 본능이 괜찮을 것 같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서아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게 분명했기에 수혈을 짚어 기절시켜버렸고,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려던 피아에게 넘겨주었다.

“너 무슨….”

“프레이 교수가 있는 곳에 가 있어 금방 따라갈게.”

시간이 충분했다면 피아는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박했다. 반인반수들과 삼두랑이 다시 투기를 끌어올리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후…. 너는 돌아오면 각오하고 있어.”

피아도 그것을 느꼈는지 나와 안고 있는 서아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뱉었고, 그 말을 끝으로 프레이 교수가 있는 곳을 향해 발을 박찼다.

“우우어어어어어”

괴성을 내지른 반인반수는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이 재빨리 들고 있던 창을 던졌지만.

쾅­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아무리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라도 이런 공격 한 번쯤은 짬밥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창을 던진 녀석은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공격이 막힌 순간 곧바로 발을 박찼다.

“마음의 준비를 좀 하려 했건만.”

나는 점점 다가오는 그녀석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는 길고 매끄러운 중지를 들어 올려 빅엿을 만들어줬고 왼손으로는 망설임 없이 목에 주사를 꽂아 농축된 정기를 투약하며 입을 열었다.

“개든 소든 도마뱀이든 예쁜 여자 수인이 아닌 이상 동물을 키울 생각 따위는 없으니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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