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1. 마수 토벌 실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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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수 토벌 실습 (4)
끼에엑
1급 마수에 해당하는 고블린 한 마리가 심장에서 피를 뿜으며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1일 차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 이렇게 쓰러진 고블린들이 벌써 100마리째였다.
1급 마수 고블린 100마리. 즉 100점을 얻었다는 소리였다.
남들이 본다면 처음 마수토벌을 나온 학생들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라 칭찬하겠지만, 자신한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이거 좀 곤란한데.”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기를 걸었음에도 동기들을 자극한 것인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버린 거니까.
“분명 고블린 서식지는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거지?”
“무리를 지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한 마리씩만 나와.”
피아와 서아의 의문대로 그 변수란 우리는 오늘 하루 내내 상대해야 했던 고블린이었다.
단번에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상대였지만, 마수는 마수인지라 방심은 할 수 없었고 결국 고블린만 잔뜩 잡다가 1일차가 끝나버렸다.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베이스캠프로 이동하시죠.”
즉시 대처를 할 수 있을 만한 거리에서 우리의 토벌을 지켜보던 프레이 교수와 지서환 부단장이 모습을 드러내며 일행을 이끌었다. 부단장이 길을 앞장서고 프레이 교수가 우리의 후미를 맡는 형식이었다.
걸어가면서도 토벌당한 고블린의 마석을 유심히 살피던 프레이 교수는 정상적인 길에 접어들자 우리가 부탁했었던 일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지서환 헌터가 주변을 살펴봤지만, 고블린의 특이 동향에 관한 이유는 찾지 못했답니다.”
고블린들이 저렇게 몇 분 간격을 두고 한두 마리씩 나타나는 건 분명 정상적이라 판단되지 않았지만, 정찰 쪽에 특화된 S급 헌터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정말 자연적인 상황일 수도 있었다.
“제가 생각하기론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있던 곳에서 고블린이 많이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부단장도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렇게 고블린에 대해 생각하며 한참을 걸어가다 베이스캠프가 눈에 보일 때쯤이었다. 계속해서 태블릿을 확인하던 프레이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현재 점수 상황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알려줘도 괜찮은 거야?”
“원래라면 텐트에 돌아가서 알려드려야 하지만 그게 큰 상관이 있을까요?”
그녀의 의문에 나와 피아, 서아는 모두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지금 보나 10분 후에 보나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
“여기 있어요.”
싱긋 미소를 지은 프레이 교수는 나에게 태블릿을 넘겨줬고, 우리는 화면에 띄워진 점수 현황을 살펴봤다.
11조 100점.
5조 93점.
23조 9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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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점 차라….”
1등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다행이었는데 생각보다 나지 않는 점수 차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내가 전력을 다해 토벌을 주도한 것도 아니고 고블린만 계속 잡아 왔다지만, 피아와 서아의 능력이라면 2등과는 20점 정도는 벌어졌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서아의 말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1등부터 8등까지 모두가 특별반 학생이 속해있는 조야.”
서아는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짚어나갔는데, 그 이름들이 속한 조들은 모두 2~3등급의 마수를 사냥해서 점수를 모으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내일쯤 따라잡힐 거 같은데?”
피아의 생각대로 우리가 계속 고블린을 사냥하게 된다면 점수를 역전당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는 정말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보자.”
“그래도 괜찮은 거야?”
“배정받은 지역을 바꾸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었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허락의 의미를 담아 프레이 교수를 바라봤고, 그녀는 상관을 업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장소를 정해준 건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서일 뿐. 토벌의 모든 것은 조원끼리 결정한 뒤 시행하시면 됩니다.”
예상대로였다.
아카데미는 백여 년간 잊혀있던 순위결정전을 따를 만큼 규정을 매우 중요시하지만, 그만큼 규정에서 벗어나 있는 일은 한없이 관대했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띄워 동기들이 처음으로 배정받은 장소와 배점표를 번갈아 가며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려던 찰나. 프레이 교수는 우리에게서 태블릿을 가져가며 말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으니, 나머지는 텐트로 돌아가서 진행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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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만 100마리는 뭐야 대체.”
“그러게 말이야. 뭔가 노리고 있는 거 아니야?”
“리에나는 그렇다 해도 피아나 유서아는 그럴 애들이 아닌데.”
우리는 캠프의 입구부터 텐트까지 수많은 눈총을 받으며 들어와야 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고블린만 100마리라는 성적은 너무나 눈에 띄었다.
서아는 그런 동기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텐트에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 외로 더 부담스럽네. 리에나 너는 평상시에 어떻게 견디는 거야?”
“리에나 관종. 서아 정상.”
피아가 그런 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위로를 했고, 나는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고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준비했다.
바로 지도를 꺼내 내일 갈 곳을 준비… 하는 게 아니라. 아공간에서 타월을 꺼낸 뒤 마법을 사용해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교수님과 부단장님이 지휘본부에 가 있을 때 끝내버리자.”
따뜻한 타월을 준비한 이유는 땀과 피와 흙으로 더러워진 몸을 닦아내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육체와 정신적 피로를 푸는 게 주목적으로. 아무리 단련된 육체와 마력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피로가 쌓이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니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피로를 풀어내는 것이 연속적인 토벌을 할 때 가장 중요했다.
솔직히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는 게 제일 좋겠지만, 샤워 시설이 없는 이곳에서 따뜻한 타월로 몸을 닦아내는 거야말로 최대한의 케어 방법이었다.
“서아부터 하자.”
마검사인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간단한 가죽 보호대를 분리해주고 살짝 땀에 젖어있는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속옷을 풀어 내려갈 때 잠시 자신이 직접 하겠다는 저항이 있었지만, 피아의 도움으로 결국 제압을 완료했다.
“흐아아…. 따뜻해.”
탄탄하게 단련된 몸을 따라 타월을 움직이니 그녀의 입에서는 기분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타월이 식자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새롭게 꺼낸 옷을 입었다.
“다음은 피아.”
새로운 타월을 준비하고 피아를 바라보니 그녀는 이미 새로 갈아입을 옷까지 꺼내두며 모든 준비를 마쳐있었다.
“벌써 준비가 끝났네.”
“빨리. 새 옷.”
나는 그녀의 의중대로 몸에 묻어있는 땀과 먼지들을 닦아줬고, 육체를 중점적으로 단련한 서아와는 다르게 간간히 뭉쳐있던 근육들도 풀어줬다.
“리에나. 마사지. 공작가. 취업.”
마사지가 기분이 좋았는지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어쨌든 피아가 꺼내두었던 옷을 입으면서 해야 할 일은 끝났다.
그리고 그녀들의 표정을 보니 지금쯤이면 다음 일정에 대해 논의해도 괜찮을 듯싶었고,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띄우려던 찰나.
“뭐 하는 거야?”
“리에나 안 해?”
양손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들 때문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피아의 손에는 타월이 들려있고, 서아의 손에 마법이 캐스팅되는 거로 봐서는 자신의 몸을 닦아줄 생각인 거 같은데.
“나는 괜찮은데….”
땀을 흘리지도 않았으며 피나 먼지도 묻지 않아서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며칠 전에 거짓말한 전적 때문인지 그녀들은 들은 체를 하지도 않았다.
“그건 우리가 확인할게.”
“벗어.”
그러나 다행히도 이 이후에 벌어질 일은 실현되질 않았다. 회의를 위해 지휘본부에 갔던 부단장이 텐트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혹시 조금 있다 들어와야 할까요?”
부단장이 들여놨던 발을 빼며 물었지만, 피아와 서아에게 깔려있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격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꼭 필요하니 여기에 계셔주세요.”
“하하. 두 분은 그러길 원치 않는 거 같지만 조장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들어가야겠죠.”
그는 피아와 서아를 바라보고는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으며 텐트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들은 그제야 나를 놓아주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유의 몸이 된 나는 텐트의 입구 쪽을 확인한 뒤 부단장에게 질문을 건넸다.
“혹시 프레이 교수님은 늦으시는 건가요?”
“회의를 끝내고 지휘본부를 나오는 것까지는 동행했지만, 잠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사라지셨습니다. 아마 교수들끼리 무언가 의논할 게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중요한 일이면 제가 직접 전해드리겠습니다.”
분명 같은 회의에 참석했으니 텐트로 돌아올 때는 같이 오리라 생각했었는데 따로 일이 있다면 어쩔 수 없었다.
긴급한 사항도 아니었고, 눈앞에 있는 부단장 정도라면 충분히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니까.
“아뇨.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대신 부단장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될 것 같네요.”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죠.”
휴대폰의 홀로그램 기능을 이용해 텐트 중앙에 실습 장소의 지도를 띄웠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제공해줬던 몬스터의 분포도를 적용한 뒤 한가지 지점을 가리켰다.
몬스터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다른 곳과 달리 붉은 느낌표 모양이 자리한 곳이었다.
“우리는 내일 저 붉은 느낌표가 있는 곳의 마수를 잡으러 갈 것입니다.”
“진심입니까?”
“네 저희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리에나 학생을 그렇다 쳐도 다른 분들도 동의하신겁니까?”
나의 얘기를 들은 부단장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 피아와 서아를 바라봤다. 만약 나의 독단적인 선택이라면 말리려 했던 걸 테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그녀들은 내가 붉은 느낌표를 가리킬 때부터 이미 결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동기가 제안한 거였다면 치기를 부리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리에나는 다릅니다. 조금 믿음직스럽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녀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죠.”
“실습. 1등. 압도적.”
“피아도 이왕 실습을 한 거 압도적인 1등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부단장은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아카데미와 길드에서 허락이 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신 저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주신다면 최대한 승인이 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피아와 서아는 나를 바라보면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도 감사의 의미를 담아 그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인 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정보를 입에 담았다.
“그러면 지금부터 6급 마수 삼두견의 공략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머리가 3개 달린 신창 5m 크기의 거대한 개.
차원이 연결된 통로를 지키며 침입자를 마계의 불로 죽였다던, 지옥의 문지기.
개체명 케르베로스를 잡을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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