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20. 마수 토벌 실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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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수 토벌 실습 (3)
자신을 박대호라 소개한 길드장은 우리를 데리고 베이스캠프 안에 자리한 여러 시설을 구경시켜주었다.
회복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헌터들이 상주하는 의료시설부터, 마수의 분해해 부산물을 얻어내는 해체처리장, 외각을 따라 새워진 초소까지.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것 치고는 정식 베이스캠프 부럽지 않은 시설들이었다.
가문을 따라 여러 베이스캠프를 다녀봤다던 서아가 길드장에게 왜 임시 시설에 이렇게 많은 투자를 진행했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길드들이 아카데미의 의뢰를 잘 받으려 하지 않지.”
아카데미 실습의 호위 역이란 모든 길드가 거북해하는 의뢰라고 한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 말을 잘 따르는 민간인들이 아닌 아직 혈기왕성한 초짜 헌터들이란 것도 있었지만, 베이스캠프 구축조차 법적으로 일정치 이상의 안전을 제공되도록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상남자 박대호. 후배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지.”
그는 살짝 놀라있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껄껄 웃으면서 자신이 아카데미를 다녔을 때를 설명해줬다.
자존심만 강하던 명문가의 자제들을 묵사발 내줬다거나, 수업을 빼먹고 도망쳤다든가 등등 매우 바람직하지 못 한 일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수석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할망구한테 맞고 나서 정신을 차리게 된 거지. 처음 봤을 때는 친구뻘인 줄 알고 달려들었는데….”
길드장은 덩치와 험악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말을 잘했는데 흥미로운 얘기를 듣다 보니 이내 우리가 사용할 텐트에 도착해있었다.
“아까 회의실에서 들었던 데로 학생 3명과 교수 1명, 우리 측 헌터 1명이 실습 기간 동안 같이 사용하게 될 텐트다.”
그의 말대로 텐트에는 11이라는 번호와 함께 5명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하나의 이름을 빼고는 전부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나와 피아, 유서아 그리고 프레이 교수까지.
“내가 안내해주는 건 여기까지고, 나머지는 안에 있는 교수에게 듣도록.”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듯이 몸을 돌려 지휘본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보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너희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으마. 이거 전 재산을 걸어도 되겠어! 하하하.”
피아와 서아는 그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성적을 가지고 하는 내기쯤이야.
교수들이 들었다면 불쾌감을 표현했겠지만, 자신은 이것도 하나의 여흥이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모아둔 돈까지 끌어다 넣어보시죠?”
그리고 만약에 이 상황이 생각대로만 흘러간다면 얻어낼 게 정말 많을 거였다.
“엉?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경주마한테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많이 걸고 남는 걸 조금 주시죠.”
박대호는 나의 권유에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는 베이스캠프가 떠나가라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래. 좋다 이왕 거는 거 길드장 자리까지 걸어보겠어. 대신 내가 내기에서 진다면 너는 졸업 후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하지.”
“그거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하지만 아무리 여흥이라도 불공정한 내기를 받아드릴 수는 없는 법. 무게추를 맞추기 위한 하나의 조건을 추가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원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면 내기에서 이기실 경우는 저의 부탁을 한가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 5위의 대호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 길드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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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 중앙에서 일어난 사건은 실습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금까지도 학생들 사이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걔가 또 사고 쳤다며?”
“사고라기보다는 대호 길드장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보이던데.”
“솔직히 잘난 건 인정하겠어. 근데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냐?”
동기들의 따끔따끔한 시선들을 느끼고 있자니 부담스러워서 프레이와 피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들도 다른 동기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있었다.
“실력테스트 때도 지금도 이유는 이해해. 그런데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리는지는 잘 모르겠어.”
“리에나. 관종. 머리아파.”
분명 텐트에 들어가서 프레이교수와 그녀들에게 자신이 이런 내기를 한 이유와 그에게 원하는 게 뭔지 전부 알려줬지만, 완전히 이해시키는건 불가능했나 보다.
하긴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많이 제외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5분가량을 동기들의 눈치와 피아, 서아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시간이 되었는지 학생들의 주위로 헌터들과 교수들이 모여들었다.
우리의 옆에도 같은 조를 이룬 프레이 교수와 한 명의 남자 헌터가 다가왔다. 로브를 덮고 있어 전체적인 육체 상태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기도와 마력의 활용으로 보아선 은신이나 정찰에 특화된 헌터 같았다.
‘길드장이 특별히 붙인 건가?’
격을 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붙은 헌터들보다는 특별한 존재 같았다.
일단 은신이나 정찰 쪽은 다른 기술들에 비해 습득하기가 어려울뿐더러,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그걸 S급 헌터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남자니까.
그리고 그 사실은 그가 로브를 걷어내고 소개를 하면서 알아낼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대호길드의 부길드장을 맡고있는 지서환이라고 합니다.”
길드장이 하나의 산을 군림하는 산군이라면, 이 남자는 어둠 속에서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포식자였다.
그러나 그걸 보여줄 생각은 없는지 공손한 분위기로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길드장님의 명령으로 실습 동안 여러분들과 한 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레이 교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그건 그녀가 특이한 거였고. 나를 비롯한 피아와 서아는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다.
“유사시에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를 비롯해 주위의 모든 학생들이 같은 조에 배정된 헌터들과 인사를 마칠 때쯤 단상으로 1학년 총괄 교수가 올라왔다.
그는 학생들의 얼굴을 한번 훑어본 뒤 확성마법이 적용된 마이크에 다가가 운을 떼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와 달리 목숨을 걸고 마수와 싸워야 합니다. 불구가 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회의실에서 보았던 살짝 어중간한 모습이 아닌 이곳에 있는 교수 중 유일하게 격을 넘은 자인 만큼 그에 걸맞은 기세를 뿜어내며 학생들을 압박해나갔다.
“그러니 포기하셔도 괜찮습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들을 비난하지 않을 겁니다.”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동기들은 물론 피아와 서아까지도 교수가 내뿜는 기세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총괄교수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겁고 답답했다.
하지만 동기 중 그 누구도 총괄교수의 압박에 굴복하는 사람은 없었다. 격이 다른 기세를 받아내며 무릎을 꿇더라도 자신이 심어줬던 투쟁심만큼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솔직히 실력테스트 이후로 300년간 바뀐 아카데미의 교육방식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졌었다. 쓸데없는 겉치레가 늘어나고 실전성이 많이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시대에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한 것일 테고 학생들의 태도가 바뀐 이상 건들 필요가 없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대로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분명 실습 중에 누군가가 다칠 게 분명했다.
‘이런 곳에서 죽어도 될만한 재능들이 아니야.’
나는 동기들을 대표하여 단상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징글징글하다는 동기들과 교수들의 눈을 지나고 의아하게 쳐다보는 헌터들을 지나 총괄교수의 앞에 마주 섰다.
“리에나 학생. 이게 무슨 의미죠?”
돌발행동이 못마땅했던지 그의 기세가 점점 더 강해졌고, 동기들의 신음이 더욱 깊어질 때쯤 입을 열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판단하지요?”
교수의 비아냥거림에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고는 뒤를 돌아봤다. 징글징글하다는 동기들의 눈 한편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신을 보고 부러워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이제부터 보시게 될 겁니다.”
손을 휘둘러 주위에 깔린 총장의 마력을 흩트렸다. 장악하지 못한 그 작은 틈을 파고 들어가 연결을 끊어버린 것으로 마력조작 심화 단계의 응용에 변형일 뿐이지 별로 어려운 기술은 아니었다.
연습만 한다면 지금의 동기들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총장은 자신의 마나가 모조리 흩어지는 광경에 놀랐는지 지휘본부에서 보여주던 모습이 살짝 드러났다.
‘근데 이거 가지고 놀라면 안될 텐데.’
나는 비틀대며 일어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실력테스트의 그때처럼 최대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너희가 포기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전혀 아니지 바로 나부터가 죽기 직전까지 잘근잘근 씹을거거든 실습에 쫄아서 튄 새끼라고.”
어차피 아무도 포기하지 않을걸 알고 있는데, 관습이랍시고 괜히 총장의 방식으로 사기를 끌어올리는 건 너무 불필요한 짓이었다.
“그래도 한 명쯤은 튀어줬으면 좋겠어. 다른 동기들이 튄 실습에서 1등을 했다 그러면 좀 더 있어 보이지 않겠어? 안 그래?”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도 잊고 마수에게 머리를 들이밀 수 있는 각성제였다.
그렇다고 직접 환각제나 마약을 놓을 수는 없는 거고 자신이 그 대신이 되어 그들을 자극한 거다.
그리고 효과는 즉발이었다.
“개새끼가 또 지랄이네.”
“아오. 시발. 순간 쫄아서 튈까 생각했던 내가 병신이지.”
그들은 다시 한번 눈을 빛내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작게 타오르던 투쟁심은 실전에 대한 모든 공포를 태워버릴 정도로 번져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나는 총괄 교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이제 시작하셔도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총괄교수는 허탈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저보다 리에나 학생이 교수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군요. 좋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총장은 다시 한번 표정을 가다듬고, 이전과는 다른 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선언했다.
“그럼 지금부터 마수 토벌 실습을 시작하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