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9. 마수 토벌 실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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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마수 토벌 실습 (2)
몸을 감싸는 푹신푹신한 이불. 시원해서 껴안기 딱 좋은 쿠션. 주변에서 은은하게 흡수되는 정기까지.
분명 창문에서 새어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지금이 일어나야 할 아침임을 알았지만, 잠에서 깨어나기가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이 바로 극락이었으니까.
“리에나. 일어나. 도착했어.”
“조금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그 말. 3번째.”
자꾸 하얀색 쿠션 말을 걸어왔지만 그건 내가 너무 피곤해서 느끼는 착각일 것이다.
어제 협회에서 많은 일들을 마치고 클럽으로 돌아온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건사고였다. 어찌 보면 협회에서 일어난 일보다 더욱 골때리는 그런 일들.
피아와 서아는 누가 술을 먹였는지 숙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3명의 교수들은 선수로 보이는 인간들에게 작업을 당하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우리의 말괄량이 이지윤은 어떤 부자 인큐버스를 쥐어패고 있었다.
나는 5시간에 걸쳐서 그들을 숙소로 끌고 와 재워야 했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에들 수 있었다.
결국, 부족한 정기는 자면서 자연적으로 회복되긴 했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리에나 어제 일은 우리가 정말 미안하니까. 일어나 주면 안 될까?”
하얀색 쿠션으로 부족한지 이제는 파란색 쿠션이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자신도 이제 실습이 이뤄지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 명의 인물에게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꼭 받아내야 했다. 이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시위였다.
그리고 5분이 지나서야 피아와 서아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4시간 30분에 걸친 소동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입을 열었다.
“알겠어. 내가 전부 잘못했고. 다음부터는 안 그럴 테니 일어나줘라.”
드디어 이지윤이 처음으로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됐다. 절대 어길 수 없는 족쇄를 채워야만 했다.
“어기면 어떻게 할건데요.”
“내가 한번 약속한걸 어길 것 같아?”
“그거야 저는 모르죠.”
그녀가 약속이란 단어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철저히 모른 척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과도한 조건을 걸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알겠어. 그러면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줄게.”
그리고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정으로 봐서는 정말 소중한 듯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에 탑승한 이후 처음으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약속은 꼭 지키시길 바랄게요.”
일행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지윤은 뚱한 분위기를 보였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제1즉각대응단이 치고 있는 방어선을 넘어와 마수들이 점령한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거대한 나무와 허리까지 오는 수풀. 알록달록 피어난 꽃들까지 겉으로만 보기에는 봄을 맞이한 어느 산과 다름없었지만, 매우 이질적인 부분이 일행을 자극했다.
‘마력밀도가 달라.’
차를 새워둔 곳은 안전지대임에도 수많은 아티팩트와 마법이 사용되는 도시보다 마력밀도가 배는 높게 느껴졌다.
“일단 베이스캠프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일행 중에 이곳을 처음 오는 것이 아닌 세 명의 교수들은 길을 앞장서며 우리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베이스캠프가 쳐진 곳까지 들어가게 되면 이곳에 두 배 이상의 마력밀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최대한 마나를 순환하여 마력중독에 주의하십시오.”
“마력에 변형된 식물들이 많으니 최대한 접촉을 금지하셔야 합니다.”
여러 가지 주의사항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마력중독으로. 아무런 대비 없이 고순도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나중 가서는 신체의 밸런스가 무너져내리는 증상을 의미했다.
대규모 전쟁 시 마법폭격 등으로 갑작스레 마력밀도가 오르는 것을 감지하지 못해서 많이들 걸리는 병이었는데, 이렇게 자연적으로 마력밀도가 높은 곳을 경험하는 게 처음이다 보면 더욱더 주의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피아와 서아를 바라봤는데, 그녀들은 대처를 잘 하고 있는지 살짝 불편하다는 표정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둘 다 괜찮아?”
“마대륙에 비해서는 별거 아니야.”
“조금 불편하긴 한데. 가문에서 연습을 해둬서 버틸만해.”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상황을 물어봤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하긴 그녀들 모두 웬만한 사람들 모두 비비지 못할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들이었다. 거기에 뛰어난 배경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이런 상황쯤은 여러 번 경험해봤을 거다.
그렇게 일행은 이어진 길을 따라 20여 분 정도를 걸어갔고, 거대한 공터에 새워진 베이스캠프를 맞이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 헌터들이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텐트와 가건물로 건설된 병원과 지휘본부까지. 2시간 동안 이곳을 조성할 수 없었을 테니 학생들보다 미리 도착해있던 대호길드의 헌터들이 준비해둔 것으로 보였다.
“오 대머리 녀석 생각보다 꽤 하는데.”
“그러면 바로 지휘본부로 이동해서 보고부터 하시죠.”
전투 마법학 교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지윤을 무시한 채 일행을 데리고 지휘본부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입학식때 보았던 여러 교수와 대호길드의 헌터로 보이는 이들이 회의를 진행 중 있었는데, 그중 가장 중앙에 앉아있던 1학년 총괄 교수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아닙니다. 신경….”
그러나 이지윤은 인사를 건네는 전투 마법학 교수의 말을 끊고 옆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고 비아냥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옆에 앉아있는 대머리 때문에 늦을뻔했지 뭐야.”
대머리라는 명칭으로 보아 아마 계속해서 대가리를 깨버리겠다고 언급했었던 대호길드장인 듯싶었다.
그래도 모두가 있는 앞에서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대호 길드원들은 자신들의 길드장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길드장님한테 무슨….”
“아무리 교수라도 저건.”
그러나 무례한 행동이라는 길드원들의 생각과 달리 길드장의 반응은 달라 보였다.
“에이 지윤 누님 왜 그러십니까. 저희도 누님과 제자분들이 쓰실 방인 줄 모르고 받은 거니 한 번만 용서해주시죠.”
이지훈을 향해 말을 높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녀도 그게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내가 너 어렸을 때부터 두개골 속 뇌를 보고 싶던 걸 참은 게 몇 번이나 되는 줄 알아?”
“2년 전쯤에 말했을 때가 30번이었으니 지금쯤 한 35번 정도는 넘어가지 않았을까요?”
“그걸 아는 새끼가 그래?”
이지윤은 대령한 대답에 열이 뻗쳤는지 무조건 때려야겠다는 듯 테이블을 밟고 넘어가려 했고, 길드장은 그 모습을 보고는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밟으려는 그거 웬만한 나라 1년 예산으로도 못 만드는 거 아시죠?”
이지윤이 밟으려 한 테이블은 내부에 있는 수많은 물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었다.
고밀도의 마력을 견디기 위해서 수많은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기도 했지만, 홀로그램으로 떠있는 주변 지형도와 그곳에 표시된 수많은 점은 학생들과 교수, 헌터들을 연동하고 있었다.
주변 모두의 시선이 설마 정말로 저걸 밟고 넘어가냐는 듯 이지윤에게 모여들었다. 특히 아카데미에서 물건을 가져왔을 총괄교수의 안색을 창백해지다 못해 새파래졌다.
“개쉨…. 교수일 때 만나서 운 좋은 줄 알아.”
그녀는 테이블을 넘어가지는 못하고 한발을 걸친 채 이를 부득부득 갈더니 결국에는 비어있는 의자에 주저앉아버렸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1년치 예산 앞에서는 조금 후달린듯싶었다.
그리고 주변이 잠잠해지자 우리를 안내한 3명의 교수도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고 나와 피아와 서아도 그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몇몇 헌터들이 우리를 보고 의문스럽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나가라는 소리가 없어서 앉은 거지 사실 나도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몰랐다.
예측을 하자면 이지윤에게 모든 정신이 돌아간 교수들이 우리를 돌려보내는 것을 까먹은 게 제일 유력하긴 했다.
하여튼 회의는 시작되었고, 총괄 교수가 이번 실습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총 2박 3일로 치러지는 실습으로 학생 3명과 교수 1명, 헌터 1명 총 5명이 한 조를 이루어서 지정된 시간 동안 마수를 토벌하고 그걸 점수로 계산하는 식이었다.
“1급 마수 1점, 2급 마수 2점, 3급 마수 4점, 4급 마수 8점 등 이런 식으로 배점이 올라갑니다.”
그러다 교수의 입에서 점수에 관련된 부분이 나왔을 때 가만히 회의를 지켜보던 대호길드장이 손을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그렇게 된다면 혹여나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위해 상위 마수에 달려들게 걱정됩니다만. 그때는 저희 측에서 제지를 가해도 되는 겁니까?”
한 집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괜히 학생들이 점수 때문에 상위 마수에 덤벼들고 그걸 구하려다 길드 측 헌터들이 부상을 입을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총괄 교수도 그런 걱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저희 측에서 따라붙는 교수도 웬만해서는 그런 상황을 두고 보지는 않겠지만. 혹여나 불상사가 생겼을 경우 학생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장은 총괄교수의 진심 어린 말을 듣고는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니, 뭐 그러라고 고용된 거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뭐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지금 시기가 상위급의 마수들은 전부 북쪽으로 올라갔을 시기기도 하고 대호 길드원분들이 있으니 걱정은 없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위치와 상태를 표시해주는 이런 물건이 있으니 만약의 사태도 나오지 않겠죠.”
총괄 교수와 길드장은 서로를 칭찬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그 둘을 째려보고 있는 이지윤과 눈을 마주치고는 시선을 피하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어? 학생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총괄교수는 의문을 표했지만 길드장은 이 상황을 활용할 방법을 찾았는지 빠르게 입을 열었다.
“나갈 시기를 못 잡은 거 같으니 제가 텐트를 안내해주고 오겠습니다.”
길드장은 덩치와는 다르게 재빨리 움직여 우리를 데리고 회의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중간에 뒤에서 이지윤의 목소리가 들려온 거 같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건물을 빠져나온 그는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 미친 늙은이한테서 도망도 쳤겠다. 시간을 좀 끌어야 하니 베이스캠프를 소개해주도록 하마.”
길드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는데, 숲을 비추는 따사로운 태양보다 그 미소가 더욱 환해 보이는 건 착각일 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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