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17. 향락의 도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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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향락의 도시 (2)
어쩔 수 없이 도착한 그곳은 난교클럽이라는 이름과 사뭇 달랐다.
내부의 객실은 웬만한 호텔 스위트룸이 부럽지 않게 구성되어있었고, 방음 또한 마법적 처리를 끝내 완벽했다.
“그럼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뒷문을 통해 몰래 객실로 안내해주었던 서큐버스 점장이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리에나의 몸에서 깨어났을 때 만난 적이 있던 서큐버스였는데 자신에게만 몰래 여러 얘기를 전한 걸 보니 세리아에게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렸던 듯했다.
“그래도…. 생각한 거랑은 다르네요.”
“밖에만 나가지 않는다면야 노숙보다는 괜찮겠죠.”
일행들은 이곳이 생각했던 모습과는 달랐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짐을 풀기 시작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는 조금 달랐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들어오는 정기들과 점장이 전한 말에 따르면 지금 이곳은 희대의 마굴이었다.
우리 일행이 들어온 걸 감지했는지 새로 온 손님들은 어디 있냐고 날뛰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 넘쳐나는 정력을 빼기 위해 찾아온 헌터들과 남녀 가리지 않고 헌터 한 명 잡아서 출세하려는 수많은 사람들.
점장도 오늘 같은 날에 호기심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은 웬만해서는 돌려보낸다고 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일행들을 향해 한가지 충고를 건넸다.
“그…. 미리 전해 받은 주의사항이 하나 있는데, 최대한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으면 해요.”
피아와 서아, 프레이 교수는 걱정되진 않았지만 남은 4명은 특히 문제였다.
서큐버스 점장을 보고 눈이 반쯤 풀려버린 마검사학 교수와 얼굴을 붉히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두 명의 마법학 교수. 마지막으로 호기심에 밖으로 나갔다가 클럽을 말아먹을 이지윤까지.
“크흠. 그런 당연한 소리를.”
“우리는 실습을 하러 온 겁니다.”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니네.”
“내가 밖에 나갈 일이 뭐가 있다고.”
그들은 내 눈에 새겨진 깊은 불신을 읽었는지 대답만큼은 빠르게 잘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소에 보여주던 행동들이 있었으니까.
차라리 저 교수들의 말을 믿을 바에는 금혈을 한다는 피아의 말을 믿지.
나는 겉으로는 믿고 있겠다며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자리를 이동해서 피아와 서아의 손을 붙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교수님들 좀 부탁할게. 최대한 붙잡고 있어 줘.”
세 명의 교수들은 서아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척이라도 할거고, 이지윤은… 한 번쯤은 다시 생각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쨌든, 그녀들에게 부탁을 마친 나는 잠시 점장과 이야기를 할 게 있다는 핑계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프레이 교수가 돌발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동행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오래 걸리고 개인적인 일이라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에나님.”
문 바깥에는 혼자서 밖으로 나오라는 말을 전해줬던 점장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녀 외에도 여러 서큐버스 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도 엔간해서는 오지 않으려 했던 건데.’
이걸 보니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 자신은 아카데미 특별반의 리에나가 아닌 붉은 달의 주인인 서큐버스 퀸 리에나였다.
“자리를 옮기자.”
“알겠습니다. 그럼 점장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점장은 앞장서서 복도를 이동했고, 양옆으로 도열해있던 십여 명에 달하는 서큐버스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모두 레드문의 소속되어 충성을 바친 이들이니 비밀이 새어나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점장이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낸 의도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라는 의미였다. 서큐버스 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거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의 말대로 웨이트리스 복장을 한 서큐버스도 있었고, 방금전까지 흡정을 하다 왔는지 온몸에 땀을 흘리며 전라의 가까운 차림을 한 서큐버스도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고 있던 그녀들 모두에게서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공통점이 느껴졌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300년 동안 잠들어있던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말투, 목소리, 표정, 몸짓 하나하나까지 자신이 보았던 부하들을 향해 연설하던 리에나를 연기했다. 세리아나 사를, 데보라면 몰라도 다른 서큐버스들 앞에서는 완벽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은 중간계에서 태어나 인간들의 모멸감만 받으면서 살아왔겠지.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를 거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들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기 위해서라도.
계속 간질거렸던 날개와 꼬리를 꺼내고, 새어나가지 않게 꾹꾹 눌러 담아놓았던 마력을 거칠게 풀어헤치며 선언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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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하시는데요?”
점장실에 들어오고 커피를 준비해준 점장이 방금의 상황에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출정식을 지켜보던 그때의 기억이 나더군요.”
자신이 깨어났을 때 그곳에 있던 서큐버스들은 샤를과 데보라를 제외하고선 전부 붉은 달 전쟁 이전부터 살아온 고위 서큐버스들인지라 그녀는 과거의 리에나를 기억하고 있는듯했다.
“고마워.”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위로나 격려의 말 몇 마디를 하려 했을 뿐.
그러나 중간부터 뭔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고, 고맙다고 말한 이후부터 벌어진 일은 기억이 살짝 애매했다.
그래도 뭐 다들 좋게 봐줬다니 다행이긴 했지만.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건가. 별일 아니겠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그녀가 타준 커피를 전부 마시고는 본론을 꺼냈다. 이런 이야기를 하러 따로 빠져나온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벌써 준비된 거야?”
마수 토벌 실습이란 수업이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하나의 물건을 세리아에게 부탁했었다.
개념 자체를 새로 뜯어고치는 일인지라 조금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금방 완성이 되었나 보다.
“네. 원리는 비슷해서 만드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합니다.”
“시기를 정확히 맞췄네.”
교수들에 더불어 헌터길드가 호위로 붙은 이상 무슨 일이 생길 거란 생각은 하질 않았지만, 비장의 무기는 언제나 갖고 있는 게 좋았다.
“그래서 어디 있는데?”
“그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는 이곳에 도착했어야 할 물건이 지체된 이유를 설명해줬는데, 그걸 듣고 있자니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와이번이 하늘에서 뿌리고 간 똥 때문에 물건 호송차가 부서지다니.
나는 죄송하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점장을 향해 입을열었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겠어 자연재해지. 물건은 무사해?”
“부탁하신 물건은 5겹의 보호마법과 봉인마법으로 덮여있어서 기사에게 멀쩡하다고 보고받았습니다.”
그건 불행중 다행이지만, 그렇다면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물건도 무사하고 기사도 무사하다면 그냥 다른 차를 타서 들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다른 물건을 같이 옮기는 기사도 아닐 테고, 듣고 있으니 레드문에 소속되어있는 직원 같은데.
그러나 이어지는 점장의 말에 상황을 깨닫고는 이마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러 온 협회 측 헌터들이 저희의 물건을 발견하고는 위험물로 판단해 수거해갔답니다.”
결국, 5중 보호마법과 봉인마법이 문제가 돼버린 거다. 와이번의 똥에서 살아남은 건 좋았지만 너무 과했다.
만약 이단심문관이었을 적 자신이라도 어떤 사람이 길가에서 그런걸 들고 있다면 한 번쯤 뺏어서 확인했을 거라 단언할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후의 계획을 물어봤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저희가 두 가지 방법을 계획해두었으니 리에나 님께서 선택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계획이 있어 보였고, 상황이 잘 풀리길 기대하며 들었지만….
이럴 줄 알았다.
“그냥 두 번째로 하자.”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세리아님에게 전부 인가를 받아둔 거라 문제 될 일은….”
“아니, 그냥 평범하게 가자.”
그녀를 필두로 고위급 서큐버스들을 동원해 야밤중에 물건을 가져간 협회 지부를 흔적도 없이 지우자는 게 계획일 줄 생각지도 못했다.
그걸 승인한 세리아는 또 어떻고.
차라리 귀찮지만 내가 직접 협회로 찾아가 물건을 개봉하고 받아오는 게 훨씬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주문한 물건이 그다지 위험한 물건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당장 협회에 갈 테니 길 좀 안내해줘.”
“동행하는 인원은 몇 명이면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후방 지원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을 5명 정도 데려가시는 게.”
고개를 저어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 도시가 다른 곳이었다면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수많은 정기가 넘실거리는 향락의 도시 개성이었다.
“너랑 나면 충분해.”
정기가 부족할 리 없는 다른 서큐버스들은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정기의 제약이 있던 자신이라면.
직접적인 흡정이 아닌지라 전쟁 당시 보았던 리에나의 위용은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총장과 비벼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주섬주섬 무기를 꺼내는 점장을 보고 입을 열었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대충 빨리 물건만 챙겨서 돌아오자.”
자신은 이들과 달리 괜한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고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자신의 물건을 찾아오는 일에 싸움이 붙을 이유가 없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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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했었다라고 정정하겠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접수처로 부딪친 남자를 보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너무나 정확했다.
땡땡땡땡땡
“빨리 저 개새끼들을 잡아!”
“전투태세를 갖춰!”
엄청난 경고음과 함께 협회에 있던 모든 인원들이 우리를 향해 무기와 마법을 겨눴다.
그런 와중에도 바닥에 나뒹구는 한쪽 팔을 짓이기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우리의 난교클럽 서큐버스 점장은.
“리에나 님이 나서실래요? 아니면 제가 나설까요?”
“내가 나서면 전부 죽여 버릴 거 같으니 대충 끝내줘.”
“네, 그러면 저기 리에나님이 던져버린 남자가 과다출혈로 죽기 전까지 전부 정리하겠습니다.”
협회에 들어올 때부터 하고 있던 뚱한 표정은 어디 갔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기를 꼬나쥔 이들을 향해 걸어 나갔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일 맘대로 되는 게 없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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