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16화 (16/48)

〈 16화 〉 16. 향락의 도시 (1)

* * *

16. 향락의 도시 (1)

“다 도착했어요.”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자신은 주차를 마친 유서아를 대신해 곤히 잠든 일행들을 기상시켰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참 많고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300년 동안 면허를 따지 않은 뱀파이어와 300년이 지난 면허를 소지 중인 서큐버스, 장롱면허인 세 명의 교수들과 면허를 딸 필요가 없었던 공작가 후계자님을 제외한다면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서아밖에 없었다고 짧게 말하겠다.

중간에 프레이 교수님이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기억은 너무 충격적이라 넘어가고.

하여튼 우리는 두 시간이 걸려서야 실습 장소로 들어가기 전 최종 집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최전선을 방위하고 있는 제1 즉각대응단의 주둔지가 있는 곳이자.

일확천금을 노리고 모여드는 수많은 헌터, 그들을 관리하는 협회와 길드들의 지부가 있으며.

헌터들이 뿌리는 돈을 보고 몰려든 민간인들까지 있는.

이곳은 바로 50년 전 마수들에게서 수복한 한국의 최전선이자 향락의 도시라 불리는 개성이었다.

“화려해.”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엄청나네요.”

차에서 내린 피아와 서아는 개성에 온 것이 처음인지 낮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건물들과 수많은 인파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러나 나머지 인원들의 반응은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여러 번 와서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꼭 그 이유 때문인 거 같지는 않았는데.

“쯧…. 헌터 사망률 1위 지역이 이곳인 이유가 있군.”

“성장할 수 있는 적기를 놓친 이들이 많이 보여서 아쉽네요.”

“이곳의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걸 어쩌겠나. 우리가 더 노력해야겠지.”

교수들은 술과 마약에 취해 여자를 끼고 돌아다니는 헌터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아마 교육자이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지윤과 프레이교수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있었다.

“역시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도시야.”

“저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아주 잘 표현된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공통점은… 찾지 못했지만, 어쨌든 둘 다 이 도시가 맘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솔직히 자신도 이곳이 썩 맘에 드는 건 아니었다.

술, 마약, 도박, 여자 모두가 이단심문관이었던 자신한테는 멀고도 먼 얘기였으니까.

지금이야 여자는 매우 좋아하지만, 여전히 다른 것들은 손도 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꺼내려고 생각지도 않은 날개와 꼬리 부분이 간질간질했고, 자꾸만 입안에 침이 고였다.

“쩝….”

“뭐가 그리 맛있어 보이시나요?”

입맛을 다시다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이 바라보던 방향을 보고 있는 프레이 교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그곳을 주시하던 그녀는 궁금증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런 게 취향이셨나요?”

“네?”

바로 전에까지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던지라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는데….

“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 절대로 아니에요”

나는 온몸의 모든 부위를 동원하여 격렬하게 부정해야만 했다.

그곳에는 누가 이용하라고 만들어진 지는 모르겠지만, 매우매우매우 특이한 성벽을 가진 존재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게가 있었다.

“뭐 그렇다면야 다행이네요.”

다행히도 그녀는 납득을 해줬는지 더 이상 그곳을 바라보진 않았다.

대신 계속해서 내가 보고 있는 곳을 같이 바라봤다. 아마 제자가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게끔 하기 위해 그런 걸 거다.

‘그러겠지?’

역시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변을 좀 더 구경하고 있었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마친 세 명의 교수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전투 마법학 교수가 일행을 불러모았다.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그는 천직이 교수인지라 중요한 대목을 말할 때 잠시 뜸을 들였나 본데, 우리의 이지윤이 그런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을 몰랐나 보다.

“한 번만 더 말을 끌면 그때는 맞을 줄 알아. 빨리 말해.”

“네 알겠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20살 중반쯤의 여자가 중년의 남성을 겁박하는 모양새였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녀를 20대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따져보면 제일 나이를 많이 먹었을지도 모른다.

프레이 교수의 나이를 정확하게 모르는지라 확신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됐든 군기가 바짝 든 전투 마법학 교수는 1학년 총괄 교수와 연락한 내용을 전파했다.

“저희가 사용하기로 예정되어있던 호텔의 스위트룸이 예약이 취소되었답니다.”

“왜? 먼저 예약을 해뒀는데 취소될 이유가 없잖아.”

이지윤이 말했다기에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였다.

호텔방이 경매에 부쳐진 게 아닌 이상 먼저 예약한 손님을 내치고 다른 손님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교수는 살짝 열이 올라있는 이지윤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길드의 길드장과 수뇌부들이 예약했답니다.”

“헌터길드?”

“네. 대호라고 하는데. 현재 한국 길드 순위 5위를 유지 중입니다.”

아직까지 길드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나는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얘기를 듣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이지윤이 미간을 급격히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 무식한 놈이? 내가 오늘 그 반들반들한 대가리를 반으로 쪼개준다고 전화로 전해주렴.”

저건 위험했다.

지금의 이지윤은 진심으로 말을 하는 거였다. 팔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전투 마법학 교수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뱉은 말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었겠지.

“참아주세요. 제발 부탁이니 좀만 더 듣고 판단해주세요.”

그래도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중년의 눈물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이지윤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리를 멈춰 세웠다.

“빨리 말해봐.”

그는 이때가 아니면 큰일이 벌어질까 싶었는지 이후로 이어지는 얘기들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죠….”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니 조금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애매한데.’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대호 길드가 이번 실습의 호위를 맡아주기로 했는데, 숙소의 예약을 구하지 못하자 아카데미 측에서 우리가 사용하기로 했던 방을 내어줬다는 거였다.

우리에게 충분한 돈을 주며 다른 숙소를 알아보라 하면서.

결론은 방을 쓰게 된 대호의 잘못도 아니고, 수많은 학생을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 아카데미를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는 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를 포함해 모두의 생각은 하나의 결론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우리의 잘못이며 받은 돈으로 다른 숙소를 구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말의 포문을 쏘아 올린 자는 역시나 액면가로 나이가 가장 많은 전투 마법학 교수였다.

“아카데미에서 저희에게 지급한 돈은 5000만원입니다.”

언뜻 보면 8명이 하룻밤을 묵는 것치고는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작다고 느껴지는 돈이었다.

“5000만원. 사우나?”

5000만원으로는 사우나에 가서 자야 한다 생각했는지 얼굴이 파래진 공작영애 피아.

“모텔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피아보다는 현실감각이 깨어있는 유서아.

그래도 그들을 제외하고는 밥을 먹은 횟수가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하긴 했다.

“적은 돈이긴 하지만 뭐 하룻밤을 못 잘 정도는 아니군요.”

“주변 호텔들을 둘러보면 금방 찾을 수 있겠죠.”

“걍 원래 예약했던 곳에 들어가서 두들겨 패고 뺏자.”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인원이 귀찮을지언정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낙관적인 생각은 지금까지 가만히 미소짓고 있던 프레이 교수의 한마디에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숙소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지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이 프레이 교수를 쏘아봤으나.

“제가 알기로 지금 시기가 대한민국에서 마수를 사냥하기 제일 적당한 시기 아니었나요? 그래서 실습도 이 기간에 잡은 거로 아는데요.”

그녀는 그 몇 마디만으로 핵심을 꿰뚫고는 모두를 납득시켜버렸다.

마수를 사냥하기 좋은 시기면 헌터가 몰릴 테고, 헌터가 몰리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일 테고, 그러면 주변 호텔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답은 나왔다.

“흠…. 대호 길드가 방을 구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요.”

“이거 곤란하게 되었는걸요.”

그렇게 모두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피아만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입가에는 미처 닦지 못한 피가 묻어있었다.

“나랑 리에나가 집안에 전화를 해볼게요. 여기에도 사업채가 있을 수 있으니까 잘만하다면 잘곳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피아는 그 말을 끝으로 급하게 이곳저곳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기에 나도 잠시 뒤쪽으로 걸어가 휴대폰을 만지는 척을 했다.

솔직히 피아가 말한 방법을 생각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모두는 자신이 레드문에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세리아는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하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이미 프레이 교수의 말이 끝났을 시점에 문자를 보냈고 답변을 받아놨었다.

“이곳에 저희 쪽 사업체는 없는 것 같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피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자연스레 일행의 시선은 자신에게 모이게 되었다.

솔직히 이걸 말하는 것보다 노숙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점점 더 창백해지는 피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었다.

“그… 묵을 곳은 있답니다.”

“정말?”

“오 그래?”

“역시 레드문이군.”

모두가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는지 기분이 업되어있었다. 특히 피아는 얼굴의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기쁜 소식을 아까전에 밝히지 못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장소가 장소였으니까.

“다들 클럽은 괜찮으시죠?”

“클럽?”

“클럽에서 잘 수가 있나?”

다들 의문을 표하는 가운데 진실을 말했다.

서큐버스가 향락의 도시에서 운영하는 사업체. 다른 곳들은 전부 예약이 차 있었지만, 이곳만은 언제든 열려있는 곳.

“난교 클럽이라. 자는 곳은 넘쳐난다고 하네요. 하. 하. 하.”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둘러봤고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망했다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