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15화 (15/48)

〈 15화 〉 15. 마수 토벌 실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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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수 토벌 실습 (1)

벌써 첫 수업이 있고 나서 10일이 흘렀지만, 첫날에 정기가 부족해 쓰러져서 프레이 교수님에게 정기를 받은 일 빼고는 별다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특별반의 동기들은 피아와 서아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자신을 담당한 프레이 교수는 언제나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연습만을 지켜봤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

하루는 그저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는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실 거냐고.

그러자 그녀는 작게 미소를 띠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르치진 않습니다.”

그 대답은 나의 정곡을 꿰뚫고 있었다.

솔직하게 자신이 이곳에서 무엇을 배운다고 생각하질 않았었다. 그저 대충 모양새를 맞춰 배우는 티를 내려 했을 뿐.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신은 저에게 검술을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게 있다고 요청하시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지만, 그전까지는 그저 믿고 지켜보겠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매우 아름다운 여교수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품고 있는 존재로 보였다.

내가 사용했던 공격은 단순한 검격으로 느낄 뿐 웬만해서는 검술이라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종류였으니까.

그러나 정체를 모른다고 해서 마냥 경계하지도 않았다.

조금의 신성력을 사용한다고 소개한 것을 믿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녀가 자신에 대해 진심으로 호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쓰러진 자신에게 정기를 나눠준 것부터, 수업 장소를 최대한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지정하고, 정기의 소모를 줄이라며 별다른 수업을 진행하지도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피아, 서아와 함께 등교한 자신을 건물 뒤쪽에 자리한 인공호수로 부르고는 어김없이 자율훈련을 부여했고. 나는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감각을 유지시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고 언제나 그랬듯 식당에 가려던 찰나 평소와는 다른 이변이 벌어졌다.

“리에나 학생 잠시만 저랑 어울려주시죠.”

아공간에서 돗자리를 꺼내 바닥에 깐 프레이 교수가 자리를 떠나려던 자신을 부른 것이다.

나는 당황스럽긴 했지만, 발걸음을 돌려 바닥에 깔아둔 돗자리에 착석했다.

그녀가 자신을 부른 건 처음이었으니까 무슨 이유가 있어서라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프레이 교수는 용건을 꺼냈다. 그게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지만.

“제자와 함께 점심을 먹어보면 어떨까 해서 준비해봤습니다.”

아공간에서 반찬부터 밥 디저트까지 많은 수의 도시락통을 꺼낸 그녀는 약간이지만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주책맞았나요?”

“아뇨,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가 준비해준 젓가락으로 바삭하게 튀겨진 돈까스를 집어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어?”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맛이 생각보다 뛰어났는데 식당에서 4성급 호텔 주방장이 준비해둔 음식에도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간이 너무 잘 맞았다.

단순히 음식의 간이 잘 맞았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

미각이 예민해진 뒤 맛을 더 잘 느껴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었는데. 간이 강하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카데미를 다니며 정기 다음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었던 게 음식이었다.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단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건 정말로 내 입에 딱 맞춘듯한 느낌이 들었다. 맛과 향은 살리면서 간은 또 자극적이지 않은 그런 음식들이었다.

“너무 맛있어요.”

“입맛에 맞다면 다행이네요. 제가 간을 약하게 해서 먹는 스타일인지라 걱정이 많이 됐어요.”

“아니요. 정말 좋아요.”

나는 이때부터 이곳에 앉은 목적을 까먹고는 음식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한식부터 해서 일식 양식 그리고 과일과 달콤한 디저트들까지. 양이 너무 많아서 모두 깨끗하게 비우지는 못했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제일 만족스러운 식사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도시락들의 정리를 마치자 프레이 교수는 이제야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꺼냈다.

“사실 식사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별거 아니에요.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 했어요.”

“마수 토벌 실습 말씀하시는 건가요?”

특별반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과 달리 개별적인 커리큘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꼭 참여해야 하는 필수적인 수업들이 있었는데 마수 토벌 실습이 그런 경우에 해당되었다.

“잘 알고 계시네요. 피아학생이나 서아학생한태 들으신 건가요?”

“네, 기대하고 있더라고요.”

수업을 기대하는 건 아니고, 악마 같은 교수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어서 기대 중이라는데 뭐 어쨌든 간에.

“학생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번 수업의 목적은 그림과 영상 속으로만 보던 마수가 아닌 살아 숨 쉬는 마수와 마주하고 이겨내야 하는 수업이었기에. 온실 속에서만 자라왔을 아이들에게는 큰 경험이 될 게 분명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치르는 실전은 다른 법이니깐.

“그러면 다른 이들이 기다리는 거 같으니 저희도 슬슬 늦지 않게 이동해볼까요?”

그녀는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시선을 따라 고개를 뒤로 돌려보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일련의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윤. 빨리.”

“이런 곳이 있는지는 생각지도 못했는걸.”

곧장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피아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지윤.

“그러니까 상위의 마수와 붙었을 때는 최대한 거리를 내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니까요.”

“그러면 마검사의 장점을 전혀 살릴 수 없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근접 마법 쪽을 더욱 발전시키면 되는 문제잖아.”

“교수님들의 말이 다 맞으니 전부 해봐요. 제가 그것도 소화 못 할 멍청이는 아니잖아요.”

자신의 의견이 맞다며 논리를 펼치는 교수들과 중간에서 진땀을 빼고 있는 유서아.

프레이는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등을 살짝 밀며 말했다.

“저는 돗자리를 정리하고 천천히 따라갈 테니 친구들을 맞이하러 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뒤 피아와 유서아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들도 자신을 발견했는지 걸음의 속도를 높였고, 우리는 일행의 중간지점에서 합류할 수 있었다.

그렇게 4시간 동안 떨어져 있던 친구들끼리의 애절한 만남이…. 연출되기는커녕.

“항상 표정이 밝더라니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수업을 받는 동안 예쁜 교수님이랑 경치 좋은 곳에서 놀고 있었던 거야?”

“리에나. 해명.”

도망가지 못하게 양팔을 붙들려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곤 항상 죽은 동태눈깔을 하고 있어서 고생을 좀 하고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이 나올 줄이야.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곧바로 변명을 시도했다.

“에이…. 무슨 소리야. 나도 열심히 수업을 받았는걸.”

그러나 그녀들의 집요한 수사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피아가 내 몸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시고 서아가 스커트 끝단을 잡고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대법원의 판사마냥 판결을 내려버렸다.

“땀. 없어.”

“옷에 먼지 한 톨도 안 묻어있는데, 어디서 거짓말이야.”

빼도 박도 못 할 증거들에 입을 열 수 없었고, 마지막 동아줄을 붙잡는다는 심정으로 뒤쪽에서 따라오던 프레이 교수님을 바라봤지만.

“내가 알아봤는데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어.”

“그러니까 제가 언급한 거죠. 평범한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에요.”

어느샌가 뒤쪽으로 이동한 이지윤과 중요해 보이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말을 걸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저기 앞쪽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세 명의 교수한테 도움을 청하기도 좀 그랬다.

결국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건데.

“내가 졌어. 원하는 게 뭐야.”

두 손을 하늘로 뻗고 항복 선언을 해버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난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아니었고, 피아가 저쪽에 붙어있는 순간 승산은 없다고 봐야 했다.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낸 피아와 서아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미리 짠 것마냥 같은 답을 내놓았다.

“외출.”

“주말에 놀러 가자.”

그리고 나는 이제야 모든 게 그녀들의 계획이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당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맞은 주말에 피아와 서아는 나를 데리고 도시에 나가려 했었다.

그러나 샤를과 데보라에게 먼저 당했던 것이 있었던 나는 쇼핑과 외출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문을 잠그고 이불속에 숨어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는 타협을 통해 도시가 아니라 아카데미 내부에 있던 여러 상점과 시설들을 돌아다녔고 그걸로 만족했다 생각했는데, 쌓여있던 게 많은 듯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상황은 내가 초래했던 일이었다.

“그래. 이번 실습이 끝나고 주말에 같이 놀러 가자.”

정기는 충분하고, 이번 실습에서 무슨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예상이 들어 흔쾌히 결정을 내렸다.

“그 말. 위험해.”

“놀러 가기 싫어서 플래그를 새우는 거 아니지?”

옆에 있던 그녀들은 왜 그런 의미심장한 말을 하냐고 기겁했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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