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14화 (14/48)

〈 14화 〉 14. 내가 잠든 사이에

* * *

14. 내가 잠든 사이에

대답 대신 작게 미소를 지으며 시작된 프레이의 손길은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하읏… 거기는.”

서큐버스가 범생이 여신한테 농락당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최대한 참아보려 했지만, 입에서는 얕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걸 막을 수는 없었다.

키스를 할 때의 그 어색함은 어디 갔는지.

날개 끝부분에서 시작해서 뿌리 부분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간지럽히고, 그것도 모자라 꼬리를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은 서큐버스인 자신보다 뛰어난 거 같았다.

천천히 그녀가 노력하는 걸 구경하다가 괴롭혀줄 생각이었데, 실상은 반대였다.

“햐앗! 꼬리. 제발 꼬리….”

프레이는 집요하게 약점들만 공략했고.

결국, 자신은 다리가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녀를 올려다봐야 했다.

“꼬… 꼬리만은. 봐달라 했잖아.”

“미안해 혹시 아팠어?”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인지 모르고 정말로 미안한 감정을 품고 있는 얼굴을 보자 뭐라 하려던 마음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솔직히 아프거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으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냥 이런 상황을 주도한 적은 있었지만, 겪어 본 적은 처음이라 그런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또 그녀에게 말하자니 부끄러웠고, 고개를 반쯤 돌려 시선을 피하고는 변명을 중얼거렸다.

“신경이 모여있어 감각이 이상하다랄까….”

“그래?”

그 얘기를 들은 프레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갸웃거리다.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나의 어깨를 잡고 살짝 힘을 주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

“어…. 어?”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프레이는 자연스럽게 누워있는 나의 몸 위로 올라탔다.

“무슨 짓이야.”

그녀가 하려던 일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이 하려던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배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과 피부를 적신 뒤 굴곡을 따라 배꼽에 모여드는 따뜻한 액체 때문에 머리가 고장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프레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겠다는 듯이 상체를 숙여 더욱더 밀착해왔다. 그녀의 작고 귀여운 분홍색 젖꼭지가 자신의 가슴을 간지럽힐 때까지.

‘이젠 무리야.’

앞으로 다가올 쾌락을 떠올리며 더는 감정을 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쾌락에 빠진 얼굴을 보여주고 있기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신체를 탐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프레이는 자신의 귀에 달콤한 목소리를 속삭여왔다.

“스텔라 어때?”

“스텔라?”

갑자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에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장난스러움을 가득 담고 있는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순진한 반응을 보인 내가 귀여웠는지 살며시 내게 입맞춤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야. 계속 너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이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존재 자체를 고민하던 자신에게 이름이라니.

“밤하늘에는 달만 있는 게 아니잖아. 너도 충분히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별이야.”

“스텔라…. 리에나가 아니라 진짜 나의 이름.”

지금까지만 해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방금의 얘기를 듣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뭔가…. 뭔가 이상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더 이상 프레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고 마음대로 끝을 선언해버렸다.

“정기는 이제 충분해, 나 다시 들어갈 거니까. 언젠간 다시 만나자.”

최대한 퉁명스럽고 무심하게 말했다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만날 기회가 없을 마지막이라 생각하지만, 이게 맞았다. 안 그러면 자신에게는 과분한 큰 욕심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프레이는 어느샌가 터져 나온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줬다.

“끝이 아니야. 시간이 나면 자주 부를 테니 걱정하지 말고 푹 자고 일어나서 구경하고 있어.”

나는 그녀의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점점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다시 불러줄 날을 고대하면서.

그리고 완전한 수마에 빠지기 전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시도하질 못했던 말을 남겼다.

“고민을 들어주고, 이름을 지어줘서 고마워.”

* * *

“내가 더 고마워 스텔라.”

깊은 잠에 빠져든 스텔라에게 감사를 표하며,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찾아다니면서 엇나가있던 자신을 바로잡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에게 또 한 번 큰 절망을 안겨줄 뻔했어.”

스텔라가 벗어두었던 옷을 하나하나 입혀주며 앞으로의 일을 고민했다. 처음에 교수 일을 받아들이면서 세워뒀던 계획을 전부 폐기해야 했다.

그가 지금의 생활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육체에도 잘 적응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와 교단을 끌어들여 레드 문을 붕괴시킨 뒤 이지훈만을 빼 오는 것도. 수업 동안 천천히 세뇌를 가하는 것도.

여전히 괜찮은 선택지라 생각하지만.

“뭐 이대로도 괜찮겠지.”

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잡아끄는 존재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아 이제 그가 아니라 그녀인가?”

뭐 어쨌든 리에나와 스텔라가 만들어가는 생활을 좀 더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생각들을 하며 자신과 그녀의 옷을 정리하고는 곤히 잠든 그녀를 안아서 기숙사에 옮기려던 때.

키잉­

신성력과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게 교실 전체에 전개해두었던 방어막을 찢으며 한 명의 여성이 걸어들어왔다. 회색 머리의 하프 뱀파이어였는데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하던 매우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무기를 겨누며 자신의 용건만을 꺼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러면, 국가에 목줄이 채워진 암캐께서는 어째서 이곳에 있으신 건가요?”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그녀의 처지를 비꼬았다.

뭐,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금방 나오겠지만, 저 무식한 여자를 상대할 때는 이런 방식이 더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전에.

“일단 이곳에는 제 학생이 있으니, 그건 조금 자제해주시죠.”

신성력으로 그녀의 손을 속박해 상처를 내려던 행동을 막아버렸다. 팔에 안겨서 곤히 잠들어있는 그녀들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하프 뱀파이어는 손이 속박당한 것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놀라있었다.

“교수? 니가? 그 서큐버스를? 총장이 미친 거 아냐?”

그녀가 보기에는 자신이 리에나를 맡은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눈이 쓰레기라 리에나의 검술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뽐낼 수 있는 무지였다.

그렇다고 리에나 본인이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데, 자신이 사실을 말해줄 수도 없기에.

그냥 평소 하던 데로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진조를 가르칠 교수로 반쪽짜리 늙다리를 붙여준 거로 봐서 총장은 미친 게 맞겠죠.”

그러나 이지윤은 도발을 듣고 흥분했을 평소와 달리 진심으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질문을 연달아 내뱉었다.

“이지훈을 죽인 모든 악마를 죽여버리겠다며, 그것도 서큐버스는 씨를 말려버린다면서 막 실험체를 구하러…. 설마?”

심각했던 표정에 점점 경악스러움이 섞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 착각을 정정해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냥 놔뒀다가는 자신이 다녀야 할 아카데미에 이상한 소문이 퍼져있을지도 몰랐다.

“실험체는 구하지 않을뿐더러, 필요하다 해도 저 학생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교수를 맡은 건데?”

팔을 살짝 내밀어 안고 있던 리에나를 보여줬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홀려버릴 이런 얼굴을 지닌 존재에게 흥미가 가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된 거 아닐까요?”

“미쳤군, 300년 동안 인간세계를 떠돌아다니더니 미쳤어.”

“나도 이제 새 삶을 살아보려고.”

리에나, 스텔라와 함께하는 새 삶이겠지만 말이다.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혀를 내두르는 그녀를 지나쳐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 전에 문득 생각난 소식 한 가지를 전해줬다.

“어떤 대부호가 진조를 씨받이로 구한다는 소문이 있더라. 제자 간수 잘해.”

미치지 않고서야 그 대악마와 공작을 뒷배로 둔 아이를 건드릴 일은 없겠다만은. 요새는 선을 너무나도 쉽게 넘는 미치광이들이 많았다.

진정한 광기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인 것 같지만. 어쩌겠나 세상이 평화로운걸.

그리고 그 사실은 자신과 같은 시대를 경험했던 이지윤도 인지하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는 정보인 거 보니, 위험한 놈들이 엮여 있나 보군. 충고 고맙다.”

“너 때문이 아니니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

그저 피아라는 진조가 사라진다면 미쳐 날뛸 리에나를 생각해서였다.

“그럼 난 가본다.”

고민에 빠진 이지윤을 지나쳐 교실을 빠져나왔다.

한참 수업이 진행 중인 11시라 그런지 건물 이곳저곳에서는 수많은 마력과 오러의 기운들이 넘실거렸고 있었다.

자신도 내일부터는 리에나의 담당 교수로서 저들과 같은 행동을 해야 했다.

그녀의 실력을 확인하고 가르침을 내리고. 그러면 리에나는 학생으로서 자신의 말에 따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도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카데미 생활도 괜찮을 것 같네요.”

건물을 빠져나와 바람의 흩날리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말을 잘 듣는 학생이 되어주세요.”

그를 바라보며 천계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때의 자신을 떠올리고는 작게 미소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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