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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13화 (13/48)

〈 13화 〉 13. 첫 등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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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첫 등교(3)

항상 생각해오던 게 있었다.

나는 리에나인가? 그냥 몸의 본능이 남아있던 기억을 흡수해 인격화한 것인가? 아니면 이지훈이 금제를 가할 때 만들어진 존재인 건가?

솔직히 뭐라 결론을 내리기가 애매했다.

그렇다고 누가 대신 정의를 내려줄 수도 없다. 내 몸을 사용하는 이지훈도 본능이라고만 알고 있고, 나라는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그래도 지금의 상황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수백 년 동안 잠만 자는 것보다야 그를 통해서라도 바깥세상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배가 고프면 정기를 달라고 찡찡거리고, 그때마다 한 번씩 들어오는 정기는 정말 극상의 맛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표면으로 나올 생각도 없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던 운명에 따를 생각이었다.

이지훈이 심마에 빠지고, 인간으로 영락한 여신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어.”

천계가 몰락하며 신이라는 존재의미가 한없이 추락했다.

더 이상 그들은 추상적인 절대자가 아니었고, 지구에 같이 살아가고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렇다 해도 천사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떠받들어지는 게 신들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였던 자가 일개 서큐버스인 자신의 눈앞에서 천천히 상의를 벗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런 반항이나 반응 없이 그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기를 빨 생각으로 들떠있었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뭐 때문에 이 인간한테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이유를 알고 싶었다.

정말 이지훈을 생각했다면, 아까 금제를 걸 때 자신과 이지훈의 능력과 기억 쪽을 모두 지워버렸어야 했다.

그러면 머릿속에 폭탄을 달고 살 일도 없을 것이고, 더 이상 흡정충동에 휩싸이지도 않았을 거였다.

부작용으로 쌓아왔던 경지가 매우 낮아지겠지만, 그건 대악마의 몸을 사용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난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아까 사도라 했던데 그런 거에 신경을 쓰는 거야?”

그건 그냥 신들이 인간한테 힘을 뿌리고 마구 붙여주는 칭호였을 뿐이었다. 어떤 신 한 명은 사도를 1000명 이상 데리고 있을 정도로 신들을 사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봐야 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 단추를 풀어내려 가던 그녀의 손이 처음으로 멈췄고, 나는 기세를 몰아 그녀를 더욱더 압박했다.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몰래 도와주려는 게 정상적이라 생각해? 그건 그냥 같잖은 자기 위안이야.”

“그만.”

그녀가 나를 노려봤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수위를 더 높였다.

“왜? 이지훈은 모르더라도 너만 기분이 좋으면 된다 이거야?”

“그만해.”

“그럴 거면 정체를 끝까지 숨기고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던가, 자신이 없었으면 방에 짱박혀서 자위나 할 것이지 왜 기어 나와….”

“그만해! 뭐 때문에 이러는 건데!”

협박을 당했을 때도, 그걸 수락했을 때도, 옷을 벗을 때조차도 깨지지 않던 그녀의 평정이 처음으로 무너져내렸다.

황금색 두 눈동자에 격렬한 분노를 담은 그녀는 나의 앞에 다가오더니 상의를 속옷과 함께 찢듯이 벗어버렸다.

“그게 뭔 상관인데. 너는 그냥 닥치고 정기나 흡수하면 되는 거잖아.”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이지훈이 아니었고, 그녀와는 오늘 처음 만난 관계였을 뿐이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왜 나를 죽이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한편에 미안함을 품고 있는 건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존재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답변을 듣기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보였다.

하긴 나한테 피아를 달래던 이지훈 같은 말솜씨가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은 그저 서큐버스 퀸의 육체에 남아있던 본능일 뿐이었다.

‘그냥 빨리 할거나 하고 들어가자.’

원망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을 빼앗았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겠다는 듯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나를 받아들였고, 나의 혀는 그녀와 얽히며 난폭하게 정기를 탐해갔다.

이 행위의 목적은 오로지 그것뿐이 없다는 듯이.

“하아….”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정기는 쌓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흥분이 부족한가 싶어서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을 때도. 난폭했던 게 문제인가 싶어 혀를 부드럽게 움직였을 때도. 그녀는 점점 녹아내려가며 좋은 반응을 보여줬지만, 자신은 그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샤를과의 그 짧은 키스, 피아와의 농밀한 행위 때는 그렇게 두근거리고 즐거워했으면서.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한때는 여신이었던 존재를 굴복시키고 정기를 흡수하고 있는 건데 말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행위에서 감정을 느끼질 못한다니.

‘이건 그냥 정기에 미친 마수나 다름없잖아.’

이성 없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정기만을 탐하는 마수들. 지금의 자신은 그런 존재였다.

한숨만이 나왔다.

아무리 진짜 리에나가 아니고, 본능에서 생성된 인격이라 할지라도. 서큐버스가 그것도 대악마였던 서큐버스 퀸이 그런 존재랑 비교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잠깐 나랑 대화 좀 하자.”

나는 정기를 탐하던 손과 입술을 치우고, 그녀가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서로가 잠시 숨을 고를만한 시간이 지난 뒤, 평상시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의자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지? 정기는 다 흡수한 건가?”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정기는 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지금이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 기분을 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시도해봤다.

“이름이 뭐야?”

그녀가 질문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

그런 반응이 나올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들이 있었으니까.

“그래, 계속 이년 저년하고 부를 수는 없잖아.”

그래도 나에게서 전과 다른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그녀는 순수히 답변을 해주었다.

“프레이.”

“기도? 좋은 이름이네.”

“그러면 넌 이름이 뭐지?”

“이름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나의 이름을 꺼낼 수는 있지만, 자신이 그녀를 지칭해도 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기에.

결국, 고민 끝에 내 입에서 나온 답변은 이거였다.

“잘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옷을 하나하나 벗어갔다. 상의를 가리고 있던 와이셔츠와 브래지어, 하의를 가리고 있던 스커트와 속옷까지.

앞에 앉아있는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육신을 가리고 있던 모든 게 사라졌을 때,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프레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몸은 분명 리에나가 맞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남에게 보여준 적조차 없는 그곳까지. 어려졌다는 걸 제외하면 다를 것이 없어. 그러면, 이 몸에 남아있던 본능은 자신을 리에나라 지칭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껏 생각해오던 고민을 전부 털어놓아 버렸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라면 자신이 표면에 나와 있을 기회는 없다고 봐도 좋았으니까.

“아니, 그전에 오로지 흡정만을 위해 태어난 존재를 인격이라 말해도 되는 걸까? 이제는 흡정을 해도 감흥조차 없는데? 그건 마수잖아 안 그래?”

프레이의 황금색 눈을 직시했다.

답을 얻고 싶었다. 의견을 듣고 싶었다. 신이라는 한없이 고결한 존재에서 인간으로 영락한 그녀만이 대악마라는 위대한 존재의 육체에서 떨어져나온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 없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만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거리까지 다가온 프레이는 이지훈에게 했던 것처럼 나의 이마 위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손에서는 아주 미약한 신성력을 느꼈다.

자신의 목을 겨눴던 난폭한 기운이 아닌, 모든 것을 품는 자애로운 기운이었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구나.”

감고 있던 눈을 뜬 프레이는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마 위에 있었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가 리에나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너는 그저 너일 뿐이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

“잘 모르겠어.”

확 와닿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는 건 이해했지만, 다른 말들은 너무 추상적이었다.

“음…. 그러면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프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신의 권좌를 박차고 중간계로 내려왔을 때. 오랫동안 그를 찾아다니며 인간계에서 보낸 시간과 마지막으로 오늘 그를 찾았을 때 느낀 기분까지.

이지훈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자신에게만 알려주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그녀가 했던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무언가 공허했던 마음에 충족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물음에 비밀까지 털어놓으면서 같이 고민해준 거니까.

“그래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고 싶은 거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서큐버스가 하고 싶은 일이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곧바로 바닥에 마력을 두르고 프레이를 밀어 넘어트리려 했지만.

“읍….”

갑자기 겹쳐진 그녀의 입술에 정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매우 서투른 움직임이었지만, 거기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충족감과 희열은 그 어떠한 정기보다 달콤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가질 못했는데, 프레이가 자신을 살짝 밀어냈기 때문이었다.

“불편하지 않았어?”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대답 대신에 날개를 사용해 그녀가 멀어지지 못하게 끌어당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서로의 나신이 밀착했고, 아주 작은 부끄러움에 잠겨있는 황금색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걸 말하라 했지?”

프레이가 대답을 듣고 싶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날개를 펼치고는 팔을 양옆으로 뻗으며 속삭였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 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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