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12. 첫 등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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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첫 등교 (2)
“대한민국 그 어느 곳을 뒤져보더라도 동정관보다 뛰어난 마도기술이 적용된 건물은 없을 거다.”
자신도 그 말에 동의했다. 하서진이 자신 있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동정관은 매우 뛰어났다.
원하는 대로 중력을 설정해 몸의 부하를 줄 수 있는 체력 단련장, 홀로그램을 활용하여 데이터를 입력해둔 빌런이나 마수 같은 적과 대련을 벌일 수 있는 실전 훈련장, 자동수복 기능이 적용된 대련장, 마지막으로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기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부대시설까지.
이것들을 본 나의 감상을 짧게 말하자면.
능력과 돈이 있으니 이런 미친 짓도 할 수 있구나였다.
그렇게 30여 분에 걸쳐 건물 내부를 구경했고, 하서진은 마지막으로 교실로 사용될 공간에 자신을 안내했다.
“원래 이곳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의 소개를 하려 했는데.”
하서진이 말끝을 흐리면서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에는 예상대로 빈 책상과 의자 10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런 개판을….”
나는 황당하단 표정의 하서진을 지나쳐 비어있는 열 개의 의자 중 아무 곳에나 대충 앉아버렸다.
“일단 여기서 쉬고 있으면 되는 건가요?”
그가 자신을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아서 정기가 소모되는 게 미미하긴 했지만, 남정네와 단둘이 돌아다니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곤했다.
“그래 조금 전에 거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곧 올 거다.”
“죄송스러운 질문인데. 저를 맡으신 분이 여성분이신가요?”
뜬금없는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정말 중요했다. 만약 교수가 남자라면 돈을 뿌려서라도 정기를 빨아먹을 도시락들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서진의 반응을 보니, 그는 내 상황을 이미 알고 있던 듯했다.
“샤를에게 네가 남성 공포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상시는 괜찮은데 마력이나 능력을 사용하거나 활동적인 움직임을 하면 심해진다지.”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 대충 말할 수 있는 부분만 요약해보자면 저게 정확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것을 인식한 채 여교수를 골랐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서진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인 뒤 속으로 세리아와 샤를에게 열심히 칭찬을 날려주었다. 세심한 부분에서도 신경을 써주는 게 너무나 고마웠다.
“그럼 유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그렇게 하서진은 떠나가고, 비어있는 교실에 혼자 앉아있게 되자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떠올랐다.
‘친우들의 흔적 때문인가.’
지금까지는 리에나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해왔던 주제였지만, 이지윤을 만나고 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었다.
자신의 친우 중 누가 살아있는 건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자책하지는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그녀는 살아있는 건지.
지금까지 잘 관리해오던 머릿속이 통제를 벗어났고, 간단한 고민으로 시작된 잡생각이 점점 심마로 접어들 때쯤이었다.
드르륵
“처음부터 손이 참 많이 가는 학생이군요.”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모든 것을 씻겨내는 듯한 목소리.
귀에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아주 작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자신의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아있는 한 명의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은하수를 담아둔 듯 반짝거리는 웨이브를 띈 검은 머리와 나와 다른 의미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신비한 황금색의 눈동자. 단호하지만 자애로워 보이는 인상까지.
자신과 딱 정반대의 미녀가 존재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통성명을 하는 것보다 일단 심마를 떨쳐내는 게 먼저겠죠.”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그녀는 나의 이마 위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느낌을 보아하니 신성력을 사용해 머릿속 상황을 파악한듯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요. 인간이었다면 대량의 신성력을 밀어 넣어 강제적으로 심마를 쫓았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다른 방법을 사용해봅시다.”
주위의 책상과 의자를 모두 치워 빈 공간을 만든 그녀가 나를 안아 들며 말했다.
“위협을 가하려는 건 아니니 경계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나를 바닥에 눕히고 머리 부분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두는 등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엄청난 실력을 갖춘 자가 아니라면 돌팔이한테 된통 걸렸군.’
솔직히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따지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아무리 소량이라지만 악마의 몸에 신성력을 집어넣고, 심마를 다스리는 사람을 들고 옮기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그러나 그녀가 온 뒤로 조금이나마 상황이 호전되었고, 지금의 상황을 나 혼자 벗어날 방법이 없기에 살기 위해서는 일단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이 닿아져 있는 이마를 통해서 계속해서 미량의 신성력이 주입되었고, 그에 비례해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심마보다 신성력에 정화돼서 죽는 게 빠른 거 아냐?’
설마 그녀의 정체가 이윤우의 가문에서 보낸 암살자가 아닌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다시 한번 신성력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육체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아시리라 생각해요. 그러니 인격을 분리하고, 여러 기억들에 금제를 걸어두셨던 거겠죠.”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심마를 억제하던 것을 실수할뻔했다.
아무리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지만, 그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파악할 줄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기도 했고. 그녀의 모든 말이 전부 다 맞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상태가 일어난 원인은 리에나의 몸에 적응하기 위해 해두었던 조치에 문제가 생겨서였다.
나는 첫날 붉은 달을 올려다보던 그 시점에서 엉망진창이었던 내부의 상태를 깨달았다.
육체에 남아있던 본능은 남자로서의 정신을 공격했고. 대악마의 육체라 할지라도 분신으로서는 격을 수없이 넘은 나의 영혼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붕괴가 진행 중이었고. 가지고 있던 신성력과 능력의 많은 부분 또한 맹독이나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몸에 새겨져 있던 본능과 이지훈으로서의 기억과 능력 대부분에 금제를 걸어야만 했다.
덕분에 여자로서의 삶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하긴 했지만, 부작용으로 강한 금제는 아닌지라 불쑥불쑥 본능과 인격이 튀어나오긴 했다.
피아에게서 정기를 받을 때와 실력 테스트 때가 그러했고. 흡정충동때 일어나는 일들도 이 둘의 다툼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큰 화를 불러오는 법.
내 앞에 있는 그녀도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금제에 대한 반작용이 찾아왔다 봐야겠네요.”
그녀는 계속해서 나의 이마의 손을 올린 채로 신성력을 조금씩 밀어 넣고 있었는데, 아까와 달리 두통이 심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정기가 부족한 틈을 타 심마가 찾아오니 대처할 수도 없었을 거고요.”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주입하던 신성력을 잠시 멈춘 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 저는 당신이 억제하고 있는 심마들을 모아 새로운 금제를 걸어둘 겁니다. 영원히 지속하는 것도 아니며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임시...”
“상관없어. 바로 시작해줘.”
그녀가 만들어준 잠시의 여유를 틈타 나의 뜻을 전했다.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살아날 방법이 있다면 있는 힘껏 발버둥 칠 뿐이었다.
“하긴 당신은 언제나 그랬죠.”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뜻 모를 말을 남긴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신성력의 자신이 있던 자신도 천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신성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대천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순도와 양이었다.
인간과 대천사조차도 뛰어넘은 신성력.
이건 마치.
“신….”
“이제는 아니지만요.”
그녀의 말을 끝으로 나는 물밀 듯이 들어오는 신성력에 몸을 맡겨야 했다.
이마를 통해 들어온 대량의 신성력은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심마를 잡아먹어 새로운 금제를 형성했고, 하나로 합쳐져 붕괴하려던 본능과 인격들을 분리해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냈다.
단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 끝났어요.”
두통과 신성력이 모두 사라졌음을 느끼고 머릿속을 관조해보자 위험한 상태가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등 수많은 질문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쏟아져 오는 수마를 참을 수는 없었다.
“궁금한 게 많을 거예요. 하지만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은 제가 임의로 금제에 끼워 넣었으니 자고 일어나시면 아무것도 기억하시지 못할 거랍니다.”
점점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심마가 왔다는 것도. 금제가 생겼다는 것조차도 말이죠. 괜히 떠올리기라도 하면 위험해지니까요.”
이 목소리를, 내용을 잊으면 안 된다고 기억해야 한다고 계속 머릿속으로 소리쳤지만. 그 다짐은 공허하게 맴돌 따름이었다.
마치 무언가가 임의로 지우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의식이 완전히 수마에 잠기기 직전 아주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혼자서 고생하셨어요. 저의 유일한 사도. 이지훈 님.”
* * *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었다. 아카데미의 입학했다는 서큐버스 소녀가 자신이 수백 년 동안 찾아다닌 사람의 검술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계속해서 영상 속 소녀의 검이 움직이자 의심은 환호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자신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소녀가 자신이 수백 년 동안 찾아다니던 사람이 맞다는 것을.
“대악마의 몸을 하고 있을 때는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요.”
자신의 무릎에 기대 곤히 자고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부드러운 머릿결과 상처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는 분명 전과 달랐지만, 자신이 들여다본 내면만큼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이지훈이 맞았다.
그러니 지금 그가 잠들어 있을 때 모든 것을 끝내놔야 했다. 자신에게 미안함을 갖지 않도록.
“자는 척은 그만하고 일어나라 리에나.”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거 같던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지개를 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인간으로 영락했다지만 썩어도 여신이었다 이건가?”
“그를 가지고 장난하는 게 재미있나?”
그녀는 대답 대신 지금의 모습이 답답하다는 듯이 날개와 꼬리를 꺼내고는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아우…. 정기를 안 먹어서 피부가 푸석푸석해진 것 좀 봐. 내 몸을 쓸 거면 관리를 똑바로 해야지.”
“질문에만 대답해라.”
나는 자꾸 말을 돌리려는 그녀의 목에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검을 들이댔다. 아까 전과 달리 오로지 마를 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성력이었다.
악마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조금이라도 닿는 순간 큰 부상을 면치 못할 거다.
그러나 리에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찔러보라고 검에 점점 다가오기까지 했다.
“찌르려고? 할 수 있으면 해봐. 난 상관없는데 안에 있는 이지훈은 무사하려나 모르겠네.”
“상관없다.”
“에이, 거짓말을 할 거면 표정은 좀 숨기고 해야지. 인간이 된 것도 한참 전인 거 같은데 너무 미숙해.”
말은 괜찮다 했지만, 그를 다치게 할 수 없었던 나는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고, 레이나는 자신의 목을 몇 번 문질러보더니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너도 살펴봤으니 알 거 아냐. 나는 쟤를 죽인 리에나랑은 좀 다른 존재일뿐더러, 흡정해야할때를 알려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걸 말이야.”
아까 내부를 살펴본 결과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가 표면으로 튀어나왔다는 건 자신이 이지훈의 의식을 재워서도 있었지만,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정기가 떨어져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저번처럼 수틀리면 자살을 한다고 나를 압박하는 존재도 잠들어버렸고, 이대로라면 아무나 잡고 정기를 흡수해서 범죄자가 되어버리겠네.”
“협박을 하면 내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리에나는 얼굴에 황홀한 미소를 띄운 채로 입맛을 다셨다.그녀는 내가 무슨 대답을 내릴지 이미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생각대로 협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기가 부족한 걸 확인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고, 그를 돕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알겠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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