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1. 첫 등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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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첫 등교 (1)
148명이 무기를 들고 반겨줄 정도로 1학년에서 가장 인기쟁이인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서 쪼그려 앉은 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랑 친구를 맺으려… 는 장난이고. 남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죽을 거 같아.’
사람들의 주목을 끌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 뒤로 따라오는 부가적인 요소를 생각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정기가 부족해.’
피아에게서 대량의 정기를 받고, 그녀를 옆에 두어 ±0의 상황을 만들어뒀었다.
그러나 테스트 때 예상외로 많은 양을 소모한 거로 모자라. 평상시에도 수많은 남자의 시선을 받고 있자니 정신을 유지하고자 사용되는 정기의 소모량이 회복량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렇다고 다시 한번 피아한테 대량의 정기를 받자니 정말로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에 자연적으로 회복될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유서아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긴 했다만.
아직까지는 컨디션이 괜찮고 흡정충동에 휩싸일 정도는 아니어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결과가 피아와 서아가 반 배정 결과를 알아 오는 동안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계단 밑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었다.
“나. 레이나. 서아. 특별반.”
“피아 말대로 우리 모두 특별반이야.”
그래도 쭈그려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들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계단밑에서 나를 끌어낸 그녀들은 본교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만들어졌다는 건물로 향하면서 게시판에 적혀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번 연도부터 새로 적용되는 규칙이래. 1등부터 10등까지의 학생들을 따로 모아 특별교육을 시킨다나 봐.”
“그래?”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생각했는데, 사라졌던 걸 부활시킨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 대충 어떤 방식일지도 예상이 갔다.
“학생 한 명당 교수들 몇 명이 붙어서 수업을 진행하겠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사람들 생각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서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그냥 그때 당시에도 그랬고, 자신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이었을 뿐이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본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 새워진 건물을 보자마자 모두가 감탄을 터트렸다.
“이야….”
“이쁘네요.”
“예뻐.”
고풍스러운 아카데미와는 차별화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도 분명 괜찮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한 건 그런 외형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마력의 배열, 순도, 기능까지.
건물 안에 아티팩트들을 박아넣는 거로 모자랐는지 건물 자체를 하나의 아티팩트화 시켜버렸다.
부자가 최고급 물감과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해서 명화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이건 아무리 많은 자본을 투자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네.”
“그치? 내가 생각해도 좀 대단하긴 한 것 같아.”
갑작스레 오른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피아와 시아는 나의 왼쪽에서 건물을 훑어보고 있었으니, 이곳에 누군가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어야 할 자신의 오른쪽에는 매우 익숙한 모습의 여성이 서 있었다.
탁한 회색 머리와 오드아이, 사나워 보이는 인상까지. 내부적으로는 많이 변했을지언정 외형은 300년 전이랑 달라진 게 없었다.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있어.’
깜짝 놀라서 표정이 일그러지려 했지만 재빠르게 관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왜 표정이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 그렇다면야. 그나저나 네가 그 리에나야?”
다행히도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 목적은 다른 이유에서였는지 더 이상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원래 성격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을 때 팔다리 하나쯤은 결딴내고도 남았을 텐데, 나이를 먹어서 순해진 것인지 다행이었다.
대신 나를 품평하듯 쭉 훑어본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뭐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녀석이 두 명이나 있을 리는 없겠지만.”
“하하 제가 좀 그렇긴 하죠.”
나는 그녀가 하프 뱀파이어라 흡혈욕구가 옅고, 개인적으로도 흡혈을 좋아하질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피아랑 서아는 그렇게 느끼지 않은 듯 보였다.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면 즉각 대응하겠습니다.”
유서아는 그녀를 향해 수많은 공격 마법을 캐스팅한 뒤 언제든지 발사할 준비를 마쳤고.
“하프. 너한테 줄 피는 없어.”
피아는 그 짧은 사이에 피를 마시고 연성을 마쳤는지,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거대한 대낫을 든 채 나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호기롭게 나선 모습과는 달리, 두 명 모두 그녀와의 수준 차이를 알고 있는지 얕게 손을 떨고 있었다.
“요즘 애들과는 달리 용기가 있어.”
그녀는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대적하려는 그 모습이 대견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거와는 별개로 봐줄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근데, 세상을 살아가려면 용기와 만용은 구분해야겠지?”
어느 틈에 상처를 냈는지 손에서 바닥을 향해 핏방울이 떨어졌다.
‘역시 준비하고 있었어.’
아마 피아와 서아가 무기를 꺼내 드는 순간부터 뾰족하게 깎아둔 새끼손톱으로 상처를 내어놓았을 거다. 말로 시선을 끌고 펼쳐지는 갑작스러운 기습.
그건 자신이 알려준 방법이었으니까.
남들은 얍삽하고 비겁하다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것 하나에 승부가 결정되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공격이 어디 있을까.
어찌 됐든 모두가 반응할 틈도 없이 핏빛의 마법진이 일행이 서 있는 바닥을 뒤덮었고, 피아는 그 마법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대 뱀파이어 마법진.”
“지금 시대에는 모르는 뱀파이어도 많은데 잘 알고 있네. 하긴 진조라서 그런 건가?”
그녀는 대견하다는 듯 손바닥을 마주쳤고, 피아가 들고 있던 붉은 대낫이 분해되며 허공에 캐스팅되어있던 마법들을 격추시켰다.
투둑 투두둑.
공중에서 한때는 대낫이엇던 핏방울들이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연성해둔 혈액에 대한 주도권을 뺏겨 분했는지 이를 악문 피아가 하나의 이름을 꺼냈다.
자신을 제외한다면 인간 중에서는 단 2명만이 알던 그녀의 본명이었지만, 가문이 가문인 만큼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동족 사냥꾼. 잿빛의 에스티나.”
“에스티리아 가문은 건들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잘 알고 있네.”
“잿빛 달의 주인에게 일격을 먹인 자를 모를 수가 없어.”
“그건 그런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 여기까지 하자. 불청객들도 다가오니깐.”
그녀는 흥이 확 식어버렸다는 듯이 마법진을 해제해버렸다. 그리고는 피아의 앞에 다가가 얼굴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말했다.
“그리고 한가지 충고하자면, 나한테는 이지윤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으니까 앞으로는 조심해줘.”
“그건 미안해.”
피아는 곧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했고, 이지윤은 그런 그녀를 안아 들고는 자연스레 건물을 향해 들어가려 했다.
“응?”
“엥?”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와 서아, 그리고 안겨있던 피아도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아차 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말을 하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 내가 피아의 담당 교수 이지윤이야. 다들 앞으로 잘 부탁해.”
“담당 교수요?”
“나머지는 지금 오는 친구들이 알려줄 테니 그때 듣고. 나중에 보자.”
이지윤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피아를 안은 채 자취를 감춰버렸다.
피아가 담당 교수라는 말을 듣고 발버둥 친 것 같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총장을 비롯한 십여 명의 달하는 교수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 분명 조금 전의 전투 때문에 생긴 마력의 파동을 느낀 걸 테다.
“무슨 일이야!”
“빨리 범인을 찾아.”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던 총장은 피로 범벅이 된 주변 상황을 살피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 오신 뱀파이어 교수님께서 자신의 학생을 데려가다 벌어진 해프닝이니 다들 경계를 푸셔도 될듯합니다.”
“처음부터 화끈하시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교수들이 그 말을 듣고 긴장을 풀고서 헛웃음을 짓기도 잠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정색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피아학생이 안 보이는 거로 봐서 이미 데려간 거라고 봐야겠군요?”
“그러면 학생과 교수들을 다 모아놓고 자기소개를 가질 필요도 없어진 걸 테고.”
“우리도 바쁜 사람들인데 말이지.”
“에이 다들 왜 그러십니까. 총장님께서 설마 신입 교수한테만 특혜를 주려는 것도 아닐 테고, 다시 데려오시겠죠. 하. 하. 하.”
교수들은 총장을 바라보며 자신들도 지금 당장 제자를 데려갈 거라는 유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유서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3명의 남녀교수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녀를 가르치게 될 담당 교수들일 테였다.
총장도 그들의 반응을 보고는 더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허락을 내렸다.
“후…. 하긴 한 명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법이지. 다들 제자를 데려가도록 하게.”
책임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교수들은 이곳에 달려왔던 속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건물을 향해 뛰어들어갔고, 유서아도 교수들에게 붙잡혀 건물로 끌려들어 갔다.
그들을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던 총장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리에나 양을 담당할 교수는 살짝 늦는 모양이니. 그동안 내가 시설을 안내해주도록 하지.”
그는 내가 혼자서 불편할까 봐 말을 꺼냈겠지만, 나한테는 이토록 불편한 제안이 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룹 회장이 신입사원에게 사옥을 안내시켜준다는 얘기였으니까.
하지만, 십여 년에 달하는 교단생활에서 사회생활을 최고 레벨로 익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으니.
제안을 해주셔서 정말 기쁘다는 미소와 너무나도 황송하다는 몸짓을 장착시킨 채 입을 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총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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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하서진은 꽉 막힌 사람도 아니었고,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딱딱한 어투는 성격이라 어쩔 수 없는 듯 보였지만, 결론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다.
“이지훈님의 업적을 기려 만들어진 건물의 이름이 그렇게 결정된 이유는 제작자님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어이가 없어서 살짝 따진 내용을 무시할 법도 한데, 하나부터 천천히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그렇다 해도.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건물의 이름이 동정관이라니. 다른 이름도 많았을 거 아니에요.”
계속 듣다 보니 적응될 만도 싶지만, 동정관이 뭔가 동정이. 불굴, 철혈, 검마 등등 멋있는 이명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그렇지 동정의 용사님에게는 다른 이명도 많았었지.”
하서진도 내 얘기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올라간 후보에는 고자와 동정 두 개뿐이었다. 이지훈님을 좋아하는 듯 보이는데 미안하구나.”
“그것도 전부 제작자들의 의견이었나요?”
“그래. 이 건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순전히 그분들의 덕분이었으니까.”
“그렇군요….”
이가 부득부득 갈리고 속이 울컥했다. 만약 하서진이 없었다면 세상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겠지.
그리고 이때쯤 되니 이 건물을 지은 게 누군지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지윤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거로 봐선 분명 몇 명 더 살아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노망난 새끼들.’
나이 먹고 부끄러운 짓만 하고 다니는 친우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착잡해진 서큐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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