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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9화 (9/48)

〈 9화 〉 9. 실력 테스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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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실력 테스트 (2)

원래 눈에 띄게 나설 생각은 없었다. 차례가 오더라도 상대에 맞춰 적당히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윤우가 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행동은 그때 당시를 살아가던 모든 사람의 처절했던 삶을 부정하는 거였다.

“지훈? 리에나?”

“계속 리에나라 불러.”

피아는 연무장 가장 앞쪽에 자리를 잡은 나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헷갈릴 수도 있다 생각한다. 리에나라 소개를 했는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지훈이란 이름을 대었으니까.

뭐, 이름 문제야 나중 가서 한국 이름을 말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변명하면 될 일이니 별문제는 없었지만.

그것보다 시급한 건 피아를 달래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에나. 나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러나 피아는 이미 이 모든 상황이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고 생각하는지 붉은 눈에 눈물을 잔뜩 머금고는 울먹거렸다. 입술에 붉은 얼룩이 있는 거로 봐서 이미 피를 한 모금 한 듯 보였다.

나는 피아의 안주머니에서 빈 시험관을 찾아 피를 채워주며 말했다.

“아니야. 그냥 저 이윤우가 거들먹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을 뿐이야.”

솔직히 피아 때문에 그런 감도 없지 않아 있긴 했었다.

그녀가 이윤우의 모습을 보고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만 있었다면 피아에게 따로 도움을 주는 거로 그쳤을 일이었다.

“용사가 뭐라 생각해?”

어느샌가 자신의 앞에 다가온 유서아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분명 나에게 무슨 짓이냐는 소리를 하러 온 게 뻔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내 목적이 비밀스럽고 거창한 것도 아니고 조금 있으면 어련히 알게 될 터. 이참에 정신교육이나 시킬 생각이었다.

“후….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무한한 한계를 가진 사람.”

내가 답을 해줄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유서아는 한숨을 쉬며 정석적인 답을 내놓았고, 고민 끝에 답한 피아는 근본적인 답을 말했다.

“둘 다 정확한 말이야.”

두 사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의 정의는 무한한 한계 즉, 격이 없다시피 태어나는 존재들에게 붙여지는 칭호다. 그래서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불리는 거고.

“그렇다면 용사가 왜 용사일까?”

자신과 그때 당시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부러운 새끼까지도 무한한 한계를 가진 존재를 모두 용사라 부르지도 않았고. 용사를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 말하지 않았었다.

“등불. 용사란 어두운 미로 속에 빠진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야.”

자신의 힘을 이정표로 제안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격을 넘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격을 넘은 영웅들조차 버거워하는 시련 앞에서 멈춰서지 않고 나아간다.

그리고 모두를 출구까지 데려갔을 때야말로 경의를 담아 용사라 불리는 것이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가 아닌, 최선두에 자리해 모든 인간들을 밝은 길로 이끄는 인간으로서.

“하지만 저런 등불은 필요 없어.”

자신을 태워서 남들을 안내하는 불꽃이 아닌, 남들을 태워서 자신을 빛내는 불꽃은 철저히 짓밟아 꺼줘야 했다.

레이나의 사명이 모든 서큐버스들을 보호하는 거였다면, 이단심문관으로서 자신의 사명은 엇나간 존재들을 지우고 모든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뭐, 그때 당시에도 잘 지킨 것은 아니었고, 지금도 막 그렇게 연연할 생각은 없지만.

저 아이는 그 녀석의 후손이라 엇나가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삐삐삐­

10분이 지나 대련을 시작한다는 안내음이 울렸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서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1등을 할 기회를 줄게. 내가 이긴다면 순위 결정전을 신청해.”

방금의 대련으로 마음이 꺾였다면 거기까지인 존재였겠지만, 그녀의 눈은 아직까지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피아에게도 언제든지 도전해도 좋다는 말을 남기고 대련장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다 발견한 넋이 나간 표정의 샤를과 데보라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혓바닥을 내밀어 선물을 줬다.

그러게 누가 멱살을 잡고 흔들랬나.

솔직히 이건 장난이고, 어차피 세리아도 내가 조용히 아카데미를 다니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지금까지 이 몸을 경험해본 결과 알 수 있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던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겠지.

‘그리고 이건 리에나의 몸도 원하고 있는 일이야. 저 남자는 줘도 안 먹는다고 외치고 있거든.’

가볍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계단을 올라가니 대련장 중앙에서 총장이 직접 대련을 주관하고 있었다.

“이윤우 준비됐나?”

“네.”

그는 이윤우가 발검하자 마력이 깃든 눈으로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점검을 마쳤다. 그리고 이내 자신을 바라보려다 눈에 깃든 마력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이지훈. 아니 리에나 준비됐나?”

좋은 선택이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같은데, 자신의 본질은 그 어느 쪽이든 봐서 좋을게 없었으니까.

그 외에도 10분의 시간 동안 내 정보를 확인한 것인지 이름을 정정해서 불렀다는 게 조금 거슬리긴 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조직의 윗사람의 눈에 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니까. 직접 이름을 바꿔달라 말할 필요가 없어서 편해지긴 했다만.

“준비됐습니다.”

수많은 보물과 명검, 마검까지 잠들어있는 아공간에서 하나의 검을 하나 꺼내 들고 자세를 잡았다. 아무런 장식도, 효과도, 그렇다고 귀한 광물을 섞은 것도 아닌 정말 평범한 철검이었다.

“아카데미 측에서 무기를 준비해줄 수도 있다. 정말 준비됐나?”

그러나 나의 검과 이윤우가 들고 있는 검을 바라본 그는 나에게 다시 한번 되물었다. 하긴 저 자식이 들고 있는 검이 마력 효율이 좋은 미스릴이 대량으로 섞인 명검이라 불릴만한 검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이거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검을 맞댈 일도 없을뿐더러, 길이와 무게중심만 맞다면 어느 검이든 저딴 버러지는 짓밟아줄 수 있다.

“알겠다. 그럼 지금부터 1위 결정전을 시작하겠다.”

총장의 선언과 동시에 대련을 시작하는 안내음이 울렸다.

삐­

철검을 미간을 향해 힘껏 던져 시선을 분산시킨 뒤, 시야의 아래쪽으로 파고든 다음 팔꿈치로 명치를 세게 때려… 주고 싶었지만.

일단 대화를 시도하는 게 먼저였다. 지금이 아니면 물어보지 못할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으니까.

“왜 노력하지 않은 거지?”

이윤우가 피아나 유서아 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신입생들만큼만 노력했어도 영웅의 격은 쉽게 뛰어넘었을 거다.

그렇다면 일련의 행동에 재수는 없을지언정 납득은 했을 거였다. 그 행운조차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거기에.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였다. 피치 못할 상황이 있었는지, 아니면 재능이 없는 것인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윤우는 질문을 듣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저 자신을 상대하는 대는 철검으로 충분하다는 말 한마디에 눈이 돌아갔는지 씩씩대기만 했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언제까지나 저 알량한 재능만으로 남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들의 노력을 운으로 짓밟는 거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신은 더 이상의 고민 없이 하려던 일을 시작하면 된다.

“이제 맞자.”

“뒤져!”

내 말이 기폭제라도 되었는지 그는 전의 대련의 유서아처럼 마법을 날려대기 시작했지만.

“조잡한 데다 늦어.”

용사의 마법은 정통 마법과 다르게 파멸적인 한방과 근거리에서 끝없이 쏘아지는 연격 이 두 가지를 제외한다면 별 볼 일이 없다고 봐도 좋았다.

거기에 더해 지금 쏘아지는 이도 저도 아닌 데다 미숙하기까지 한 마법 쫌이야.

베고. 비켜내고. 피한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마법의 구성식을 베어내고,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마법을 검면을 비스듬하게 새워 비켜내며, 간간이 쏘아지는 회심의 마법들은 궤도를 파악해 피한다.

서큐버스의 능력이나 이단심문관 시절 쌓아 올린 힘 따위는 필요 없이. 그저 한없이 기본적인 이 세 가지의 동작이면 충분했다.

“어째서…. 어째서 안 맞는 거냐!”

이윤우는 지금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악을 썼다. 하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때쯤 운빨로 승부가 결정 났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초조하겠지.

천천히 마법 사이를 걸어가며 검격이 닿을만한 거리에 도달했다 생각했을 때쯤 유시아가 했던 것과 똑같은 공격을 시도했다.

좌측 하단에서 시작된 찌르기. 하지만 힘도 실리지 않았고, 속도 또한 느리고 시야도 분산시키지 못한. 그녀의 찌르기에 비교하기조차 부끄러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저게 뭐야.”

“정신계 마법에 걸린 거 아냐?”

관중들에게서 어이없어하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피하거나 막아내며 반격을 가할거라 생각했던 이윤우가 검을 눈앞에 두고 주저앉았으니까.

그리고 이제서야 교수들과 길드의 관계자를 비롯해 보이는 것이 좀 많은 사람들은 숨겨져 있던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본이…. 기본이 부족하군요.”

“교육자로서 눈이 멀었었군. 저런 아이를 완벽하다 칭하고 있었으니.”

정답이었다.

내가 한 행동은 그저 운이 발동하지도 않을만한 기본적인 공격을 한 것뿐이다. 기본이 극의에 닿아있어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유서아를 이긴 그 실력이었다면 이 정도쯤이야 쉽게 막아냈어야 했다.

‘결국, 토대 없이 쌓아 올린 허황된 실력이었다는 거지.’

나는 그의 미간에 겨눠진 검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다시 시작하지. 검을 잡고 일어나라.”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부족하다면 수백 번 수천 번을 반복해서라도 운으로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철저히 짓밟을 거다.

총장은 지금의 사태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별 상관은 없었다.

나와 이윤우 둘 다 포기하겠다는 얘기를 꺼낸 것도 아니고, 방어구 아티팩트가 패배를 선언한 것도 아니어서 대련에 개입할 권한이 없었다.

뭐, 그의 걱정대로 이윤우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재기하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런 애였다면 시작점에조차 서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그 부러운 새끼도 이걸 바라고 있을 거였다. 자신 외의 용사들에게 한없이 엄격했던 녀석이니까.

‘내가 네 후손 때문에 이렇게나 고생을 한다.’

나는 총장을 지나쳐 대련이 시작됐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윤우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벌떡 일어서 마법을 난사했고.

1번. 2번. 3번….

총 15번의 찌르기에 당했을 때야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패배를 선언했다.

“기권하겠어.”

그 말을 기다리고 있던 의료진들과 교수들이 대련장에서 절망한 표정의 이윤우를 들것에 실어 내려갔고. 지금까지의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연무장의 관중들은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였다.

나는 대련장의 중앙에서 신입생들이 모여있는 구역을 바라보고 선언했다.

“너희들은 이곳에 무엇을 하러 온 거지? 자기보다 강한 녀석들의 똥꼬를 빨려고? 누가 시켜서? 그런 꼬랑지만 개새끼들쯤이야 몇백 마리가 몰려와도 개새끼일 뿐이지.”

신입생들은 이윤우가 철저하게 짓밟히는 상황에 겁을 집어먹었었지만, 이런 식의 도발을 참을 수는 없었는지 분노하는 분위기가 들끓었다.

“이윤우 한 명 잡았다고 지가 최고인 줄 아네.”

“시발. 니가 뭔 격을 넘은 영웅이라도 되는 거냐?”

“개새끼한테 물려서 뒤질 준비나 해라.”

자신의 무기를 정비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투기를 끌어올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고는 비릿하게 웃어줬다. 드디어 이들의 마음속에 투쟁심이란 작은 불꽃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래 이래야 한국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이지.’

드디어 이런 허례허식이 잔뜩 석인 실력 테스트가 아닌 아카데미 전통의 실력 테스트를 할 때가 되었다.

그 포문은 연 것은 예상대로의 인물이었다.

“순위 결정전을 신청하겠다. 내가 이윤우한테 졌지 너한테 진 건 아니니 자격은 충분하겠지?”

“나도. 싸울래.”

유서아와 피아가 눈을 빛내며 대련장으로 걸어 나왔고, 그 뒤를 따라 수많은 학생이 벌 때처럼 들고 일어났다.

나는 그들의 호응에 맞춰 대련장에 올라오고 나서 처음으로 검에 마력을 둘렀다.

리에나의 마력 때문인지 철검에는 요사스러운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149명의 인원에게 검 끝을 겨눈 뒤 선언했다.

“지금부터 350기의 순위 결정전을 시작한다. 다 덤벼.”

* * *

“으아아…. 살살 좀 해줘.”

“아파.”

배정받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는 검은 머리의 서큐버스와 하얀 머리의 뱀파이어가 앓는 소리를 내었고, 그런 그녀들을 마사지해주고 있던 푸른 머리의 마검사는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다 덤벼는 무슨.”

검은 머리의 서큐버스는 매우 억울했지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320년 전에는 대충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잡으면 알아서 상대를 찾아서 대련했는데 뭔 미친놈들처럼 자신에게만 달려올 줄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래도 뭐 재미있었잖아.”

“그건 그렇지 재미도 있었고. 모든 학생이 앓아누운 덕분에 휴일도 얻었지.”

푸른 머리의 마검사는 여자 기숙사에서 울려 퍼진다고는 생각지도 않는 골골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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