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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8화 (8/48)

〈 8화 〉 8. 실력 테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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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실력 테스트 (1)

“이건 뭐 변한 게 없네.”

관중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몸을 푸는 신입생들과 키워볼 만한 학생이 있는지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교수들.

쓸만한 놈에게 침을 바르기 위해 찾아온 길드와 정부 쪽 사람들.

마지막으로 신입생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구경하기 위해 친히 걸음 해주신 선배들까지.

분위기가 이벤트처럼 바뀐 것 말고는 3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만큼은 똑같았다.

“지금부터 350기 신입생들의 실력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신입생을 포함한 모두가 대 연무장에 모인 걸 확인한 사회자는 실력 테스트가 진행되는 방식과 이유 등을 설명했다.

대전쟁이 어쩌고. 실력이 저쩌고. 리더십이 어쩌고저쩌고.

‘생각보다 많은 게 바뀌었네.’

듣다 보니 대련 방식만 그대로지 시대에 맞춰 많은 게 변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입학 테스트를 치르는 이유는 마족을 더욱 잘 족칠 수 있는 애들을 선별해 특수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학생의 특기를 파악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행위로 둔갑했고.

1대1 대련을 통해 1위부터 10위까지의 학생들에게 주어지던 무소불위의 권력은 기숙사와 훈련장 등을 따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차별성을 두는 거로 그쳤다.

마지막으로 모든 대련은 교수들의 감독하에 방어구 아티팩트를 착용한 채 치러지며 일정치 이상의 피해를 입을 경우 장외로 이동하여 자동 탈락한다는 것이었다.

하긴 320년 전에 하던 대로 했다면 이곳에 있는 부모들과 마계 종족들에게 뺨을 맞기 딱 좋을 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말 안 듣는 동기들을 노예로 부릴 수도 대련을 빙자해 쥐어팰 수도 없는 건가.’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세상이 참 좋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의 수준도 처참한 거 같지만.

“너무 약해.”

“뭐가?”

“피아가 보기에 동기들의 실력이 어떤 것 같아?”

사회자의 설명이 재미가 없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던 피아는 내 질문에 주변을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둘 빼고. 고만고만.”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대답을 마치고 다시 잠에 빠져든 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를 만질 때마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정기와 부드러운 촉감은 마약이나 다를 바 없었다.

뭐 이건 둘째치고, 피아가 느끼는 감정은 당연한 얘기였다.

많은 부분이 중간계화 되었다지만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존재들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을 마대륙에서 자라왔을 그녀와 전쟁을 잊고 평화에 찌들어 살았던 이들의 능력은 다를 수밖에.

곤히 잠든 피아의 귀에 소음이 들어가지 않게 마력을 덧씌워주고는 조금 전에 시작된 첫 번째 대련을 주시했다.

‘격투가와 검사의 싸움인가.’

실력은 둘 다 비슷해 보였으니, 결과는 누가 거리를 더 잘 재냐의 싸움으로 진행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질 않았다.

붙어야 하는 격투가와 벌려야 하는 검사의 치열한 공방전은 어디 갔는지, 위력이 한없이 떨어지는 거리에서 권풍을 날려대는 머저리1과 검면으로 막으면서 다가가도 될 위력의 권풍을 별 난잡한 검술로 튕겨내는 머저리2를 볼 수 있었다.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입학했을 시절의 동기들보다 능력이나 재능은 뛰어났다. 10살 전후의 아이들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사실이었다.

그러나 싸움 수준은 그 애들보다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처참하다 봐야 했다.

이유를 꼽아보자면 실전성이 매우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제일 중요한 게 하나 빠져있기 때문이었는데.

“절박함이 없어.”

남이 하니까. 누가 시키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 학생 대부분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절박함이 부족했다.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안다. 또 그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좋은 재능들을 썩히고 있는 게 참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2번째. 3번째. 30번째 대련까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명확한 상성의 차이가 보이는데 지레짐작 겁을 먹고 들어가질 않는다거나. 자신의 재능만 믿고 찍어누르려 한다거나.

그렇게 볼품없는 대련들을 구경하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 다음 대련자들이 호명됐고 주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둘이 붙게 되는군.”

“그래도 1대1이라면 검제의 후손인 이윤우가 유리하지 않겠어?”

“나는 대마법사의 후손 유서아가 이긴다는 것에 걸지.”

드디어 기대하던 동기들의 대련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예상대로 학교 측에서는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서로를 상대로 붙였고, 그건 내가 생각해도 좋은 선택이었다.

그들은 대련장 위로 올라서서 각자의 검을 꺼내들었고.

삐­

그걸 계기로 심판을 맡은 교수에게서 대련 시작 신호가 떨어졌다.

그들은 대련이 시작되고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정작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중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막상막하야.”

“그래도 유서아가 더 유리하지 않나?”

“아니지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버틴다면 검이 주력인 이윤우가 더 유리한 상황이지.”

치직­ 치지직­

서로의 마법이 부딪치며 허공에 형형색색의 스파크가 난무했다. 대게 유서아가 공격하는 마법을 이윤우가 방어하는 식이었지만, 어디한쪽이 크게 밀려 보이지는 않았다.

‘둘 다 마법의 종류와 활용도는 부족하지만, 감각이 뛰어나. 생각보다 제대로 배웠어.’

서로 치열하게 오가는 마법적 수 싸움에 과거를 떠올렸다. 그녀들이 대련을 벌였을 때의 승률은 7대3으로 마법사의 우세였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승부도 유서아가 더 유리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승리의 대부분은 검사가 다가오기 전에 마법으로 찍어누른 것으로 마법을 무시하고 붙을 수 있는 지금은 검사인 이윤우 쪽이 유리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서아도 원거리에서의 마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중간중간 캐스팅해두었던 신체 강화 마법을 두루고 이윤우와의 거리를 급격히 좁혔다.

“저런…. 마법사가 먼저 붙다니.”

“쯧쯧. 조급해졌나 보군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승부가 결정 났다고 혀를 찼지만, 나를 포함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완벽한 타이밍에 내린 최고의 선택이다.’

그녀가 배우고 있는 건 용사의 패도적인 검술.

마법이 통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윤우가 마법을 파훼하느라 신경을 분산시켰을 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틈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갔다.

우측 상단의 마법이 부숴지는 도중 들어간 좌측 하단에서 솟구쳐오르는 찌르기. 거기에 온몸을 휘감고 있는 강화마법까지.

저 상황에서는 자신을 제외한 그 어떤 신입생을 데려놔도 깔끔하게 승부가 결정 났을 것이다. 피아가 있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영웅의 격을 넘은 건가.”

“설마 저 나이에 벌써.”

그게 영웅이라면 다르다. 그들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부조리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나는 친우의 후손이 벽을 넘었다는 생각에 마력을 사용해 이윤우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예상과 다른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격을 넘은 게 아니라 타고난 거군.’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을 받은 존재들.

천재라 불리는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도 넘을까 말까 한 격을 넘지 않고도 미리부터 끌어다 쓰는 부조리의 극치.

용사라는 존재였다.

이윤우는 마법진이 파훼되며 일어난 스파크에 비친 칼날을 보고, 몸을 틀어 필사의 찌르기를 피하고선 자세가 흐트러진 유서아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댄 거였다.쉽게 말하면 운이 좋아 피했다는 거다.

‘쯧. 기분만 더러워졌어.’

남들이 보기에는 미리부터 검의 궤적을 예측한 뒤 피해냄과 동시에 역공을 가한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겠지만, 자신의 눈에는 운빨을 지 실력이라 믿으며 거들먹거리는 놈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가능해.”

“그래. 불가능한 일이지.”

“부조리해.”

“맞아. 부조리한 일이야.”

이번 대련만큼은 집중해서 보고 있던 피아도 본능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깨달았는지 목소리에 노여움을 품고 있었다.그녀가 진조라는 흡혈귀 중에서도 최상위의 혈통을 타고났다지만 현재의 실력을 얻기까지는 처절한 노력이 필요했을 거다.

“우리는 격을 넘지 못해.”

“맞아. 우리는 격을 뛰어넘을 수 없어”

그리고 그녀가 가장 부조리하다 느끼는 건 인간만이 격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일 테다.

태어나는 대로 각자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계가 정해지는 존재들.

그게 바로 나와 피아같은 악마들이었으니까.

분에 차서 눈물을 머금은 피아의 새하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어. 내가 보여줄게.”

대련장 위에 올라가 있던 두 사람은 검을 거뒀고, 대중들은 좋은 승부를 보여준 그들을 향해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 끝에 얻었을 실력을 부정당한 그녀를. 운으로 얻은 승리를 자신의 실력인 양 거들먹거리고 그걸 찬양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심기가 뒤틀렸다.

‘그래 운도 실력이 맞아. 하지만 너만은 그래선 안 됐어.’

나는 그들을 가로질러 대련장 위로 올라가 심판을 향해 선언했다.

“순위 결정전을 신청하겠습니다.”

“순위 결정전?”

심판이 처음 들어본 단어인지 어리둥절했기에 규정을 알만한 교수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지금 1등 예정자는 이윤우가 맞습니까?”

교수들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당황한 표정을 보였지만, 교육자의 본분을 잊지 않았는지 대답만큼은 확실히 해줬다.

“맞다. 유서아와 비등비등했다면 모를까 완벽하게 제압한 지금은 어떻게 봐도 1등이지.”

“그러니 순위 결정전을 신청하겠다는 겁니다.”

아카데미가 실력 테스트를 유지하고 있다면 없어져서는 안 될 규정이었다. 내정된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단 하나의 순위라도 제치기 위해 존재했었던 영광된 역사였으니까.

그리고 천에 가까운 사람이 모인 대연무장 속 유일하게 총장 하서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위 결정전을 허락한다.”

“총장님!”

주위에 있던 교수들과 이윤우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를 제지했지만, 그는 위압적인 기세를 내뿜고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순위 결정전은 지목받은 이상 거부할 수 없다. 그게 350년간 이어진 본교의 역사고 자긍심이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대련장 중앙에 서 있는 자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지?”

“리….”

본능적으로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리에나의 이름을 꺼내려다가 말을 삼켰다. 지금은 서큐버스 퀸이자 레드 문의 회장인 그녀로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자신이 대야 하는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세리아를 비롯한 모두의 반대에도 쓸 일은 없을 거라며 우겨서 자신의 신분에 집어넣었던 그 이름.

“지훈. 이지훈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 자신은 서큐버스 퀸 리에나가 아닌.

불굴이란 이명을 가진 이단심판관 이지훈이었다.

“그럼 정확히 10분 후에 1위 자리를 놓고 이지훈과 이윤우의 순위 결정전을 시작하겠다.”

총장 하서진의 선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실력 테스트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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