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7화 (7/48)

〈 7화 〉 7. 입학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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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입학식 (3)

다행히도 샤를과 데보라의 오해는 금방 풀릴 수 있었다.

“내가 부탁했어.”

피아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줬기 때문이었는데.

그녀는 언제 얼굴을 붉히고 달뜬 신음을 내뱉었냐는 듯이 다시 무뚝뚝한 말투로 벌어졌던 일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그랬구나. 고맙단 말을 해야겠네.”

피아의 옷을 정리해주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샤를이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아니. 내가 이득.”

그러나 피아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품속에서 작은 시험관을 꺼냈다. 거기에는 언제 담았는지 모를 붉은 피가 꿀렁거리고 있었다.

“뭐, 조금 놀라긴 했는데 그건 선물이라 치자고.”

데보라의 도움으로 정복의 착용을 끝낸 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더 놔뒀다가는 샤를이 피아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할 듯 보였다.

“그나저나 입학식은 끝났어?”

어찌 됐든 지금 중요한 건 피가 아니었다.

평범한 아카데미였다면 입학식쯤이야 빠져도 문제가 될 일은 없었겠지만, 한국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입학식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실력별로 반을 나누기 위한 테스트를 치러야 했다.

테스트에 불참한다면 최하위의 반으로 배치된다거나 최악의 경우 퇴학을 당할 수도 있었다.

“후…. 그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샤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이곳에 오기 전에 벌어졌던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 3위에 해당하는 비상길드 길드장의 장남이 누군지 모를 여학생에게 맞아 고환이 파열됐고, 치료를 위해 입학식 전체가 조금 미뤄졌다는 얘기였다.

다른 부위였다면 그냥 진행했겠지만, 대를 잇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 그랬나다 뭐라나.

옆에서 지켜보던 데보라도 걱정하지 말라면서 한마디를 더해줬다.

“뭐, 고환이 터진 녀석과 터트린 녀석에게는 안됐지만,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죠.”

“그러면 좋겠다만….”

이런 날 같은 장소에서 고환이 터진 인물이 두 명이나 있지는 않을 터.

나는 분주하게 대강당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있는 샤를과 데보라의 소매를 붙잡았다. 최대한 불쌍한 척을 유지하는 건 덤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

“할 말 있어?”

평소답지 않은 소심한 모습에 걱정된다는 표정을 짓기도 잠시.

“그…. 내가 오는 길에 고환을 하나 터트리고 오긴 했는데.”

작고 귀여운 입에서 터져 나온 충격적인 발언에 샤를은 나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고, 데보라는 주저앉아서 비명을 질렀다.

“미쳤어? 미쳤구나? 아니다. 원래부터 그랬나?”

“꺄아아아아아아악. 죽을 거야. 세리아님한테 죽을 게 분명해.”

그리고 반쯤 공중에 떠서 흔들리고 있던 나는 매우 억울했기에 한가지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온몸을 갈기갈기 찢으려다 참은 건데 말이지.”

자기들이 그 상황이었으면 다시는 아침 해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을 거면서. 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지만, 최대한 참은 게 그거니 정상참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지금부터 한국 헌터 아카데미의 제350회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나와 피아는 입학식이 시작되려는 때에 맞춰 대강당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멱살. 괜찮아?”

“뭐 놀라긴 했지만, 진심으로 그런 건 아니니까.”

그녀들이 과민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내가 신분을 숨기고 아카데미를 다니는 동안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세리아에게 부탁을 받았다는 건데, 그걸 지키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으로. 길드장 아들의 고환을 뭉갠 거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전후 사정을 설명하자 당장이라도 그 녀석을 찾아가 인세의 지옥을 보여주려는 그녀들을 말리는데 더욱 심혈을 쏟아야 했다.

“왜 웃어?”

내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는지 피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거 아냐. 입학식에 집중하자.”

뭐든지 궁금해하는 아기고양이 같은 모습에 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신분을 숨긴 서큐버스 퀸이며 레드문의 회장이라는 얘기를 해줄 수는 없는 법.

그녀의 머리를 단상 쪽으로 돌려주고는 나 또한 입학식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때마침 단상에서는 총장 하서진이라 불린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나와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풍기는 기세가 썩 괜찮아 보였다.

대검을 휘두르기에 적합하도록 발달한 완벽한 근육과 가만히 서 있는 거 같지만 어떤 상황에도 대처 할 수 있게 준비해둔 자세, 격을 넘으면서 얻은 거로 보이는 신비한 마력이 집중된 눈까지.

지금에서야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300년 전이라면 중위급의 영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붉은 달 전쟁 시점의 용사랑 겨룬다면 비등비등하려나?’

지겹게 이어지는 연설 따위는 관심이 없었고, 머릿속으로 총장과 용사의 모의 대련을 몇 번 진행하다 보니 이내 순서는 교수들의 소개로 넘어갔다.

검술학 교수, 마법학 교수, 근접격투학 교수 등등. 그들을 쭉 둘러본 한 줄 평을 내리자면.

세리아가 나를 이곳에 보내려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바뀐 세상을 경험해 보라는 것이었겠지.

150년간의 평화가 찾아옴으로써 인간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낮아졌지만, 언제나 그랬듯 괜찮은 인물들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응?”

혼잣말의 반응해 고개를 돌린 피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단상 위로 매우 익숙한 느낌이 드는 신입생 두 명이 올라왔다.

“방금 사회자가 뭐라 했는지 들었어?”

딴생각을 하느라 저들의 정체를 듣지 못했기에 피아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 리에나. 못 들었어.”

문장을 끊어서 말하는지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나를 바라보느라 못 들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가? 저기 올라가 있는 애들이 누군지 궁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꾸 머리를 간질거리는 느낌 때문에 알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끝나고 샤를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그러나 피아는 내 말을 듣고 안내를 듣지는 못했더라도 저 신입생들은 알고 있다는 듯이 단상 위를 가리켰다.

“저거. 궁금해?”

“혹시 알고 있어?”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조심스럽게 시험관을 꺼냈다. 그리고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꼭 감고는 뚜껑을 열어 피를 마셨다.

꼴깍 꼴깍

작은 입이 두 번 정도 움직이자 피아는 몽롱한 얼굴이 되어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작았던 목소리가 조금 더 작아지긴 했지만 단어 단위로 끊어 말하거나 주어를 생략하지는 않았다.

“저 둘은 흑염의 용사 파티원들의 후손이야.”

“흑염의 용사?”

“응. 300년 전 붉은 달 전쟁에서 동정의 용사와 함께 싸웠던 용사야.”

피아의 말에 따르면 내가 죽었던 전쟁에서 활약했던 용사라는 건데.

말이 되질 않았다. 총사령관이었던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거기서 싸웠던 용사라고는 중2병에 찌들어있던 여자 밝히는 놈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그 녀석이 동정의 용사는 절대 아닐 게 분명했고.

동정이라… 동정… 동정?

설마 아니겠지. 아니어야 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닐 거라는 간절한 믿음을 갖고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운을 떼었다.

“설마 동정의 용사는 그때 죽었던 이단심문관 단장을 말하는 거야?”

“응.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동정임을 자랑스러워했다던 이지훈 용사님.”

“미친….”

피아가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순간 화병이 나서 쓰러질뻔했다.

동정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동정의 용사라니. 용사라는 호칭을 붙여줄 거였으면 교단에서 쓰던 멀쩡한 이명을 놔두고 동정을 썼냐 이거였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으로 한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는데.

자신이 죽는다면 처리해야 할 첫 순서가 오늘로써 바뀌었다. 리에나에서 부단장으로.

‘후…. 아냐 지난 일이다. 다 지난 일이야. 그리고 나는 이지훈이 아닌 리에나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리에나의 몸 덕분인지 영혼이 울고 있다는 것만 빼면 금방 마음을 수습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정이란 단어를 치우고 단상에서 신입생 대표 연설을 하는 그들을 바라봤다. 알고 보니 더욱 익숙한 기운들이었다.

부러운 용사 새끼 대체 몇 명을 따먹... 아니, 이게 아니라.

“푸른 머리가 용사와 마법사의 후손일 테고, 검은 머리가 용사와 전사의 후손 맞지?”

“마법사가 대마법사 유지아고 전사가 검제 이하린이라면 너의 말이 맞아.”

“대마법사와 검제라.”

용사를 제외하곤 격도 얻지 못했던 코찔찔이들에게 언제 그런 거창한 칭호가 붙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름을 들어보면 맞는 거 같았다.

‘그래서 둘 다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비슷한데 기운이 극과 극으로 달랐군.’

둘 다 부러운 용사 새끼를 따라 검과 마법을 같이 사용하는 마검사 스타일은 비슷했지만, 여자 쪽은 용사의 검술에 유지아의 마법을 섞었다면, 남자 쪽은 용사의 마법에 이하린의 검술을 섞고 있는 듯했다.

‘둘 다 장단점이 있는 법이고 틀린 길은 아니지만, 그 남자를 지향점으로 삼는 건 잘못된 짓이지.’

안타까움에 고개를 돌리다 비어버린 시험관을 바라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피아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내밀었다.

지금 시험관을 채우라고 준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는 뱀파이어도 그렇고 옛 지인들의 후손도 그렇고 생각보다 흥미를 끄는 존재들이 많았다.

“재미있겠어.”

서큐버스가 진심으로 아카데미에 관심을 갖는 순간이었다.

* * *

하서진이 연설을 마치고 귀빈들이 모여있는 관람실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총장님 어떤 학생들이 가장 눈에 띄시나요?”

“정말 그 30기에 비견될만한 것 같습니까?”

“동정이나 정령여왕을 뛰어넘는 인재가 있다 보십니까?”

솔직히 하서진은 지금의 상황이 매우 귀찮았다. 자신을 제외하고도 대형 길드의 간부들과 고위급 헌터를 비롯해 높은 수준을 가진 인물은 많았으니까.

그들에게 물어봐도 자신과 대답이 비슷할 건 분명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격을 넘을 때 선택했던 이 눈 때문이겠지.

그는 단상에서 연설을 하는 두 신입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저 두 아이가 눈에 띄려나요.”

역시 흑염의 용사의 후손들이라 불릴만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대로 정진한다면 자신쯤은 가뿐히 뛰어넘고 말겠지.

“그 외에도 모든 학생이 뛰어납니다. 그래도 실력테스트를 지켜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듯하네요.”

소문처럼 이번 기수가 다른 기수들에 비하면 탁월한 건 맞았다.

하지만.

‘내가 봤던 30기의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어.’

자신의 눈으로 봤기에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은 마치 태생 자체가 다른 생물들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 아주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들과 비슷한 기운을 흘렸던 신입생이 한 명 있었다. 서류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아주 평범한 여학생.

‘너는 누구냐.’

옅은 미소를 띤 검은 머리의 신입생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하서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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