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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서큐버스는 하렘을 꿈꾼다-4화 (4/48)

〈 4화 〉 4. 서큐버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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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큐버스? (3)

분명 아무 문제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지내면 되겠다 생각했다. 자신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고, 이곳은 평화로운 세계였으니까.

하지만 방안에서 뒹굴거리며 최고급 만찬을 먹고 300년간 밀린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잠시일 뿐.

모든 것은 이틀 전 세리이가 다시 자신을 찾아왔을 때 시작되었다.

저번과 같이 발코니를 통해 갑작스레 찾아온 그녀는 폭신폭신한 이불속에서 곤히 자고 있던 나에게 아카데미에 입학하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나는 15년 만에 처음 갖는 꿀 같은 휴가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에 성인도 안된 코찔찔이 애들과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반론을 펼치며 극렬히 입학을 거부했지만.

내가 알고 있던 시절의 아카데미와는 개념이 다르다는 것과 입학하지 않는 경우 모든 돈줄을 전부 잘라버리겠다는 협박 한마디에 진압당해버렸다.

그래서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낸 결론이 뭐냐?

“어머, 너무 잘 어울리신다. 제가 10년간 일하면서 본 신입생분들 중에 이렇게 정복을 예쁘게 소화하시는 분은 처음이에요.”

일행을 쫓아다니며 백화점에서 일부만 들어갈 수 있는 고급스러운 가게로 안내한 뒤 비싸 보이는 옷을 추천하는 점원과.

“흠…. 리에나 님에겐 모든 옷이 어울리긴 하지만 뭔가 아쉬운데? 데보라.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봐 어떤 거 같아?”

“원단을 재봉한 실이 별로잖아. 이것 말고 훨씬 더 좋은 게 있잖아.”

“아 그걸 못 보고 있었네, 매니저님 재봉선은 아라크네들이 만든 실로 특수주문 넣어주세요.”

최고급 옷들조차 부족하다면서 더욱 비싼걸 찾고 있는 샤를과 데보라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필연적이었다는 거다.

그렇지만 그게 싫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걸 찾아주겠다며 애쓰고 있는데 어찌 그게 싫겠는가.

다만.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1억 3천만 원?’

검소한 삶을 살았던 내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입은 옷 옆구리에 붙어있는 가격표에 0의 개수 때문에 눈이 핑핑 돌아가고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라는 거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말하자니 이것조차 모자란다며 이런저런 옵션을 넣고 있는 샤를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고, 궁여지책으로 사탕을 오독오독 씹고 있는 데보라의 옆으로 다가가서 우려스러움을 표현했다.

“그…. 데보라, 이거 너무 비싸지 않을까?”

“네?”

그녀는 질문이 믿기지 않았는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입을 열었다.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당연히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는지라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원래부터 비싼 집이나 차 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치가 보존되는 보석도 아니고. 그냥 옷에 저 가격은 좀 아닌 거 같아서.”

“어…. 이런 거로 놀라 하시면 안 되는데.”

데보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사용했던 금액들을 읊어주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먹었던 식사 한 끼가 500만 원.

날개를 시험해본다고 찢어먹은 네글리제는 5000만 원.

매일 교체되는 침구류는 천사의 깃털을 뽑아 만든 것으로 한 세트의 가격이 2억 5000만 원.

“그만. 그만 말해도 괜찮아.”

끝을 모르고 점점 커지는 금액.

더 이상 들었다가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았기에 데보라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하지만 어느샌가 주문과 계산을 마치고 돌아온 샤를이 뒤를 이어 설교를 시작했다.

“리에나 님은 돈을 쓰실 줄도 알아야 해요.”

저렇게 가련한 외모의 미녀가 혼내봤자 얼마나 무섭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설교를 시작했을 때는 데보라와 그 세리아도 한 수 접고 들어가곤 했다.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종족이 누군지 아세요?”

“서큐버스요.”

300년 전만 해도 당연히 천사라 말했겠지만, 지금 그들은 남는 깃털을 파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고. 샤를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기에 고분고분 원하던 정답을 내놓았다.

“아니. 그게 아니에요. 리에나 님.”

하지만 샤를이 원하던 답은 그게 아니었는지 인상을 찌푸린 뒤 자신의 손을 붙잡고 백화점의 옥상으로 끌고 갔다.

우리의 뒤를 따라오던 걱정스러운 표정의 데보라는 옥상에 도착한 샤를이 날개와 꼬리를 꺼내자 두 팔을 벌려 나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뭔 생각인 줄은 알겠는데 그건 좀 위험하잖아.”

“아냐 리에나 님도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때가 왔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야. 저번에 보니깐 날개 쓰시는 법도 까먹으신 것 같던데.”

“내가 그런 실수를 할 거라 생각해?”

샤를은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는 몸을 써서라도 막으려는 데보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말리지 않아도 괜찮아. 나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세리아는 중간계 와서 긍정적인 얘기들만 해줬다. 인간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사업이 성공했다거나.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지금의 인간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서큐버스들도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별다른 고민 없이 느긋하게 놀고먹을 수 있었던 거고.

하지만 직접 바깥으로 나와 겪어본 현실은 달랐다.

300년 전보다야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서큐버스들을 탐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사람이 아닌 매력적인 도구를 바라보는 표정이었지.’

나는 아직 익숙치는 않았지만, 날개를 꺼내 들었다. 어깻죽지에 마력을 두르니 일반적인 서큐버스보다 반 배는 큰 칠흑의 날개가 나타났고. 살짝 발을 굴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 정도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지는 못했지만, 데보라가 걱정하는 것처럼 바닥에 곤두박질쳐서 붉은 빈대떡이 되는 일은 없을 거였다.

내가 공중에서 안정적으로 떠 있는 모습을 보자 데보라도 더는 막지 않았고, 나는 샤를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네가 뭘 보여주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보자.”

“멋대로 억지를 부린 건데 받아주셔서 감사드려요.”

샤를은 나를 뒤에서 부둥켜안고는 물기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대쪽같은 성격의 그녀라고 해도 종족의 지도자를. 어머니의 상사였던 존재에게 무언가를 지적하려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나는 기특한 마음에 손을 뒤로 뻗어 샤를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울지 마세요. 이제 좀만 있으면 선배가 되실 분이 신입생 앞에서 우시면 어떻게 해요!”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게 장난을 친 건 덤이었다.

익숙치 않고 자괴감이 드는 행동이었지만, 샤를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할만했다.

그리고 미녀를 울리는 것은 신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니까.

뭐 신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고맙습니다.”

어쨌든 간에 뒤에서 나를 꽉 껴안은 그녀는 공중을 향해 날아갔고.

도시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고도를 높인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큐버스는 뭘까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까지 올라온 것과는 관계없는 질문이었지만, 무언가 의미가 있겠지 싶어 아는 그대로를 성실하게 답했다.

“수컷의 정기를 뺏어 먹이로 삼는 악마.”

언뜻 보면 비하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사전적 정의도 그렇고 그들의 여왕인 리에나도 전투 중에 비슷한 말을 했었으니까.

그리고 샤를도 나의 말에 긍정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그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컷의 호감을 사는 외모로 태어나죠.”

그리고는 처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리에나 님께 상처가 될 수 있단 것은 알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한 번만 더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니, 지금까지 어떻게 다뤄왔을까요?”

숨이 턱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주도하거나 가담하는 행동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건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의 과오였으니깐.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네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노예….”

“맞아요. 노예. 그들에게 우리는 막 다뤄도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예쁜 성노예일 뿐이었죠.”

샤를은 섬에 조성된 거대한 도시를 가리켰다. 레드 문이 90%를 투자하여 기반시설부터 편의시설까지 완공시킨 도시라고 들었다.

“우리가 아무리 성공해서 저런 도시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어요. 아니, 다르게 말해야겠네요. 레드문 소속 서큐버스의 인식은 바뀌었죠. 하지만 서큐버스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은 그대로예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노예라는 단어를 꺼내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서큐버스에 자부심이 있는 그녀로서는 종족의 여왕이. 레드문의 회장이 그깟 돈 조금 때문에 움츠러든다는 게 싫었을 거다.’

그리고 레드 문이 이렇게 성공한 상황에서도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유 또한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다른 서큐버스들이 문제였겠지.‘

모든 서큐버스가 대악마 소속이었다면 두려움을 겪을지언정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개개인으로 활동하던 서큐버스들이 잡혀 인간의 노예가 되고. 그 인간의 자식을 낳고. 또 그렇게 탄생한 혼혈 서큐버스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멋대로 인간의 정기를 흡수하다 범죄자가 되거나 사창가에서 몸을 팔거나.

세상은 변했지만, 리에나 휘하의 서큐버스을 제외한 다른 서큐버스는 300년간 변한 게 없었다.

나는 아침이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붉은 달이 있을 법한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하소연을 했다.

‘너나 나나 괜한 헛고생을 했구나.’

그렇게 한참 동안을 미련했던 서큐버스 퀸에게 하소연을 마치자. 옆에서 나의 상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샤를이 먼저 말을 걸었다.

“솔직히 당신이 얼마나 대단했던 지도자인지는 레드문 소속 모든 서큐버스들이 알고 있어요. 특히나 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께 당신 얘기를 들었죠.”

그녀는 리에나가 했던 업적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떠돌이 서큐버스와 다른 대악마들 밑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 서큐버스를 모아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었고.

능력이 약한 서큐버스들이 성행위나 흡정 없이도 에너지를 얻을 방법을 개발했으며.

마지막으로는 잘 알다시피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서 서큐버스들의 희생을 줄이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한발 먼저 전쟁을 벌이고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미련한 대악마인줄 알았지만, 얘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리에나는 생각보다 더욱 미련한 지도자였다.

‘그만한 능력과 지식이 있었으면 도망친 뒤 살아남던가. 그게 불가능했다면 저주를 걸지 말고 내가 아니라 너가 이들을 이끌었어야지.’

리에나의 부하들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서큐버스들을 구원할 마음 따위는 좁쌀만큼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몸 때문인지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에이…. 시발.’

그러나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신분조차 없어서 아카데미에 다녀야 하는 상황에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준단 말인가. 그리고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이미 세리아가 전부 끝냈겠지.

머리를 거칠게 털어내며 죄책감을 떨쳐낸 뒤 샤를의 말에 집중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내가 딴생각을 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 그렇지만 저와 데보라 같이 젊은 서큐버스들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그냥 또래의 친구 같거든요.”

샤를은 계속 자신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리저리 빙빙 돌려 말했는데 요약하자면 친구먹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환영이었다.

리에나의 몸을 사용하는 이상 퀸의 역할은 수행해야겠지만, 가장 가까이서 있을 샤를과 데보라 만큼은 편하게 얘기하고 싶었으니까.

“샤를 그냥 편하게 말해.”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샤를의 걱정 섞인 물음에 나는 다시 한번 연극을 시도했다.

“선배. 아카데미 생활 잘 부탁드려요!”

하지만 샤를은 이전과 달리 웃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아…. 망했다.’

웃으라고 한 상황에서 웃지 않자 갑작스레 찾아온 수치심에 나는 날개를 해제한 뒤 지면을 향해 프리허그를 시도했다.

“리에나 무슨 짓이야!”

고개를 돌리고 있던 샤를은 나를 발견하고는 급하게 따라붙은 뒤 팔로 허리와 다리를 받혀 안아 들었고.

졸지에 공주가 되어버린 나는 허공을 향해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아…. 나의 남성성은 어디로 갔는가.’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나의 남성성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가 발생하리라고는.

* * *

우윀… 웩…

수십 개의 사탕 포장지가 널브러진 고급스러운 화장실에 연이은 구토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문을 열고 들어온 은색 머리와 붉은 머리의 서큐버스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이건 정말 약한 거라 못 먹으면 안 되는데.”

“서큐버스가 남자의 정기를 흡수하지 못하면 어떡하라는 거야.”

그리고 구토의 주인, 검은 머리의 서큐버스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수들을 바라본 뒤 눈물을 글썽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딴걸 어떻게 먹으라고!”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오래가지 못했고 이후 긴 시간 동안 화장실에는 구토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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