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449화 (449/450)

449.

시간이 꽤 흘렀다.

시간은 우리 편이나 다름없으므로 난 꽤 여유로운 생활을 보냈다.

마약을 한 예술인들이 하나둘 입건 됐고.

가요계에 관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의 숫자가 꽤 줄었다.

거기에 마약 카르텔 화이트 더스트에 관한 기획 기사가 나왔다.

여진이 과거에 마약 카르텔에서 일했던 경험까지 각색해 화이트 더스트에 관한 장문의 기사가 나왔다.

그들이 가요계에 침투해 박희성 작곡가와 세력을 만들고.

어떻게 신인 작곡가들을 꼬드겨 카르텔을 운영했는지.

연예인들에게 접근하려는 시기에 어떻게 내가 그들을 막았는지.

그 이후 그들이 예술계에 파고들어 예술계를 장악하는 이야기까지.

마지막으로 내게 앙심을 품은 그들이 지금 어떤 협잡질을 하고 있는지.

마약을 사용해 예술인을 중독시켜 그들에게 강제로 저런 주장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정말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기사로 나왔다.

아마 그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인원을 파악하고 있을지 몰랐겠지.

물론, 땡중 세력도 그리 무력하게 당하진 않았다.

우선 예술계 거물들은 대부분 마약을 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찾아낸 마약 한 신인 예인들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 마약 브로커 짓을 했다는 자료도 있었지만.

이건 지금 증거가 별로 없어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치밀하긴 했다.

이제 거물들이 무슨 의견을 내더라도.

예술 판이 이렇게 마약 판이 됐는데 그런 거도 모르고 있었냐는 이야기를 하며.

자격 논란이나 자중하라는 여론을 끌고 가 그들의 의견을 뭉개버렸다.

승부의 추가 거의 내 쪽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는 말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문화의 급을 나누고 시스템의 문제를 논하기엔 그들의 도덕성 문제가 먼저다.

마약 카르텔의 협박을 받아 낸 의견이라는 점도 그렇고.

마약쟁이들이 얼마나 좋은 주장을 했겠냐는 이야기도 돌고 있었으니까.

근데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땡중 세력의 작전인지 진짜 사람들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이상한 의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비록 마약을 했고, 그들이 협박을 받아 낸 의견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라는 이야기.

한국 가요계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와.

아이돌 위주의 문화는 가요를 파는 게 아닌 유사 연애로 장사를 한다는 이야기.

이건 예술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질 치며 장사한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긴, 남자든 여자든 잘난 애들에게 반감을 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 나가는 사람은 그걸 끌어 내리려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으니까.

날 탐탁지 않게 보던 사람도 적지 않은 거 같고.

하긴, 우리 회사 소속 가수의 팬 중.

약간의 사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싫겠지.

그런 모든 상황이 이상하게 얽혀 들어갔다.

아니, 이게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동을 잘 당하는 편이긴 하다.

나는 그 이유를 교육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을 기르기보다는 정답을 찾는 능력만을 기르는 현 제도.

그 안에서 커온 사람들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냥 ‘이게 정답이래’라고 많은 사람이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하면서 믿는다.

문제를 푸는 거보다 정답이 중요한 세상이니까.

내 생각나 판단이 정답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이 많기에.

많은 사람이 말하는 걸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론이 한번 형성되면 물타기로 뜨거워지는 건 금방.

나중에 그게 잘못됐다거나, 사실이 아니라는 게 알려져도 별로 타격이 없다.

내가 그런 게 아니니까.

다들 그렇게 말해서 그런 줄 알았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기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잘 하는 거 중 하나가 마녀사냥이잖아.

일단 죽여! 마녀 아니야? 그럼 말고.

사냥의 타겟이 내가 돼 버렸다.

“후우우, 이거 뭔가 보여줘야 할 거 같은데.”

아니 이거 너무 이상한 거 아니냐고.

우리나라 문화 수준을 낮추는 범인이 나라면.

내가 전 세계에서 잘 먹히는 이유가 뭔데?

전 세계 대중이 모두 수준이 낮다는 거야?

내가 대중의 수준을 낮추는 범인으로 지목되는 현실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아. 욕 나오네! 진짜.”

그렇다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

지금 날 향한 여론이 너무 안 좋으니까.

내 노래를 향한 폄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다행인 점은 나 혼자 모든 욕을 다 먹고 있어서 내 여인들을 괜찮다는 점.

리얼리티 반응도 꽤 좋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촬영한 건 사용 못 했지만.

“후우, 보여줄 수밖에 없겠네.”

곡 작업을 모두 끝내고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곡 작업에 매진했다.

먹고 자는 시간, 가끔 찾아오는 여인들과 보내는 시간.

딱! 그 정도의 시간을 제하고 곡 작업에 모든 여력을 쏟았다.

프로젝트 앨범 듀엣곡은 모두 완성됐고.

새로 데뷔할 연습생들의 데뷔곡부터 정규 앨범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곡을 만들었다.

이건 새로운 곡을 만들기 위한 연습이다.

내 모든 영감과 깨달음을 갈고 닦아 모두를 감동하게 할 노래를 만들 생각이다.

솔직히 음악의 수준을 논하는 건 대중에게 먹히지 않는다.

내가 진짜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들이 그 수준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어떤 분야의 수준을 파악하려면 그 사람도 수준이 높아야 한다.

간단한 예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뽑는 걸 생각해 보면 된다.

일반인이 최신의 물리학 논문과 연구를 보고 상 받을 사람을 정할 수 있을까?

논문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못 한다. 논문을 이해하고 수준을 보려면 그 논문을 쓴 사람에 준하는 지식이 필요하다.

음악은 직관적인 영역이라 들으면 좋다, 별로다가 바로 나온다고 하지만.

수준을 논하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

별로 안 좋게 들리는 노래가 굉장한 수준의 노래일 수 있다.

당장 유티비에 현대 음악만 쳐봐도 ‘현대 음악이 어려워진 이유’, ‘현대 음악이 듣기 힘든 이유’ 같은 제목의 영상이 많이 나오고.

실제로 현대에 상 받은 수준 높은 음악들을 들어 보면 짜증 나는 소음보다도 이상한 음악이 많다.

대중에게 수준 높아 보이는 음악은 정말로 수준이 높을 필요가 없다.

단순하게 그들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영화 평론가와 대중이 가장 많이 싸울 때는.

내가 울었던, 감동했던 영화에 평론가가 악평했을 때니까.

영화의 수준은 상관없다. 내가 감동하면 그게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만들 거다.

그 첫 번째는 여진이가 부를 곡이 될 예정이고.

날카롭게 벼려진 영감과 곡 작업 실력이 지금은 여진을 위한 곡을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을 줬다.

여진이 부를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아!”

고도의 집중은 뭔가 기억을 잃게 만드는 거 같다.

곡 작업을 시작하고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몰입이 깨지며 주변이 들어온다.

곡은 완성돼 있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 지난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두 시간이나 지났네?”

두 시간을 찰나처럼 느낄 정도로 집중했다.

얼마나 몰입했었는지 몰입이 깨지고 중간의 기억이 없다.

“음.”

만들어진 곡의 상태가 무시무시했다.

“이건 진짜 장난 아닌 거 같은데?”

조심스럽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름답게 흐르는 선율.

여진의 가장 큰 무기는 가만히 있어도 모든 걸 씹어 먹을 듯 신비로운 분위기.

마치 블랙홀을 보는 듯한 묘한 끌림이 있는 여진.

그런 여진에게 맞는 곡인 거 같다.

여진이 이 노래를 부르면 진짜 블랙홀 같겠다.

엄청난 중력으로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겠지?

“후우우, 일단 곡을 다 보내 놓자.”

여기까지는 지금의 내가 한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진의 노래가 엄청나게 대중을 감동하게 할 테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아무래도 가수의 매력이 크면 그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제대로 된 곡을 하나 만들 거다.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내 모든 역량을 다 넣어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대단한 곡을 만들 생각이다.

하루 정도는 좀 쉬어 줘야지.

너무 날카로운 상태다.

이런 긴장을 오래가려면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다.

오늘은 여자도 안지 않고 오로지 홀로 휴식해야겠다.

24시간이 지났다.

정말로 24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보냈다.

방송도 보지 않았고, 기사나 인터넷도 켜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냈고.

누워서 뒹굴다 자다가 다시 뒹굴었다.

“후우우.”

이제 시작할 시간이다.

여진의 곡은 무아지경에 빠져 극도로 몰입해 만들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고뇌와 고민의 연속.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기와 모든 음.

그 하나하나를 계속 찾아가며 정말로 그 자리에 딱 맞는 제대로 된 소리를 찾았다.

지금 만드는 노래는 높은 수준의 노래가 아니다.

모두를 감동하게 할 영혼을 울리는 노래.

사람을 울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고통을 주는 거다.

아주 고통스러운 노래를 만들 생각이다.

날 마녀사냥 하는 세상 모두에게 하는 복수.

음악을 듣는 내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되는.

사람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 노래.

음악에 관한 이해가 없는 일반 대중들은 이 노래를 명곡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듣고 있으면 감정이 요동치고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노래의 제목은 마녀사냥이 좋겠네.

이젠 누가 마녀인지 모두에게 알릴 노래.

아주 오랜 시간 노래 완성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다.

컨디션 유지를 위해 먹고 자는 시간 말고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노래 완성을 위해 사용했다.

“됐다.”

어쩌다 보니 엄청나게 긴 곡이 완성됐다.

대략 20분 정도 되는 음원.

판단하기에 음악적 수준으로도 낮지 않다.

현대 음악에 밀리지 않는 높은 수준의 노래에.

대중의 눈물을 쥐어 짜낼 고통스러움을 담았다.

완성된 곡을 저장하고 회사로 보냈다.

이 곡이 발표되기만 하면 모든 여론이 뒤집힐 수밖에 없겠지.

곡을 보낸 순간 내 몸에 있던 모든 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마기를 너무 많이 쓴 건가?”

쉬지 않고 빠져나가는 마기.

곡에 스며드는 마기의 양이 심상치 않다.

-결국, 이렇게 됐군.

“마기?”

-그래. 그대의 선택을 존중하지.

“설마? 이 곡이?”

인세의 다시 없을 명곡을 만들었다.

그게 나와 마기의 역할이라는 얘기를 마기가 한 적이 있었다.

역할을 다 한 나는 더 세상에 필요 없는 거지?

나 이제 죽어?

-그대의 선택에 맡기겠다.

“내 선택?”

-역사에 남을 대작을 만든 대가는 죽음이다.

“알고 있어. 저번에 들었으니까.”

마녀사냥에서 벗어나기 위함에만 너무 몰두했던 거 같다.

결국, 내 무덤을 내가 판 거구나.

-허나, 살아남을 방법이 없지는 않다.

“그래?”

-모든 걸 잃겠지만.

모든 걸? 모든 게 뭔데?

-나를 이용해 만들어낸 모든 걸 잃고 살아가게 되겠지.

“만들어낸 모든 거? 곡과 여인들?”

이미 만들어진 곡들에서 마기가 사라진다는 말?

그렇다고 해서 그 곡이 별로인 곡이 되는 건 아닐 텐데?

지금 내 여인들이 마기에 중독돼 있지만.

마기가 없어진다고 해도 날 사랑하지 않을까?

-그건 모른다. 모든 기운이 사라질 테니.

“기억은 그대로 남고?”

-물론이다. 하지만 내 기운이 없이 남은 기억이 과연 여전히 좋은 기억일지는 알 수 없다.

“무섭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어디 숨어 산다고 해도 아주 부유하게 살 수 있다.

원래도 돈이 많았고 지금도 초 단위로 재산이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 프로젝트 그룹 앨범과 새로운 걸그룹의 데뷔까지 합쳐지면 얼마나 많이 벌겠어?

문제는 내 여인들이다.

“이제 놓아줘야 할 때인가?”

-그들이 떠날지, 그대를 증오할지, 그대와 함께할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니, 마기가 없다면 굳이 내게 남을 필요가 없을 거야.

내가 만족하게 해줄 수도 없을 테고.

굳이 나와 함께 있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녀들은 내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난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니고. 괜찮은 사람도 아니니까.”

-선택한 건가?

“응.”

-알겠다.

홀로 남아 사는 것, 이대로 죽는 것.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 선택에 마기가 몰아쳤고 나는 침대로 올라 눈을 감았다.

다음화 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