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
회사에 도착해 다른 연습생들과 모두 모였다.
“다들 어제는 잘 잤니.”
“네!”, “그럼요!”
인사를 마치고 지은의 노래를 모두와 함께 듣는다.
확실히 실력이 늘긴 했네.
지은의 노래를 듣고 아직 나와 면담을 하지 않은 세 사람이 놀란 눈으로 날 본다.
“흐음, 조금 아쉽네.”
얘는 진짜 노래가 맛이 없다.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노래는 분명하게 노력과 연습으로 실력을 올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고 타고난 재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분야기도 하다.
누구나 가수를 할 수 없는 이유에 외모나 끼, 분위가 같은 연예인으로서 재능도 있지만.
노래에도 분명한 재능적인 부분이 있다.
연습과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
톤이라든지 가지고 있는 호흡의 양이라든지.
지은은 그런 재능 적인 부분 모두가 노래와 맞지 않는다.
이건 노력한다고 바꿀 수 없다.
“지은아.”
“네?”
“너 랩 한 번 해볼래?”
“랩이요?”
고개를 끄덕인다.
내 말에 다른 여성들도 느낀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노래와는 맞지 않지만, 리듬감이나 발음 같은 건 꽤 좋은 지은.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데.”
“가사 보면서 느낌만 보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네. 해볼게요.”
폰을 들어 검색하던 지은이 준비를 마쳤는지 날 본다.
“무반주로 하나요?”
“아, 어떤 곡인데 틀어줄게.”
지은이 말한 곡의 노래방 버전 반주를 찾아 틀어 본다.
“더웠던 여름날. 떠나간 그댄 날!”
유명한 랩 곡을 부르는 지은.
꽤 정직한 박자와 플로우라 무난하게 들렸다.
진짜 힙합을 할 거였다면 특징이 없어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겠지만.
아이돌 래퍼는 오히려 좋다.
곡 컨셉에 맞춰 여러 가지 변화를 줄 수 있으니까.
“괜찮은데?”
지은의 랩이 끝나고 나온 내 반응이다.
“정말요?”
“응. 지은이는 랩 포지션으로 하자.”
“알겠습니다.”
처음으로 칭찬을 받아봤는지 감격한 표정의 지은.
“이제 개인 특훈 안 받은 사람은 셋인가?”
“네!” “저희 셋이요.”
세 사람이 앞으로 나온다.
급할 건 없지만, 오래 묵힌 느낌의 아이들이라 빨리 먹어 보고, 아니, 뭘 먹어.
빨리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3일 동안 한 명씩 진행할 생각이야. 순서 정할까?”
“으음. 가위바위보 할까요?”
“그러자.”
누가 먼저라고 해도 나는 좋다.
어차피 내 취향을 100% 반영해 외모만 보고 뽑은 애들인데.
누가 옆에 있던 좋을 수밖에.
나와 다르게 아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특훈을 받고 싶은지 표정이 비장하다.
“가위! 바위! 보!”
남은 셋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유봄의 외침.
여우상의 도도한 얼굴로 간절하게 가위바위보 하는 느낌이 꽤 귀엽네.
“아아!”
“예쓰!”
“으.”
나림의 승리로 끝났다.
항상 웃고 있는 웃상의 강아지 같은 나림이.
사람 좋은 느낌도 있고 사람 좋아하는 느낌도 있는 나림인데.
그룹 내에서는 약간 애늙은이 캐릭터다.
밝은 성격답게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도 배려심도 많아 멤버들을 잘 챙기는 아이.
나림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뭔가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 같아서 이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강아지 하니까 윤진이 생각나네.
얘도 두 번째 펫으로 만들어 볼까?
“나림이는 오늘 수업 다 끝나고 회사에서 기다려. 데리러 올게.”
“알겠습니다.”
“다음은 유봄이고 채유가 마지막이구나.”
채유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인데 뭐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지.
채유는 토끼상의 귀여운 미녀로 장난스럽고 위트 있는 성격이라 막내랑 죽이 잘 맞는 캐릭터다.
막내인 우아와 채유가 사고를 치면 맏언니인 신정이가 꾸짖고 나림이가 위로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약간 시크한 느낌의 유봄이는 뒤에서 따로 챙기는 거 같은 느낌이고.
츤데레 느낌 낭낭한 유봄이니까.
지은이는 합류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멤버들과 이렇다 할 케미가 있는 거 같진 않다.
빨리 친해져서 어떤 케미를 좀 보였으면 좋을 거 같은데.
지은이는 소심한 성격이라 먼저 끼어들지도 못하는 거 같다.
왈가닥인 막내와 장난스러운 채유가 친해지기 위해 다가가 가끔 장난을 친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지 낯을 가리는 지은은 그저 어색하게 웃는다고.
반응이 그러면 장난치는 사람도 재미가 없어서 민망해지니 서로의 사이가 좋아지기가 힘들지.
시간이 다 해결해 줄 일이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정 안 되면 내가 뭘 하면 되겠지.
리얼리티도 구상 중이니까 그 안에서 친해지길 바라 같은 걸 찍지 뭐.
그렇게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3일간 밤에는 집에 들어갈 일이 없기에 사죄의 의미를 조금 담은 간식을 사서.
집에 있는 여인들에게는 미리 말 해뒀으니 괜찮겠지?
낮부터 여인들에게 정기를 빨릴 거 같긴 하지만.
밤까지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거다.
“다들 잘 있었어.”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 모여 있는 여인들이 보인다.
전부 부른 건 아니었지만.
다들 모이니까 자연스럽게 부르지 않은 여인들도 모인 모양.
“자기가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잘 있어?”
초유 누님이 도발적인 표정으로 내 옆으로 파고들었다.
집에서는 확실히 왕언니로 공고한 권력을 가진 초유 누님이라.
항상 처음 날 반기고 안기는 건 초유 누님인 거 같다.
그 후로도 다가오는 여인들과 한 번씩 포옹과 뽀뽀 등을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잠깐. 다들 눈빛이 조금 무서운데?”
“선생님이 너무 집에 안 오시니까 그렇죠.”
“나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 조금 지나면 자주 볼 거야.”
“치이.”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수미.
요즘 배우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어 바쁠 텐데.
어떻게 집에 있었네.
“오늘은 일 얘기 하러 왔으니까. 잠깐 진정 좀 해줘.”
“일? 뭔데?”
역시 앨범에 대한 욕구가 큰 민하 누나가 가장 처음으로 반응한다.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해 보려고.”
“그룹? 몇인조로?”
“두 명씩 짝지어서 여럿 내보낼 거야.”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 준다.
“우리끼리 경쟁하겠네?”
“경쟁보다는 그냥 다른 곡으로 같이 다니면서 논다고 생각해야지.”
“그래서 어떻게 묶게? 우리가 정하면 돼?”
민하 누나가 아주 적극적이네.
“내가 정해둔 게 있어. 일단 민하 누나는 역시 시연이랑 해야지.”
“헤헤. 피디님. 전 좋아요.”
시연이가 민하 누나 옆으로 가서 누나를 안는다.
“흐음, 시연이라면 호흡도 잘 맞고 좋지.”
“이 두 사람 빼고는 모두 반전 느낌으로 그룹을 짜 봤어.”
몇 쌍의 눈동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 입을 본다.
“처음으로는 지인이.”
“네! 선생님.”
지인이가 앞으로 나온다.
편한 복장에서도 뭔가 귀여우면서 묘한 색기가 나온다.
지인이는 작은 체구에 몸매가 좋아서 편한 복장을 했을 때 매력이 더 높은 거 같기도 하다.
“지인이는 귀엽고 넉살 좋은 이미지가 있잖아.”
“헤헤.”
지인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소연이랑 묶어 봤어.”
“나?”
소연이가 놀라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응. 나와 봐.”
“흐음.”
도도한 인상의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소연.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둘 다 비슷해서 묘하게 어울리는데.
한 명은 엄청 밝고 한 명은 엄청 싸늘한 느낌을 준다.
겨울과 여름이네.
아니 지인이는 화사한 여름보다는 파릇파릇한 봄이 어울린다.
“이 둘이야. 어때?”
“예상 못 한 조합이긴 하다.”
“선생님. 전 좋아요! 언니. 헤헤.”
역시나 붙임성 좋은 지인이가 소연에게 매달렸다.
소연도 싫은 내색 없이 지인이의 어깨를 감싼다.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신기하네.
“소연이가 나왔으니까 다음은 수희 나와 봐.”
“옛설!”
얘는 진성 헬창이 맞는 거 같다.
가볍게 걸어오면서도 포징을 하듯 이두를 짜는 느낌이 든다.
“너는 요즘 운동이 늘었니? 몸이 좀 불었다?”
“무게 쳐서 그런가? 조금 깎아 볼게.”
“그래. 그리고 수희랑 함께할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은 꺼리는 얼굴을 몇몇은 기대하는 얼굴을 한다.
기대하는 여인들은 운동을 좋아하는 여인들이고 꺼리는 애들은 운동을 싫어하는 애들이다.
확실하게 나뉘네.
“진성 헬창과 함께 할 사람은 우리 중에 운동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지.”
사람들의 시선이 세 명으로 향했다.
처음 향한 건 시연이.
시연이는 육덕진 몸답게 움직이는 걸 싫어하니까.
다음으로는 게으름의 아이콘인 미리.
사실 미리는 말투가 늘어져서 그렇지 게으르진 않은데.
의욕이 없는 편이라 게으르게 느껴지는 거 같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건 선유.
나도 선유를 함께 본다.
“하아아.”
깊게 한숨을 쉬는 선유.
“오! 선유! 다이어트 한다며? 내가 잘 도와줄게.”
“언니. 내가 알아서 하면 안 될까?”
벌써 두 사람의 케미가 좋네.
“하하하.”
“호호호.”
두 사람의 케미를 보고 웃음이 터진 사람들.
수희가 선유보다 한 살 언니라 사이가 꽤 좋은 거 같기도 하다.
수희는 선유의 몸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선유에게 운동의 좋은 점을 늘어놨고 선유는 한숨을 쉬며 고개만 끄덕인다.
“두 사람 케미 좋다. 그럼 다음은 연화지?”
“네! 피디님!”
연화가 밝게 웃으며 나왔다.
그룹 언니들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겨서 시무룩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언니가 생길 거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더 즐기고 있다.
하긴, 이제 애도 아닌데 의지할 사람이 꼭 필요한 건 아니겠지.
연화도 산전수전 겪으며 많이 성장했구나.
대견한 연화의 어깨를 감싸 안아 조금 쓰다듬는다.
“연화는 같이 하고 싶은 사람 있어?”
“다 좋아요! 헤헤.”
해맑은 연화.
4차원 느낌이 조금 있으면서도 씹덕몰이를 제대로 하는 만큼 영악한 친구다.
“연화는 아무래도 막내 이미지가 강하니까 맏언니를 붙어 보려고 해요.”
“호호. 오랜만에 무대에 둘이 서 보겠네.”
나다 싶었는지 선애 누나가 알아서 걸어 나왔다.
“저는 성민씨의 노래라면 언제든 좋아요.”
“두 사람은 자매 컨셉으로 갈 건데 괜찮죠?”
“이모 아닌 게 어디에요. 호호.”
농담하며 기분 좋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선애 누나.
연화랑 뭐가 있는지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씩 웃는다.
“평소에 연화가 선애 언니한테 의지 많이 했는데 좋겠네.”
“나도 연화를 이뻐하기도 했으니까.”
소연과 선애 누나의 대화에 뭔가 알 거 같았다.
하긴 집에서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선애 누나니까.
진정한 맏이는 초유 누님이지만, 초유 누님은 따지자면 아빠 같은 이미지다.
“마지막으로 그룹 하나 더 있어.”
“오! 누굴까.”
가장 신이 난 건 윤진이다.
예능을 집중적으로 하는 윤진이인 만큼 이런 재밌는 상황을 즐기는 거 같다.
“응 너야!”
“나?”
윤진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한다.
“슬슬 윤진이도 노래 다시 해봐야지.”
“으으. 할 수 있을까요?”
“할 수밖에 없을걸?”
“왜요?”
나는 씩 웃으며 미리를 바라봤다.
“네가 함께할 사람이 미리니까.”
“헉. 그, 그게 돼요?”
“헤에. 재밌겠다아아.”
늘어지는 목소리로 윤진의 곁에서 웃는 미리와 불안한 표정으로 미리와 나를 보는 윤진.
“걱정 하지마.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하. 하하. 하.”
윤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웃었다.
하긴 자기 자신도 노래가 부족한 걸 아는 윤진이니까.
미리 같은 모든 게 완벽한 완성형 가수와 함께 하는 건 부담스럽겠지.
미리에 묻히지 않으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할 수 있지?”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죠?”
나는 윤진의 옆으로 이동해 엉덩이에 손을 살짝 올렸다.
“활동 잘 마치면.”
“마치면?”
말을 끊고 씩 웃은 뒤 윤진의 엉덩이를 꽉 잡는다.
“하으.”
윤진에 귓가에 조용하게 속삭였다.
“개처럼 따먹어 줄게.”
“흡. 해, 해볼게요. 하으.”
윤진이가 볼을 붉히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자! 이렇게 다섯 그룹이야. 선유는 곡 작업 같이할래?”
“좋지! 오빠랑 작업하면 뭔가 새로운 걸 얻는 거 같으니까.”
“그래. 그럼 너희 곡 만들 때 부를 게.”
“기대하고 있을게요! 호호.”
성욕 몬스터인 선유라서 곡 작업만 할 수는 없을 거 같다.
그걸 느낀 건지 선유도 야한 눈으로 게슴츠레 날 본다.
하여간 요물이라니까.
“초유 누님이 안무는 전부 전담해 주실 수 있죠?”
“후으으, 나는 일을 그만뒀는데 일이 계속 생기네.”
“누님 없으면 춤이 마음에 안 드는 걸 어떡해요.”
“아부하기는. 알겠어.”
그렇게 듀엣 프로젝트는 모두에게 알려졌다.
“아! 그리고 컨텐츠가 하나 더 있어. 들었지?”
“뭔데요?”
듀엣 프로젝트에 함께하지 않는 여인들이 눈을 반짝인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