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자! 그럼 객석 투표도 지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좌석에 있던 리모콘을 들고 1번은....”
아마도 관객 투표는 몰이 거의 휩쓸 거 같고.
루와 존 팀 참가자의 대결은 문자 투표에서 갈릴 거 같다.
방송 내내 투표를 할 수 있으니까.
루가 무대 하는 동안 받은 표와 존 팀 참가자가 무대 하는 동안 받은 표의 차이로 결과가 나오겠지.
모든 투표가 끝나고 참가자 셋이 무대로 올라왔다.
“자! 가장 처음 무대를 했던....”
존 팀 참가자의 인터뷰.
별다른 얘기 없이 시간 때우려는 느낌의 형식적인 인터뷰가 지나갔다.
루의 인터뷰도 약간 몰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거쳐 가는 요식행위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인터뷰하는 몰.
“몰 바튼 참가자! 우선 좋은 무대를 보여주셨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 좋은 곡을 만들고 편곡해 주신 에스민 프로듀서에게도....”
감사 인사를 먼저 한 뒤 인터뷰를 하는 진행자.
분위기상 몰은 무조건 올라가는 느낌이고 다들 그걸 인정하고 있는 거 같다.
인터뷰가 끝나고 투표 집계도 끝이 났다.
“자! 바로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광고 타임이 지나간다.
떨리는 표정으로 날 보는 루.
나는 루에게 괜찮다며 미소를 보내 줬지만.
솔직히 졌을 거 같다.
광고가 끝나고 다시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자! 그럼 더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진행자의 손에 투표 결과가 들렸다.
“1등 먼저 발표 드리죠. 모두 예상하셨겠지만 몰 바튼 참가자 1등입니다!”
모두가 예상한 몰의 승리.
관객 투표와 문자 투표 수치를 알려주는 진행자를 뒤로 루가 부러운 눈으로 몰을 본다.
이번 오디션 미션이 루에게 너무 불리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몰이 갑자기 각성해서 잘 하게 된 거도 있지만.
나도 몰이 이 정도로 곡을 소화할 수 있을지 몰랐다.
세린에게 어떤 조언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세린과 얘기 후 갑자기 느낌이 달라졌던 거 같기도 하다.
“감사합니다. 절 위해 계속 고심하며 곡을 편곡해 주시고 세린까지 불러 조언을 해 주려고 해 주신 프로듀서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1등 해서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아직 오디션이 끝난 건 아니다.
다음 주 결승전 준비도 해야 하는데.
너무 흥이 돋은 거 같기도 하고.
몰의 우승 소감을 모두 듣고 날 인터뷰하려는 거 같았는데 진행팀이 손을 마구 돌리며 빨리 진행하라는 동작을 보인다.
시간이 별로 없나 보네? 하긴 몰의 무대 뒤에 뭔가 너무 시간을 끌긴 했다.
“자! 그럼 탈락자 발표가 있겠는데요. 에스민 프로듀서.”
“네?”
“누가 탈락할 거 같으신가요?”
나는 웃으며 루를 봤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존 프로듀서는 누가 탈락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저도 예측하기 힘들군요. 둘 다 좋은 무대를 보여 줬으니까요.”
확실히 초창기에 비하면 루도 몰도, 존 팀의 참가자도 엄청 실력이 좋아지긴 했다.
큰 무대 경험이 확실히 도움이 되는 거 같다.
“자! 그럼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조명이 바뀌고 음산한 배경 음악이 깔린다.
“결승의 문턱 바로 앞에서 아쉽게 탈락하게 된 참가자는!”
뜸을 들이며 우리를 둘러 보는 진행자.
아주 이 시간에 혼자만 제일 신나지.
“루 밀러 양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광고도 보고 온 마당이라 더 시간을 끌 수 없었는지 그래도 평소보다 빠르게 탈락자 발표가 있었다.
“루 밀러 양은 총....”
투표수 공개 뒤로 마이크를 건네는 진행자.
루와의 인터뷰는 진행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며 제대로 말을 못 하는 루.
생방송이라 시간을 계속 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인터뷰가 내게 넘어왔다.
“에스민 프로듀서님. 참가자 한 명이 탈락했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정말 잘 한 거죠. 앞으로가 기대되는 가수입니다. 계속 지켜봐 주세요.”
그렇게 루에 관해 좋은 얘기를 마치고 잠시 후 촬영이 끝이 났다.
“후우, 고생했어.”
“흐으응, 아쉬워요오.”
대기실에서 내게 칭얼대는 루.
화장이 다 번졌지만, 그 모습도 너무 귀여워 보인다.
“먼저 집에 가 있어.”
“네. 알겠어요.”
같이 가며 위로라도 해주고 싶지만, 우리는 아직 촬영이 남아 있다.
마지막 결승전 무대 순서와 대결 방식을 들어야 하니까.
루가 집으로 가고 잠시 시간이 지나 촬영이 다시 시작됐다.
무대 앞으로 나온 나와 존.
“드디어 결승전에 진출할 두 명의 프로듀서와 참가자가 가려졌습니다.”
나 혼자 결승 가는 그림도 좋았을 거 같은데 아쉽긴 하다.
뭐, 프로그램의 흥행을 보자면 이 구도가 더 재미는 있겠지만.
“먼저 결승전 대결 방식을 말씀드리죠.”
뒤에 있는 화면에 결승전 룰이 떠오른다.
“결승전은 자유곡으로 진행됩니다. 프로듀서의 신곡도 좋고 기존에 있던 곡도 좋습니다.”
결승전답게 노래에 제약은 없는 거 같다.
이러면 내가 더 유리할 거 같긴 한데.
존이 얼마나 좋은 곡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마기를 사용해 만드는 곡보다 좋은 곡이 나오긴 힘들 거다.
“두 참가자에게 주어진 공연 횟수는 총 두 번!”
한 사람당 노래 두 번 부른다는 걸 뭐 저렇게 어렵게 말하냐?
대충 처음에 두 사람이 번갈아 한 곡을 부르고.
마지막에 또 두 사람이 한 곡을 번갈아 가며 부르는 모양이다.
무대 순서는 오프닝 무대를 한 사람이 다음 순서에도 먼저 부르는 모양.
즉, 한 명이 오프닝 한 명이 엔딩 무대를 서는 느낌이다.
둘에서 네 곡밖에 부르지 않으니 시간이 엄청 남겠는데?
그 시간 동안은 뭐 축하 공연이라도 하는 건가 보네.
“자! 그럼 오늘은 빠르게 순서만 정하고 촬영을 마치기로 하죠.”
“좋습니다.”
“네. 준비됐습니다.”
진행팀이 두 개의 공을 가져온다.
빨간 공과 파란 공.
아까 썼던 거 재활용하는 거 같은데?
하긴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순서 정하는 거도 힘든 일이니까.
“안에 적힌 숫자는 일과 이. 뽑은 숫자에 맞는 순서에 참가자가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몰은 확실히 오프닝보다는 엔딩이 좋은 참가자다.
물론, 존 팀의 참가자도 오프닝보다는 엔딩에 어울리는 임팩트를 가지고 있고.
무대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두 참가자 모두 엔딩 무대를 하는 게 유리하다.
제발 2번 나와라.
존이 먼저 나가서 빨간 공을 뽑았다.
“아까 제 노래가 빨간색이었으니 믿어 보겠습니다.”
“좋네요. 저도 믿어 보죠.”
파란 공을 가져와 천천히 공을 열어 본다.
아쉽게도 내 공에는 1번이 쓰여 있었다.
“자! 이렇게 해서 순서는 에스민 프로듀서가 오프닝, 존 프로듀서가 엔딩을 맡아 주시게 됐습니다.”
뒤이어 소감을 묻는 진행자의 말에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잘 준비해서 이겨 보겠다고 말하며 촬영이 끝이 났다.
“후우, 긴장되네.”
“하으으, 제가 결승에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하긴, 나도 몰을 처음 뽑을 때 여기까지 올라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사실 몰은 소심한 참가자여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으니까.
다른 참가자를 뽑으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넘어지는 사고 때 은근히 보인 몸매가 눈길을 잡아 충동적으로 몰을 뽑았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일인 거 같다.
이렇게 이쁘고 소중한 친구를 내가 왜 못 알아봤을까.
흐음, 확실히 그때는 조금 소심한 찐따 같은 모습이라 지금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와 함께 하며 몰도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제는 누가 봐도 꽤 매력 있는 여인으로 보이니까.
“결승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가 따로 있어?”
오프닝 무대에는 내 신곡을 올릴 생각이다.
내 신곡으로 확실한 인상을 심어 두고 상대의 기를 죽인 다음 시작하는 거지.
엔딩 무대 전 노래는 신곡보다는 익숙한 노래로 분위기를 이끌어 갈 생각이고.
엔딩 전에 신곡을 보이면, 그 효과가 다음 무대에 이상하게 작용할 수도 있어 위험하니까.
존 팀의 참가자도 예사 인물이 아니라 몰이 끌어 올린 분위기를 잘 받아먹을 거 같다.
“으음, 프로듀서 노래 또 부르고 싶어요.”
“신곡?”
“아뇨. 프로듀서가 아끼는 곡이 있다면 불러 보고 싶은데. 조, 조금 주제넘었나요?”
“내가 아끼는 곡?”
흐음, 내가 따로 아끼는 곡이 있지는 않다.
모두 자식 같은 곡이긴 한데.
다른 작곡가들과는 조금 다른 환경에서 노래를 만들고 있어 곡에 관한 애착이 크지 않은 편이니까.
“프로듀서 노래 많잖아요. 그중에 좋아하시는 곡 없어요?”
“있긴 하지.”
convinced(확신). 리사의 노래다.
섹스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만들었던 첫 번째 곡.
그동안 없었던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노래.
엄청난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노래다.
몰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일주일간 연습해서 될 거 같지 않은데.
“제가 못 부를 거 같은가요?”
고민하는 내 마음을 몰이 눈치챈 거 같다.
“음, 꽤 어려운 곡이니까.”
“뭔데요? convinced인가요?”
“어?”
어떻게 알았지?
“프로듀서 노래 중에 제일 어려운 거 하면 생각나는 노래니까요.”
“그건 그렇지.”
미국에서 아직도 꽤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기도 하고.
수많은 가수에게 커버 요청이 있는 곡이기도 한데.
커버 곡은 거의 들을 수 없다.
대부분 노래를 부르는 데 실패하는 거겠지.
리사가 진짜 대단한 거긴 하다.
섹스도 천재고 노래도 천재인 리사.
“리사한테 배워보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흐음, 힘들걸.”
리사 같은 천재들은 남을 가르칠 수 없다.
같은 천재를 가르친다면 또 모르겠지만.
몰은 그 정도의 천재는 아니니까.
“그래 일단 해 보는 거지 뭐.”
안 되면 그때 가서 곡을 바꿔도 된다.
오래 연습하면 연습한 만큼 좋은 무대가 나오겠지만.
사실 오래 연습한다고 해봤자 일주일이니까.
“그럼 첫 무대를 내 신곡으로 해서 빨리 끝내 버리자.”
일주일에 두 곡을 준비하는 건 진짜 너무 힘든 일이다.
내가 힘들기보다 몰이 훨씬 힘들겠지만.
최악의 상황이 오면 두 곡이 아니라 세 곡을 준비해야 한다.
그걸 감안하겠다는 몰을 난 말릴 생각이 없다.
“열심히 해보자.”
“네! 바로 곡 만드실 거예요?”
“그래야지.”
루를 좀 달래주긴 해야겠지만, 루도 이해해 주겠지.
곡 먼저 만들고 몰에게 어느 정도 연습을 시킨 뒤 오늘은 루를 달래며 밤을 보내야겠다.
몰에게 어떤 곡을 만들어 줄까?
집에 도착해 작업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처음인 거 같다.
곡을 만들기 전에 이렇게까지 고민된 적이 있었던가?
평소 떠오르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곡을 만드는 경향이 강한 나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곡을 만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곡을 만드는 방법은 계획적으로 만들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찍는 편이니까.
그러다 보니 너무 좋은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뭔가 곡 진행이 느려진 거 같다.
마음을 좀 비워야겠네.
일단 곡을 만들어 보자. 꼭 몰에게 줄 곡이 아니어도 좋다.
만들다 보면 분명 좋은 곡이 나오겠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곡을 찍었다.
슬럼프가 온 건 아니겠지만, 슬럼프 같은 느낌을 벗어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작곡을 하는 거니까.
그러다 보니 꽤 괜찮은 곡이 몇 개 나왔다.
“흐음, 이걸 주면 되겠는데.”
잠시 쉬고 있던 몰을 작업실로 부른다.
“오래 걸리셨네요?”
“그래? 시간이 좀 늦긴 했다.”
루한테 조금 미안한걸.
“루는?”
“잠든 거 같아요.”
“미안하네.”
“지금은 저한테 집중해 주세요.”
몰이 살짝 웃으며 농담조로 얘기한다.
“그래. 우선 들어 볼까?”
몰을 내 앞으로 잡아당겨 다리 위에 앉힌다.
무게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몸.
몸무게 대부분이 가슴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몸에 비해 큰 가슴.
노래를 들려주며 몰의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른다.
크으, 이게 힐링이지.
작곡하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고민이 모두 사라지는 가슴의 감촉이다.
“하으으, 노래 좋네요.”
“좋지?”
저번에 루가 불렀던 내 곡보다 포스나 깊이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노래긴 하다.
그래도 몰의 지금 감성으로 잘만 부른다면 확실히 우승할 수 있을 만한 좋은 노래.
“자! 연습해 볼까?”
몰의 가슴을 만지다 보니 욕정이 조금 올라오지만, 이따 루와의 밤을 위해 참고 연습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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