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417화 (417/450)

417.

리사의 노래는 분명히 듣기 좋다.

누가 들어도 잘 불렀다고 할만한 노래.

근데 뭔가 어설픈 느낌이 계속해서 난다.

“으음, 이상하다.”

“뭐가?”

리사도 고개를 갸웃하며 날 본다.

“자꾸 따라가게 돼.”

“따라가?”

“으음, 내 느낌대로 부르고 싶은데 이상하게 세린의 느낌을 따라가게 되는 거 같아.”

“흐으음.”

머리가 아프네.

“엄마한테 물어봐도 돼?”

“한나한테?”

리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그래 내 얘기는 말고 물어봐 줄래?”

아직 도움을 구하기엔 조금 더 해보고 싶긴 해도 리사가 조언을 얻는 것까지 못 하게 할 생각은 없다.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리사.

“마미!”

“노래하는 데 조금 이상해서....”

방금 있었던 일을 한나에게 말하며 조언을 구하는 리사.

리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꽤 오랜 시간 한나와 통화했다.

“민.”

“응.”

복잡한 표정으로 날 보던 리사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잠시 뜸을 들인다.

“음, 연습할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한나가 뭐라고 했는데?”

“나중에. 잠깐만.”

리사가 내 말을 끊고 그대로 작업실 구석으로 갔다.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모양.

아니 얻었다기보다는 얻기 전의 상황이 된 거겠지.

그럴 땐 방해하면 안 된다.

“우린 잠깐 나가서 쉬자.”

“그래.”

세린과 밖으로 나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헬로우.”

“하이!”

밖에 있던 루와 몰이 세린을 보고 인사한다.

아! 얘네는 처음 보겠구나.

“여기 내 프로젝트S 팀원들, 여긴 한국에서 나와 함께 하는 가수 세린이야.”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두 사람을 세린에게 소개해 준 뒤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 경연곡 부른 사람인 건 알지?”

“그럼요! 노래를 너무 잘 해서 질투 나요!”

루가 귀여운 교태를 부리며 세린을 칭찬했고.

몰은 수줍게 웃으며 세린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뭔가 신기한 동물을 보는 느낌이지만, 경연에서 부를 곡의 원곡자를 만나서 신기해하는 거 같다.

“음, 두 사람한테 도움이 되려나.”

원곡을 들어보면 또 다른 느낌의 깨달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안 듣는 게 나으려나?

“들어보고 싶어요!”

“저도요.”

루가 활짝 웃으며 말했고, 몰은 아까보다 더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렇게 듣고 싶어 하면 듣게 해줘야지.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겠다.

괜히 실력이 더 줄어들 수도 있지만, 그건 감수해야 하는 거니까.

리스크 없는 도전은 없다.

“세린아 몇 번 불러줄 수 있어?”

“몇 번이나?”

“음, 세 번 정도?”

“그래.”

우선 반주 없이 한 번.

원곡 반주에 한 번.

내가 미국식으로 바꿔 만든 반주에 한 번.

총 세 번의 노래를 세린에게 시켜봤다.

무반주는 아까도 들어 봤으니 특별할 건 없었고, 반주와 함께 듣는 거도 특별할 건 없었다.

새로 편곡한 곡에 세린의 목소리가 입혀졌을 때도 딱히 이렇다 할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흐음, 어떻게 바꿔야 하려나.”

세 번이나 온 힘을 다해 노래한 세린.

세린을 잠시 쉬게 두고 두 사람에게도 노래를 시켜본다.

몰은 그럭저럭 잘 소화했지만, 여전히 부족했고.

루는 노래는 잘 했는데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라 한숨이 나왔다.

“으음, 이상하네.”

“뭐가?”

세린이 루의 노래를 듣고 고개를 갸웃한다.

“노래는 좋은데 허전해.”

“응.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 나도 고민이야.”

“차라리 곡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리면 어때?”

“어떻게?”

세린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몰과 루는 세린과 내 눈치를 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완전히 밝고 희망차게 가는 거야.”

“이 곡을?”

곡의 분위기를 바꾸는 편곡이 어려운 건 아니다.

단순히 메이져, 마이너 코드만 건드려도 분위기는 확 변하니까.

문제는 이 곡의 멜로디와 분위기가 밝게 했을 때 잘 녹아 나는지가 문제지.

일단 한 번 해볼까?

작업실로 들어왔는데 리사는 여전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노래하고 있다.

곡의 분위기도 바꿔 보고, 리사도 뭔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어떻게든 해결 방안이 나올 거 같다.

“흐음.”

최대한 원곡 느낌을 살리면서 분위기만 밝고 희망차게 바꾼다.

이 노래의 원래 분위기는 약간 유언 같은 느낌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이 주변 지인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는 느낌.

물론, 진짜 그런 감정을 담은 건 아니지만.

듣다 보면 세린이가 곧 죽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곡이다.

죽음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세린이라 더 잘 소화하는 거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안 사는데.”

그런 느낌의 곡을 밝고 희망차게 바꿔봤다.

죽을병을 극복하고 그동안 병간호해 주고 도와준 이들에게 하는 감사 인사 같은 느낌?

이 느낌도 나쁘진 않은데 뭔가 곡 자체가 조금 아쉬워진 느낌이다.

절절한 마지막 인사가, 진부한 감사 인사로 변한 느낌?

음, 그렇다고 곡 분위기를 덜 바꾸자니 바꾸나 마나 한 느낌이고.

곡 자체는 여전히 좋은 거 같지만, 내가 원하는 느낌이 나오진 않는다.

“편곡한 거야?”

“응? 응. 연습은 잘 했어?”

“살짝 감이 잡히는 거 같아.”

“다행이다. 언제 들려줄 수 있어?”

리사가 내 뒤에서 가만히 고개를 갸웃한다.

“불러 볼까?”

“바로?”

“응. 원곡 반주에 불러 볼래.”

“그래.”

리사가 녹음실로 들어갔다.

본인도 듣고 싶다고 녹음을 부탁한 리사가 부스 안에서 감정을 잡는다.

내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하는 리사.

바로 반주를 틀었다.

여러 악기 소리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리사의 목소리가 그 위로 얹어졌다.

“암 쏘리~.”

첫 소절을 듣고 무언가 바뀌었음을 느꼈다.

노래가 점점 진행되고 클라이막스에 달았을 땐 리사가 확실히 곡을 소화했음이 느껴졌다.

“예에에. 후우우~”

원곡에 없는 애드리브까지.

원곡 반주는 그대론데 리사의 보컬 덕에 느낌이 확 달라졌다.

리사의 느낌대로 소화한 고맙고 미안해.

“어땠어?”

“들어볼래?”

“응.”

리사가 부른 노래를 바로 틀어줬다.

눈을 감고 가만히 노래를 듣는 리사.

절절한 노래와 함께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 눈을 감고 기도하듯 노래를 듣는 모습.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에 푹 빠져들었다.

“좋네.”

“그러게.”

내 말에 웃으며 답하는 리사.

“어떻게 한 거야?”

“엄마가 알려준 대로 해봤어.”

“한나가 뭐라고 알려줬는데?”

“곡에 맞추지 말고 곡을 내게 맞추라고.”

어려운 얘기네.

한나나 리사니까 할 수 있는 얘기기도 하고.

“일반적으론 힘들겠네.”

“그것도 그렇네.”

곡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빠지긴 했다.

미국적인 정서가 들어간 건 아닌데.

리사의 분위기와 느낌이 곡에 많이 스며들었다.

그 분위기가 한국적인 정서를 밀어내고 새로운 분위기의 곡을 탄생시켰다.

이걸 루나 몰이할 수 있을까?

“한 번 더 불러 볼 수 있어?”

“응? 언제든 부를 수 있지.”

“그럼 잠깐만.”

몰과 루를 비롯해 세린까지 불러 모았다.

“모두 잘 들어 봐.”

“네!” “응!” “네.”

루와 세린은 기대하는 눈빛이었고. 몰은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리사가 뭔가를 해냈고 그걸 자신에게 시킬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눈빛.

루와 함께 다니면서 많이 밝아지기도 했고.

나와 함께 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몰은 여전히 몰이었다.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몇 번의 용기를 냈다고 해서 성격이 바뀌면 그걸 성격이라고 부르지 않겠지.

“암 쏘리!”

리사의 노래가 시작됐다.

한 번 부르고 들어봐서 그런지 아까보다 더 세련되게 변한 노래.

이번 노래는 확실히 리사의 스타일과 분위기가 묻어났다.

“예에에.”

곡 마무리까지 세 여인은 넋을 놓고 리사의 노래를 들었다.

“후우, 어땠어?”

“더 좋아졌어.”

“헤헤.”

밝게 웃는 리사.

나는 세린을 보며 물었다.

“뭐가 다른 거 같아?”

“음, 곡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

“그렇지? 반주는 그대론데.”

“신기하다.”

리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세린.

몰은 눈을 크게 뜬 채로 놀라 멈춰버렸고.

루는 눈을 꼭 감고 여운을 즐긴다.

“두 사람 할 수 있겠어?”

루와 몰을 보고 말한다.

“으으, 감도 안 잡히는데요?”

“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루와 고민에 빠진 몰.

나는 한나가 했다는 조언을 두 여인에게 말해줬고.

리사도 부스에서 나와 두 여인에게 조언했다.

“잠깐 쉬는 느낌으로 이거 한 번 들어봐.”

노래도 부르지 않았는데 몰과 루가 너무 지쳐 하는 거 같아서 분위기를 전환할 겸 편곡한 노래를 들려줬다.

밝아진 분위기와 조금 더 리드미컬해진 노래.

루가 박자를 타며 노래를 들었고, 몰은 고개를 갸웃한다.

“리사처럼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해보고 정 안되면 이렇게 편곡해서 부르는 방법도 있어.”

“저는 이게 더 좋은 거 같아요!”

루가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 루는 여기에 부르는 게 더 좋겠지.

“불러 볼래?”

“네네!”

루가 편곡한 곡을 한 번 더 듣고 그대로 부스로 들어갔다.

“암 쏘리~!”

느낌은 이게 더 잘 사네.

루가 부른 원곡이 50점 정도라고 하면 밝게 편곡한 노래는 70점은 되는 거 같다.

내 개인적으로 무대에 세울 수 있는 수준을 80점 정도로 보고 있으니 루는 밝은 버전의 노래가 무대에 세우기 더 좋을 거 같다.

“루는 이걸로 계속 연습할까?”

처음 부른 거 치고 70점이면 나쁘지 않은 느낌이니까.

“몰은 어떤 게 좋겠어?”

“원곡으로 해 볼래요.”

“할 수 있겠어?”

“해야죠. 곡이 아니라 절 보여줘야 하니까요.”

맞는 말이다.

아마 한나의 조언을 내게 제대로 말해주지 않은 이유는 몰이 말한 이유와 비슷할 거 같다.

곡이 너무 커다래서 자신의 존재가 묻히는 느낌.

곡의 존재감을 줄일 순 없으니 자신의 존재감을 키운다.

다시 말하면 곡과 어울리기보다는 제압하고 휘두르는 느낌이지.

나야 아무 상관 안 하지만.

그런 느낌을 싫어하는 작곡가도 분명히 있겠지.

그 때문에 한나도 리사도 내게 조심스러웠을 테고.

곡이 너무 좋아도 문제네 이거.

내겐 칭찬처럼 느껴지는데 또 내 자식 같은 곡과 작고 소중한 몰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이상하긴 했다.

“잘 해보자.”

“네!”

루와 몰을 돌아보며 말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곡의 느낌을 바꾼 만큼 루는 금방 곡에 적응해 꽤 괜찮은 실력을 뽐냈고.

존의 절절한 알엔비에 더 힘을 주기 시작했다.

몰은 존의 노래는 더 봐줄 거도 없이 잘 하고 있는데 내 곡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거 같다.

감은 잡은 거 같은데 그걸 반복해서 숙달하면서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연습에 또 연습을 반복했다.

“후우, 루는 어느 정도 완성된 거 같네.”

“헤헤. 저 잘 했어요?”

“그래.”

많이 아쉽지만, 태생이 밝은 아이인 걸 어쩌겠어.

루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몰을 불렀다.

쉬러 가는 루.

이제 루는 내가 봐줄 게 별로 없다. 혼자서 연습하면서 느낌만 잘 살리면 된다.

“좀 어때?”

“아직 어려워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하으으.”

깊게 한숨을 쉰 몰.

그런 몰을 살짝 끌어안았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고개를 끄덕이는 몰에게 노래를 시킨다.

세린이는 미국에 와서 놀러 다니기 바빴고.

민초 삼인방도 세린과 함께 좋다고 놀러 다녔다.

스케쥴 며칠 뺐다고 계속 스케쥴을 안 잡고 놀 줄이야.

그래도 셋이서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으니 그때까지는 계속 놀아도 된다.

아마 민초의 콘서트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거 같은데.

그 전에 릴리 노래도 녹음해 줘야겠구나.

릴리의 핵빵디를 주무르며 랩 시키는 거도 꽤 재밌을 거 같다.

“하읏, 흐으응.”

“아! 미안.”

잠시 딴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이 몰의 가슴으로 갔다.

“하으, 더 만져 주셔도 되는데.”

“연습해야지.”

“하으으, 너무 어려워요.”

“조금만 더 해보자.”

루는 이제 내가 크게 봐줄 게 없어서 촬영 날까지 몰과 맨투맨으로 죽어라 연습했다.

*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날이 밝았습니다.”

진행자가 나와 인사를 한 뒤 나와 존을 소개한다.

이번 촬영에 노래는 총 여섯 곡밖에 안 나오니 생방송 시간은 넉넉한 편.

덕분에 존과 따로 나가며 인터뷰도 꽤 했다.

뭐, 연습하면서 뭐가 힘들었는지, 무대는 기대할 만한지, 같은 여러 이야기.

존은 역시나 겸손하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고.

나는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원곡자인 세린에게 조언까지 구했다는 얘기를 풀어냈다.

다음화 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