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415화 (415/450)

415.

“자! 슈퍼스타를 발굴할 프로듀서를 찾는 여정. 프로젝트 S! 준준결승전의 대결 방식을 말씀드릴 시간이 왔습니다.”

진행자의 멘트에 살짝 떨려왔다.

이번엔 또 어떤 미션으로 날 괴롭게 할지 벌써 걱정이다.

뭐가 됐든 잘 헤쳐 나가겠지만, 진행팀 입장에서는 내 소속 참가자 둘이 결승을 하는 거보다.

존과 내가 결승에 오르는 게 좋은 그림일 테니.

은근히 내게 불리한 미션을 줄 수도 있다.

대충 신간을 끄는 멘트와 인터뷰가 지나고 진행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똑같은 곡을 부르는 것만큼 실력 비교에 쉬운 방법도 없겠죠?”

와! 설마? 셋이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는 거야?

“아! 지금 두 프로듀서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는 데요.”

내 참가자 둘은 여자다.

존의 참가자는 남자고.

형평성을 고려하자면 여자 곡을 편곡해 부르게 하는 게 좋겠지만.

내가 유리한 상황이니 남자 곡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근데 제작진이 곡을 골라 주면 형평성 문제로 말이 많을 거 같은데?

욕도 장난 아니게 먹을 거 같고.

“자! 다음 주 준준결승에서는 참가자 한 명당 두 곡을 하게 됩니다.”

뭐, 세 명뿐이니까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세 명의 참가자가 모두 똑같은 곡을 재해석해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곡은 뭔데?

“자!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곡을 부르게 되냐는 거겠죠?”

진행자에 멘트에 맞춰 룰렛이 들어온다.

한 번에 들어오는 두 개의 룰렛.

하나의 룰렛에는 지금까지 내가 발표한 노래가 쭉 적혀 있다.

다른 하나는 존의 곡들이겠네.

“여기 룰렛에는 각 프로듀서 한 분의 노래가 쭉 적혀 있는데요.”

흐음, 알 거 같다. 내 곡 하나 존의 곡 하나. 그렇게 두 곡을 부르는 거구나.

나야 여자 곡을 거의 만들었으니 내게 유리할 수밖에 없고. 존도 음울하고 야한 알엔비 장인답게 남자에게 준 곡이 월등히 많다.

이거 나름 밸런스가 맞아 보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조금 불리한 룰렛이다.

존의 노래는 대부분 미국에서 히트한 노래지만.

내 곡 중의 몇몇 곡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나온 노래.

당장 몇몇 곡이 뽑히면 가사부터 새로 써야 한다.

게다가 존의 노래는 대부분 솔로 가수가 부른 노래지만, 내 곡 중 몇몇은 그룹이 부른 곡들도 있다.

그룹의 노래를 혼자 부르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즉, 존의 노래가 내 노래보다 부르기 쉬울 수밖에 없고.

존의 노래는 남자에게 유리하다.

내 노래는 여자에게 유리하고.

남자에게 유리한 노래는 쉽고 여자에게 유리한 노래는 어렵다.

많이는 아니지만, 내가 조금 불리하고 존이 조금 유리한 정도.

내 참가자가 둘이니 이게 밸런스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자! 그럼 두 프로듀서님은 이쪽으로 와 주시죠.”

내가 존 노래 룰렛을, 존이 내 노래 룰렛을 돌린다.

제발 야한 알엔비가 나와야 할 텐데.

절절한 슬픔이 묻어 나는 음울한 곡이 반. 끈적끈적 야한 알엔비가 반인 거 같은 룰렛.

존의 참가자는 당연히 알엔비를 잘 하니 음울한 알엔비가 나오면 우리가 너무 힘들어진다.

힘껏 룰렛을 돌렸다.

“아아.”

안타깝게도 내가 꺼렸던 음울한 알엔비가 나와 버렸다.

그래. 한 곡은 주고 가도 된다.

어차피 내 노래에서 만회하면 되니까.

“그럼 존 프로듀서도 바로 룰렛을 돌려주세요!”

“네!”

-드르르르르륵!

힘껏 룰렛을 돌린 존.

룰렛이 한 곡 앞에서 멈춘다.

곡 제목은 ‘Thank you and sorry’.

아! 이 곡이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는데.

한국 제목은 고맙고 미안해.

슬픔과 기쁨,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절절한 발라드곡.

세린의 한 넘치는 목소리로 불러 졌던 노래.

세린 보컬도 사기였고, 곡도 깨달음을 얻어 만든 만큼 사기적이었다.

그렇기에 세계적으로 히트한 곡이긴 한데.

이 노랠 무슨 생각으로 룰렛에 넣어둔 거지?

이건 세린이 아니면 표현하기가 진짜 힘든 노랜데.

한국 가수들 사이에서 고맙고 미안해 커버 챌린지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꽤 어렵고 힘든 곡이라 최상위 보컬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가수가 불렀고.

세간의 평은 세린이 보다 잘 부른 사람은 없지만, 몇몇 레전드는 확실한 인상을 주는 노래를 했다.

몇몇 신인이 이 챌린지로 노래 실력을 인정받고 확 뜨기도 했었지.

문제는 괜히 불렀다가 실력 논란이 나와 침몰한 가수도 한둘이 아니라는 점.

과연 몰과 루가 이 곡을 소화할 수 있을까?

저쪽도 문제네.

남자 참가자가 이걸 부른다고? 중성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곡이긴 한데.

원곡의 절절한 여성 보이스가 너무 잘 녹아들어 있기에 어지간히 잘 부르지 않는 이상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 어색함을 지우는 게 존의 역할이긴 하지.

몰과 루도 마찬가지로 어지간히 잘 부르지 않는 이상 원곡만 생각 날 수밖에 없긴 하지만.

“후우우.”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튀어 나갔다.

“에스민 프로듀서.”

“네?”

“곡이 정해지고 표정이 많이 안 좋아지셨는데요.”

“두 곡 다 너무 어려운 곡이네요.”

존도 동감을 표하는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존 프로듀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에스민의 저 곡은 특별하다. 그걸 어떻게 편곡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이미 나와 존에게 존의 곡은 안중에서 사라졌다.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곡이니까.

근데 고맙고 미안해는 정말 어떻게 해도 안 될 확률이 높은 곡인데.

이거 제작진이 주작한 거 아니냐?

어떻게 저 곡이 여기서 딱 나와! 정식으로 미국에 발매하긴 했지만, 가사도 한글이고 미국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 곡인데.

“혹시 가사를 영어로 새로 써도 됩니까?”

존이 진행팀을 보며 묻는다.

일주일 만에 저런 노래를 한국어로 부르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가사 숙지랑 발음 연습만 해도 일주일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까.

“음, 사실 저 곡을 미국에 출시하기 위해서 영어로 가사를 만들었던 적이 있어요.”

미리 나서서 말을 꺼냈다.

영어로 바꿨지만, 세린이가 영어로 노래하니까 맛이 살지 않더라고.

그래서 그냥 한글로 출시하고 묵혀뒀던 가사가 있긴 하다.

각자 가사를 새로 만드느니 그 가사를 쓰는 게 더 공정하겠지.

“그 가사로 셋 모두 부르면 될 거 같은데요?”

내가 진행팀을 보며 말하자 진행팀이 얼굴이 밝아져 고개를 끄덕인다.

진행팀도 그냥 유명한 곡이니까 넣은 거 같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진행팀이 내 곡을 보고 표정이 다 썩었었구나.

아마 어그로 성으로 보여주기식으로 넣은 곡일 텐데 그게 걸릴 줄 몰랐겠지.

엄청 낮은 확률이니까.

진행팀은 누구도 우리가 무대를 망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좋은 무대가 흥행에 직결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니까.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촬영 마무리하시죠.”

“네.” “후우, 알겠습니다.”

진행자가 상황을 정리하고 노래를 다 정했다.

부르는 순서는 경연 당일 뽑기로 진행한다고 한다.

“음, 오늘부터 빡시게 연습하자.”

“네에.”

“으으.”

하루도 쉴 시간이 없다.

일주일간은 섹스도 좀 참아야겠다.

고맙고 미안해를 일주일간 어떻게든 듣기 좋게 만들어서 선보일 수밖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회사에 연락해 바로 가사를 받았고, 존에게 보냈다.

우선 좀 더 쉬운 존의 곡을 편곡하자.

두 사람이 그 곡을 연습할 동안 고맙고 미안해의 방향성을 잡고 편곡해야겠다.

“두 사람은 존 노래 먼저 가사 숙지하고 있어 봐. 금방 편곡하고 부를게.”

“프로듀서. 오늘은 좀 쉬어둬.”

“아니. 시간이 없어.”

루가 살짝 칭얼댔지만, 딱 잘라 무시했다.

고맙고 미안해가 듣기엔 쉬워 보이는 곡이긴 하다.

세린이 너무 잘 부른 거도 있고, 생각보다 곡이 단순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별로 걱정이 없어 보이는 루.

막상 한 번만 불러 보면 그 생각이 모두 바뀌겠지만.

단순한 곡 안에 엄청난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아 불러야 한다.

노래만 잘 해서는 불가능한 경지.

그걸 두 사람이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욕은 안 먹을 정도까진 실력을 올려 둬야지.

집에 도착해 급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존의 음울한 알엔비 곡을 몰과 루에 맞춰 편곡한다.

“으음, 이거도 시간 많이 잡아먹겠는데.”

몰은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루가 문제다.

루는 무조건 결승 갈 거로 생각했는데.

문제가 생겨 버렸다.

루는 태생적으로 활발하고 밝고 사랑스러우면서 교태로운 사람이다.

걱정거리 하나 없는 세상에서 자란 머릿속에 꽃밭이 있는 거 같은 발랄한 여성.

그런 여성이 금방이라도 자살할 사람이 부르는 거 같은 절망이 가득한 절절한 알엔비를 소화할 수 있을까?

고맙고 미안해도 미안한 마음 가득 담고 거의 유언처럼 남기는 절절한 발라드.

이거 두 곡 다 루가 부르기에 너무 어려울 거 같은데.

원곡의 분위기를 아예 바꿀 정도로 건드리자니 이도 저도 아닌 곡으로 바뀌어 버리고.

조금 틀어서 편곡한다고 해도 차라리 원곡을 부르는 게 나을 거 같은 감정선의 노래가 돼버린다.

“외통수네.”

방법이 없다. 루를 갈아 넣던지 해서 어떻게든 만들어 볼 수밖에.

일단 루 버전과 몰 버전의 편곡을 모두 마쳤다.

두 사람을 불러 편곡된 버전 연습을 시켰다.

처음에 방향성을 잡는 건 중요해서 한 사람 당 한 시간씩 봐주고 다시 편곡에 들어간다.

나머지는 줄리랑 리사에게 두 사람의 보컬 레슨을 부탁했다.

적당히 자고 내일 하루 정도는 존의 곡을 연습할 예정.

남은 모든 시간은 고맙고 미안해에 쏟아붓는다. 그게 그나마 존을 이길 수 있을 거 같다.

존의 곡은 촬영 전날 다시 한 번만 체크하면 되겠지?

“후우, 일단 나도 좀 자야지.”

욕실로 가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하긴 하지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걱정이 많아서 그렇겠지?

나는 내일 온종일 혼자서 곡을 편곡할 생각이다.

고맙고 미안해를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아직은 감도 잡히지 않지만.

원곡 그대로를 부르게 하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한국의 정서를 빼고 미국적인 느낌을 넣어야 한다.

그러면서 곡의 분위기는 해치지 않아야 하고.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해 보자.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밝았다.

오랜만에 혼자 편히 자서 그런지 기분은 상쾌하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다.

“흐음.”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화면을 본다.

“이걸 내가 썼다는 게 신기할 정도의 곡인데 어떻게 바꿔?”

나는 토종 한국인이다.

미국의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미국 정서를 잘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코안의 도움이라도 좀 받아 볼까?

한나의 도움을 받는 거도 좋을 거 같고.

아니. 벌써 외부의 도움을 바라기는 이르다.

음, 세린이가 부르는 걸 다시 보고 싶은데.

유티비를 틀어 세린의 노래를 듣는다.

“부족해.”

세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응. 뭐 하고 있어?”

-후으, 운동이요. 후으.

세린의 거친 숨에 어제 풀지 못해서 쌓인 욕구가 살짝 오르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안 바쁘지? 활동 안 하고 있으니까.”

-그렇죠?

“그럼 최대한 빨리 미국으로 와.”

-네?

세린을 미국으로 소환했다.

아버지의 힘을 써서 비자와 모든 준비를 하루 만에 마쳤고 세린이 비행기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후우, 너무 걱정만 해서는 될 일도 안 되니까.”

존의 곡을 연습시키며 세린이 올 때까지 조금 리프레쉬 해야겠다.

몰과 루가 연습하는 연습실로 갔다.

“허니!”

“민!”

먼저 반겨주는 두 여인.

카디는 래퍼라 도움이 많이 되지 않아 쉬는 거 같다.

“노래는 어때?”

“음, 몰은 그럭저럭 잘 하고 있는데 루는 조금 힘드네.”

“아무래도 그렇지?”

처음 봐줄 때도 느꼈지만, 루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곡이다.

시간도 많지 않으니 완벽하게 준비할 순 없겠지만.

오늘 중으로 합격선으로 끌어 올려 두긴 해야겠다.

“몰 먼저 볼까?”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두 여인을 불러 노래를 시킨다.

바로 노래하는 몰.

그래 이 정도면 몰은 합격이네.

살짝 아쉬운 부분 몇 가지만 피드백하고 루를 본다.

“불러 볼까?”

“네에!”

힘차게 답한 루가 감정을 끌어 올려 노랠 한다.

으음, 역시나 곡 이해도가 전혀 없구나.

나쁘지 않은 노래였지만, 한숨만 나오는 상태다.

“으음, 이걸 어쩌나.”

“별로예요?”

“별로는 아닌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토마토소스랑 치즈 없는 피자 같다고 할까?

도우와 토핑은 너무 좋은데 중요한 게 다 빠져서 피자라고 할 수 없는 그런 빵을 보는 기분이다.

“으음, 어렵네요.”

“오늘 중으로 어떻게든 해보자.”

“네!”

나와 루가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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