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414화 (414/450)

414.

“자! 다음으로는 관객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들고 계신 리모컨의 1번은 루 밀러, 2번은 몰 바튼 입니다. 누구의 무대가 좋았는지 지금 눌러 주세요!”

관객 투표도 금방 마감됐다.

후우, 이제 문자 투표 집게가 끝나면 바로 결과가 나온다.

“자! 문자 투표를 집계하는 동안 두 참가자 무대 위로 모셔서 인터뷰....”

무대로 나온 몰과 루가 서로를 보며 눈을 빛낸다.

사이가 좋은 건 맞지만, 지금은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작용하겠지.

“자! 우선 먼저 무대를 끝낸 루 밀러 양. 소감이 어떤지 말씀해 주시죠.”

“준비한 걸 원 없이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나쁘지 않은 인터뷰.

“그럼 몰 바튼 참가자? 소감 한마디 해 주시죠.”

“전 준비한 거보다 더 잘 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몰이 평소와 다른 소심하지 않은 소감을 말한다.

정말 이기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고?

사실, 나만 해도 연습 때까지 몰이 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걸 사실대로 들었던 몰이고, 뭔가 보여주고 싶었겠지.

그래서 내가 알려준 것 말고도 많은 준비를 한 거겠지.

의상도 그렇고 예상치 못한 모습이 많이 나오긴 했다.

확실히 이번 무대만큼은 몰이 루를 뛰어넘은 거 같다.

이거 내가 조금 바라던 상황인 거 같은데?

2차전에 유리한 건 확실히 루니까.

패자전 무대 연습은 내가 끝까지 다 봤다.

루의 패자전 준비는 99점이고 몰의 준비는 98점이다.

미묘하게 루가 더 잘 하는 무대. 이거 다음 라운드까지 둘 다 올라가겠는데?

“자! 지금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진행팀에 다가가 쪽지를 하나 가져오는 진행자.

“1차전 매치. 루 밀러 대 몰 바튼, 몰 바튼 대 루 밀러. 결과를 지금 발표합니다!”

항상 잘 하는 얄미운 쪼기.

뜸을 들일만큼 들인 진행자가 결과를 발표한다.

“우승자느은!!”

“몰 바튼! 축하합니다.”

“꺄악!”

몰이 너무 기뻤는지 소리를 질렀고 루는 다음 무대를 준비해야 하기에 대기실로 퇴장했다.

“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시게 됐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너무 행복해요! 사실, 모두 제가 질 거라고 했었는데. 후우. 잠시만요.”

눈물이 살짝 고인 몰.

“네! 눈물을 흘리는 몰 바튼 참가자입니다. 모두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와아아아!

함성과 박수가 지나고 몰이 인사를 한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아쉽게도 생방송이라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네요.”

몰이 너무 시간을 끌긴 했다.

“몰 바튼 참가자는 프로듀서 옆자리로 이동해 주세요. 바로 다음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몰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눈물에 화장이 살짝 번졌지만, 내 눈에는 너무 이뻐 보였다.

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마디 했다.

“잘 해줬어.”

“헤헤.”

그제야 웃으며 내 옆에 앉는 몰.

몰의 어깨를 토닥이고 다음 무대를 즐긴다.

패자전은 어차피 루가 이길 테지만.

그래도 상대가 누군지는 중요 하니까.

개인적으로 신디가 이겨서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이 큰데.

툭 까놓고 말하자면 존이 신디를 이길 확률이 꽤 높다.

신디의 참가자는 몽롱한 노래를 잘 하는데, 사실 무대 파급력이 높은 보컬은 아니니까.

존의 참가자가 무난한 노래를 잘 하면, 신디의 참가자가 엄청 잘 하지 않는 이상 이기기 힘들다.

사람들은 익숙한 걸 더 좋은 거라고 여기니까.

3번인 신디네 참가자 무대.

곡은 무난한 발라드.

1절은 큰 특징 없이 끝났고 2절은 갑자기 여러 오묘한 악기 소리가 추가됐다.

보컬도 바뀐다.

본인이 잘 하는 몽롱한 느낌의 부드러운 보컬.

내가 듣기엔 그냥 느끼하지만, 저런 걸 여자들이 좋아하니까.

나쁘지 않은 무대였다.

딱히 실수도 없었고, 실력도 나쁘지 않은 참가자니까.

근데 이 정도로 존을 이기기는 힘들 거 같다.

바로 진행된 네 번째 무대.

존의 참가자는 알엔비곡을 골랐다.

1절부터 본인이 잘 하는 장기를 보여주는 참가자.

1절은 좀 아련한 알엔비 무대였다면, 2절은 조금 더 음습하고 절망적인 무대로 변했다.

재해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쉽지만, 원곡보다 더 절절해진 감성이 가슴을 울리긴 한다.

흠, 이건 신디가 못 이기겠는데?

문자 투표가 마감됐고, 관객 투표도 끝났다.

잠시 인터뷰시간이 지나고 발표된 결과.

예상대로 흘러갔다.

패자전은 루와 신디네 참가자가 붙게 됐다.

“후우.”

날 한번 흘끔 보고는 한숨을 푹 쉬는 신디.

아마 자신이 탈락할 걸 예상한 거겠지?

나는 그런 신디를 보며 살짝 웃었다.

신디도 날 보며 처연하게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프로듀서가 저렇게 자신감이 없어서야 참가자가 어떻게 믿고 무대에 서겠어.

“자! 그럼 패자전 무대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가 나와 신디를 무대로 불렀다.

“두 프로듀서님 참가자가 탈락 위기에 놓였는데요. 신디 프로듀서님은 참가자가 탈락하면 프로그램에 완전히 탈락하게....”

형식적인 인터뷰.

“열심히 준비한 만큼 쉽게 떨어지진 않을 겁니다!”

무대에서는 또 다부지게 말하는 신디.

“저도 준비는 완벽합니다. 좋은 무대가 될 거 같네요.”

여유롭게 신디의 말을 받아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나와 신디가 무대에서 할 일은 순서 정하기.

순서는 동전 던지기로 정한다고 한다.

“신디 프로듀서님이 참가자가 한 명뿐이니 앞, 뒷면을 정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

“으으, 저는 앞을 고르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바로 던져보죠!”

-티잉!

동전을 튕기는 진행자.

높게 뛰어오른 동전이 진행자의 손 위로 떨어졌다.

“네! 동전은 앞면이 나왔습니다!”

신디의 표정이 갑자기 확 밝아졌다.

뭔가 준비한 게 있어서 그런가?

루가 잘 해주겠지? 먼저 무대에 서서 기를 확 죽여 놔라 루!

“신디 프로듀서. 순서를 결정해 주세요.”

“저희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네! 그럼 바로 루 밀러 참가자의 무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신디는 자리로 돌아왔고 잠시 준비 시간이 지나 루가 무대에 올랐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루.

하긴, 내 곡을 들어봤으면 신디도 저런 표정 못 지었겠지?

그만큼 신경을 쏟아부은 곡이니까.

저번에 루가 일부러 져서 이 곡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던 만큼.

몰에게 패배해 패자전에 나온 상황이었지만.

루의 표정은 꽤 좋았다.

확실히 누구나 탐낼만한 곡이니까.

전주가 흐른다.

전주부터 마기를 덕지덕지 쏟아 넣은 효과가 있는지 사람들 시선이 루에게 확 쏠렸다.

이미 네 번의 무대 뒤에 살짝 지친 관객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집중도로 루를 본다.

이거면 됐다. 루가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이건 역대급 무대가 될 거다.

“우우우~!”

간드러진 애드리브로 시작된 무대.

경연에 맞게 경쾌하고 발랄한 노래지만, 루의 섹시한 모습이 언뜻언뜻 비춘다.

남자들은 침을 질질 흘릴 수밖에 없는 엄청 매력적인 곡이고.

여자들도 루를 동경하게 될 만큼 예쁜 무대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루의 무대를 보는 신디.

잠시 후의 신디 표정이 너무 궁금하다.

신디 팀 참가자는 어떤 얼굴로 무대에 올라올까?

“예에에~!”

-두둥!

루의 무대가 끝이 났다.

아이돌 엔딘 요정 느낌의 포즈로 마무리한 루.

신디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다.

신디의 고개가 천천히 돌았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웃는 나.

신디는 고개를 젓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루의 무대가 끝나고 바로 등장하는 신디네 참가자.

이름이 뭐였더라. 알았었는데 그새 까먹었네.

남자는 관심 없다.

음, 이겼네.

참가자의 표정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같은 표정으론 방금의 무대를 뛰어넘는 무대를 보일 순 없을 테니까.

그래도 마지막 무대를 잘 마쳐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은 잘 찍어야지.

상대가 안 좋았지만, 그런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줘야 한다.

그와 표정이 마주쳤을 때 그런 마음을 담아 살짝 응원의 미소를 보였다.

전주가 끝나고 시작된 무대.

신디가 뭘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는 무대가 끝났다.

이거 화도 안 날 정도로 최악이네.

긴장했는지 도입부 박자부터 실수한 참가자.

박자가 밀렸으면 빨리 따라가야 하는데 계속해서 엉망으로 박자를 놓쳤다.

박자를 놓치자 불안했는지 음도 떠버려 음 이탈도 여러 번 났다.

자신도 노래를 완전히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점점 노래가 소심해졌고.

일반인보다도 못한 노래가 나왔다.

결국,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노래를 멈추는 참가자.

이 사람이 계속 방송 활동을 하게 된다면 이 장면은 두고두고 흑역사가 될 거 같은데?

아니, 지금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무대 공포증이 생겨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 하게 될 수도 있겠다.

이거 조금 미안하네.

내가 너무 힘을 줬나?

살짝 눈시울을 붉히고 안간힘을 다해 울음을 참는 참가자.

노래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이크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신디를 본다.

신디의 얼굴은 체념과 분노가 적절히 섞여 보기 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긴, 신디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을 텐데 저렇게 망쳐 버리면 화가 날만도 하다.

조용히 흐르던 음악이 멈춘다.

고개를 푹 숙인 참가자.

진행자가 앞으로 나온다.

“음, 이걸 어떻게 진행할지 감이 잡히지 않네요. 저도 진행 짬밥이 적은 건 아닌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유쾌하게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 보지만, 신디와 참가자의 표정은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짬밥이 거짓은 아니라 진행자는 당황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문자 투표 마감과 현장 투표를 진행했다.

으레 탈락자가 나오는 라운드는 엄청 얄밉게 뜸 들이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기본인데.

이건 이미 결과가 다 보이기 때문에 진행자도 별로 뜸을 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빨리 발표하고 인터뷰시간을 길게 가질 거 같네.

여기서 들여야 할 시간이 꽤 많았을 테니까.

생방송 나름의 묘미가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은 명백히 사고다.

“자! 패자전에 우승한 사람은! 루 밀러 양입니다!”

-와아아아!

별다른 멘트로 뜸도 들이지 않고 발표된 루의 승리.

루도 덤덤한 얼굴로 살짝 웃으며 인사했다.

“자! 그러면 승자의 소감을 들어 봐야겠죠?”

평소라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참가자의 소감은 정말 짧게 듣고 마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루도 많은 말을 해야만 할 거 같다.

여기서 말 잘 못 하면 이미지 조질 수도 있으니 루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이어갔고.

다음 화살은 내게 돌아왔다.

“에스민 프로듀서! 다음 주 준준결승에 두 명의 참가자와 함께 올라가게 됐는데 심정이 어떠신가요?”

여기서 너무 기뻐하기에도 신디에게 좀 미안하니 적당히 겸손하게 답해야겠다.

미국은 겸손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눈치 없는 거도 욕먹는 일이니까.

“열심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따라와서 기쁩니다. 물론, 다른 프로듀서님들도 열심히 하셨겠지만, 제가 운이 조금 좋았네요. 하하.”

어색하게 소감을 말했다.

질문 몇 개가 더 지나가고 진행자는 존까지 인터뷰했다.

나와 다음 라운드에서 일길 수 있을 거 같은지 따위의 질문으로 시간을 끈 진행자.

존도 분위기에 맞게 겸손한 답을 하고 마지막으로 타겟이 돌아갔다.

신디는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로 진행자의 질문을 받는다.

“결승전까지 단 두 걸음을 남겨 두고 탈락하시게 됐는데....”

참가자의 엉망인 무대가 분위기를 완전히 조져놨다.

생방송이라 어쩔 수 없는 진지하고 노잼인 인터뷰가 이어졌고.

마지막 참가자는 인터뷰도 제대로 못 하고 결국 촬영이 끝이 났다.

“네!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도 생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진행자의 멘트가 끝난 뒤 나는 신디에게 다가갔다.

“수고 많았어.”

“그래.”

신디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여기선 빨리 빠지는 게 좋겠지?

밝은 표정의 루와 몰을 데리고 대기실로 이동했다.

“둘 다 잘 해줬어.”

두 사람을 대기실에서 적당히 칭찬하고 밖으로 나와 떠나는 신디를 배웅한다.

“뒤풀이 파티 때나 보겠네?”

“그렇지. 날 떨어트렸으니까 우승해야 한다?”

“무슨 그런 당연한 얘길 해.”

“푸흣. 그래 난 간다. 후우우.”

신디네 참가자는 어떻게 됐나? 신디보다 먼저 도망이라도 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나도 준비하러 가볼게.”

“응. 방송으로 지켜볼게.”

“그래.”

신디가 떠나고 대기실에 있던 두 여인이 나왔다.

다시 시작된 촬영.

바로 다음 주 경연 방식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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