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407화 (407/450)

407.

인천 국제공항.

한국에서의 짧았던 휴식이 끝나고 이제 미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음, 뭔가 돌아간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지 미국은 잠시 나가는 느낌이니까.

“준비 다 했지?”

“준비할 게 뭐 있나. 그냥 몸만 가도 되는데.”

“하긴.”

공항에는 아인과 단둘이 있다.

입국 수속은 딱히 복잡할 게 없다.

어차피 전용기를 타고 다니니까.

비행시간이 꽤 길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푹 잘 생각이다.

아무래도 집에서 기를 너무 빨렸으니까.

우아의 레슨을 끝내고 돌아간 집에서 초유 누님을 시작으로 끝나지 않는 난교가 계속됐다.

밥도 물도 모두 내 의지로 먹을 수 없는 상태로 주는 것만 받아먹으며 기계처럼 섹스했다.

여인들은 알아서 순번을 정해 만족할만한 섹스를 한 거 같은데.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이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몸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으흐으.”

소름이 돋아 팔을 쓰다듬는다.

“추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기내가 살짝 춥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아인이 알겠다는 듯 씽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런 표정 조금 얄밉네?

미국에 가서 시간이 나면 다음엔 아인이를 앙앙대고 울 때까지 괴롭혀야지.

“너, 지금 나쁜 생각 하지?”

“나쁜 생각? 야한 생각이 나쁜 건가?”

“으으. 진짜아.”

내 뻔뻔한 답에 아인이 얼굴을 붉혔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인의 몸을 적당히 주무르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미국에 도착해 처음 만난 건 루와 몰.

앞으로 프로젝트 S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두 사람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직 시간은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까.

이젠 모든 방송이 생방이기 때문에 더 확실히 준비하긴 해야 한다.

그 전에 미션을 받는 방송 날이 다가왔다. 운이 나쁘다면 오늘 한 명이 탈락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한 명의 참가자가 남아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듀서가 둘 있다.

그 때문일까?

도착한 촬영장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긴장이 덜 한 참가자는 나와 존뿐.

참가자가 한 명 남아 탈락 위기에 놓은 두 사람은 입이 바짝 마르는지 말없이 물만 들이켜고 있다.

신디에게 다가가 조금 긴장을 풀어줘야겠네.

“신디. 잘 지냈어?”

“아니. 어떻게 잘 지내. 넌 마음 편하게 한국 다녀온 거 같더라?”

성격 좋은 신디에게서 살짝 날 선 반응이 나온다.

“너무 까칠하잖아. 걱정 마. 우리가 이겼을 거야.”

“그럴까? 하으, 난 진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신디가 스마트폰을 꺼내 여러 자료를 내게 보여준다.

와! 난 맘 편히 한국에서 놀다 왔는데 얘는 이런 거 하고 있었어?

거기에는 여러 커뮤니티 자료를 모아둔 정보 글이 하나 있었다.

객관적으로 무대를 평가하고 여론을 조합해 패배 팀을 가리는 글.

“대부분 글이 비슷해.”

“그래?”

결과는 49대 51로 우리의 패배가 대부분의 예상이다.

확실히 우리가 패배할만한 무대긴 했다.

단지 상대 팀에서 실수가 딱 한 번 나왔기에 기대를 걸어볼 뿐.

한국보다 실수에 관대한 미국이라 실수 후에 잘 대처한 벨&존의 팀이 유리할 수 있다.

퀄리티나 실력에서 밀린 건 아니지만.

순서가 앞이었다는 이유로 뭔가 기억에 덜 남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잠시 대기 시간이 지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자! 생방송 전 마지막 촬영이 돌아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진행자가 나와 우리를 둘러 보며 열심히 입을 턴다.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지금 2주 만에 만났거든요....”

가볍게 근황 토크로 시작된 촬영.

“S민 프로듀서께선 한국에 다녀오셨다고요?”

“네. 고향에 돌아가 잠깐 힐링하는....”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살짝 각색한 내용을 말하고 내 팬들에게 힌트도 조금 흘린다.

“새로운 걸그룹을 준비할 예정이라 연습생도 뽑고 레슨도 하고....”

“새로운 걸그룹이요?”

“아! 이거 비밀인데.”

이미 회사와 다 얘기가 끝난 말이지만, 나는 당황한 척 피디님을 봤다.

“편집 안 해주실 거죠?”

“하하하. 방송국 놈들이 이 좋은 기회를 넘길 리가 없죠.”

“으음. 그럼 전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아! 아쉽네요. 어쨌든 S민의 뉴 걸그룹 엄청 기대됩니다.”

진행자도 기대감을 올려주고 감사한 일이네.

사실 당장 데뷔는 아직 먼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계속해서 곳곳에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게 좋다.

자연스럽게 기대하는 팬들이 늘어날 테고.

그 팬들로 인해서 또 자연스럽게 마케팅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인터뷰가 잘 끝나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공연 영상이 짤막하게 나오고 여러 가지 자료가 나온다.

“자! 아주 박빙의 대결이 펼쳐졌었는데요!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시간은 진짜 잘 끄는 거 같단 말이지.

진행자가 이번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인터뷰를 했다.

존은 항상 그렇듯 겸손하게 둘 다 좋은 무대였다고 말했고.

신디는 살짝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저는 저희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와우! 대단한 자신감인데요?”

벨의 인터뷰.

확신이 담긴 말이지만, 아까 긴장해서 물 찾는 거 다 본 입장이라 벨도 지금 엄청 떨고 있다는 걸 안다.

“마지막으로 S민 프로듀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도 여기서는 한 발 빠지는 게 좋겠지.

이긴다고 확신했다가 지면 조금 민망하니까.

“음, 저도 신디와 비슷하게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참가자의 실수도 있었고 질 거 같지 않은데 결과는 또 모르죠.”

일부러 참가자의 실수를 집는다.

만약 우리 팀이 여기서 패배한다면 저 실수에 관한 얘기는 다음 미션에서 분명히 내게 약간은 득을 줄 테니까.

“자! 그럼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진행자가 옆에 떠 있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보며 외쳤다.

여러 지표의 결과가 차례로 나온다.

현장 점수와 ARS점수. 인터넷 점수가 차례로 떠올랐다.

너무 큰 수치라 당장 계산은 안 되는데 너무 박빙이라 차이를 모르겠다.

일단 현장 점수는 우리가 졌다.

아무래도 나가면서 투표하는 시스템이었기에 나중 무대가 기억에 더 남았을 테니까.

다음으로 문자 투표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거 같다.

확실히 문자는 방송 중간에 계속 보낸 거니까 무대를 보면서 했으니 순서에 상관이 없을 테고 무대의 완성도는 비슷하니까 비슷하게 표가 나온 거 같다.

그래도 상대 팀이 실수해서 그런지 문자 투표는 약간 앞선 거 같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투표.

수치를 표시하는 막대와 숫자가 마구 돌아가며 한 자리씩 결과를 보여준다.

으음, 거의 박빙이네.

문자, 현장 투표와는 다른 인터넷 투표.

인터넷 투표는 방송을 본 사람도 하겠지만, 보지 않은 사람도 할 수 있다.

편집된 무대 영상을 보고 투표할 수 있기도 하니까.

딱 두 무대만 놓고 보면 실수가 없었던 우리가 더 유리한 거 같긴 한데.

또 실수를 관대하게 생각하는 미국 분위기가 있어서 모르겠다.

“자!”

화면이 멈추고 바로 진행자가 앞으로 나오며 화면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

“지금 결과가 나왔는데요.”

어우, 저 사람 진짜 얄미운 건 잘 한다니까.

중요한 부분만 딱 가리고 뜸을 들이는 진행자.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진행팀에서 큐 사인이 떨어졌는지 발표가 시작됐다.

“현장 점수는 벨&존 팀이 근소하게 앞섰고, 전화 점수는 더블S팀이 조금 앞섰습니다.”

우리 팀은 신디와 S민이라 더블 에스 팀이 됐다.

“마지막 인터넷 점수는!”

우리는 숨을 죽이고 진행자의 말을 기다렸다.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아으!”

벨의 신경질적인 소리.

벨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 만큼 의견이 일치했던 적은 없을 거 같다.

“자! 광고 보고 오셨습니다. 광고 때문에 살짝 불편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또 광고주님들이 계셔서 우리가....”

광고주 똥꼬 빨아주는 시간이 또 지나고 다시 발표가 시작됐다.

“인터넷 점수는 세 가지 투표 방법 중에서 가장 격차가 적었는데요. 아주아주 약간의 차이로 벨&존 팀이 이겼습니다.”

“아아.”

신디가 탄성 하며 살짝 다리가 굽었다.

나는 빠르게 신디에게 이동해 신디를 부축했다.

“아직 결과 안 나왔어.”

“으으. 그만해. 졌어.”

“아직 모른다니까.”

“흐으.”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거 같은 신디.

“투표 결과는 모두 나왔지만, 아직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인터넷 점수가 배점이 가장 낮고 차이가 작기 때문이죠!”

신디는 진행자의 말에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이번 결과는 인터넷 점수 20점. 문자 점수 40점, 현장 점수 40점으로 들어갔는데요.”

현장 점수에서 졌지만, 문자 점수에서 많이 이겼으면 또 모른다.

사실 희망이 거의 없긴 한데 그래도 끝날 때까지 모르는 거니까.

“승리 팀은!”

어우, 왜 이렇게 쪼는 거야.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여기까지 오니까 나도 긴장감에 입이 바짝 말랐다.

탈락은 아니지만, 몰을 떠나 보내야 하니까.

뭐, 방송 밖에서는 계속 만나겠지만, 그래도 마음 준 여자가 탈락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니까.

크으, 몰의 가슴이 또 일품인데 아프면 안 되지.

“승리 팀은! 더블S 팀입니다! 근소한 차이었는데요!”

“어?”

“오?”

나와 신디는 둘 다 놀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행자 옆 화면에 나오는 총점.

현장 점수는 우리가 2점 밀렸고 인터넷 점수는 1점 밀렸다.

근데 문자 투표에서 5점 차이로 이겼다.

제일 투표수가 많았던 건 인터넷이지만, 배점이 작아서 영향이 적었고.

배점이 큰 현장 투표는 투표자가 많지도 않았고 격차도 많지 않았다.

때문인지 두 번째로 투표자가 많고 배점도 큰 문자 투표가 결과를 갈랐다.

“모두 예상 밖의 결과에 다채로운 표정인데요. 우선 탈락 위기에서 벗어난 신디 프로듀서님의 이야기 먼저 들어보죠.”

“으어!”

신디는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놀랐다.

“하하하.”

웃음소리가 퍼지고 잠시 시간이 지나 신디가 정신을 차렸다.

“오마이! 지져스! 하느님이 축복을 내려주신....”

어디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거 같은 소감이 지나가고 다음으로 나와 존까지 인터뷰가 끝났다.

나는 바라던 결과가 나와 기쁘다고 했고, 존은 아직 기회가 남은 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마지막 탈락이 확정된 벨.

벨의 표정은 생각보다 좋아 보였다.

“흐음, 여러모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네요.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친구도 사귈 수 있었고....”

대충 잘 놀다 갑니다 비슷한 소감이었다.

뭐야? 저 아저씨 왜 이렇게 쿨해졌어?

“자! 그럼 존 프로듀서. 팀에서 한 명의 탈락자를....”

존은 한 명의 이름을 불렀고 그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준비된 말을 주절주절 늘어 놓았다.

벨 팀의 탈락자 인터뷰까지 끝나고 벨이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쉬는 시간이라도 가질 줄 알았는데 촬영을 안 끊고 계속 이어간다.

아마도 최고참인 벨이 떠날 때까지 촬영해서 벨의 민망함을 좀 가려 주려는 것 같다.

그래 아무리 우리가 위로해 봤자 들리지도 않겠지.

차라리 촬영 핑계로 이렇게 홀로 떠나는 게 면이 더 설 거 같다.

“자! 그럼 바로 다음 미션을 발표하겠습니다.”

진행자 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나왔다.

지금 우리 팀만 2명이 남았고, 신디와 존은 한 명만 남았다.

내가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다음 생방송 미션은 끝장전입니다!”

끝장전?

“토너먼트 형식의 무대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진행자가 방식을 설명한다.

네 명이 각각 무대를 준비해 대결한다.

바로 현장 투표와 생방송 문자 투표를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린다.

패자 둘이서 한 번 더 패자전을 진행한다.

거기서 패배한 사람이 최종 탈락이다.

“자! 대진은 무작위로 선택할 예정입니다.”

공연의 주제는 따로 없는 건가?

“대진을 정하기 전에 공연의 주제를 먼저....”

없을 리가 없지.

아마 준결승이나 결승에서는 없을 거 같긴 한데 아직은 뭔가 자극이 필요할 때니까.

음, 확실히 그동안은 단체 무대를 많이 했네.

온전히 개인에게 집중될 시간을 주는 건 좋은 판단인 거 같다.

주제는 재해석.

이미 유명한 곡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1절은 원곡의 감성을 담아 부르고 2절은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부르라는 미션이었다.

이거 흥미롭긴 하지만, 조금 가혹한 미션이다.

노래에는 분명한 기승전결이 있다.

그런데 그걸 한 곡에 두 번 표현하라는 거나 다름없다.

그게 아니라면 기승과 전결을 다르게 표현하라는 건데.

그건 더 어렵다.

이건 가수의 역량보다는 프로듀서의 역량이 더 중요한 무대.

확실히 제작진이 머리를 잘 썼다.

“자! 그럼 대진을 뽑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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