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
“제, 제가 뭘 드리면 되죠?”
“제가 물어봤잖아요. 제가 서은씨에게 레슨하면 어떤 이득이 있죠?”
서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봐요. 제가 얻을 게 없잖아요. 서은씨가 줄 수 있는 거도 없고.”
“그렇네요.”
나는 서은의 몸을 담백하게 훑어봤다.
지금 내 시선에 의해 서은은 정말로 자신이 줄 수 있는 게 이 몸뿐이라고 생각하게 될 거다.
“솔직히 내키진 않지만, 제 자존심이라고 해두죠. 뭐라도 받지 않는 이상 서은씨에겐 아무것도 줄 게 없어요.”
살짝 도발을 섞는다.
내가 널 따먹고 싶은 게 아니라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게 몸뿐이라 먹는 거라는 뜻을 은연중에 비춘다.
자존심이 상하겠지?
자존심이 상하면서 다른 생각도 들 수밖에 없다.
내 몸이 어디가 어때서? 밖에 나가면 수많은 사람이 원하는 몸인데!
날 제대로 보내서 인정을 받고 싶어지는 거지.
예를 들자면 어떤 여자가 내게 너 섹스 못 할 거 같다고 도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그러면 바로 그녀를 깔아뭉개면서 앙앙대게 만들어 버릴 거 같으니까.
거기에 나에 대한 죄책감이 더해지면?
그녀는 내게 몸을 주면서도 저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섹스 경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날 제대로 만족시킬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다.
서은과 섹스한 후에 내가 그저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서은은 미쳐서 날 만족시키려고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노래 실력까지 좋아지면, 더더욱 내게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거 거의 섹스라이팅 아니냐?
내가 생각해도 소름 돋는 전개다.
전개를 생각해 보니 오늘은 조금 뜸을 들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조금 더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 따먹기엔 아직 덜 익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 가죠.”
“아, 아아.”
서은이 아쉬움에 탄식했지만, 나는 강하게 나갔다.
뒤를 돌아 먼저 나가며 한 마디 건넨다.
“고심해봐요. 제게 뭘 줄 수 있을지.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나가는 길은 직원이 안내해 줄 거예요.”
아마도 연락은 미국에 다녀온 이후가 되겠지.
뜸 들이는 시간이 좀 길겠지만, 그 정도는 해줘야 서은도 모든 걸 체념하고 내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때까지 아빠를 통해서 살짝 작업은 쳐 둬야지.
우아를 데리러 가기 전에 사장실로 향했다.
“응, 끝났어?”
“뭐, 그럭저럭? 다른 곳에서....”
아빠에게 서은이 다른 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약을 쳐 달라고 했다.
이제 서은은 내가 아니면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될 거다.
그러다 내 연락을 받으면?
뭐 알아서 자기가 무언가를 내놓겠지.
그게 몸이 아니어도 좋다.
내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녀가 내게 필요한 걸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몰래 사람까지 붙일 생각이라고 말하며 내게 걱정 말라는 말을 남겼다.
조금 미안하네.
순전히 내 재미를 위해 서은은 벼랑 끝까지 내몰릴 수도 있겠다.
아빠의 일 처리라면 아마 서은이 다른 일 하는 거도 꽤 방해할 수 있을 거다.
“어우, 소름.”
사장실을 나와 홀로 양팔을 쓰다듬으며 내 소름 끼치는 계획을 돌아봤다.
확실히 중국 지하 아이돌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내 생각이 조금 변한 거 같다.
선비 마인드를 꽤 내려놓았달까?
원래도 내가 뭐, 세계 평화라든지 윤리나 도덕을 들먹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 이득도 아니고 순전히 재미를 위해 남을 함부로 하진 않았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행동하는 거 같다.
“흐음, 우아는 아직인가?”
서은과의 레슨이 너무 일찍 끝나긴 했다.
그냥 우아를 불러서 데리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공부하는데 중간에 끊기 좀 그래.
나 때문에 3개 국어나 공부하고 있잖아.
시간을 많이 뺐으면 그만큼 우아의 자유 시간이 줄어든다.
그건 좀 미안하니까 기다려 줄 생각이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또 할 일이 없다고 해서 심심한 건 아니니까.
연습생 관리하는 매니저에게 모든 레슨이 끝나면 우아만 작업실로 보내라고 했다.
지금은 내가 잘 쓰지 않는 작업실이지만.
나도 언제든 작업할 수 있는 자리는 있다.
작업실로 들어와 곡을 하나 만든다.
이상하게 서은을 그렇게 보내니까 만들고 싶은 곡이 생겼다.
만들고 싶은 곡이 없었다면 그대로 우아를 불렀겠지?
확실히 요즘 무서운 게 없어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던 거도 같다.
미국에서는 파파라치만 좀 조심하면 별별 걸 다 해도 괜찮으니까.
아니, 괜찮다기보다는 어차피 한국으로 올 거니까 그랬던 거 같다.
“흐음, 여기서 코드를 조금....”
혼자 중얼대며 곡을 만든다.
제멋대로인 마음으로 곡을 만드니 제멋대로인 곡이 나오고 있는 거 같다.
나름 나쁘진 않은데?
조금 특이한 느낌의 곡이 나왔다.
누가 불러야 할지 감이 잡히진 않았지만.
누군가가 소화만 잘 하면 꽤 좋은 노래가 나올 거 같다.
한국판 드림 스테이지로 한 번 돌려?
곧 미국으로 넘어가서 프로젝트 S를 끝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텐데.
그때 복귀 프로젝트로 드림 스테이지 시즌3를 제대로 하는 거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어차피 지금 미국판 드림 스테이지는 힙합 버전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다음까진 텀이 꽤 길 테고.
일단 미국 일정을 끝내고 생각할 일이다.
이제는 우아에게 집중해 볼까?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곡을 만들다 보니 벌써 수업이 모두 끝날 시간이 됐다.
곡을 다 만든 다음에도 기다려야 할 시간이 좀 길면 그냥 무시하고 부를 생각이었는데.
살짝 애매하게 남은 시간이라 잠시 앉아서 기다렸다.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인터넷 기사를 좀 보고 있는데 내 얘기가 생각보다 꽤 많다.
아무래도 한국으로 온 게 알려져서 그렇겠지?
다시 미국으로 가면 금방 관심에서 사라지겠지.
단지, 이 기사로 땡중 세력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게 좀 불안하달까?
요즘 좀 잠잠한 거 같으니까 괜찮겠지.
-끼이익.
“음? 왔어?”
우아가 작업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다.
“아! 계셨네요. 네. 다 끝났어요.”
“그럼 여기로 오라고 했는데, 여기 있어야지.”
“헤헤. 노크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어서...”
음? 얘 바보야?
“우아야.”
“네?”
“여긴 작업실이라 방음이 확실하게 돼 있어.”
“네.”
아니, 지금 표정은 뭔데?
내가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려는 줄 알았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옆으로 총총 다가온다.
“아니, 네가 노크 한 게 안 들린다고.”
“아! 그, 그렇겠네요.”
당황한 우아.
민망한지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하하하. 귀엽네.”
“아우으.”
우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우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평소 활달한 성격과 다르게 남자한테는 약간 순종적인 느낌일 거 같은 우아.
이제 20살이라 남자 경험은 없겠지만, 내가 잘 경험 시켜서 내 입맛대로 잘 길들여야지.
“갈까?”
“네.”
우아가 조용히 내 뒤를 따른다.
오늘 갈 곳은 당연히 내가 혼자 사는 집.
그 집에서 오늘 우아를 길들이고 내일부터는 다 함께 사는 집에 들어가 계속 있을 거 같다.
아무래도 다 같이 섹스 파티라도 할 기세라서.
내가 며칠 있지도 않은데 밖으로 나도니까 슬슬 여인들도 애가 달겠지.
여기서 계속 나돌았다가는 미국 가기 전에 복상사 엔딩 볼 수도 있어 결정한 스케쥴이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모두의 성욕을 잘 달래 주고 미국에서 회복 좀 한 다음 돌아와야지.
한국에 돌아오면 다들 나 못 잊어서 또 발정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계속 한국에 머무르면 다들 안정감을 느끼고 점점 괜찮아질 거다.
“여긴 어디예요?”
“음, 비밀 장소야.”
“비밀 장소요?”
“사람들 몰래 얻은 집이야.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우아가 살짝 다부진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오버 하기는.
사실 이제는 대부분 이 집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 꼭 숨길 필요가 없긴 하다.
다들 날 배려해서 내가 여기 있을 땐 건들지 않을 뿐이지.
무슨 일 있으면 여기로 찾아올 수도 있을 거 같다.
“뭐 좀 마실래?”
집에는 여러 음료가 채워진 냉장고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관리해주시는 분이 알아서 냉장고에 채워 주신다.
“와아. 처음 보는 음료가 많아요.”
“그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마셔 봐.”
나도 음료는 잘 모르는 편이라 딱히 마시는 게 별로 없긴 하다.
아니, 이 집 자체를 거의 오지 않으니까.
가끔 오면 보통 배달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아서 집에 있는 식품들이 잘 줄어들지 않는다.
뭔가를 막 꺼내 테이블에 늘어놓는 우아.
내가 그래도 많이 편해진 거 같아 기분은 좋다.
눈치 안 보고 먹을 거 다 꺼내 놓는 것 좀 봐.
마냥 귀여운 모습이라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으, 너, 너무 많이 꺼냈죠?”
“아냐. 조금만 먹고 다 남겨도 돼. 어차피 내가 안 치워.”
“아으, 그, 그래도. 헤헤.”
우아가 너무 흥을 냈다는 걸 자각했는지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몇몇 음료를 다시 넣으려 했다.
“정말로 한 모금씩만 마시고 버려도 괜찮은데.”
-치익!
나는 말하며 바로 시범에 들어갔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수박-딸기 탄산음료인 거 같다.
음, 딱히 맛있지는 않네.
그대로 싱크대에 음료를 붙는다.
“얘는 맛이 좀 별로다.”
“아앗! 지, 진짜 그걸.”
아까운 듯 보는 우아.
“우아야.”
“네?”
“나 누군지 알잖아.”
괜히 폼을 좀 잡아 본다.
“이런 음료가 아니라 만드는 회사를 살 수도 있어.”
“아, 그, 그렇죠.”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그럼 조금 쉬다가 레슨 할까?”
“아! 맞다.”
얘가 레슨은 아주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나랑 놀러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사실 나는 놀러 온 게 맞긴 한데.
너까지 그렇게 분위기를 타면 안 되지.
그렇다고 나무랄 생각은 없어 우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한다.
“우아는 노래할 때 뭐가 제일 힘들어?”
“으음, 멀티테스킹이요?”
“멀티테스킹?”
노래에 멀텟이라.
하긴 숙련도가 낮을 땐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은 게 노래다.
발음부터 발성 음정과 박자, 호흡, 아이돌이니 표정도 신경 써야 하고 안무까지 곁들여지면?
확실히 어려울 수밖에 없긴 하다.
물론, 하나하나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면 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수밖에 없고. 그런 거 말고 태생적인 능력 같은 건 뭐가 아쉽다거나 한 거 없어?”
“어, 으음, 제 노래를 들어 보면 톤이 너무 뜬 느낌이에요.”
“그래? 노래 한 번 해볼까?”
톤이 뜬다는 말은 음정이 정확하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정확한 음정을 내고 있다면 발성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 음을 내기가 힘들어서 억지로 소리를 내면 발성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
“아아아아아!”
노래를 이어가는 우아.
확실히 이것저것 신경 쓰려니까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되고 있구나.
이건 하나하나 연습으로 해갈 수밖에 없고.
내가 마기로 해줄 수 있는 건 숙련도나 깨달음이 아닌 신체적 변화다.
음, 확실히 성대에 힘이 좀 부족하고.
호흡도 아직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한 거 같네.
이건 내가 바꿔줄 수 있는 부분.
성대도 근육이고, 호흡도 근육으로 하는 거니까.
그 근육을 조금 만져주면 훨씬 매끄럽게 하는 게 가능하다.
“음, 목소리가 뜨는 건....”
일단은 빌드업 부터 가야지.
그냥 마기만 넣고 노래 잘 해졌다. 박수 짝짝짝 치고 끝낼 거 아니잖아.
서은은 약간 협박을 섞어 조금 긴 빌드를 짰지만.
우아에겐 그럴 생각이 없다.
우아는 계속 활발하고 아이 같으면서 싱그러운 모습이 좋다.
“그럼 발성 먼저 얘기해 볼까?”
“네!”
우아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한다.
“발성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
“으음, 소리를 정확하게 내는 거요?”
“소리를 정확하게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 그 연습을 해야죠?”
고민하는 우아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며 답한다.
“하하, 그것도 맞지.”
살짝 웃음이 나 우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겼다.
내게 가까워진 우아.
“너 너무 귀엽다.”
“헤헤.”
내 칭찬에 해맑게 웃는 우아.
볼을 살살 꼬집어주며 말을 이었다.
“정확한 소리를 내려면 우선 몸이 안정된 상태가 돼야 해.”
“아!”
“몸을 안정된 상태로 만드는 건 뭐가 하는 역할일까?”
“으음, 코어 근육이라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그랬는데요....”
“헬스?”
우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벙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 그대로 우아를 꽉 안아버렸다.
“아니! 뭐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어.”
“헤헤.”
귓가에 들리는 우아의 수줍은 웃음소리.
얘는 내가 안았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네? 이건 진도를 팍팍 뽑아도 된다는 좋은 의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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