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으음, 내가 봐도 조금 말도 안 되는 자세긴 하네.
지금 서은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다리를 벌린 채 뒷짐을 져 가슴을 내민 자세로 서 있다.
“안정감이 중요해요. 그래서 바로 서 있는 거보다 살짝 무릎을 굽히는 게 좋은데 무릎을 앞뒤로 굽히면 복부가 눌리잖아요. 그러면 호흡에 악 영향이 있어요. 그래서 옆으로 벌려 굽히는 게 좋고, 가슴을 내밀게 한 건....”
그럴듯한 개소리로 서은을 설득한다.
“그렇군요.”
간단히 넘어가는 서은.
확실히 호흡은 편해졌을 거다.
마기로 내가 상쾌한 느낌을 주고 있으니까.
“호흡이 어때요?”
“화, 확실히 좀 나은 거 같아요.”
“그럼 이대로 발성 연습을 해 볼까요?”
“어, 어떻게요?”
서은의 앞에 서서 복부를 본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그대로 편한 음을 질러 봐요.”
“편한 음이요?”
“네. 아무 음이나 잘 되는 음으로 쭉 내지르는 거예요.”
서은이 살짝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연다.
“아아아아아아.”
평범한 소리. 서은의 배 위로 가볍게 손가락을 댔다.
명치를 살짝 누른다.
“자! 호흡에 집중하면서 계속해요.”
“하읏, 아아아아아아.”
서은이 살짝 놀랐지만 날 믿는지 계속해서 소리를 낸다.
“제 손보다 아래쪽에서 호흡한다는 느낌으로 다시 해봐요.”
“네. 흐으읍, 아아아아아아.”
“좋아요. 호흡도 발성도 좋네요. 이대로 조금만 더해볼까요?”
사실 아무 효과가 없는 짓이지만 보기 좋아서 계속 시키고 있다.
크으, 가슴 하나는 진짜 예술이네.
어떤 고양이가 이런 걸 달고 있어.
속옷으로 잡혀 있는 가슴이라 정확한 모양을 보긴 힘들지만.
속옷 위로 살짝 올라온 가슴의 모양은 정말 보기 좋았다.
빨리 벗겨보고 싶은데.
“흐음, 호흡 연습은 꾸준히 했네요?”
“그렇죠?”
“발성도 좋구요.”
“헤헤.”
내 가벼운 칭찬에 서은이 가볍게 웃었다.
“흐음, 근데 소리가 왜 이렇죠?”
“네?”
“아니, 뭔가 막혀 있는 느낌이잖아요.”
“마, 막혀요?”
개소리다. 그냥 소리를 내는데 뭐가 막혀 있고 말고 하겠어.
호흡도 발성도 잘 잡혀 있다. 딱히 문제는 없다.
“흐음, 못 느끼겠어요?”
“아으, 자, 잘 모르겠어요.”
“후우, 어쩔 수 없네요. 이것도 벗어 보실래요?”
“네? 브, 브라를 벗으라고요?”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어 가슴을 가리는 서은.
“아! 제가 배려가 부족했네요. 이해를 못 하셔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지금 뭔가 불편한 느낌이라서요. 혹시 속옷 때문인가 싶은데.”
“그, 뒤, 뒤로 돌아서 해도 될까요?”
“흐음, 제가 직접 보는 게 확실하긴 한데 소리만 들어봐도 되겠죠. 그렇게 해요.”
한 단계씩 차근차근 그녀의 방어막을 벗겨낼 필요가 있다.
뒤로 돌아 브라를 벗는 서은.
브라를 앞으로 돌려 버클을 풀고 그대로 내려놓는다.
아! 확! 돌려서 보고 싶다.
“자, 그대로 다시 아까 자세를 해 보세요.”
“네. 흠흠, 아아아아아아.”
내게 등을 돌린 채 소리를 내는 서은.
“잠시만요. 흐음.”
“왜, 왜요?”
“뭐가 누르는 듯한 소리가 나는데. 조금 더 고음을 질러 보시겠어요?”
“네. 아아아아아아아.”
몇 음이 올라갔다.
흐음, 진짜 별문제 없는데 얘는 왜 노래를 그렇게 부르는 걸까?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어떤 발성을 쓰고 계신 거죠?”
“네? 어떤 발성이요?”
“으음, 제가 손을 살짝 대봐도 괜찮을까요?”
“어, 어디에요?”
얼굴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가 떠는 게 느껴진다.
“으음, 안 보고 있어서 정확히 집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제가 손을 올리려고 하는 부분은 울림통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네? 그게 무슨?”
“후우, 그냥 하지 말죠.”
나는 등을 돌리고 말했다.
“네? 갑자기 왜 그러시죠?”
“아니, 제가 뭐 서은씨 하나만 보고 있는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불편하게 하느니 그냥 안 하는 게 나은 거 같아서요.”
“아, 그, 그게.”
한 번쯤 튕겨줄 필요가 있지.
“나가 있을 테니까 옷 입고 나와요.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로 하고.”
“죄, 죄송해요.”
나가려는 날 서은이 잡았다.
“그, 피디님이 나쁜 마음 없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 저도 부, 부끄러워서.”
“하아, 지금 부끄럽다고 했어요?”
서은의 말을 끊고 뒤로 돌아 서은의 얼굴을 본다.
흰자위로 보이는 가슴.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 없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딱 봐도 쳐지지 않은 이쁜 가슴인 건 알겠다.
살짝 보이는 색도 꽤 붉은 빛이 도는 게 먹음직스러운 색일 거 같은데.
아! 지금 이런 생각할 시간이 아니지.
“제게 기회를 청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아, 알죠.”
“그중 제게 레슨 기회를 얻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 거 같아요?”
“별로 없겠죠?”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는 서은.
“지금 그런 기회를 고작 부끄러움 때문에 차버린 거예요.”
“다, 다신 안 그럴게요. 제 몸 마음대로 하셔도 돼요. 네? 제가 잘못한 거니까.”
“후우, 원래 한 번 아웃이면 끝인데.”
“죄송해요. 피디님.”
서은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근데 번번이 데뷔에서 밀리고 회사에서는 끝까지 희망만 주다가 절 방출했어요. 진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염치 불고하고 프로듀서님께 부탁드렸던 거예요.”
아까 대충 들어서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사람이 간절함이 하나도 안 보이네요? 저였다면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했을 거 같은데.”
“네? 이, 이용할 수 있는 거요?”
“아시잖아요. 서은씨 얼굴, 몸매 꽤 좋으니까요. 제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도 그게 아까워서고.”
“그, 그렇지만.”
서은이 어두운 표정으로 날 올려 본다.
“후우, 제가 뭘 하겠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아요. 그냥 정말 간절한지 궁금해서 그래요. 저 나름 유티비도 그렇고 오디션을 꽤 진행해 봤는데요. 서은씨보다 실력도 좋은데 훨씬 간절한 사람도 많이 봤어요. 뭘 믿고 그렇게 해요?”
멘탈을 탈탈 털었다가 위로해 주면서 안아주기.
오늘 내가 생각한 빌드다.
무슨 일을 당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계심이 꽤 강한 거 같아서.
마기로 그냥 확 따먹을까 싶기도 한데 서은의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다.
“이쁜 얼굴? 괜찮은 몸매? 그거 믿고 그래요? 그런 사람이 23살 되도록 데뷔도 못 했네요? 그러면서 말로만 이제 마지막이라고요? 정말로 최선을 다 해봤어요? 할 수 있는 거 다 해봤냐구요.”
아무 말 못 하고 내 눈치만 보던 서은.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점점 찌푸려진다.
억지로 눈물을 참는 모습. 이내 조금씩 눈이 촉촉해졌다.
“흑, 흐윽.”
오우, 눈물 참는 소리 너무 꼴리고.
이런 생각할 상황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 상황이라서 그런지 계속 꼴리는 느낌이다.
확실히 이쁜 애들은 뭘 해도 이쁘다니까.
“후우, 이럴 게 아닌데 제가 말이 심했네요.”
“흑, 아, 아니에, 흐아아아아앙!”
서은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우는 서은.
나는 조용히 서은에게 다가가 살며시 끌어안는다.
내게 안긴 채 엉엉 우는 서은.
옷이 젖어간다. 지금은 옷을 적시겠지만, 조금 이따가는 보지를 적시겠지?
서은의 몸을 살살 토닥이며 진정되길 기다렸다.
“흐으, 지, 진짜 많았어요.”
조금 진정된 서은이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뭐가요?”
“술자리 시중 한 번만 들면 데뷔할 수 있다. 하룻밤만 딱 눈 감고 버티면 스타 될 수 있다. 이번 회사에서 데뷔조에 있다가 나온 이유도 투자자한테 소개하는 자리라고 술 시중들라고 했는데 거절해서. 흑, 흐으응.”
다시 감정이 올라왔는지 또 우는 서은.
“그 맘 다 알아요. 괜찮아요.”
서은이 정도면 그런 유혹은 수도 없이 당했을 수밖에 없다.
“그걸 거절한 제가 잘못한 건가요? 흑, 흐윽.”
“아뇨. 잘 한 거예요.”
술자리에 한 번 나가기 시작하면 결국 끝은 정해져 있다.
데뷔는 할 수 있겠지만, 뜨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대기업 급 회사라면 몰라도 중소 기획사에서는 한 그룹 띄우는 데 사활을 걸 만큼 어렵다.
데뷔하게 되면 다른 유혹이 시작된다.
어디 광고 회사 관계자라든지, 방송국 관계자라든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자리. 회사에선 계속해서 요구해 올 거다.
한 번 했는데 뭐가 문제냐며 한 번만 더 하자고 유혹한다.
처음 몇 번은 확실한 효과가 나오는 사람에게 접대를 주문한다.
정말 한 번의 희생으로 그룹에 무언가 득이 되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점점 뜨게 되면 그런 일은 안 하고 살 수 있겠지만, 그렇게 성공하는 걸그룹은 거의 없다.
그러면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이번이 마지막이다. 진짜 마지막이다.
결국, 그렇게 창녀처럼 굴려진다.
그러다 그룹이 망하면 어디 룸살롱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돌 출신 아가씨는 프리미엄이 붙으니까.
중소 기획사가 나쁜 게 아니다.
그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 테니까.
물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회사도 있겠지.
그런 회사는 제대로 된 연습생 시스템이나 걸그룹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자기네와 연줄이 있는 유흥시설에 아가씨 채우려는 수작이나 부리는 곳이니까.
제대로 된 회사는 정말로 어쩔 수 없이 그런 곳에 기대게 된다.
처음에는 회사도 고통을 삼키며 희생에 감사하지만.
그룹이 성공하지 못하면 점점 변해간다.
어차피 더럽혀진 몸. 조금 더 더러워지면 어떠냐.
회사도 결국엔 적반하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당장 회사는 망해가고 서은이 정도 외모의 멤버가 있으면 거기에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회사가 문제라기보다는 이 바닥이 문제가 많은 거지.
“으음, 미안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런 게 아직도 있었군요.”
나는 그런 건 모른다는 뜻의 말을 건넨다.
중국에서 지하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JG에서 접대하는 걸 뻔히 보고 잡아냈지만.
지금은 모른 척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런 뜻으로 말했던 건 아닌데.”
그런 뜻으로 했던 거 맞다.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순 없잖아.
“후우, 조금 일어 나봐요. 물 좀 드실래요?”
“괜찮아요.”
“후우, 절 그런 놈으로 봤다는 게 조금 상처긴 하네요. 그래도 제가 그런 쪽 없애려고 많이 노력한 편인데.”
“아! 알아요. JG도 그렇고 마약 하던 사람들도 잡아내셨었죠. 그, 그런 분인데. 제가.”
서은이 말을 끊고 눈치를 본다.
연예계를 위해 일했던 나를 몸이나 노리는 3류 양아치로 봤으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겠지.
근데 이걸 어쩌나?
그 생각이 딱 맞았는데.
내가 몸만 노리는 양아치는 아니지만, 몸을 노리는 건 사실이니까.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몸과 1티어 얼굴을 두고 가만 놔두긴 아깝잖아.
또 생각했었던, 필요했었던 연습생 후보기도하고.
“후우, 서로 감정이 격했던 거 같으니까 조금 쉴까요?”
“네? 네.”
고개를 푹 숙이는 서은.
“정말 제대로 배워볼 생각 있어요?”
“네. 이젠 프로듀서님을 믿고 의심하지 않을게요.”
“제가 몸을 요구해도요?”
“네?”
“하하. 거짓말인 거 바로 들켰죠?
농담처럼 넘어갔지만, 농담이 아니다.
“흥이 식어 버렸잖아요. 제가 굳이 서은씨에게 레슨 해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아, 으.”
서은이 제대로 말은 못 하고 몸을 웅크렸다.
“서은씨를 가르치면 제가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죠?”
이 질문은 세상 개소리다. 딱히 필요 없는데 그냥 상대를 압박하기 좋아서 하는 소리.
회사가 사원을 뽑던, 내가 연예인 지망생을 뽑던,
이 사람으로 뭘 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써먹는 건 내 능력이다.
상대에게 내가 널 왜 뽑아야 하는지 진심으로 묻는다는 건 그냥 사람 볼 줄 모른다는 거지 뭐.
네가 제시한 이득이 뭐니까 내가 뭘 해줄게?
그건 큰일 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아니다.
이걸 하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을 테니까 여기까지는 해줄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일이든 채용이든 제대로 할 수가 있다.
막말로 제시한 이득을 채워주지 못하면 그대로 손해만 보는 거잖아.
그렇기에 내가 널 뽑을 이유를 알려달라는 건 그냥 압박하려고 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에요. 제가 서은씨에게 레슨을 해드리는 건 뭘 얻기 위함이 아니라 전적으로 호의에 의한 거였죠. 근데 그 호의를 차버린 건 서은씨에요.”
계속해서 죄책감을 불어 넣는다.
미안해하면 할수록 그녀는 내게 어떤 부채감을 가질 테고.
그 대가로 내게 줄 걸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몸으로 받아 내는 게 내 계획의 전부다.
“정말 죄송해요.”
“아뇨. 사과는 필요치 않아요. 사과할 일은 아닌 걸요. 그냥 그렇게 된 일이에요. 그러니 이제 호의가 아니라 대가를 받아야겠어요.”
단호한 눈으로 서은을 봤고, 서은의 동공은 마구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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