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400화 (400/450)

400.

“날씨 좋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회사.

오늘은 들어가기 전에 살짝 주변을 산책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회사 앞에 사람이 많이 모였더라고.

오늘 뭐가 있나?

우리 회사는 여자 뮤지션 위주라 평소 팬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은 아니다.

보통 기획사 앞에 진 치고 있는 팬들은 남돌 팬이 많으니까.

-응. 왜?

“오늘 회사에 무슨 일 있어?”

-오늘? 잠깐만.

잠시 회사 근처를 벗어나 카페로 향하며 아인에게 전화했다.

저번에 갔던 카페.

알바생이 꽤 친근해서 또 가는 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지금 날 노리는 여자들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벅차서 적극적으로 꼬실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 오늘 회사에서 팬들 불러서 그거 한데.

“그거?”

-음악 들려주고 곡 뽑는 거.

“아아.”

뭔지 알겠다.

누구 노래 고르는 걸까? 내가 모든 곡을 주던 시기는 지났으니까.

슈가 페어리도 내 곡을 안 쓰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그래서 사람이 그렇게 몰렸구나! 그냥 들어갔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팬들을 불러서 다음 타이틀 곡을 미리 들려주고 어떤 곡이 더 좋을지 투표하는 방식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 곡만으로 회사가 돌아가면 모르겠지만.

내가 곡 찍어내는 기계도 아니고 20명이 넘는 가수의 모든 곡을 써 줄 순 없다.

외부 곡과 회사 내의 작곡하는 사람들의 곡을 받아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보통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곡이 정해지는데.

가끔 너무 좋은 곡이 겹치면 블라인드로 결정을 못 할 때가 있다.

이때 선택한 방법이 곡을 듣고 판단할 인원을 늘리는 것.

팬들을 무작위로 추첨해 초대한 뒤 곡을 들려주고 투표를 받는다.

물론, 약간의 편법을 써 청음 테스트에 오는 팬은 여성만 뽑고 있다.

원래는 그냥 남녀 상관할 거 없이 막 뽑을 예정이었는데.

우리 회사에 다른 남자가 들어오는 게 조금 꺼려졌다.

지금도 간부급 인원 말고는 직원도 여자로 가려 받고 있는데.

남 직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총원에 5% 미만이다.

아무래도 여성 위주의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기에 여성 직원 위주로 뽑을 수밖에.

남자가 필요할 때도 있긴 한데 그럴 때는 그때만 SP 엔터에서 직원을 차출 받는다.

뭐, 거기도 내 회사니까 상관없잖아.

수필 대표님은 요즘 잘 지내시나? 너무 신경을 못 쓴 거 같네.

옥살이 좀 하고 보석금으로 나올 거 같은데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조금 더 옥살이하고 계신 거 같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마약에 관한 처벌 수위가 꽤 강하니까.

지금 나왔다간 다시 매스컴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또 욕을 바가지로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소속 연예인들의 이미지도 나빠질 수밖에.

조금 더 잊히고 조금 큰 이슈에 묻혀서 조용히 나올 타이밍을 보고 계시는 거겠지.

그건 됐고 빨리 커피나 사서 가야겠다.

청음 테스트하는 거 구경해도 꽤 재밌을 거 같은데.

금방 끝나겠지?

노래 몇 곡 해봐야 몇 분이면 끝날 테니까.

아마도 내가 가면 끝났을 거 같은데.

아예 카페에서 조금 놀다가 들어가는 게 낫겠다.

괜히 또 나오는 타이밍에 마주치면 조금 그렇잖아.

카페에 들어선다.

저번에 본 알바생이 반갑게 날 맞아 준다.

“어서 오세요! 또 오셨네요.”

“그러게요. 오늘도 한가하네요?”

“어쩔 수 없죠. 후우.”

한숨을 푹 쉬는 그녀.

“왜 한숨이에요?”

“이러다 짤리는 거 아닐까 해서요.”

“흐음, 그건 좀 위험하겠네요.”

내가 사장이라고 해도 이 카페를 유지하는 건 꽤 고민될 거 같다.

땅값도 비싼 동네라 매출이 적으면 바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한가한 카페를 무슨 배짱으로 유지하는 걸까?

뭐, 취미 생활 같은 건가?

자기 건물이거나 돈이 남아돌면 그럴 수 있다.

어디 가서 백수라고 하는 거 보다야 카페 사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으니까.

“여기 그래도 꽤 오래된 카페 아니에요?”

“잘 모르겠네요. 꽤 오래된 거 같죠?”

인테리어야 깔끔하니 보기 좋다만, 카페의 상태를 보면 조금 빈티지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만들어진 지 몇 개월 안 된 카페 느낌은 확실히 아니니까.

“나름 버틸 만한가 봐요.”

“흐음, 사장님이 돈은 많은 거 같던데.”

여기에 카페를 차릴 수 있는 거부터가 확실히 돈은 많은 사람일 수밖에.

“오늘도 혼자 심심하겠어요.”

“헤헤. 그래서 오늘은 누굴 좀 불렀어요.”

“그래요? 그거 괜찮은 거예요?”

“손님도 없고, 저번에도 프로듀서님이랑 노닥거렸는데 아무런 말도 없더라구요.”

하긴 알바생을 일일이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지 않을 거 같다.

돈 많은 백수가 카페 사장 직함 달고 어디 놀러 다닐 확률이 높지.

이렇게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 경력도 짧은 알바생 한 명 놀리고 있는 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 빨리 가드려야겠네요?”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헤헤. 설마요. 오래 계셔 주세요. 프로듀서님 와 계시면 혹시 손님이 올지 모르잖아요.”

“제가 그 정도는 아닐 걸요?”

“에이, 왜요. 국민 프로듀서잖아요. 모르는 사람도 없고, 안티도 없고.”

“아이고, 저도 안티가 없진 않습니다.”

특히 쿵쾅이들한테 집중 폭격을 맞고 있다.

우리 회사 자체가 이쁘고 몸 좋은 여성들로 이뤄져 있으므로 여성 중 ‘그 단체’ 사람들한테는 꽤 보기 싫은 회사인 거 같다.

고소까지 해가며 강력히 대응하고 있지만, 지능적으로 회사를 열심히 까고 있더라고.

쿵쾅이들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휴, 진짜 이쁜 여자는 이쁜 여자 욕 안 하다니까요. 다....”

정답이지. 이쁜 애들은 다들 이쁨받고 커서 이쁜 짓만 한다.

제대로 이쁨받아본 적 없는 쿵쾅이들이나 자격지심에 폭발해서 이상한 짓 하는 거지.

“어!”

“네?”

나와 한참 대화를 나누던 그녀가 갑자기 밖을 본다.

“아! 왔나 봐요?”

“네. 헤헤. 잠시만요.”

밖으로 나가 마중하는 알바생.

잠시 후 알바생이 한 명의 연인과 함께 들어왔다.

와! 대박.

내가 찾던 얼굴이다.

도도하고 섹시한 고양이상 1티어 미녀.

“와, 진짜 계셨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인사할 때까지 너무 빤히 바라봤네.

“저희 언니예요!”

“아! 그러시구나. 어쩐지 꽤 닮았네요.”

언니가 좋은 유전자를 많이 가져갔나?

동생도 어디 가서 미인 소리는 듣겠지만, 언니의 얼굴은 넘사에 가까운데?

나도 이쁜 사람 많이 보고 다니는데 이런 1티어 얼굴은 흔하지 않다.

으음, 아이돌 할 생각 있을까?

지금 연습생들에 포함 시켜 6인조로 하면 더 완벽해질 거 같은데.

6인조가 조금 꺼려지는 배열이긴 한데 그렇다고 6인조 그룹이 없는 건 아니다.

옴마마걸이라던가 여자인친구 라던가 6인조로 성공한 그룹도 꽤 있다.

그래도 걸그룹은 홀수가 정석이긴 한데.

아직 우리 회사 연습생으로 들어온 거도 아닌데 김칫국 마시지 말자.

알바생은 언니와 함께 카운터로 이동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흐음, 어떻게 꼬시지?

진짜 딱 연예계에 있어야 하는 얼굴인데.

혹시 지금 무슨 일 하는지 먼저 물어볼까?

미래가 창창한 사람이면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무조건 성공한다고 해도 연예인은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닐 수 있으니까.

“프로듀서님.”

“음? 네?”

다른 생각에 빠져 잠시 멍하게 있었는데 알바생이 내게 다가와 있었다.

“호, 혹시 저희 언니랑 합석 괜찮으세요?”

“물론이죠. 저도 심심해서 온 건데 대화 상대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헤헤. 다행이다. 언니 여기 와.”

알바생이 언니를 데리고 내 자리로 왔다.

내 앞에 앉은 알바생의 언니.

알바생 이름을 몰라서 조금 부르기가 불편하네.

매번 저기요라고 하기도 뭐하고 이름이나 물어보자.

“저, 두 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번에 꽤 대화를 나눴었는데 이름도 몰랐네요.”

“어머, 제가 이름을 말씀 안 드렸었구나, 저는 박서지예요.”

“서지씨?”

“네. 헤헤.”

이름 참 특이하다.

서씨 성을 가진 친구가 이름이 지은이라던가 지영이라던가 하면 야! 서지! 하고 부를 법한 이름.

“저희 언니는 박서은이에요. 저는 21살 언니는 23살.”

나이도 딱 적당하네.

“저는 이성민이에요. 27살.”

“헤헤. 그건 다 알죠.”

“제 나이를 많게 보는 사람이 꽤 많아서요.”

“아! 그건 맞아요. 업적이 많으시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또 대화가 이어졌다.

서지는 저번에도 느꼈지만, 붙임성은 진짜 좋다.

인싸중에서도 인싸 기질이 있는 거 같달까?

그에 반해 서은은 조금 조용한 성격인 거 같다.

아니, 조용하다기보다는 소심한 거 같은데?

내 반응 하나하나에 엄청 크게 반응하는 게 조금 귀여웠다.

진짜 예민한 고양이 같아서 자꾸 놀리고 싶다.

내가 일반인한테 그리 어려운 이미지는 아닐 텐데.

예능에서의 내 이미지는 살짝 친근한 느낌 아닌가?

여러모로 우리 회사는 신비주의 같은 걸 하지 않는다.

다들 팬 친화적으로 소통의 기회를 최대한 만드는 편.

당연히 나도 꽤 소통에 진심인 편이다.

유티비 운영도 그래서 하는 거도 있고.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조금 소홀하긴 했지만.

다른 프로듀서에 비하면 훨씬 더 이미지 노출이 많은 편이다.

나는 이미지가 소모된다고 해도 좋은 곡을 계속 찍어낼 수 있어서 상관없을 거 같거든.

마찬가지로 내 가수들도 내가 곡을 주면 이미지 소모가 문제 될 거 같지 않고.

“조금 불편하신가 봐요?”

“아, 아니에요!”

“헤헤. 언니가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까 눈치를 좀 보는 거 같아요.”

오! 같은 업계?

“같은 업계요? 곡 쓰세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내 눈치를 보는 서은.

“그 너무 속 보일 거 같아서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언니는! 그런 게 어딨어.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거라고!”

“기회요?”

“사실 프로듀서님 보고 언니 일부러 부른 거예요.”

“그랬어요?”

얘가 연기를 잘 하네.

서지는 살짝 혀를 빼 물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쁜 마음을 품은 건 아니에요. 용서해 주실 거죠?”

“용서할 거도 없죠. 잘못한 일도 아닌 걸요.”

“그 저희 언니는 연습생이에요.”

“연습생이요?”

나는 살짝 놀란 리액션을 하며 서은을 봤고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서지를 본다.

아까까지는 내가 몸이 달아 서은을 어떻게 꼬실지 고민했는데.

이렇게 먼저 패를 까고 나오면 또 상황이 다르지.

여기서 내가 바라던 연습생입니다. 제발 와주세요. 하는 건 하수도 안 할 짓이다.

이미 권위를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내 소속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1티어 연습생.

형식상 오디션 기회를 주는 척하면서 생생도 좀 내고.

이런저런 흠을 만들어 잡으면서 약간 주도권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

지금 하는 거로 봐서는 딱히 필요가 없는 행동일 수 있지만.

주도권을 아주 쉽게 가져올 수 있는 상황에서 그냥 넘겨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흐음, 소속된 회사가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 짜, 짤렸어요.”

슬픈 눈으로 말하는 서은.

아니, 어떤 소속사가 이런 애를 잘라?

“그, 제가 좀 부족해서.”

성격에 문제가 있나? 그룹 생활을 못 할 정도로?

그렇다면 나도 좀 곤란하긴 하다. 빠르게 마기로 물들여 성격 개조를 하면 될 거도 같은데.

그러면 개성이나 매력이 많이 희석될 수도 있어 꺼려진다.

으음, 일단 정보를 좀 모아 봐야겠는데.

“당장 제가 뭘 해드릴 건 없고 오디션 한 번 볼래요?”

“저, 정말요? 아니! 감사합니다.”

바로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서은.

뭔가 간절하긴 한 거 같은데.

“서지씨 둘이 얘기 좀 하죠.”

“네? 저요. 네.”

나는 살짝 서지의 팔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서은이 있는 곳에서 얘기하면 솔직히 답하기 힘들 수 있으니까.

물론, 동생인 만큼 언니의 험담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는 얘기는 있다.

“흐음, 서은씨가 전 회사에서 짤린 이유 알아요?”

“그게. 저희 언니가 얼굴도 이쁘고 춤도 꽤 추거든요.”

“네.”

“근데 노래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고.”

오호! 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성격적인 문제는 없었던 거죠?”

“다, 당연하죠. 완전 저런 천사가 따로 없다니까요.”

“흐음, 믿어 볼게요. 뭐, 이것도 인연이니까 앞으로 좋은 관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오늘 일은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아니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나야 이런 인재를 손에 쥐여 주면 감사할 따름이지.

일단 오늘은 서은을 데리고 가 볼까?

우아 레슨은 이따 밤에 따로 불러도 되는 거니까.

시간은 많다.

“서은씨 일단 회사로 가죠.”

“네!”

서은이 다부진 표정을 짓고 날 따라 왔다.

“언니 화이팅!”

뒤에서 응원하는 서지.

쟤도 참 기운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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