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98화 (398/450)

398.

우아가 장난기가 많고 조금 천방지축인 성격이지만.

예의가 없다거나 언니들에게 못 하는 성격은 아니다.

이런 우아가 나서서 하고 싶다 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 같다.

“어차피 모두 받을 거긴 한데, 우아는 왜 두 번째로 받고 싶어?”

유봄은 아직 스스로 나서서 말하지 않았으니 우아의 얘기 먼저 들어보자.

“언니들보다 제가 너무 부족한 거 같아서요.”

“그랬어.”

아, 얘 너무 귀엽다.

눈 똥그랗게 뜨고 날 올려 보며 살짝 아련하게 말하는 우아.

햄스터 상이라 살짝 통통한 볼이 말할 때마다 움직이는 게 막 꼬집어주고 싶다.

“언니들은 계속 잘 하고 있다고 하지만, 제가 듣고 보기에 저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요.”

“음.”

다들 침울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내가 없었다면 나서서 우아를 위로했을 애들이지만.

내가 앞에 있으니 내 눈치를 보느라 다른 말은 못 하고 있다.

사실, 방금 들은 노래로 판단해 보면 우아가 꼴등은 아니다.

아니, 도토리 키재기라고 할까?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엉망인 노래들이다.

춤은 초유 누님이 제대로 레슨을 시작하고 다들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왔다고 들었다.

기본기부터 다지는 중이라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간단한 안무를 만들어 시키면 제대로 데뷔도 가능할 거 같다고 한다.

물론, 노래는 데뷔는커녕 일반인 노래자랑에서 입상도 힘들 실력이지만.

“유봄이는 어때?”

우아의 말을 들었으니 유봄이의 말도 들어볼 시간이다.

배려심 많은 유봄이는 당연히 양보할 거 같지만.

“저는 우아가 받아도 괜찮아요. 기회를 뺏기는 거도 아니고 조금 늦어질 뿐인 걸요.”

“그래?”

유봄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애들은?”

뱀상의 신정. 가장 나이가 많고 실질적인 이들의 리더기에 신정이 가장 처음 입을 연다.

“우리 막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네요. 제 불찰이에요. 막내에게 레슨을 해 주세요. 그걸로 우리 우아가 다시 밝아졌으면 좋겠어요.”

신정은 평소 수줍은 성격이고 부끄럼이 많다.

그런 신정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꽤 충격받았다는 뜻이겠지.

“저도 막내가 받아도 좋아요.”

“우아 잘 받고 와야 해.”

셋째 라인인 채유와 나림도 우아가 받는 걸 동의했다.

다들 사이는 좋아서 다행이다.

처음부터 얘네한테는 다섯이 같이 데뷔할 거니까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기 때문에.

이 다섯은 서로가 이미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경쟁도 없고 따로 심하게 시키는 것도 없고.

편하게 놀고먹으면서 함께 지내니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니 끈끈해질 수밖에 없긴 하겠다.

“그래. 그럼 우아는 내가 따로 연락 줄게.”

“네. 헤헤.”

그제야 우아가 밝게 웃는다.

웃으니까 더 귀엽네.

“언니들 고마워. 나 진짜 열심히 할게.”

“그래그래.”

신정이 나서서 우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우아는 강아지처럼 신정의 손길을 기분 좋게 느낀다.

보기 좋은 모습이긴 한데.

신정은 약간 뱀 상의 미녀고 우아는 햄스터 상의 미녀라.

뭔가 신정이 우아 잡아먹을 거 같은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연습생 다섯의 얼굴 면면을 본다. 뱀, 여우, 토끼, 강아지, 햄스터 상의 아이들.

나도 참 잘도 모았네.

살짝 아쉬운 건 고양이상의 미녀가 없다는 점.

여우상의 유봄이 살짝 고양이상과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여우는 개과 동물이라 고양이상보다는 강아지상에 가까운 느낌이 더 크다.

흐음, 한 명을 추가하자니 6인조는 조금 애매한데.

그러면 아예 7인조로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또 인제 와서 멤버를 더 추가하는 거도 좀 별로고.

이 정도 레벨의 미녀를 구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니까.

모든 인원이 얼굴 1티어인 걸그룹.

게다가 전 멤버의 실력도 대단하다면?

크으, 벌써 자지가 웅장해졌다.

“레슨 시간이 끝났구나.”

살짝 애매한 시간에 와서 다음 레슨 시간이 왔다.

사실 얘네들은 노래와 춤 레슨 보다는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세 가지 언어를 모두 배우고 있고.

더불어 역사와 상식 부분까지 확실하게 공부시키고 있다.

따로 벌칙 같은 건 없지만.

매월 한 번 시험을 보고 내게 보고가 올라온다.

다들 그런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서 아직은 따로 얘기한 적은 없다.

시험 성적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으니까.

“영어 시간이에요!”

“그래? 다들 열심히 받아. 우아는 금방 연락할 게.”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귀엽게 답하는 우아의 머리를 나도 모르게 살며시 쓰다듬었다.

“헤헤.”

귀엽게 웃으며 내 손길을 느끼는 우아.

얘는 천성이 붙임성이 좋은 거 같다.

귀여운 모습에 볼을 한번 꼬집고 싶었지만, 아직은 조금 조심스러워 연습생들을 보냈다.

“S걸즈 애들은 언제 오려나.”

밖에서 놀 생각이었는데 연습생 애들을 만나느라 스케쥴이 조금 애매해졌다.

음, 커피나 한잔 마시고 있을까?

괜히 사람들 몰릴까 봐 조금 겁나긴 하네.

평소에는 경호 인력이나 다른 여인들과 함께 다니니까 딱히 걱정이 없는데.

완전 혼자서 한국 외부 활동을 하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됐다.

땡중의 세력이 요즘 너무 잠잠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그래도 예정된 스케쥴도 아닌 급작스러운 변덕에 의한 스케쥴인데 별일 있겠어?

마기도 빵빵하니 어지간한 위기는 잘 넘어갈 수 있다.

회사 근처에 꽤 괜찮은 커피숍이 있다고 봐서 그쪽으로 이동했다.

오! 인테리어 좋네.

깔끔한 카페 내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직 오후 시간이라 사람들이 퇴근 전이라 그런가?

너무 조용하네.

주변이 온통 회사들이라 딱히 놀만 한 곳도 없으니 출퇴근 시간 외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겠지.

“어서 오세요.”

오! 직원 꽤 괜찮은데?

갈색 셔츠에 검은 바지. 검은 앞치마를 매고 있는 직원.

아까 생각했던 딱 고양이상 미녀다.

그렇지만 탈락.

미녀긴 하지만 외모 티어로 보자면 3티어급 되겠다.

전원 1티어 걸그룹을 꿈꾸는 내겐 조금 아쉽지만 접어야 할 상대.

물론, 하겠다고 말하지도 않은 사람을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내가 많이 심심한가 보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 반만 담아 주세요.”

“네.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 반만 삼천 원입니다.”

오! 커피값도 꽤 저렴한 편이네.

“결제 되셨고요. 드시고 가시나요?”

“네. 먹고 갈게요.”

“잠시 기다려 주시면 커피 가져다드릴게요.”

직접 가져가는 카페도 아닌 거 같네.

하긴 카페 크기가 크지도 않으니까.

잠시 앉아서 폰으로 연예기사나 볼까 하는데 커피가 나왔다.

천천히 커피를 쟁반에 담아 들고 온 직원.

혼자 일하나?

사장은 아닌 거 같은데.

“커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아 들었는데 직원이 내 앞에서 떠나질 않는다.

뭐지? 왜 그러고 있는 걸까?

고개를 돌려 직원의 얼굴을 본다.

“아, 그게 저.”

“네?”

“여, 연예인을 처음 봐서.”

“저요? 저 연예인 아닌데.”

아니, 맞나? 일단은 프로듀서니까 연예인은 아니지 않을까?

“에, 에스민 프로듀서님 아니세요?”

“그건 맞죠. 프로듀서가 연예인이라고 하긴 조금 애매하지 않나요? 하하.”

농담 식으로 너스레를 떨어 본다.

“호호. 티비에 나오면 다 연예인이죠.”

그렇게 따지면 뉴스에서 길거리 인터뷰한 사람도 연예인 아닐까?

뭐, 여기서 이 사람과 싸울 건 아니니 그냥 멋쩍게 웃기만 했다.

“제가 여기서 일한 지 세 달이 지났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긴 사람이 너무 없어서 심심했을 수도 있겠네.

근처에 기획사가 많아서 연예인 볼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일인데 삼 개월 동안 연예인을 못 봤다는 한탄을 들어줬다.

“하하. 처음 본 사람이 저라서 조금 죄송하네요.”

멋진 보이 그룹을 보고 싶었을 텐데.

“에이! 프로듀서님이 어때서요. 아이돌 못지않은 외모 신데!”

“하하. 감사한 말이네요. 손님도 없는 거 같은데 잠깐 앉으실래요?”

“아, 그, 그래도 되나요?”

잠시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는 알바생.

“어떤 그룹 좋아해요?”

마침 심심했는데 말 상대가 생겨서 좋다.

외모도 나쁜 건 아니고.

내가 보는 외모 티어는 비주얼 센터나 배우급이 1티어고 그 옆에서 조금 꿀리지만 이쁜 애들이 2티어다.

3티어는 아이돌 하기 무난한 외모의 멤버들이고.

4티어는 외모로 조금 놀림당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 정도?

5티어는 아이돌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지간히 실력이 좋지 않은 이상 데뷔는 힘든 애들.

실력은 좋은데 못생긴 거로 이슈가 되는 아이돌 애들이 딱 5티어 애들이다.

그러니까 3티어 정도면 나름 아이돌급 얼굴이라고 할 수 있지.

1티어는 사실 비주얼 센터나 아이돌급이라고 보기보다는 배우급이 맞고.

대부분 그룹에서 비주얼 센터는 2티어인 애들이 하고 있으니까.

“저 슈가 페어리랑, 에스 걸스 엄청 좋아해요!”

“아! 그래요? 하하. 감사합니다.”

이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저 정말로....”

그동안 슈가 페어리 행사도 보러 가고 콘서트 티켓도 코팅했다고 말하는 알바생.

진짜 좋아하긴 하나 보네.

그러니까 내가 연예인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을 만든 장본인이니까.

“와! 멤버들한테 여기 커피숍 이용하라고 언질이라도 해야겠네요.”

“정말요? 아! 너무 염치없었네요. 호호. 저는 평일 점심부터 저녁까지 일해요.”

“하하. 참고하겠습니다.”

외모 얘기로 돌아가서 아까 3티어 얼굴이라고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2티어로 정정해야겠다.

얼굴은 여전히 3티어지만 몸매가 꽤 좋은 거 같다.

셔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몸매였지만.

대화하며 움직이는 모습에 살짝살짝 비치는 모습으로 유추해본 결과 확실히 몸매가 엄청 좋다.

벗겨 보고 싶은 몸이지만, 참아야지.

노래는 잘 하나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아직은 누군가를 받을 때가 아니니 참는다.

곧 미국으로 가야 하기도하고.

-지이잉.

[예진이 도착해서 회의실에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 S걸즈 매니저]

문자가 도착했다.

아! 왔나 보다. 처음 본 여자랑 얘기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이니 빨리 회사 들어가서 예진이 데려가야지.

“아! 일이 있어서 저는 이만.”

“네! 바쁘신 분 너무 잡아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다음에 또 오세요! 그때는 서비스 챙겨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제가 멤버들에겐 꼭 여기 가보라고 할게요.”

“호호. 제가 더 감사합니다.”

즐겁게 인사하고 카페를 나서 회사로 올라왔다.

“예진아.”

“응. 무슨 일인데?”

“가서 얘기하자.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

“그, 그래?”

바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니까 당황하는 예진.

오늘은 다른 여인들과 함께 사는 집이 아니라 나 혼자 있으려고 구해둔 집으로 갈 예정이다.

나도 예진도 얼굴을 잘 가리고 택시를 탄 채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올 때까지 조용히 나만 따라온 예진.

“왜 이렇게 긴장했어?”

“그, 지, 집으로 부르니까.”

“그게 그렇게 긴장돼?”

“저, 저번에 그런 일도 있었고.”

그런 일?

나와 키스한 게 그런 일은 아니지.

“오늘도 그런 일 하려고 부른 건데.”

“지, 진짜?”

예진이 얼굴을 붉히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내게서 살짝 뒷걸음질 쳤다.

“하하. 뭘 그렇게 겁먹어. 내가 잡아먹나.”

“잡아먹는 거 맞지.”

“내가 먹히는 게 맞지 않아?”

“어? 그, 그런가?”

예진이가 고장 났다.

예능에서 나름 입담 좋아서 꽤 활약하는 예진인데.

아무래도 산전수전을 많이 겪었고, 여러 사연을 가지고 재데뷔해서 성공한 예진이니까.

어려웠던 시절이 있어서 예의도 있고 나름 방송 짬밥도 있어서 예능이 나쁘지 않다.

“하하하. 뭘 그리 당황했어. 그냥 얘기나 좀 하자.”

“으응. 무슨 얘기?”

“네 얘기? 사는 얘기?”

“내 얘기는 다 들어가는 거 아냐?”

예진이 살짝 뾰족해진 표정으로 날 노려 봤다.

내가 놀린 걸 이제야 알아챈 거 같다.

“그렇게 보지 말고 요즘 힘든 건 없어?”

“우리야 항상 좋지. 세상에 이런 걸그룹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그래? 예전에 바니하트 할 때는 어땠는데?”

“으으, 지금에 비하면 하루하루 지옥이었지.”

데뷔까지 경쟁에 경쟁하던 애들과 어느 날 한팀이 돼서 서먹서먹하게 연습을 시작한 얘기부터 데뷔하고도 인기에 따라 대우가 달랐다는 얘기, 나중에는 인기 없는 동생들이 그나마 방송에 나오는 자신에게 자격지심을 느껴서 힘들었던 얘기가 술술 나왔다.

“고생했네. 이제 네가 잘 돼서 기뻐.”

“어, 으응.”

예진을 아련한 눈으로 보며 말했고, 천천히 예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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