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87화 (387/450)

387.

노래 파트는 별로 없는 댄스용 곡.

초유 누님은 거의 무대를 휘저으며 날아다녔고.

민하 누나가 대부분의 파트를 소화했다.

으음, 민하 누나만 해도 연습생 5인보다 노래를 잘 하는구나.

여기서 이 다섯보다 노래 못 하는 사람은 두 명 정도겠지?

음치인 아인과 노래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소담.

소담은 요즘 조금 흥얼대는 느낌으로 노래를 하긴 하는데.

심각한 박치에 음치였다.

아인은 갱생 가능성이라도 있어서 내가 노력이라도 해볼 생각을 했었는데.

소담의 콧노래를 듣자마자 든 생각은 이건 회생 불가능한 실력이라는 생각이었다.

여진은 제대로 된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가끔 살짝 흥얼대는 노랫소리는 꽤 치는 느낌이다.

맑은 목소리로 뭔가 신묘한 분위기의 음을 내는 여진.

흐음, 여진이도 노래 한 번 시켜볼까?

두 누님의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나왔다.

92점. 신나는 분위기와 별개로 노래 부분이 많지 않았는데 꽤 좋은 점수가 나왔다.

아무래도 다 같이 소리 지르며 놀아서 그런 거 같다.

으음, 소리만 크게 지르면 점수가 잘 나오는 기계인가?

뭐, 펜션에 있는 기계에 정밀한 채점을 바랄 순 없지만 조금 아쉽긴 하다.

큰 언니들이 노래했다고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는 여인들.

바로 S걸즈에서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는 용월과 영미였다.

용월이 아는 노래가 많지 않기에 두 사람은 S걸즈의 노래를 택했다.

9명이 하는 무대가 아닌데 둘이서 이걸 소화하겠다고?

뭐, 어떻게 하는지 보자.

두 사람의 춤을 구경하며 여진에게 다가갔다.

“재밌어요?”

“네. 즐겁네요.”

확실히 여진의 분위기는 참 독특하다.

분명 노래방 기계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함께 즐기고 있는데.

여진만 조금 다른 곳에 있는 느낌이다.

다 함께하고는 있지만, 혼자만 관찰자인 느낌이랄까?

“노래 한 곡 해볼래요?”

“으음. 아는 노래가 거의 없어요.”

노래방 책을 들추는 여진.

말은 그렇게 해도 노래를 할 생각은 있는 거 같다.

고심하며 노래를 찾는 여진.

“저, 같이 부르실래요?”

“같이요?”

여진이 하나의 노래를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남녀가 함께 부른 유명한 듀엣곡이네.

듀엣곡은 대부분 꽤 어렵다.

아무래도 혼성 2인조 그룹은 별로 없고.

대부분 솔로 가수나 그룹의 메인 보컬이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도 노래 실력은 그리 나쁘지 않으니 어떻게든 소화할 수 있지만.

여진이 이런 노래를 골랐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시, 싫으신가요?”

“아뇨. 의외라서요.”

“호호. 제가 함께 부르자고 할 줄 모르셨죠?”

“하하. 그건 상관없는데. 어렵지 않겠어요?”

여진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긴 하겠지만, 제가 가수도 아니고 같이 노는 거니까요.”

“그건 맞죠.”

맞다. 즐기는 자리다. 굳이 잘 부를 필요는 없다.

그냥 여진의 노래를 듣는 데 의미가 있으니까.

여진에게 손을 건넸다.

내 손을 잡고 다소곳한 포즈로 일어나는 여진.

“오오!”

“성민이랑 여진이?”

“둘이 뭐야뭐야.”

여인들이 장난을 친다.

우리 사이야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여기서 또 너무 달달한 분위기를 풍길 수도 없다.

공식적인 내 애인은 조아니까.

“그냥 여진씨 노래 들어보고 싶어서.”

“맞아. 목소리는 엄청 좋은데 제대로 노래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네.”

“그러게 흥얼거리는 건 몇 번 들었는데. 확실히 노래가 꽤 좋았어.”

초유 누님이나 민하 누나도 내 생각에 동조해 여진의 노래를 기대하는 말을 한다.

여진의 표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게 긴장한 건지 아니면 부끄러워하는 건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지 알 길이 없네.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 때문에 여진의 감정은 읽기가 쉽지 않다.

얼굴에 표나는 유형도 아니고.

여진이 침착한 얼굴로 번호를 누른다.

반주가 흘러나왔다.

노래는 남자 파트가 먼저 나온다.

나는 마이크를 입에 대고 조심스럽게 첫 음을 뗀다.

노래 연습을 안 한 지 오래라 딱히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최대한 가다듬고 괜찮은 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내 파트가 끝나고 시작된 여진의 파트.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너무 집중했더니 잠시 까먹고 있었다.

지금은 내 노래보다는 여진의 노래를 듣기 위함이었는데.

“그대 사랑을....”

여진의 입에서 노래가 나왔다.

나를 비롯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입을 헤 벌리고 놀란 표정으로 여진의 노래를 듣는다.

맑고 청명한 소리.

너무나도 순수하고 깨끗한 소리다.

감정이 따로 담기진 않았지만, 소리 자체에 마력을 머금은 듯 모두를 집중시켰다.

한 음 한 음 아주 소중히 내뱉는 여진.

다른 건 모르겠고 노래를 간절히 하는 느낌은 확실했다.

와! 이런 보컬을 주변에 두고도 몰랐다고?

다이아몬드 원석을 옆에 두고도 몰라보고 버려뒀다.

아니, 원석이 아니다.

이미 다듬어진 깔끔한 보석이었다.

여진을 프로듀싱 한다면?

으음, 당장에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

너무 훌륭한 보컬이라 이 보컬에 어떤 옷을 입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직 기본기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건 노력과 마리로 커버할 수 있다.

“성민씨?”

“아! 대박.”

여진의 노래에 집중해 내 파트를 놓쳤다.

몇 소절이 지나갔지만, 지금 내 노래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노래를 끌 수도 있었지만, 여진의 노래를 더 듣기 위해 다시 노래를 불렀다.

잔잔한 파트가 지나고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나왔다.

엄청난 고음은 아니지만, 나름 꽤 높은 음에 기교가 섞인 파트.

여진이 원음을 부르고 나는 화음을 넣었다.

으음, 조금 부르다 소리를 죽였다.

내 목소리가 뭔가 소음이 돼 여진의 노래를 오염시키는 기분이라.

여진의 목소리는 정말 너무 맑은 물 같다.

하얀 도화지 같은 노래라 조금의 얼굴로 너무 표가 난다.

하얀 도화지 자체로 예술품인데 여기에 어떤 반주를 그려 넣어야 완벽한 노래가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여진에게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보고 싶지만.

딱!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 아직 만들 수 없다.

그래. 나중에 조금 더 실력을 쌓으면 가능하겠지?

너무 먼 목표는 까마득해서 감도 잡히지 않겠지만.

여진에게 어울리는 곡은 그 정도는 아니다.

아주 까마득하면 내가 정확하게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리 없다.

일단 만들어보고 음, 이게 아닌데? 하겠지.

지금 상황은 몇 걸음 부족한 상태.

약간의 시간만 있다면, 또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면 분명 여진에게 꼭 맞는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해요....”

“해요....”

나와 여진의 마지막 파트를 끝으로 노래가 끝났다.

-짝짝짝!

여인들이 놀란 얼굴로 손뼉을 쳤다.

나도 여진을 바라봤다.

“여진아.”

“네?”

다가가 어깨를 잡는다.

“가수 할 생각 없어?”

“가수요? 성민씨가 시켜 주신다면 감사히 할 일이죠.”

여진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진은 가수를 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알아서 처리할 게 지금부터는 연습생이 되는 건가?”

타이밍 좋게 소담이 필요한 말을 해줬다.

내가 신경 쓸 건 많이 없겠구나.

“일단 집에 가면 내가 몇 가지, 아니, 다른 선생 붙여줄게. 기본기만 조금 갈고 닦자.”

“알겠어요.”

여진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내 말에 무조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자! 놀라운 노래는 여기까지로 하고 슬슬 다들 불러야겠다.”

“아! 맞다.”

여진의 노래에 충격을 받아 개인 파트 쟁탈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 그럼 다들 부를게.”

민하 누나가 폰을 꺼내 연락을 돌린다.

으음, 내가 없는 단톡방이 있는 거 같다.

나중에 몰래 훔쳐봐야지.

조금 시간이 지나 모든 여인이 노래방 기계 앞으로 모였다.

“노래 순서는 아까 뽑았던 번호 순서야 1번 팀이 어디지?”

초유 누님이 앞으로 나서 진행한다.

진행은 윤진이 하겠지만, 이런 정리는 초유 누님이 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자! 그럼 1번 팀인 선애언니 나정이랑 혜민언니 앞으로 나와 주세요.”

언제 적었는지 모르겠는데 윤진은 미리 팀원 목록을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

준비성은 철저하네.

어쩌다가 대충 만들어낸 이벤트인데 여러모로 고맙다.

나는 의견만 내고 다들 알아서 이렇게 진행해주니 재밌기도 했고 편하기도 했다.

아!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이미 늦어버렸네.

조금 아깝다.

팀명이랑 구호 같은 거 정해놨으면 재밌었을 거 같은데.

“어떤 곡을 부르실 건지와 각오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윤진은 노래방 마이크가 아니라 어디서 구했는지 블루투스 마이크로 진행하고 있다.

저런 건 또 누가 언제 어디서 챙긴 걸까?

하여튼 노는 데는 진심인 여인들이 여기 꽤 많다.

“저희는 전설적인 걸그룹 E.S.E의 노래를 준비했어요. 데뷔곡으로 상큼한....”

선애 누나가 살짝 음울한 표정으로 소개한다.

다들 웃음을 참느라 바쁘다.

그래도 곡은 꽤 오래된 곡을 선택해서 언밸런스함을 줄이려고 한 거 같다.

그래도 그 당시에 가장 청순 상큼했던 걸그룹인만큼 30이 넘은 선애 누나가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하다.

“네! 각오는 잘 들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소화했을지 궁금한데요. 시간 끌지 말고 바로 보겠습니다.”

윤진이 알아서 곡을 시작한다.

마이크를 잡은 나정과 혜민.

오! 선애 누나가 나름 댄스 포지션을 맞은 건가?

모두에게 미리 말해뒀다.

마이크는 2개고 무선도 아니라 서로 돌아가며 사용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안무하다 달려와서 마이크 받는 거도 좀 모양 빠지기도 한다.

알아서 마이크 사용도 논의하라고 했는데.

이 팀은 선애 누나가 노래를 놓고 댄스에 비중을 많이 넣은 거 같다.

좋은 판단이다.

아무래도 선애 누나의 농익은 보컬은 상큼한 노래에 살짝 안 어울릴 수도 있으니까.

나정과 혜민의 노래는 훌륭했다.

음, 혜민이는 다음에 마기 충전 좀 해줘야겠네.

폼이 떨어진 건 아닌데 그간 노력을 꽤 했는지 발전 가능성이 보였다.

나정이는 여전히 노래를 시작하니 독기가 보였다.

간절한 노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도 있지만.

상큼한 걸그룹 노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금 아쉽네.

뭐, 여기서 내가 평가를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점수는 노래방 기계가 채점하는 거고.

초유 누님만 퍼포먼스 점수를 매길 수 있다.

상큼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선애 누나.

노래하는 두 여성도 선애 누나와 동작을 맞춰 가볍게 몸을 움직인다.

짧은 시간 준비한 것 치고는 꽤 괜찮은 무대였지만.

여러 가지로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딱 수련회 장기자랑 우승할 정도의 무대랄까?

-짝짝짝.

“네! 잘 봤습니다. 지금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나오고 있는, 네! 말하는 순간 점수는! 88점! 상당이 좋은 점수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죠?”

노래가 끝나고 윤진이 부드럽게 진행을 이어갔다.

초유 누님 곁으로 다가가는 윤진.

“퍼포먼스 점수가 있었죠. 자! 심사위원님 점수를 말씀해 주시기 전에. 심사에 어떤 걸 가장 중점적으로 봤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초유 누님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간다.

블루투스 마이크가 두 개나 있는 거도 신기한데 들어보니 몇 개 더 가져왔다는 거 같다.

가수가 많아서 그런가? 놀러 오는 길에 블루투스 마이크 하나씩은 챙기나 보다.

“짧은 시간 준비한 만큼 완성도 보다는 곡에 어울리는 분위기나 저희에게 얼마나 재미 또는 감동을 줬는지에 따라 점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초유 누님이었지만.

그 진지한 얼굴 덕분에 더 분위기가 좋아졌다.

다들 살짝 미소 짓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 퍼포먼스 점수도 100점 만점이고 기계의 점수와 합산해 총점을 매깁니다. 그럼 점수 말씀해 주세요!”

윤진의 말에 초유 누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제 점수는.”

“점수는!”

진짜 예능처럼 뜸을 들이며 열심히 쪼는 두 사람.

“80점입니다.”

“네. 좋은 점수라고 생각하는데요. 80점을 주신 이유를 들어볼까요?”

“후후, 사실 퍼포먼스는 딱히 볼 게 없었죠. 하지만, 선애의 노력을 높이 샀달까요?”

초유 누님이 선애 누나에게 찡끗 윙크한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인 선애 누나.

선애가 대선배에 나이도 좀 있어서 다들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웃겼다.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

“네! 심사평 잘 들었습니다.”

윤진도 웃음을 참는지 멘트가 꽤 딱딱해졌다.

“그럼 바로 다음 팀 무대를 시작해 볼까요?”

분위기를 환기하는 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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