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74화 (374/450)

374.

나정을 자빠트릴 계획은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여기선 시간도 별로 없고, 아직 내 문란한 생활을 모르는 멤버가 꽤 있다.

오늘은 아주 조금의 빗장만 열어두고 빠져야겠다.

내게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없애고 마음의 문을 살짝 열어둘 필요가 있다.

“나정아.”

“네!”

“너랑 나는 이제 한배를 탄 사이야.”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네 배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네가 내 배 위로 올라오기도 해야 해.

그런 농담이 떠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나 아직 20대 후반인데 왜 자꾸 아재 개그가 떠오르는 걸까?

“그런데 네가 날 이렇게 계속 어려워하면 내가 널 대하기가 힘들겠지?”

“죄송합니다.”

“사과할 일은 아니고. 너도 계속 내가 무서우면 매번 피드백 받을 때마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지 않겠어?”

“전 괜찮습니다.”

어후, 아주 철옹성이네.

나정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렸다.

스킨십은 딱 여기까지만 할 생각이다.

오늘은.

“흡.”

손을 올렸을 뿐인데 엄청 긴장한 나정.

“다 내 잘못이네.”

“네?”

“으음, 너는 지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

“죄, 죄송합니다. 알려주신다면 최선을.”

손을 들어 나정의 말을 끊었다.

“네가 지금 하는 게 뭐지? 걸그룹 아니니?”

“맞습니다.”

“걸그룹은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지?”

나정이 그런 걸 왜 묻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대중음악이 뭘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이요?”

“맞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중이 원하는 음악이지.”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내 말을 듣는 나정.

확실히 예전에도 1티어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쁜 얼굴이다.

그런 얼굴이 날 보며 집중한 모습은 상당히 음심을 자극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벗겨서 쾌락에 취한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이번엔 조금 더 아껴먹어야지.

여자는 숙성될수록 맛있는 음식이니까.

“그렇다면 대중이 원하는 걸그룹은 뭘까? 이쁘고 밝고 실력도 좋은 그런 아이를 원하겠지?”

나정의 답은 필요 없다.

올려둔 팔에 힘을 조금 넣어 어깨를 잡는다.

“넌 이쁘고 실력도 꽤 좋아졌어. 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어.”

“무, 문제요?”

“응. 이미지.”

“이미지요?”

나정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내 딴에는 널 조금 더 이끌기 위함이었는데 그게 조금 잘못됐던 거 같아.”

“아, 아니에요! 저, 저는 피디님 덕분에 실력이 늘었는걸요.”

“실력을 말하는 게 아니었잖아. 이미지 말이야.”

“제 이미지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소심하게 의견을 말하는 나정.

물론, 지금 나정의 이미지는 딱히 나쁜 쪽은 아니다.

독기 가득한 야망 있는 소녀.

멀리서 보면 아람과 비슷한 느낌을 품고 있기도 하다.

둘 다 열심히 하는 건 비슷하니까.

단지 보이는 모습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다.

아람이는 정도를 추구하는 정직한 느낌이 강하다.

실제 성격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많은 팬이 인성이 가장 좋을 것 같은 맴버로 아람을 꼽는 이유가 있다.

꾀를 부리지 않는 노력파.

왠지 정직하고 착할 거 같잖아.

반면에 나정의 이미지는 조금 다르다.

커뮤니티에서 S걸즈 멤버들의 인성을 논한 때 항상 나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외모로는 혜민과 나정 둘이서 1등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지만.

성격을 포함하면 어디서 투표를 해도 나정은 혜민에게 밀린다.

심지어 순위 상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나정의 성격이 안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다.

내가 심어준 독기.

나정이 나온 방송에서 그 독기가 문득문득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아람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나정은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를 조금 나쁘게 말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즉, 나정의 이미지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 같은 이미지.

그 때문에 회사에서 나정을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케어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은 헤프닝으로 넘길 수 있을 만한 사건이 나정에게서 터진다면.

음모론이 생겨나고 의혹이 마구 부풀려질 테니까.

광고주 미팅이라도 했다가는 성공을 위해 몸을 팔았다는 얘기까지 나돌 수 있다.

얼핏 특별대우 같지만, 따지고 보면 관심병사 대우가 더 맞는 얘기.

지금은 나정은 폭탄 같은 느낌이다.

“나쁘지 않다라.”

“나, 나쁜가요?”

“음, 네가 솔로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어. 아이돌이 아니어도 마찬가지고. 그냥 야망 있는 거로 포장할 수 있으니까.”

“야망이요?”

얘는 본인 이미지를 제대로 모르는 걸까?

“나 때문에 네게는 독기가 생겼어.”

“그,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널 안 좋게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너는 혼 날수록 더 잘하는 스타일이었으니까.”

나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때문에 네가 그룹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 따지고 보면 네 성공을 위해서 멤버도 회사도 심지어는 법과 도덕까지 내팽개칠 거 같아 보이니까.”

“아, 아니에요! 저, 저는!”

나정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더했다.

꽉 쥔 손에 떨리는 나정의 몸이 느껴진다.

“네 잘못이라고 하는 게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게 문제라는 거야.”

“흑, 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짝 눈가에 눈물이 맺힌 나정.

실제로는 아주 여린 성격인 거 같다.

주제도 모르고 오디션에 나댈 때와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때보다 세상을 많이 경험했을 테니까.

자신의 가치관을 밀고 나가기에는 세상의 풍파가 그리 녹록지 않았겠지.

어쩔 수 없이 모난 부분이 깎여 나갔을 터다.

나정의 나이는 이제 20이다.

나는 나이가 30이라고 해서 30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그랬다.

19살까지는 자라는 시기고 20살부터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뭐, 대학을 다니며 계속 아이처럼 칭얼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20살부터는 살았다고 말할만한 경험을 하니까.

나정은 이제 1년 정도 세상을 살아가며 모난 부분을 깎았다.

과거의 세상 물정 모르던 나정과는 많이 달라졌겠지.

나정의 세상 물정 모르는 성격은 예쁜 외모 때문이다.

언제 어딜 가나 자신을 떠받들고 이뻐해 준다.

외모가 아름답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혜택을 받는다.

그걸 누리며 살아갔으니 세상 무서운 걸 몰랐을 거다.

20살 전까지는 그래도 된다.

허나,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내가 얻은 호의들은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난 태생부터 이뻤던 애들이 좋다.

자신의 외모가 어떤 무기인 줄 알고 사용하니까.

갑자기 이뻐진 애들은 그걸 모르고 휘두르다가 인생 좆되는 경우가 많지.

나정은 이제 서서히 자신의 외모가 어떤 무기이며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학습하고 있을 터.

그와 동시에 내가 했던 채찍질이 나정을 더 각성하게 만들어 버렸다.

자신의 외모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노력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오디션에서 맞은 채찍의 대가는 오직 결과만을 보는 과정이었으니까.

노력은 비치지 않는다.

아니, 비쳤는데 나정이 그걸 모르고 있는 거겠지.

그러다 보니 결과만 생각하게 된다.

아람처럼 언제나 최선을 다해 우직하고 무식하게 노력하기보다는.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위해 효율을 찾는 거다.

그 효율을 찾는 방법에 조금의 욕심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작은 비도덕한 일을 하게 된다.

그 작은 비도덕한 일로 노력보다 큰 성과를 얻는다면?

점점 도덕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연예계에 있다 보면 그런 사람들 생각보다 꽤 보인다.

당장 내 곡을 위해 몸을 바칠 여가수를 수배해보면 수백은 나올걸?

“내가 만든 문제니까. 그것도 내가 해결해야겠네.”

“네? 어, 어떻게?”

“으음.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한 번 부를게. 그때 같이 고민해보자.”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네게 문제가 있다.

그걸 내가 해결해줄 예정이다.

이걸 알려준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정의 마음속 빗장은 서서히 열릴 테니까.

뭐, 내가 바로 열어버릴 수 있지만.

스스로 빗장을 열고 보지도 여는 게 더 재밌잖아?

일주일 안으로 나정을 한 번 더 불러야겠다.

뭐, 나정 빼고 넷도 불러서 조금 힘을 줄 필요도 있는데.

생각보다 스케쥴이 꽤 빡빡하겠네.

휴식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래. 오늘은 잘 했어. 나가봐.”

유일하게 나정에게만 오늘의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뭐, 생각이 많겠지?

나정이 밖으로 나가고 나도 일어났다.

함께 나가는 그림도 좋지만, 모두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휴게실 문을 열고 나가니 다들 상기된 모습이다.

“저희 정말 열심히 할게요!”

무슨 얘기가 오고 간지 모르겠지만, 의지를 다잡는 아이들이 보였다.

예진이 대표로 나와 주먹을 꽉 말아쥐며 말했는데.

뭐가 어떻게 흘러간 건지 모르겠네.

“그래. 모두 잘 해주고 있어. 다음에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

“네!”

밝게 답하는 아이들.

크으, 밝고 활기찬 여인들의 에너지는 언제나 기분 좋다.

그렇게 모두를 보냈다.

한 명 정도는 잡아 두고 싶었지만.

명문이 없다 아입니꺼, 명분이.

바쁜 애들이니까.

흐음, 밥이나 먹으러 갈까?

연습실을 나오니 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뭐, 집에 있는 모든 여성은 내 여자니까 뭘 하든 상관없다.

“하읏.”

“여기서 뭐 해?”

“성민님.”

“앗! 여, 여진아.”

멍한 눈을 한 여진.

하필 여진이 있었을 줄이야.

“밥 먹었어?”

“이제 먹으려구요. 성민님은 드셨나요?”

모두와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기로 했지만.

여진은 여전히 내게 존칭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날 은인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눈까지 내가 고쳐줬잖아.

“나도 이제 먹으려고. 같이 먹을까?”

“좋아요.”

묘하게 웃는 여진.

확실히 신비로운 분위기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긴 하다.

뭔가 분위기가 남다르달까?

“나가려는 거 아니었어?”

“들어오는 길이었어요.”

“아! 어딜 다녀 왔어?”

“호호. 저도 일을 시작했답니다. 언제까지고 얹혀살 순 없으니까요.”

여진의 포지션은 꽤 애매하다.

내 여자이면서 나와 그리 친밀하진 않은 여성.

모두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여진.

내가 부족하지 않게 돈을 쥐여줬지만, 거의 사용하는 거 같지 않다.

하긴, 이 집에만 있을 테니까.

집에 어지간한 건 다 있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 정도만 사는 거 같은데.

그것도 주로 여진이 직접 사기보다는 민하 씨를 통해서 사는 거 같다.

민하씨가 이 집에 총무?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저는 뭐든지 잘 먹어요.”

“술도 한잔할까?”

“좋죠.”

얼결에 여진과 식사 자리가 만들어졌다.

뭐, 실진 않다.

어쨌든 여진도 내가 매력을 느껴 우리 안으로 들인 암컷이니까.

메뉴는 회를 골랐다.

날로 먹는 건 언제나 환영이니까.

회와 함께 어울리는 소주를 곁들인다.

희석식 저가 소주 말고 증류식 고급 소주를.

여진은 생각보다 술을 즐기는 거 같다.

방에 이런저런 술이 꽤 많았다.

“술을 좋아하나 봐?”

“선애 언니나 소담 언니와 가끔 마시다 보니 조금 늘었네요.”

여진이 민망한지 살짝 웃으며 말한다.

선애가 술 좋아하는 건 알고 있다.

소담은 몸을 회복한 후로 늦바람이라도 든 건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마기로 건강해진 신체라 그런지 언제 아팠냐는 듯 주량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맞다. 일을 시작했다고?”

“네. 소담 언니가 도와주셨어요.”

“아! 소담의 회사에서 일하는 거야?”

“네.”

소담의 회사는 경호단체다.

여진이 경호를 나갈 거 같진 않으니 사무직이겠지?

“일은 할 만해?”

“소담 언니 비서라서 딱히 힘든 일은 없어요. 그냥 말동무나 하는 느낌이에요. 조금 과분한 대우를 해주셔서....”

여진은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뭐, 그동안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재밌게 생활하고 있네.”

“이게 다 성민님이 배려해주신 덕분이겠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여진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으음.”

뭔가 기분이 묘하다.

여자를 취하는 것에 거리낌이 있는 성격은 아닌데.

여진이 이렇게 다가오니까 뭔가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는 기분이다.

몸으로 무언가 대가를 받는 느낌?

물론, 그렇다고 거절할 생각은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거절할 정도의 성인군자였다면 중국에서 그런 아이돌은 만들지도 않았겠지.

뭔가 도덕적이지 않은 느낌. 흔히 말하는 배덕감.

그 감정 덕분에 자지가 분기탱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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