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67화 (367/450)

367.

결전의 날이 밝았다.

며칠간 나와 신디는 모든 스케쥴을 제쳐 놓고 프로젝트S에 매달렸다.

나는 조금 여유롭지만 신디는 여기서 지면 끝이니까.

벨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뭐, 그건 이따 알게 되겠지.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촬영.

이번 촬영은 관객이 없고 꽤 긴 시간 촬영을 한다.

방송에 나가는 건 총 80분.

공연은 총 30분이니 50분은 다른 걸 해야 한다.

그 50분은 우리가 연습하는 영상을 넣어 대체하겠지.

대충 편집된 영상을 오늘 같이 보면서 리액션도 딴다고 하니까.

뭐, 그건 공연 이후에 일이니까 상관없고.

중요한 건 이제 또 순서를 정할 타이밍이다.

근데 문자 투표로 하는 거라 먼저 하는 게 좋을지 나중에 하는 게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신디와 고심해 정한 순서는 우리가 나중에 하는 것.

저쪽에는 벨이 있다.

분명 마지막은 신나는 분위기로 끝나겠지.

저쪽 팀이 나중에 공연하면 피날레 느낌이 강해진다.

그렇게 되면 실제 실력을 떠나서 표를 더 받을 수 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우리가 후순서의 공연을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이번 방송은 순서 정하기 게임 후 연습 영상이 나가고 공연 영상이 나가는 순서.

즉, 저쪽 팀의 공연 후 우리 팀의 연습 영상이 나가는 시간이 있다.

당연히 분위기가 유지되지 않을 테고 우리의 시작이 귀여운 몰의 무대라고 해서 기죽을 게 없다.

“자! 촬영 들어갈게요.”

피디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모두 정해진 자리에서 기다린다.

진행자가 나와 프로듀서 넷을 소개하고 우리는 차례로 나가 인사를 나눈다.

이번엔 사전 인터뷰가 그리 길지 않다.

어차피 연습 영상이 나갈 테니까.

단지 자신 있냐 정도의 인터뷰만 있었다.

“자! 그러면 오늘도 순서를 정할 시간이 돌아왔네요.”

“와아아.”

나는 성의 없이 손뼉을 쳤다.

근데 나만 쳤네?

다들 방송 안 하나?

나만 열심히 해?

“하하. 감사합니다. 에스민 프로듀서. 순서 정하기 게임이 뭐일 거 같나요.”

“으음, 예상이 안 되는 데요.”

“처음으로 프로듀서끼리 팀을 맺었으니까 팀 게임을 준비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게임이었다.

텔레폰 게임.

처음 게임 이름을 듣고는 그게 뭐지 했지만.

설명을 들으니 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게임.

한 사람이 귀를 막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다.

아는 게임이긴 하지만 역시, 내가 불리하다.

내 모국어는 한국어니까.

영어로 설명하는 입 모양을 보고 맞추는 게 저들에 비해 익숙지 않을 수밖에.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문제를 내고 신디가 맞추기로 했다.

헤드폰을 끼고 기다리는 신디.

신디의 뒤에서 진행자가 문제가 적힌 스케치북을 넘긴다.

우리 팀도 그렇고 상대 팀도 문제의 주제는 음악.

그래도 우리나라랑 다르게 문제를 내는 나는 신디가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신디가 잘못 말하면 바로 고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네.

“자! 시작합니다.”

첫 문제.

‘아르페지오’

나는 입을 열었다.

“아!”

“아?”

“르.”

“으?”

신디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 입 모양을 따라 한다.

“아르페지오.”

“응?”

당황하는 신디.

왜? 뭐가 문젠데?

“아! 르! 페! 지! 오!”

“아으펠치오?”

쟤 펠라치오 생각 한 거야?

아니! 음악에서 그게 왜 나와!

“아니! 그거 말고 페! 지!”

“으으. 이거 맞아?”

“아니! 그거 아니라고!”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펠치? 펠치오가 뭐야! 이상하잖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건 네가 이상한 거지!

아주 음란 마귀가 가득 꼈네.

“으으, 패스 같은 거 없나요?”

“네. 패스 없습니다.”

“후우, 신디 잘 들어. 아르르르르르.”

“아르르?”

혀를 굴려 아르르 소리를 내니 신디가 따라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페지오!”

“아니. 왜 아르르 하고 그게 나오는데!”

“그거 아니라고!”

다들 웃음바다였지만, 나와 신디만 세상 진지했다.

아! 망했네.

“아르펠치오? 아! 아르페지오!”

“정답!”

겨우 한 문제 넘어갔다.

다음 문제를 확인하기도 전에 제한 시간이 끝났다.

얼굴을 엄청 붉게 물들인 신디.

“후우, 잘 했어.”

“으응.”

우리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벨과 존은 가볍게 웃었고, 진행자와 참가자들은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었다.

“아! 신디의 평소 습관을 알 수 있는 게임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신디가 소리쳤지만, 웃음에 묻혀 지나갔다.

존과 벨 팀은 가볍게 두 문제를 맞히며 순서 선택권을 가져갔다.

“흐음, 저희는 마지막에 하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그럼 바로 공연 준비를 시작하죠.”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신디는 도망치듯 어디론가 갔고.

나는 그런 신디를 웃으며 바라봤다.

다시 돌아온 신디.

“페지오가 어떻게 그렇게 들렸지?”

“하하. 신디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죠.”

“그러게. 세상 순진한 척하더니 그럴 줄 몰랐어.”

벨과 존이 대화를 나누며 신디를 놀린다.

나도 거기에 참여해 같이 놀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신디가 울어버리기라도 할 거 같아 두 사람을 말렸다.

“하하. 선배님들 신디 울겠어요.”

“장난이 지나쳤네.”

“우는 모습도 한번 보고 싶은걸. 하하하.”

존은 정중히 사과하고 자리로 돌아갔고.

벨은 끝까지 놀리며 자리로 갔다.

“내가 발음이 좀 안 좋지? 미안.”

“아, 아니야.”

여기선 먼저 사과하고 나가야 신디가 나중에 뭐라고 할 게 없어진다.

“이제 무대만 잘 하면 되겠다. 방송 분량은 확실하게 뽑은 거 같으니까.”

“으으. 편집해달라고 하면 어림도 없겠지?”

“그렇지. 그거 하나 맞췄는데.”

“후우.”

한숨을 쉰 신디고 자리에 앉았고 나도 앉았다.

으음, 지금이야 분위기 좋게 웃으며 지나오긴 했는데 걱정이네.

가장 걱정했던 존&벨 팀의 피날레 무대가 돼버렸다.

아! 재미를 뽑고 이대로 신디가 탈락하는 거려나.

조금 불쌍하네.

“열심히 하자!”

“네!”

“맡겨 주세요!”

신디를 보며 몰과 루에게 말했고 두 여인은 웃으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다시 촬영 들어갈게요.”

피디의 사인이 있고 촬영이 다시 시작됐다.

바로 시작되는 무대.

진행자가 우리 팀 참가자를 한 명씩 소개했고 셋 모두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몰 혼자 남고 내려가는 두 사람.

몰이 천천히 심호흡하고 무대 중앙에서 살짝 포즈를 취한다.

시작된 노래.

항상 진지한 발라드를 부르던 몰인데 상큼하고 귀여운 노래가 나오니 존과 벨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감상했다.

관객이 없으니까 반응을 바로 알 수가 없는 게 조금 아쉽네.

몰은 연습한 만큼 무대를 잘 끝냈고 다음은 루.

귀엽고 상큼한 무대를 받아 발랄하게 이끄는 루.

점점 뭔가 오묘하게 끈적해지는 음악.

딱 루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였다.

다음으로 나온 휴.

휴는 원래 있는 곡이었지만, 본인만의 색으로 새로운 곡처럼 노래를 불렀다.

다시 나오는 몰.

여기가 하이라이트지.

바뀐 의상은 파격적이었다.

한 벌로 된 딱 달라붙는 원피스.

기장은 아주 짧아 엉덩이가 보일 듯 말 듯 했는데 몰은 거기에 가터벨트까지 착용했다.

가슴은 깊게 파여 몰의 매력적인 볼륨을 더 돋보이게 한다.

진행자가 손뼉을 치며 아주 좋아했고 다른 남성 참가자들은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섹시하고 매력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몰은 끈적한 노래를 담담하게 잘 불렀다.

곡에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묘한 위화감.

노림수다.

곡에 너무 빠져버리면 안 되니까.

몰을 봐야 한다. 그래야 저 섹시한 모습에 곡의 완성도가 폭발한다.

몰이 곡을 마치고 섹시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무대에서 퇴장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지만, 모두가 숨을 죽인다.

그러고 나오는 몽롱한 멜로디.

동양의 고전 음악을 들으면 나오는 찡한 음이 나오고 루와 휴가 소리를 더한다.

잘했다.

그러고는 점점 신나는 분위기로 노래를 끌어갔다.

신디도 곡은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았다니까.

딱 알맞은 마무리였다.

“잘했다.”

“응. 좋았다.”

신디가 감격한 듯 말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번만큼은 벨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냈다.

무대가 끝나고 약간의 정비를 하고 벨과 존 팀의 무대가 시작됐다.

진행자가 나와 소개를 마치고 시작된 무대.

내 양옆에서 몰과 루가 손을 꼭 잡고 무대를 본다.

신디도 집중한 표정으로 무대를 본다.

휴는 살짝 심드렁한 느낌?

아니, 그런 거보다는 그냥 멍한 거 같다.

근데 자꾸 몰을 쳐다보는 거 같은데?

음, 확실히 시선이 갈 수밖에 없긴 하네.

몰의 의상은 그대로였다.

꽤 자극적인 의상.

이거 좋은데?

이따가 집에 가서 이대로 한판?

어차피 오늘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이번 촬영이 끝나면 3주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다음 공연부터는 전부 생방송으로 나가기 때문.

그때까지 누가 탈락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고 2주 뒤에 방송이 나가면 그때 간단한 녹화가 있다.

거기서 벨이나 신디 중 한 명은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벨 팀의 무대에서 실수가 나왔다.

대단한 건 아니고 한 참가자가 고음부에서 삑사리를 냈다.

아직은 무대 초반부.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다행히 실수한 참가자는 티를 내지 않고 열심히 무대를 진행했다.

그래도 실수한 게 마음에 걸렸던 걸까?

원래보다 조금 더 긴장한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나야 음악에 민감해서 확실히 느끼는 건데.

대중은 또 다르겠지?

음, 근데 확실히 이렇게 보니까 비주얼은 우리가 압살이네.

몰과 루는 이쁘다. 내가 섹스를 하는 여자는 이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장 함께하는 여자가 수십 명인데 새로운 여자에게 눈이 돌아간다는 건 그 여자가 그만큼 매력적이란 의미.

휴도 뭐, 인정하긴 싫지만, 꽤 잘 생겼다.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더러운 세상.

저런 얼굴이면 노래를 못해야지.

나는 이런 얼굴인데도 노래를 못해서 작곡하는데.

무대는 무난하게 끝났다.

한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잘 만회했고 분위기는 계속해서 올라 엄청 신나게 끝났다.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으음, 실수가 없었다면 졌을 거 같은데?

무대의 완성도만 따지만 고만고만한 수준.

이럴 땐 순서가 많은 걸 바꾼다.

두 팀의 무대가 다 실수 없이 끝났다면 근소한 차이로 벨&존 팀이 이겼을 확률이 높다.

실수 한 번이 변수가 돼 희망이 생겼다.

“어떻게 생각해?”

“으음, 진짜 모르겠어.”

내게 의견을 묻는 신디에게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원래라면 졌을 거 같은데, 실수 때문에 진짜 박빙이 됐다고.

실수 후에 뭔가 계속 안 좋아졌다면 모르겠지만, 잘 극복하고 괜찮은 무대를 보여줬다.

뭐, 실수한 친구가 약간의 무리를 한 것 같다만 크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고.

아마 대중들은 무난하게 넘어가 줄 정도였겠지?

흐음, 진짜 모르겠네.

“으으. 나 너무 떨린다.”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후우, 그랬으면 좋겠네.”

무대는 끝났지만, 촬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티비 컨텐츠도 리액션 카메라 같은 게 있듯.

우리는 지금 리액션을 찍히고 있다.

벨과 존 팀이 연습하는 영상이 쭉 지나간다.

어디가 편집되고 어디가 사용될지 모를 긴 영상.

거의 2시간 가까운 영상이다.

무슨 영화를 찍어 놨네.

물론, 그 뒤로 나온 우리 팀 연습 영상도 마찬가지로 길었다.

각 영상을 보며 방송에 나갈 거 같은 장면이 나오면 나는 열심히 리액션 했다.

뭐, 카메라에 한 번이라도 더 나가면 좋은 거니까.

내가 굳이 그래야 하는 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송을 날로 먹을 생각은 또 없다.

사실 그냥 재밌기도 하고.

한국 가면 예능에 좀 나가 봐야지.

나 정도 드립력이면 좀 써주지 않을까?

뭐, 내가 노잼이어도 출연 제의는 엄청 오겠지만.

일단 시청률은 보장될 테니까.

이미지 소모가 심하지 않은 정도로만 나가 봐야지.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모두 끝났다.

몰과 루는 나와 함께 차에 탔다.

긴장한 표정의 몰.

“으으, 이길 거 같아요? 프로듀서?”

“저는 진짜 모르겠어요.”

“나도 예상이 안 되네.”

셋이서 무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정비서는 제삼자니까 어떻게 봤어?”

“으음, 내가 3자라 하기에는 너무 이쪽 편이지. 그래서 두 사람이 더 예뻐 보이는 것도 있고. 내가 보기엔 이겼어.”

“그런가?”

“흣, 하으으.”

몰의 다리 사이에 손을 넣고 허벅지를 주무른다.

이 의상 진짜 못 참겠네.

내가 일부러 옷 갈아입지 말라고 했다.

“크으, 죽이네.”

“하으, 프로듀서. 흐응.”

“저는요? 저는요?”

“하하하. 루도 매력 있지. 안겨.”

루를 한 손으로 꼭 안고 몰의 몸을 더 즐긴다.

오늘 한번 죽어 보자. 이젠 시간도 여유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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